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16:47
Ⅰ. 맹자는 누구인가
* 맹자의 출생
맹자는 전국시대(기원전 403년~221년) 중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이름은 가(軻)이다. 맹자의 고국에 관해서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현존하는 최초의 『맹자』주석서 『맹자장구』를 지었던 조기(趙岐)역시 추나라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맹자의 모국은 노나라 이고 거쳐했던 곳이 추나라라는 설로부터 추가 실은 독립적인 나라가 아니라 노나라에 부속된 하읍(下邑)의 이름이므로 맹자의 모국은 노나라라는 설 등이 있다.
맹자가 나고 죽은 연대 역시 확실하지 않은데, 『맹자』속의 여러 정황이나 여타의 기록들을 검토할 때 주나라 안공(安公) 17년(기원전 385년) 전후에 태어나서 난공 51년(기원전 304년) 전후에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맹자가 태어난 때는 공자(기원전 551년~479년)가 죽은 지 이미 100년이 가까운 시대였다.
맹자의 출신이나 부모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진 사실이 없다. 조기는 “맹자는 나면서부터 좋은 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어려서 어머니의 삼천지교(三遷之敎)를 받았다”고 했는데, 『맹자』「양혜왕 하」에서 맹자가 예를 어기고 모친상을 부친상보다 화려하게 치렀다는 구설수에 올랐을 때 제자인 악정자가 ‘선비’의 신분으로 치른 부친상과 대부의 신분으로 치른 모친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변호한 것에 비추어 보면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 같다.
* 맹자의 사상적 계보
맹자 스스로는 다른 사람을 통해 공자의 사상을 사숙했다고만 밝히고 있는데,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제자에게서 배웠다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자사가 지었다고 하는 『중용』과 『맹자』속의 내용이 유사한 부분이 많다. 『맹자』전편에 걸쳐 『시경』과 『서경』그리고 『춘추』, 『예기』에 관한 인용이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대체로 이들 경전과 자사 계열의 학자들을 통해 배운 공자의 이념이 맹자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맹자의 삶
맹자의 행적을 『맹자』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맹자는 자신의 명성이 세상에 드러난 이래‘뒤에 따르는 수레 수십 대와 따르는 사람 수백 명’을 이끌고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왕도정치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여행에 나선다. 맹자가 최초로 찾아간 것은 제나라의 위왕(威王)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제나라에서 자신의 이념이 실현되지 못하자 위왕이 선물로 보내온 황금 100일(鎰)을 거절하고 떠나게 된다. 이어서 제나라 위왕 30년에 맹자는 송(宋)나라가 왕도정치를 시행할 뜻을 전하자 고무되어 송나라로 갔다. 그러나 송나라의 제후에게 왕도정치를 실행하려는 생각은 있었지만, 주변에 그를 보필할 현능한 사람들이 없어서 희망이 보이지 않자 송나라를 떠난다.
얼마 후 맹자는 추나라로 갔는데, 추나라 목공(穆公)과의 문답을 통해 군주가 어진 정치의 실행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어서 맹자는 노나라 평공(平公)이 즉위해 맹자의 제자인 악정자를 중용해 정사를 맡기자 노나라로 갔다. 그러나 맹자가 기대했던 평공과의 만남은 평공의 측근인 장창(藏倉)의 방해로 성사되지 못한다.
등나라 문공이 즉위하자 등나라로 갔는데, 문공이 정치의 방법을 묻자 왕도정치를 제시하고 그 출발점으로 정전제를 실시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결국 등나라에서 왕도정치의 이념이 실현될 수 없음을 안 맹자는 양(梁)나라 혜왕(惠王)15년에 양나라로 갔는데, 이때 맹자의 나이 이미 70세에 가까웠다. 맹자는 혜왕과의 여러 차례의 문답을 통해 정치를 행함에 이익이 아니라 인의의 도덕적 가치를 우선시해야 함을 말한다. 이듬해에 혜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양왕이 즉위했지만, 맹자는 그가 자신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님을 알아보게 된다.
