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중용(공자)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16:51
1. 『대학』,『중용』은 어떤 책인가?
1) 대학(大學)
본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던 것을 송(宋)의 사마 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다. 그 후 주자(朱子)가 《대학장구(大學章句)》를 만들어 경(經) 1장(章), 전(傳) 10장으로 구별하여 주석(註釋)을 가하고 이를 존숭(尊崇)하면서부터 널리 세상에 퍼졌다.
주자는, 경은 공자의 말을 증자(曾子)가 기술(記述)한 것이고, 전은 증자의 뜻을 그 제자가 기술한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경에서는 명명덕(明明德:명덕을 밝히는 일) · 신민(新民: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 · 지지선(止至善:지선에 머무르는 일)을 대학의 3강령(三綱領)이라 하고,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八條目)으로 정리하여 유교의 윤곽을 제시하였다. 실천과정으로서는 8조목에 3강령이 포함되고, 격물 즉 사물의 이치를 구명(究明)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평천하의 궁극 목적과 연결된다는 것이 대학의 논리이다. 전은 경의 설명이라는 뜻이다.
주자는 본문에 착간(錯簡)과 오탈(誤脫)이 있다 하여 교정하고, 또 ‘격물’의 전을 보충하였다. 명(明)의 왕양명(王陽明)이 주자학을 비판하면서부터 주자의 《대학장구》, 특히 그 보전(補傳)은 유학자간의 논쟁(論爭)의 중심문제가 되었다. 왕양명은 대학고본(大學古本)에 의거하여 대학고본방석(大學古本旁釋)을 지었다.
2) 중용(中庸)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저작이라 알려졌다.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있는 <중용편(中庸篇)> 이 송(宋)나라 때 단행본이 된 것으로,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함께 사서(四書)로 불리고 있으며, 송학(宋學)의 중요한 교재가 되었다.
여기서 ‘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庸’이란 평상(平常)을 뜻한다. 인간의 본성은 천부적(天賦的)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본성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본성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도(道)이며, 도를 닦기 위해서는 궁리(窮理)가 필요하다. 이 궁리를 교(敎)라고 한다. 《중용》은 요컨대 이 궁리를 연구한 책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한마디로 말해서 성(誠)일진대, 사람은 어떻게 하여 이 성으로 돌아가는가를 규명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주자(朱子)는 《중용장구(中庸章句)》라고 하는 주석서(注釋書)를 지었는데, 여기서 주자는 자사가 도학(道學)의 전통을 위해 《중용》을 썼다고 말하였다.
2. 내용 요약
1) 역자소개 - 최영갑
1964년에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또한 성균관 총무처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 내용요약
1. 대학(大學)
子程子曰 大學은 孔氏之遺書로 而初學入德之門也라. 於今에 可見古人爲學次第者는 獨賴此篇之存이요 而論 孟次之하니 學者必由是而學焉이면 則庶乎其不差矣니라.
정자가 “『대학』은 공부자께서 남기신 글인데 처음 배우는 사람이 덕에 들어가도록 하는 문이다. 오늘날 옛 사람들이 학문을 했던 차례를 볼 수 있는 것은 유독 이 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다음에는 『논어』와 『맹자』를 읽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이것을 통해서 학문을 한다면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經01,01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新民하며 在止於至善하니라.
『대학』의 도는 인간이 본래부터 타고난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으며, 지극히 선한 곳에 머무르는 데 있다.
經01,02 知止而后에 有定하며 定而后에 能靜하며 靜而后에 能安하며 安而后에 能慮하며 慮而后에 能得하니라.
머무를 곳을 안 다음에 방향을 정할 수 있으며, 방향을 정한 다음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해진 다음에 평온할 수 있고, 평온해진 다음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다음에 얻을 수 있다.
