방법서설(데카르트)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17:03
1. 작가 소개
데카르트 [Rene Descartes]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다.“ -방법서설 본문 중-
1) 데카르트의 생애 (1596. 3. 31 프랑스 투렌 라에~1650. 2. 11 스톡홀름.)
생각하는 행위와 존재하는 것의 불가분의 관계를 제시한 데카르트는 프랑스 투렌 지방 법조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왕립학교를 다녔다. 그곳에서 그는 철학, 수사학, 수학 그리고 기하학을 일찌감치 끝낸 것은 물론, 자연과학 분야까지 터득한 천재적인 인물이다.
데카르트가 살았던 시기는 30년 동안의 종교전쟁 등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때였는데, 그는 이때 전쟁에 참가하기도 하고 또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는다. 1625 년부터는 다시 파리에 머물면서 수학자와 자연학자들을 사귀면서 새로운 학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이론을 의심하는 신학자들과의 갈등을 피해 32세의 나이로 1628년 프랑스를 떠나 그 당시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로 이주한다.
네덜란드에서 20년을 머물렀는데, 이 시기에 그는 시골에 은둔해 살면서 학문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겨 근대 철학의 기초를 마련한다. 그의 깊은 관심은 확실한 진리 탐구의 방법을 찾는 데 있었다. 이때에 출간된 <방법서설>(1637)과 <성찰>(1641)은 새로운 철학의 시작을 알린다. 1649년에 스웨덴 여왕의 초청을 받고 그해 가을에 스톡홀름으로 떠나지만, 북극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1650년에 죽음을 맞이한다.
2) 데카르트의 철학
데카르트는 사회적인 혼란은 학문과 철학의 그릇된 발전에서 오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특히 스콜라 철학은 끝없는 말싸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종교전쟁과 같은 극도의 혼란을 가져오는 참으로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우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알쏭달쏭한 주장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해될 수 있는 확실한 것만을 보여 주고자 했다.
의심은 그에게 철학의 출발점이며 방법이 된다. 즉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것을 얻기 위한 의심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의심하라’는 말을 항상 주저하며 믿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 내린 결정은 정말 의심스러운 것이 나타날 때까지는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의심스러움으로부터 또 다른 의심스러움에 빠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의심할 때, 한 가지의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의심하는 사람’이 의심의 순간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2. 작품의 시대배경과 상황
30년 전쟁 (三十年戰爭)
1618-48년 사이에 독일을 무대로 벌어진 전쟁. 최후 최대의 종교전쟁 이라고 일컬어진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종교와 왕조, 영토 및 통상에서의 적대관계 등 다양한 이유로 벌인 전쟁이다. 이 파괴적인 전쟁은 유럽 대륙 거의 전역에서 벌어졌으며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전쟁이 끝났을 때 유럽의 지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모했다.
3. 내용 요약
데카르트는 1628년에 자기 사상의 완성을 위하여 네덜란드로 이주하였다. 이후 수년간 그는 자연 연구에 몰두하여 전자연학(全自然學)을 포괄하는 <우주론(宇宙論)>을 준비하였다. 그 우주론을 완성하고 막 인쇄에 하려던 1633년에 G.갈릴레이의 지동설(地動說)에 대한 위법(違法) 판결이 내려져, 지동설을 주요 내용으로 한 이 책의 간행을 단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친구들의 요청에 보답하기 위하여 구고(舊稿)에서 물의를 일으킬 만한 부분을 생략하고, 〈굴절광학〉,〈기상학〉,〈기하학〉 의 세 시론(試論)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공간(公刊)하였다. <방법서설>은 이들 세 논문의 서설(序說)로서 맨 마지막에 쓴 것이다. 이 책은 데카르트가 최초로 1637년에 출간한 책이고, 일상인을 위해 불어로 쓴 일종의 고백론 이다. 방법서설의 원제목은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이다.
이 저서는 무엇보다도 ‘방법의 이야기’ 이다. 그것도 자기 자신의 학문적 생애를 이야기한다는 형식을 취하여 학문연구의 방법과 형이상학, 자연학의 개요를 논술한 것이다. 결국 기성권위에 의하지 않고 자신의 두뇌로써 사물을 사고(思考)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을 좇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탐구해 온 저자의 정신역사를 솔직하게 논술하였다. 이 방법에서 인도되어 소위 방법적 회의(懷疑)에 이른 끝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 “ 라는 증명인식에 도달한다.