이 때 제나라 위왕이 죽고 선왕(宣王)이 즉위했으므로, 맹자는 제나라로 간다. 맹자는 제나라에서 객경(客卿)의 벼슬을 지내게 된다. 결국 제나라는 연나라와 제후국들이 연합해 쳐들어온 군대와 싸워서 대패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면서 자신이 평생토록 힘을 쏟았던 왕도정치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느낀다. 이 때 맹자의 나이 70여 세였으므로 오랜 유세의 생활을 접고 제자인 만장(萬章), 공손추 등과 함께 추나라로 돌아와 『맹자』7편을 완성한다.
Ⅱ. 『맹자』라는 책에 대해
『맹자』는 원래 「양혜왕」에서「진심」까지 전체 7편으로 되어 있는데, 후한 대에 와서 조기가 『맹자장구』를 지으면서 전체 7편의 체재를 유지하되 각 편을 다시 상하로 나누어 14편의 체재로 만들었다. 현재 우리들이 볼 수 있는 『맹자』의 체재는 조기의 분류에 따른 것이다.
『맹자』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역대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조기나 남송대의 주희 그리고 청대의 초순 등은 맹자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공자 사후 여러 제자들에 의해 쓰여 져서 문체가 한결같지 않은 『논어』와 비교해 볼 때 『맹자』는 일관된다는 점을 근거로 맹자가 직접 쓴 저작임을 주장한다.
반면에 당대의 한유나 북송대의 소철 등은 맹자 사후 제자인 만장과 공손추에 의한 저작이라고 한다. 맹자의 제자들을 존칭으로 부른다는 점과 만장과 공손추와의 문답이 여타의 제자들과의 그것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그리고 당시 제후들을 죽은 후에 붙여진 시호로 부르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맹자보다 나중에 죽은 제후도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하고 있다.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맹자와 순자의 행적을 적은 『맹순열전』에서 위의 두 설을 절충한 설을 제시하고 있다. 즉 『맹자』는 맹자의 주도 아래 그의 두 제자인 만장, 공손추가 참여해 쓰여 진 저작이라는 것이다.
서한 문제(文帝) 때에는 『논어』,『효경』,『이아』와 더불어 『맹자』연구를 전담하는 박사(博士)제도를 두었고, 오대(五代)시기에는 『주역』, 『서경』,『시경』,『논어』등과 더불어 유학의 십일경(十一經)으로 받아들여졌다. 북송대에 성리학이
등장하면서 성리학적 사유의 주된 원천이 됨으로써 『맹자』는 더욱 중시되었다. 특히 성리학을 집대성한 남송의 주희가 『맹자』를 『논어』,『중용』,『대학』과 함께 ‘사서’(四書)로 삼음으로써 유학 내에서 『맹자』의 지위는 정점에 이르게 된다. 이후 명청대에는 ‘사서’가 과거시험의 출제 대상이 됨으로써 『맹자』는 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맹자』에 대한 중국 역대의 주석서는 70여 종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서한 시대 조기(趙岐)의 『맹자장구』와 남송시대 주희의 『맹자집주』, 청대 초순(蕉循)의 『맹자정의』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현대의 대표적인 주석서로는 1962년 중국의 중화서국에서 나온 양백준의 『맹자역주』가 있다.