經01,03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니라.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안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傳02,01 湯之盤銘에 曰 苟日新이어든 日日新하고 又日新하라하며,
탕왕의 목욕통에 새겨져 있기를, “진실로 어느 날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고 하였으며,
傳02,02 康誥에 曰 作新民이라하며,
『서경』「강고」편에서는, “새로워진 백성을 진작시킨다.”라고 말하였으며,
傳02,03 詩曰 周雖舊邦이나 其命維新이라하니,
『시경』에서 이르기를 “주나라가 비록 오랜 나라이지만 천명을 받은 것은 오직 새롭다.”라고 하였으니,
傳02,04. 是故로 君子는 無所不用其極이니라.
이 때문에 군자는 그 극진한 것을 쓰지 않음이 없다.
傳03,02 詩云 緡蠻黃鳥여 止于丘隅라하여늘 子曰 於止에 知其所止로소니 可以人而不如鳥乎아.
시경에 이르기를 “꾀꼴 꾀꼴 꾀꼬리여, 울창한 숲 속에 머무네.”라고 하였는데, 공부자께서는 “머무르는 데에 새들도 자기가 머무를 곳을 아는데 사람으로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傳04,00 子曰 聽訟吾猶人也나 必也使無訟乎인저하시니 無情者不得盡其辭는 大畏民志니 此謂知本이니라.
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송사를 처리하는 것은 나도 남과 같지만, 나는 반드시 송사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라고 하셨으니, 진실함이 없는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백성의 뜻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로 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傳06,01 所謂誠其意者는 毋自欺也니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이 此之謂自謙이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니라.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하고, 좋은 빛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이것을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음을 삼간다.
傳06,02 小人이 閒居에 爲不善하되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에 厭然 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人之視己 如見其肺肝이니 然則何益矣리오 此謂誠於中이면 形於外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니라.
소인은 한가하게 있을 때 나쁜 짓을 하여 이르지 않는 것이 없다가, 군자를 본 뒤에 몰래 자기의 나쁜 점을 숨기고 착한 것만을 드러내지만, 남들이 자기를 보는 것이 마치 폐와 간을 보듯이 하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것을 “마음속에서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간다.
傳07,01 所謂脩身이 在正其心者는 身有所忿 則不得其正하고 有所恐懼則不得其正하고 有所好樂則不得其正하고 有所憂患則不得其正이니라.
이른바 몸을 닦는 것이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은, 마음속에 분노하고 성내는 것이 있으면 바르게 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바르게 되지 못하고,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있으면 바르게 되지 못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으면 바르게 되지 못한다.
傳08,01 所謂齊其家 在脩其身者는 人이 之其所親愛而焉하며 之其所賤惡而焉하며 之其所畏敬而焉하며 之其所哀矜而焉하며 之其所敖惰而焉하나니 故로 好而知其惡하며 惡而知其美者 天下에 鮮矣니라.
이른바 자기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는 것이 몸을 닦는 데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은 친하고 사랑하는 것에 치우치게 되고,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에 치우치게 되고,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것에 치우치게 되고,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에 치우치게 되고, 거만하고 게으른 것에 치우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그의 나쁜 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의 좋은 점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
傳10,01 所謂平天下 在治其國者는 上老老而民興孝하며 上長長而民興弟하며 上恤孤而民不倍하나니 是以로 君子는 有 矩之道也
이른바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다고 하는 것은, 윗사람이 늙은이를 늙은이로 대접하면 백성들은 효도를 하게 되고, 윗사람이 연장자를 연장자로 대접하면 백성들은 공손하게 되며, 윗사람이 외로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백성들은 윗사람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로 재는 도리를 가지고 있다.
傳10,02 所惡於上으로 毋以使下하며 所惡於下로 毋以事上하며 所惡於前으로 毋以先後하며 所惡於後로 毋以從前하며 所惡於右로 毋以交於左하며 所惡於左로 毋以交於右하니 此之謂 矩之道也
윗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랫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지 말 것이며, 앞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뒷사람에게 먼저 하도록 하지 말 것이며, 뒷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왼쪽 사람을 사귀지 말며, 왼쪽 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오른쪽 사람을 사귀지 말 것이니, 이것을 자로 재는 도리라고 말한다.