1) 구성
제1부 : 기존 학문들에 대한 고찰
제2부 : 방법의 주요 규칙들
제3부 : 방법에서 끌어낸 몇몇 도덕 규칙
제4부 :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의 토대가 되는 근거들
제5부 : 자연학적 문제들
제6부 : 자연 탐구를 더욱 진척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것 및 이 책의 집필 동기
2) 내용
제 1 부
학문들에 대한 고찰
양식(=좋은 정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잘)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는 좀처럼 만족하지 않는 사람도 그것만큼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 모든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는 더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 즉 일반적으로 양식 혹은 이성으로 불리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천부적으로 동등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셈이다. 또 우리가 각각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이성적 이어서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길을 따라 생각을 이끌고, 동일한 사물을 고찰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정신을 지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인 좋은 정신 혹은 양식은 인간에게 주어져 있지만, 이 능력을 잘 사용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마지막 문장은 데카르트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의 계발’ 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방법(올바른 길)에 의한 학문 탐구만이 정신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이 서설에서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이 어떤 것인지를 기꺼이 보여 주고, 또 내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 모든 사람이 각각 이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론화 시켜 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알게 된다면, 그것을 나를 지도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간주하여 지금까지 사용해 온 수단들 안에 포함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 의도는 이성을 잘 인도하기 위해 각자가 따라야 할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이성을 인도하기 위해 내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혹은 하나의 우화로서, 즉 이 안에는 본받을 만한 것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것도 많이 있을 수 있는 글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학문에 관한 견해>
① 나는 특히 수학에 마음이 끌렸는데, 이는 그 근거의 확실성과 명증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기계학에만 응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 토대가 그토록 확고부동함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도 지금까지 이 위에 더 탁월한 것을 세우지 않았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② 나는 우리의 신학을 존경했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천국에 이르길 바랐다. 그러나 이것에 있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하늘로부터의 각별한 도움이 있어야 하며, 또 우리들은 인간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데카르트에 따르면, 삼위일체와 같은 진리는 인간 정신이 아니라 신의 계시에 의해서만 알려지며, 따라서 그것은 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
③ 오랜 세월에 걸쳐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철학이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고, 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참된 의견만 있을 터인데, 아주 많은 의견들이 학자들에 의해 실제로 서로 주장되고 있음을 보고서, 단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모두 거의 거짓된 것으로 간주했다.
- 데카르트에 있어 진리 탐구의 출발점이 되는 문장이다. -
④ 나머지 다른 학문들에 관해 말하자면, 이 학문들의 원리는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어설픈 토대 위에는 그 어떤 것도 견고하게 세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자가 하는 사색이란 아무런 결과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이며, 또 그것이 상식에서 벗어날수록 더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기지와 기교를 부리기 때문에 단지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 행동을 분명히 적시하면서 확신을 갖고 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할 수 있기를 늘 극도로 갈망했다.
- 데카르트의 철학에 있어 이론과 실천이 결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별하고자 하는 그의 갈망은 결국 이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참된 인식을 구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를 하기 위함이다. 데카르트 철학의 출발점은 참된 인식이지만, 종착점은 선한 행위인 셈이다. -
제 2 부
방법의 주요 규칙들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여러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보다 완전성에 있어 종종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건축가가 시공하고 완성한 건물은, 다른 목적으로 세워진 낡은 성벽을 활용해서 여러 사람들이 개조한 건물보다 더 아름답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신이 혼자 율법을 만든 참된 종교의 상태가 다른 종교의 상태보다 질서가 더 잘 잡혀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책 속에 있는 학문들, 적어도 개연적인 근거만 갖고 아무런 증명도 갖지 않는 학문들은 많은 사람의 의견들로부터 조금씩 구성되고 불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학문들은 양식 있는 사람이 현전하는 사물에 대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단순한 추리만큼은 진리에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데카르트의 방법은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하는 논리학이다. 이 논리학은 강단 논리학, 즉 정당화 논리학이 아니라 발견의 논리학이다. 기존의 강단 논리학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방법서설 에서는 “논리학에 있어서, 삼단논법이나 다른 대부분의 규칙들은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설명해 주는 데 도움이 될 뿐” 이라고 말한다.