『맹자』는 전란의 시기인 전국시대에 쓰여 졌다. 이미 춘추시대에 주대의 혈연적 봉건제에 기초한 천자 중심의 일통의 체제가 붕괴되고 전통적인 사회질서의 원리인 예가 힘이라는 새로운 원리에 의해 대체되면서, 분열과 약육강식의 전란의 시대였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과 사상적 위기 상황 속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지키고 그것을 현실에 접목시키려고 했던 맹자의 사상이 반영된 책이『맹자』이다.『맹자』전편의 내용들은 혼란의 시기에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한 유세 중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맹자가 만난 제후를 비롯한 당시 인물들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맹자』의 목차 >
양혜왕 상
「이익보다는 의리를」「즐거움은 백성과 함께」「어진 정치가 아닌 한 오십 보 백 보」「천하의 통일을 이룰 사람」「천하의 통일을 이루는 방법」
양혜왕 하
「외교의 방법과 참된 용기」「무도한 왕의 제거」「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맹자의 모친상을 둘러싼 시비」「죽음의 두려움도 없애는 어진 정치」
공손추 상
「왕자와 패자의 차이」「천하의 왕이 되는 다섯 가지 방법」「네 가지 선의 단서」「인(仁)을 행하라」「선을 남과 함께 한 순임금」「백이와 유하혜의 비교」
공손추 하
「중요한 것은 사람들 사이의 화합」「군주가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선물과 뇌물의 차이」「군자는 어버이에게 인색하지 않다」「이익을 농단함」
등문공 상
「성인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정전제에 관해서」「허행의 설을 비판하다」「묵가의 설을 비판하다」「등나라 세자의 상례」
등문공 하
「올바른 부름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선비의 역할」「대불승에게 준 가르침」「진중자의 청렴함」「맹자가 제후를 만나지 않는 이유」
이루 상
「어진 정치의 중요성」「요순의 도로써 나라를 다스려라」「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함」「하늘의 이치」「도는 가까운 곳에 있다」「군자가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어버이를 섬기는 방법」「함부로 하는 말」「가장 큰 불효」
이루 하
「대인의 말과 행동」「스스로 체득하는 것의 중요성」「사람과 금수의 차이」「옛 성인들의 행적」「공자의 도를 배우다」「군자의 걱정거리」「다섯 가지의 불효」
만장 상
「순임금의 효」「순임금에 대한 오해들」「천하는 하늘이 주는 것」「천하는 덕으로써 차지하는 것」「정치는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는 것부터」「공자의 나아감과 물러남」
만장 하
「벗을 사귀는 도리」「올바른 교제의 방법」「군주가 현능한 이를 대하는 방법」「옛사람과 벗을 삼다」「군주가 군자를 기르는 방법」
고자 상
「사람의 본성과 물의 비유」「의가 외재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함」「사람의 공통적인 마음」「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대인과 소인의 차이」「배움의 방법」
고자 하
「요순이 되는 것은 자기하기 나름」「이익과 인의」「예물보다 중요한 것은 예의」「오늘날 군주를 섬기는 자들」「적절한 세금의 필요성」「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
진심 상
「명을 대하는 태도」「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부끄러워하는 마음」「명령의 정치와 교화의 정치」「환난의 의미」「네 부류의 사람들」「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물질적 조건과 마음」「우물 파는 비유」「군자의 사회적 기여」「배우는 이의 마음가짐」「일의 선후와 경중」
진심 하
「‘서경’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포악한 행위를 위한 관문」「정치의 세 가지 요체」「백성은 사직이나 군주보다 귀하다」「적절한 과세 정책」「마음을 기르는 방법」
Ⅲ. 맹자의 가르침
* 양혜왕
1.4 사람 잡는 정치
양혜왕이 “과인은 기꺼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맹자가 “사람을 죽이는 데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맹자가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맹자가 말했다.
“지금 왕의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니,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백성의 부모인 왕으로서 정치를 하면서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한다면 백성의 부모다움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생략)
1.6 천하의 통일을 이룰 사람
..(생략) 양양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누가 통일을 이룰까요?” 맹자가 말하길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통일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자 “누가 그를 따르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천하의 사람들 중 따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벼의 싹에 대해 아십니까? 7,8월 사이에 가물면 말랐다가, 하늘에 뭉게뭉게 구름이 생겨나 기세 좋게 비가 내리면 다시 싱싱하게 자라납니다. 이와 같이 되면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천하의 왕 중에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다 목을 빼고서 그를 바라볼 것입니다. 진정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물이 낮은 데로 흘러가는 것과 같을 것인데, 그 힘찬 기세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2.8무도한 왕의 제거
제나라 선왕이 “탕왕은 걸왕을 내쫓았고, 무왕은 주왕을 정벌했다고 하는데,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라고 묻자, 맹자가 “전해 오는 기록에 그러한 사실이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왕이 물었다. “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옳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인(仁)을 해치는 자는 남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는 잔인하게 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자는 인심을 잃어 고립된 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인심을 잃어 고립된 사람인 걸과 주를 처형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 공손추
3.3 왕자와 패자의 차이
맹자가 말했다. “무력을 사용하면서 인(仁)을 실천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은 패자인데, 패자에게는 반드시 큰 나라가 있어야 한다. 덕으로써 인을 실행하는 왕자(王者)이다. 왕자는 큰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왕은 사방 칠십리의 땅으로 인을 실행했고, 문왕은 사방 배리의 땅으로 인을 실천했다. 무력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킨다면 사람들이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억지로 복종한다. 덕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킨다면 진심으로 기뻐하며 진정으로 복종하니, 칠십 명의 제자들이 공자에게 복종한 것이 그 예이다. 『시경』에서 문왕이 천하를 다스린 것에 대해 ‘서쪽에서 그리고 동쪽에서, 남쪽에서 그리고 북쪽에서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한 것은 그것을 말한 것이다.”