傳10,23 長國家而務財用者는 必自小人矣니 彼爲善之라하야 小而之使爲國家면 害竝至라 雖有善者나 亦無如之何矣니 此謂國은 不以利爲利요 以義爲利也니라.
국가의 어른이 되어 재물을 쓰는 것에 힘을 기울이는 사람은 반드시 소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를 잘한다고 여겨)소인에게 국가를 다스리게 하면 재앙과 손해가 함께 이르러 비록 착한 사람이 있어도 또한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나라는 이익을 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의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긴다.”라고 말한다.
2. 중용(中庸)
中者는 不偏不倚 無過不及之名이요 庸은 平常也라.
‘중’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의지하지 않아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며, ‘용’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다.
子程子曰 不偏之謂中이요 不易之謂庸이니 中者는 天下之正道요 庸者는 天下之定理라. 此篇은 乃孔門傳授心法이니 子思恐其久而差也라. 故로 筆之於書하여 以授孟子하시니 其書始言一理하고 中散爲萬事하고 末復合爲一理하여 放之則彌六合하고 卷之則退藏於密하여 其味無窮하니 皆實學也라. 善讀者玩索而有得焉이면 則終身用之라도 有不能盡者矣리라.
정자가 말하기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이라고 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용’이라고 한다. ‘중’은 세상의 올바른 도리요, ‘용’은 세상의 정해진 이치이다. 이 편은 공부자의 문하에서 전수해 오던 심법인데, 자사가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 본의에서 벗어날까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이것을 책으로 저술하여 맹자에게 주었다. 이 책은 처음에는 하나의 이치를 말하고, 중간에는 이것이 흩어져 만사가 되었고, 말미에는 다시 합해져 하나의 이치가 되었다. 이것을 펼쳐 놓으면 우주에 가득 차고, 이것을 거두어들이면 물러나 은밀한 데 감추어져 있어 그 의미가 무궁하니 모두 실학이다. 잘 읽는 사람이 열심히 음미하여 깨달음이 있으면 죽을 때까지 사용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01章,01 天命之謂性이오 率性之謂道요 脩道之謂敎니라.
하늘이 명한 것을 ‘성’ 이라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
01章,02 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니 可離면 非道也니라.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所不睹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01章,03 莫見乎隱이며 幕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니라.
숨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도 없으며, 작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음을 삼가는 것이다.
04章,01 子曰 道之不行也를 我知之矣로다. 知者는 過之하고 愚者는 不及也니라. 道之不明也를 我知之矣로다. 賢者는 過之하고 不肖者는 不及也니라.
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알겠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나치고, 어리석은 사람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가 밝혀지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알겠다. 어진 사람은 지나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04章,02 人莫不飮食也언마는 鮮能知味也니라.
사람이 음식을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셨다.
10章,01 子路 問强한대
자로가 강한 것에 대해 묻자.
10章,02 子曰 南方之强與아 北方之强與아 抑而强與아.
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방의 강함인가, 북방의 강함인가 아니면 너의 강함인가?
10章,03 寬柔以敎요 不報無道는 南方之强也니 君子居之니라.
너그럽고 부드러움으로 가르치고 무도한 자에게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이니, 군자가 여기에 거처하는 것이다.
10章,04 金革하여 死而不厭은 北方之强也니 而强者居之니라.
병기와 갑옷을 깔고 앉아서 죽어도 싫어하지 않는 것은 북방의 강함이니, 강자가 여기에 거처하는 것이다.
10章,05. 故로 君子는 和而不流하나니 强哉矯여 中立而不倚하나니 强哉矯여 國有道에 不變塞焉하나니 强哉矯여 國無道에 至死不變하나니 强哉矯여.