한 국가도 논리의 수많은 규칙과는 반대로 몇 개의 기본 법률만 가지고 이를 엄격히 준수하는 경우에 더욱 잘 통치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내가 이탈하지 말자는 확고하고 지속적인 결심만 견지한다면 논리학의 그 많은 규칙들 대신에 다음의 <네 가지 규칙> 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첫째, “명증적 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석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 것”
둘째, “검토할 어려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아갈 것, 즉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본래 전후 순서가 없는 것에서도 순서를 상정하여 나아갈 것“
넷째,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
제 3 부
몇 가지 도덕 격률들
이성에 의해 판단 내리길 망설이고 있을 때에도 내 행동이 우물쭈물하지 않기 위해 또 가능한 한 계속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서너 가지 격률로 된 도덕을 잠정적으로 마련했다.
- 확실한 인식에 따른 올바른 행위를 하기 전에 데카르트는 우선 몇 가지 격률로 이루어진 도덕을 잠정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이 규칙이 ‘잠정적’ 혹은 ‘임시적’ 인 이유는 올바른 실천은 참된 인식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러나 참된 인식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잠정적으로 따라야 하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
첫 번째 격률은, 내 나라의 법률과 관습을 복종하고, 어렸을 적부터 신의 은총에 의해 배워 온 종교를 확고하게 견지하며,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사려 깊은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보통 취하고 있는 가장 온건하고 극단에서 먼 의견에 따라 나를 지도하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 격률은, 행동에 있어서 가능한 한 확고하고 결연한 태도를 취하고, 아무리 의심스런 의견이라도 일단 그것을 취하기로 결정했다면 아주 확실한 것인 양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격률은 데카르트가 끝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격률이다.)
세 번째 격률은, 언제나 운명보다는 나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하고, 세계의 질서보다는 내 욕망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생각 밖에 없으므로, 우리 외부에 있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 했음에도 여전히 이루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전혀 불가능한 것이라고 믿는 데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내 이성을 계발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치고, 진리 인식에 있어 내가 규정한 방법에 따라 가능한 한 계속 나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격률은 나 자신을 지도하려는 계획에 입각해서 설정된 것일 따름이었다.
나는 각각의 문제마다 의심스럽고 잘못하기 쉬운 점들을 특히 반성하면서, 전부터 내 정신 속에 스며들어 있던 오류를 모두 차츰 뿌리 뽑았다. 그렇다고 내가 의심하기 위해 의심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 회의론자를 흉내 낸 것은 아니었다. 이와 반대로 내 모든 계획은 내 스스로 확신하고, 무른 흙이나 모래를 젖혀 두고 바위나 찰흙을 발견하자는 것이었다.
- 데카르트의 의심과 회의론자의 의심이 대비되는 문장이다. -
제 4 부
형이상학의 토대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신 속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 원리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한 명제가 참되고 확실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방금 참되고 확실한 것을 하나 발견했으므로, 이것의 확실성이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만일 생각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명석하게 알지 못했다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 한다” 라는 명제에 있어 내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확신시켜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고, 그래서 우리가 아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갖고 있지 않는 어떤 완전성들을 알고 있으므로 나만이 현존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의존하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부여한 더 완전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만일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고, 다른 모든 것에 비 의존적인 것이라면, 나에게 결여되어 있음을 알고 있는 나머지 것들도 모두 나 자신에서 얻을 수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되면 나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결국 신 안에 있다고 인정되는 모든 완전성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데카르트는 의심하는 정신은 유한하기 때문에 정신은 완전성의 작자일 수 없고, 그것은 완전자인 신으로부터 정신 속에 설치된 것이라고 말한다. -
이성이 우리에게 분명히 명하는 바는, 모든 우리의 관념 혹은 개념은 어떤 진리의 토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전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생각들이 모두 참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각이 참된 것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꿈속에서 보다는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생각들 가운데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제 5 부
자연학적 문제들
- 데카르트는 과학과 의학에 관심이 많았고 5부의 내용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소개를 해놓고 있다. -
나는 물질의 어떤 부분이 지구를 형성하고, 다른 어떤 부분은 유성과 혜성을 형성하며, 또 다른 어떤 부분은 태양과 항성을 형성하게 된 까닭을 설명했다. 나는 천공과 천체의 실체, 위치, 운동 및 그 다양한 모든 성질에 대해서도 추가로 설명했다.