3.6 네 가지 선의 단서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이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어린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고, 마을 사람과 친구들로부터 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是非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데도 자신은 선을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해치는 자이고, 자기의 군주는 선을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생략)
4.13 그때도 한 시기이고 지금도 한 시기
맹자가 제나라를 떠날 때 충우가 길을 가는 중에 물었다. “선생님의 안색이 유쾌해 보이지 않습니다. 전에 제가 선생님께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그 때도 한 시기이고 지금도 한 시기이다. 오백 년 마다 반드시 훌륭한 임금이 나타났고 그 사이에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 있었다. 주나라 이래로 칠백년이 지났으니 그 수를 가지고 본다면 오백년은 훨씬 지났고, 시대적 추세를 가지고 보더라도 훌륭한 임금이 일어날 만하다. 하늘은 아직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려 한다면 오늘날의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유쾌해하지 않겠느냐?”
* 등문공
5.1 성인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
등나라의 문공이 세자로 있을 때, 초나라에 가다가 송나라를 지나면서 맹자를 만났다. ...(생략) 맹자가 말했다. “세자께서는 제 말을 의심합니까? 무릇 길은 하나일 뿐입니다. 성간이라는 사람은 제나라 경공에게 ‘성인도 사나이고 나도 사나이인데, 내가 무엇 때문에 성인을 두려워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안연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순임금과 같아질 것이다.’고 했습니다. 지금 등나라는 긴 곳을 잘라 내어 짧은 곳에 보태어도, 크기가 대략 사방 각 50리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잘 다스려지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서경』에서 ‘약이라는 것은 먹고 나서 어찔어찔하지 않으면 그 병이 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5.3 정전제에 관해서
등나라 문공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물었다. 맹자가 대답했다. “ 백성들의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생략) 백성들이란 안정적인 생업이 있으면 안정된 마음을 가지게 되고 안정적인 생업이 없으면 안정된 마음이 없게 됩니다. 만약 안정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사특하고 사치한 행동을 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죄에 빠지기를 기다린 후에 쫓아가서 처벌한다면, 그것은 백성을 그물질해 잡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인자한 사람이 군주의 지위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그물질 해 잡는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어진 군주는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며 신하들을 예로써 대하며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데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습니다. ...(생략) 등나라는 영토가 협소하지만 그 중에는 반드시 군자가 될 사람도 있고 야인이 될 사람도 있소이다. 군자가 없으면 야인을 다스릴 수 없고, 야인이 없으면 그 군자를 먹여 살릴 수 없소, 지방에서는 수확량의 9분의 1을 세금으로 정하여 조법을 실시하고, 수도에서는 수확량의 10분의 1을 세금으로 정하여 스스로 세금을 납부하게 하시오. 경이하의 관리들은 반드시 규전이 있어야 하는데, 규전은 각 가구당 오십 무씩 주되, 장정이 더 있을 경우는 각 장정 당 이십오 무씩을 주도록 하시오.
이렇게 한다면 죽거나 이사를 해도 마을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오. 마을의 정전을 같이 나누어 경작해 정전에 드나들며 서로 친구처럼 지내고, 도적에 대비해 지키고 망을 볼 때에도 서로 도와주며, 질병에 걸렸을 때에도 서로가 돌봐준다면, 백성들은 서로 친애하고 화목하게 될 것이오...(생략) 이것이 정전제에 관한 대체적인 내용이오. 그것을 적절하게 보완해서 적용하는 것은 군주와 그대에게 달려 있소.”