그러므로 군자는 조화롭게 하되 한쪽으로 흐르지 않으니 강하고 꿋꿋함이여! 가운데에 서서 기울어지지 않으니 강하고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곤궁할 때 지키던 절개를 변치 않으니 강하고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죽음에 이르러도 지조를 변치 않으니 강하고 꿋꿋함이여!”라고 하셨다.
11章,01 子曰 素隱行怪를 後世에 有述焉하나니 吾弗爲之矣로라.
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숨겨진 것만 찾고 괴이한 것만 행하는 것을 후세에 칭술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러한 짓을 하지 않겠다.
11章,02 君子遵道而行하다가 半途而廢하나니 吾弗能已矣로다.
군자가 길을 따라 가다가 중도에서 그만두기도 하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11章,03. 君子는 依乎中庸하나니 遯世不見知而不悔하니라. 唯聖者能之니라.
군자는 중용에 의지하는 것이니, 세상에 은둔하여 알려지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직 성인만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13章,01 子曰 道不遠人하니 人之爲道而遠人이면 不可以爲道니라.
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이 도를 행하면서 사람을 멀리한다면 도라고 할 수 없다.
13章,04 君子之道四이니 丘未能一焉이라. 所求乎子로 以事父를 未能也하며 所求乎臣으로 以事君을 未能也하며 所求乎弟로 以事兄을 未能也하며 所求乎朋友로 先施之를 未能也하니라. 庸德之行과 庸言之謹에 有所不足이어든 不敢不勉하며 有餘어든 不敢盡하며 言顧行하며 行顧言이니 君子胡不 爾리오.
군자의 도는 네 가지인데 나는 그 중에 한 가지도 잘하지 못한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 부모를 섬기는 것도 잘하지 못하며,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 임금을 섬기는 것도 잘하지 못하며,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 형을 섬기는 것도 잘하지 못하며, 친구에게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베푸는 것도 잘하지 못한다. 일상적인 도덕을 행하는 것과, 평상시의 말을 삼가는 데에 모자람이 있으면 감히 힘쓰지 않을 수 없고, 남음이 있으면 감히 다하지 않으며 말은 행실을 돌아보고 행실은 말을 돌아보아서 하니 군자가 어찌 독실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다.
20章,01 哀公이 問政한대
애공이 정사를 묻자,
20章,02 子曰 文武之政이 布在方策하니 其人存則其政擧하고 其人亡則其政息하니라.
공부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문왕과 무왕의 정사가 목판과 죽간에 펼쳐져 있으니,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그러한 정사가 이루어지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그러한 정사가 멈춘다.
20章,03 人道는 敏政하고 地道는 敏樹하니 夫政也者는 蒲盧也니라.
사람의 도리는 정사에 민감하고 땅의 도리는 나무에 민감하게 나타나니, 대저 정사라는 것은 창포나 갈대와 같은 것이다.”
20章,04 故로 爲政在人하니 取人以身이요 修身以道요 修道以仁이니라.
그러므로 정치를 행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으니, 사람을 취하는 데는 몸으로써 하고, 몸을 닦는 데는 도를 가지고 하며, 도를 닦는 데는 인을 가지고 한다.
20章,05 仁者는 人也니 親親이 爲大하고 義者는 宜也니 尊賢이 爲大하니 親親之殺와 尊賢之等이 禮所生也니라.
인이란 사람다움이니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이 으뜸이고, 의란 마땅함이니 어진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으뜸이다. 친한 사람을 친하게 하는 차등과 어진 이를 존경하는 데 있어서의 등급이 예가 생겨난 바탕인 것이다.
21章,00 自誠明을 謂之性이요 自明誠을 謂之敎니 誠則明矣요 明則誠矣니라.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성 이라하고, 밝음으로 말미암아 성실하게 되는 것을 가르침이라하니,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
25章,01 誠者는 自成也요 而道는 自道也니라.
성이라는 것은 스스로 완성되는 것이요, 도는 사람이 스스로 행하여야 되는 것이다.