나는 심장과 동맥 운동에 대해서도 설명해보겠다. 심장의 오른편에 있는 심실에는 아주 큰 두 개의 관이 통하고 있다. 하나는 혈액의 주요 집적 기관인 대정맥인데, 신체의 다른 모든 정맥이 가지라면 그것은 나무의 줄기와 같은 것이다.(중략)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내가 제안한 방식으로 창조되었다는 결론을 끌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신은 이 세계를 있어야 할 모습 그대로 창조했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이 이성적 영혼을 만들고, 이것을 내가 기술한 방식으로 이 신체와 결합시켰다는 것을 가정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 기능들을 모두 거기서 발견했던 것이다.
원숭이나 이성이 없는 다른 동물들과 똑같은 기관과 모양을 가진 기계가 있다면, 이 기계가 저 동물과 동일한 본성을 갖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신체와 비슷하고, 우리 행동을 가능한 한 흉내 낼 수 있는 기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인간 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두 가지 수단을 갖고 있다. 첫째, 그 기계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우리 생각을 알게 할 때처럼, 말을 사용하거나 다른 기호를 조립하여 사용하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둘째, 그 기계가 우리 못지않게 혹은 종종 더 잘 많은 일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무언가 다른 일에 있어서는 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며, 이로부터 그 기계는 인식이 아니라 기관의 배치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두 가지 수단으로 인간과 짐승 간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아무리 둔하고 어리석은 인간이라도 다양한 말을 정돈할 수 있고,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반면에, 동물은 아무리 완전하고 태생이 좋아도 그런 것을 할 수 없다. 이는 짐승이 인간보다 적은 이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호나 언어를 통해 자기 생각을 이해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은 정신을 전혀 갖고 있지 않고, 기관의 배치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 바로 동물들의 본성이다. 이는 바퀴와 태엽만으로 만들어진 시계가 우리의 모든 능력 이상으로 정확하게 시간을 헤아리고 때를 측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성적 영혼이란 물질의 힘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것이다. 진정한 인간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영혼은 신체와 결합되고 합일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영혼이 신체와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 영혼은 본성상 신체와 전적으로 무관한 것이고, 따라서 신체와 더불어 사멸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근거들을 훨씬 잘 이해할 것이다. 아울러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원인도 발견할 수 없으므로 영혼 불멸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것이다.
제 6 부
자연 탐구를 더욱 진척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것 및 이 책의 집필 동기
자연학에 관해 몇 가지 일반 개념을 획득하고, 또 그것을 여러 특수 난제에 적용해 보면서, 그 개념들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고, 또 사람들이 사용한 원리와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알게 되자마자, 그것을 나 혼자 간직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반 개념들이 나에게 보여 준 바는, 우리는 삶에 아주 유용한 여러 지식에 이를 수 있고, 강단에서 가르치는 사변적인 철학 대신에 실제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불, 물, 공기, 별, 하늘 및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물체의 힘과 작용을 판명하게 앎으로써 장인처럼 이 모든 것을 적절한 곳에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된다는 것이다.
- 데카르트 철학의 종착점은 결국 삶에 유용한 지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형이상학이나 자연철학과 같은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과학과 같은 실제적인 학문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여기서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로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나는 두 가지 이유로 말미암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첫째,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전에 몇 작품을 출판하려 했던 것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출간을 중단한 원인을 사실 이상으로 나에게 불리하게 부풀려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나쁜 평판만큼은 면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무수히 많은 실험이 필요하고,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훗날 더 좋은 유산을 후손들에게 남겨주기 위해서다.
오늘날 알려진 것보다 더 확실한 의학적 규칙들을 끌어낼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어떤 지식을 얻는 일에 내남은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는 것, 특히 어떤 사람에게 이익이 되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계획들은 내 성향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이므로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에서 존경받지 못할 것이지만, 존경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직책을 주는 사람보다도, 아무런 방해 없이 한가로운 여가를 즐기도록 배려해 주는 사람을 나는 항상 더 고맙게 여길 것이다.
4. 인상 깊은 문장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는 엄청난 덕행을 할 수 있는 반면에 엄청난 악행도 할 수 있으며, 천천히 걷되 곧은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가되 곧은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는 것이다.”
- 데카르트는 “천천히 걷되 곧은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 가되 곧은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다” 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조잡하고 우둔한 정신의 소유자라도 올바르게 지도되기만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나아가 최고의 지식을 획득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둔한 정신을 갖고 있더라고 방법에 의해 올바로 지도되기만 하면 확실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반면에, 방법이 없이 그저 학문을 탐구하는 사람은 결코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입장이다.
자료정리:범상진 bum6093@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