6.4 선비의 역할
...(생략) 패경이 말했다. “선비가 하는 일 없이 얻어먹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맹자가 말했다. “네가 각 사람들이 이룬 성과들을 서로 융통시키고 각 사람들이 하는 일을 교역하게 해 남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시키지 않으면 농부에게는 곡식이 남아돌고 여자들에게는 삼베가 남아돌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것들을 융통시키면 목수와 수레 만드는 사람이 모두 너에게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와서는 어른을 공경하며, 선왕의 도를 지키고 후대의 학자들에게 그것을 전해 주는 일을 하는데도, 너에게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해보자. 너는 어째서 목수와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존중하면서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경시하느냐?”...(생략)
* 이루
7.4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함
맹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도 그가 나를 친하게 여기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반성해 보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다스려지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지혜를 반성해 보고, 다른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대하는데도 그것에 상응하는 답례가 없을 경우는 자신의 공경하는 마음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한 몸이 바르면 천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시경』에서는 ‘영원토록 하늘의 명을 따르니,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구나.’고 했다.”
7.5 천하의 근본은 한 사람의 몸에 있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모두 ‘천하국가’라고들 한다. 그런데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고 집의 근본은 한 사람의 몸에 있다.”
7.11 도는 가까운 곳에 있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추구해야 할 도가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먼 곳에서 찾고, 해야 할 일이 쉬운 곳에 있는데도 어려운 곳에서 찾는다. 모든 사람이 어버이를 어버이로 섬기고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면 천하가 평온해질 것이다.”
7.19 어버이를 섬기는 방법
맹자가 말했다. “...(생략) 증자는 아버지 증석을 봉양함에 있어서 반드시 술과 고기를 올렸다. 상을 물릴 때에는 반드시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지 여쭈었으며, 남은 음식이 있느냐고 물으면 반드시 있다고 대답했다. 증석이 죽은 뒤 증자의 아들 증원이 증자를 봉양함에 있어서 반드시 술과 고기를 올렸다. 그러나 상을 물릴 때에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지 여쭙지 않았고 남은 음식이 있느냐고 물으면 없다고 대답했는데, 나중에 그것을 다시 상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이른바 입과 몸을 봉양한 것이다. 증자처럼 해야 어버이의 뜻을 봉양했다고 할 수 있다.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증자처럼 해야 옳다.”
8.14 스스로 체득하는 것의 중요성
맹자가 말했다. “ 군자가 올바른 도로써 사물을 깊이 탐구해 들어가는 것은 스스로 체득하기 위해서이다. 스스로 체득하게 되면 사물을 대하는 것이 편안하게 된다. 사물을 대하는 것이 편안하게 되면, 그것에서 취해서 축적하는 것이 깊어진다. 취해서 축적하는 것이 깊어지면 자신의 가까운 곳에서 이치를 탐구하여도 그 근본적인 이치와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스스로 체득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8.19 사람과 금수의 차이
맹자가 말했다. “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지극히 미미한데,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내버리고 군자는 그것을 보존한다. 순임금은 사물의 이치에 밝았고 인륜을 잘 살펴서 인과 의에 따라 실천했을 뿐, 인과 의를 억지로 실천한 것이 아니다.”
* 만장
10.3 벗을 사귀는 도리
만장이 물었다. “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 자신의 나이가 많음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지위가 높음을 내세우지 않고, 자기 형제 중에 부귀한 사람이 있음을 내세우지 않는다. 벗을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을 벗 삼는 것이므로 내세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생략)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을 일러 귀한 이를 귀하게 여긴다하고,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공경하는 것을 일러 어진 이를 존중한다고 한다. 귀한 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과 어진 이를 존중하는 것은 그 취지가 한 가지이다.
10.8 옛사람과 벗을 삼다
맹자가 만장에게 말했다. “ 한 고을의 선한 선비는 그 고을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고, 한 나라의 선한 선비는 그 나라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으며, 천하의 선한 선비는 천하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는다. 천하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위로 올라가 옛사람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옛사람이 지은 시를 외우고 옛사람이 지은 책을 읽으면서도 옛사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위로 올라가 옛사람을 벗으로 삼는 것이다.”