25章,02 誠者는 物之終始니 不誠이면 無物이라 是故로 君子는 誠之爲貴니라.
성실함이란 사물의 끝과 시작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실함을 귀중하게 생각한다.
25章,03. 誠者는 非自成己而已也라 所以成物也니 成己는 仁也요 成物은 知也니 性之德也라 合內外之道也니 故로 時措之宜也니라.
성실함이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완성할 뿐 아니라 사물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자기를 완성시키는 것은 인이요, 사물을 완성시키는 것은 지이다. 이것은 성품에 고유한 덕이며 내외를 합하는 도이다. 그러므로 때에 맞게 조처하는 마땅함이다.
26章,01 故로 至誠은 無息이니
그러므로 지극한 성실함은 쉼이 없다.
28章,01 子曰 愚而好自用하며 賤而好自專이요 生乎今之世하여 反古之道면 如此者는 災及其身者也니라.
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으면서 스스로 쓰여 지기를 좋아하며, 천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하고, 지금의 세상에 태어나서 옛 도를 회복하려 하면 이와 같은 자는 재앙이 그 몸에 미친다.”고 하셨다.
29章,06. 詩曰 在彼無惡하며 在此無射이라 庶幾夙夜하여 以永終譽라하니 君子未有不如此而蚤有譽於天下者也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저 쪽에서도 미워함이 없고, 이 쪽에서도 싫어함이 없다. 바라건대 밤낮으로 힘써서 길이 명예로움을 마친다.”고 하였으니, 군자가 이렇게 하지 않고서 일찍이 천하에 명예를 둔 자는 있지 않다.
30章,01 仲尼는 祖述堯舜하시고 憲章文武하시며 上律天時하시고 下襲水土하시니라.
중니께서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으뜸으로 삼아 계승하시고, 문왕과 무왕을 본받아서 밝히셨으며, 위로는 천시를 따르고, 아래로는 물과 흙의 상황을 본받으셨다.
30章,02 如天地之無不持載하며 無不覆 하며 如四時之錯行하며 如日月之代明이니라.
비유하면 하늘과 땅이 붙들어 실어주지 않음이 없고, 덮어서 감싸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자면 사시가 교대로 운행하는 것과 같으며, 해와 달이 교대로 밝아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30章,03 萬物竝育而不相害하며 道竝行而不相悖라. 小德은 川流요 大德은 敦化이니 此天地之所以爲大也니라.
만물은 함께 길러져도 서로 해치지 않으며, 도는 함께 행하여져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작은 덕은 냇물처럼 흐르고 큰 덕은 조화를 두터이 하니, 이것이 천지가 위대하게 되는 까닭이다.
33章,06 詩云 予懷明德의 不大聲以色이라하여늘 子曰 聲色之於以化民에 末也라하시니라. 詩曰 德 如毛라하니 模猶有倫이어니와 上天之載는 無聲無臭아 至矣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내가 생각건대 문왕의 밝은 덕은 음성과 소리와 안색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라고 하였다. 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음성과 얼굴빛은 백성들을 교화시킴에 있어 지엽적인 것이다.”라고 하셨다. 『시경』에 “덕은 가볍기가 터럭과 같다.”고 하였는데, 터럭도 오히려 비교할 만한 것이 있으니, “상천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는 표현이어야 지극하다고 할 것이다.
3. 공자를 찾아서
1) 공자의 생애 [孔子, BC 552~BC 479]
공자는 은(殷)왕족의 혈통을 이어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났다. 아버지의 자는 숙량(叔梁), 이름은 흘(紇)이다. 어머니는 안씨(顔氏) 집안으로, 이름은 징재(徵在)이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으나, 공자가 3세 때 별세하여 빈곤 속에서 자랐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 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했으며, 수양을 쌓아 점차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말단 관리였으나, 50세가 지나서 노나라의 정공(定公)에게 중용(重用)되어, 정치가로서의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의 계획은 노나라의 실력자인 3중신의 세력을 눌러 공실(公室)의 권력을 회복하고, 주공의 정신을 살린 질서 있는 문화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계획이 드러나 BC 497년 56세 때 실각하였다. 그 후 14년간 문하생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를 계속하며 이상실현을 꾀하였다.
그러나 BC 484년 69세 때 그 불가능함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 무렵 아들 이(鯉)와, 고제자(高弟子) 안회(顔回) 및 자로(子路)가 잇달아 죽는 불행을 겪었고, 74세로 자공(子貢)·증삼(曾參) 등 뛰어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하였다.
제자는 모두 3,000명이며, 특히 육예(六藝:禮·樂·射·御·書·數)에 통한 문인(門人)이 72명이라고 한다. 그는 '敎人不倦'이라고 술회했던 것처럼, 이상을 미래에 건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언행은 《논어(論語)》를 통해서 전해지고, 그의 사상을 알아보기 위한 확실한 자료도 《논어》밖에 없다.
이는 제자나 제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지 공자 자신의 저술은 아니다. 오경(五經)을 편찬하였다고 전하나, 이는 교육목적에 따라서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의 고전을 정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2) 공자의 사상
그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 놓인 것이 인(仁)이다. 공자는 최고의 덕을 인이라고 보고,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나 불교의 자비와는 다른, 부모형제에 대한 골육의 애정 곧 효제(孝悌)를 중심으로 하여 타인에게도 미친다는 사상이다.
모든 사람이 인덕(仁德)을 지향하고, 인덕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아 인애(仁愛)의 정치를 한다면, 세계의 질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수양을 위해 부모와 연장자를 공손하게 모시는 효제의 실천을 가르치고, 이를 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또 충(忠), 즉 성심을 중히 여겨 그 옳고 곧은 발로인 신(信)과 서(恕)의 덕을 존중했는데, 이러한 내면성(內面性)을 중시하고 전승(傳承)한 것이 증자(曾子) 일파의 문인이다.
그러나 공자는 또한 인의 실천을 위해서는 예(禮)라는 형식을 밟을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예란 전통적 ·관습적 형식이며, 사회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유교에서 전통주의를 존중하고 형식을 존중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입각한 것이며, 예라는 형식에 따름으로써 인의 사회성과 객관성이 확실해진 것이다.
이처럼 공자의 사상은 사회적 · 정치적 인간을 위한 도덕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보편성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하늘의 존재도 생각하고 있었다. 공자로서는 하늘이 뜨거운 종교적 심정으로 받들어지는 불가지(不可知)의 존재였지만, 이는 인간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신(神)일지언정, 인간을 압박하는 신은 아니었다. 공자의 사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3) 공자의 영향
공자는 많은 제자들을 교육하여 인의 실현을 가르치는 한편, 자기 자신도 그 수양에 힘써,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술회할 정도의 인격에 도달했기 때문에, 생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후에는 제자들이 각지에서 그 가르침을 전파하였으나,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일어남으로써 교세가 약해졌다. 이를 다시 일으킨 사람이 맹자(孟子)였으며, 또 전국(戰國) 말기에 순자(荀子)가 이파(異派)의 사상도 받아들여 집대성하였다.
그 후 한(漢)나라의 무제(武帝)가 유교를 국교(國敎)로 택함에 이르러 공자의 지위는 부동의 것이 되었으며, 사실은 각 시대의 유교 내용에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공자 자체는 이 가르침의 비조(鼻祖)로서 청조(淸朝) 말까지 계속 존경을 받았다. 한국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민국혁명(1912) 후 우위[吳虞]와 루쉰[魯迅]은 공자를 중국의 봉건적 누습(陋習)의 근원이라고 공격하였다. 이 논법은 인민중국에도 계승되어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1973)에서 절정에 이르고 4인방 실각 후 진정되었다.
자료정리:범상진 bum6093@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