* 고자
11.2 사람의 본성과 물의 비유
고자가 말했다. “ 사람의 본성은 빙빙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주면 서쪽으로 흐른다. 사람의 본성 자체에 선함과 불선함의 구분이 없는 것은 물 자체에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
맹자가 말했다. “물 자체에 정말 동(東)과 서(西)의 구분이 없기는 하지만, 위와 아래의 구분도 없는가?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다. 만약 물을 쳐서 튀어 오르게 하면 사람의 이마 높이를 넘어가게 할 수 있고, 물결을 막아서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면 산 위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겠는가? 밖으로부터 가해지는 힘이 그렇게 한 것이다. 사람이 불선한 것을 행하게 되는 것 역시 이처럼 본성이 밖의 힘에 의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1.7 사람의 공통적인 마음
맹자가 말했다. “ 풍년에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나태해지고 흉년에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포악하게 되는데, 이것은 타고난 재질이 그처럼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빠져들게 하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밀을 파종하여 뿌리고 씨앗을 덮어주는데, 토양이 동일하고 또 심은 시기가 같으면 무럭무럭 자라나서 하지 때에 이르러 모두 여물게 된다. 비록 수확량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곧 토질에 비옥하고 척박한 차이와 비와 이슬이 내려주는 기후조건, 사람의 노력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개 그 종류가 같은 것은 모두 서로 닮게 마련이다...(생략)사람의 입은 맛에 있어 동일한 기호를 가지고 있고, 귀는 소리에 있어서 동일한 청각을 가지고 있으며 눈은 색에 있어서 동일한 색감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의 경우에 있어서만 동일한 바가 없겠는가? 사람들의 마음에서 동일한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도리이며 의리이다. 성인이란 우리들의 마음에 동일한 바를 먼저 체득한 분이다. 그러므로 도리와 의리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동물의 고기가 우리들의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11.15 대인과 소인의 차이
..(생략)맹자가 대답했다. “ 몸의 중요한 부분을 따르면 대인이고, 하찮은 부분을 따르면 소인이다.” 공도자가 물었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중요한 부분을 따르고 어떤 사람은 하찮은 부분을 따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귀와 눈의 기능은 사고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의 사물에 의해 가려진다. 외부의 사물이 한 사물에 불과한 감각 기관과 접촉하면 감각기관은 그것에 의해 이끌려가게 된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도리를 이해할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먼저 그 중요한 부분을 확고하게 세우면 하찮은 부분들이 그 중요한 부분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대인이 되는 까닭이다.
11. 18 오늘날 인을 실천하는 사람들
맹자가 말했다. “ 인(仁)이 불인(不仁)을 이기는 것은 물이 불을 이기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 오늘날 인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물 한 잔으로 수레 하나에 가득 실린 땔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는 것과 같다. 그러고서 불이 꺼지지 않으면 물은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행동은 불인에 크게 동조하는 것이니, 결국에는 그가 지닌 얼마 되지 않는 어진 마음마저 잃게 될 것이다.”
* 진심
13.2 명을 대하는 태도
맹자가 말했다. “ 어느 것이든 명(命)이 아닌 것이 없지만, 그 중 올바른 것에 순응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명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위태로운 담장아래에 서 있지 않는다. 도를 실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다가 죽는 것이 명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죄를 지어 형벌을 받고 죽는 것은 명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13.14 명령의 정치와 교화의 정치
맹자가 말했다. “ 어진 말로 타이르는 것은 어진 음악이 사람들에게 깊이 스며들어 감화시키는 것만 못하고, 좋은 정령은 좋은 교화가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만 못하다. 좋은 정령은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좋은 교화는 백성들이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좋은 정령을 시행하면 백성들에게서 재물을 얻게 되고, 좋은 교화를 시행하면 백성들에게서 마음을 얻게 된다.”
13.18 환난의 의미
맹자가 말했다. “사람 중에 덕과 지혜, 기술과 지식을 지니고 있는 자는 항상 환난 속에 있다. 오직 외로운 신하와 서자들만이 마음가짐이 편안하지 않고 환난을 근심 하는 것이 깊기 때문에 사리에 통달하게 된다.”
13.20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맹자가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통일된 천하의 임금이 되는 것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 부모가 살아 계시며 형제들이 아무런 탈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우러러 봐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봐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의 즐거움이다. 천하의 뛰어난 인재들을 얻어서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군자에게는 이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통일된 천하의 임금이 되는 것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
13.27 물질적 조건과 마음
맹자가 말했다. “ 굶주린 사람은 어떤 것도 달게 먹고, 목마른 사람은 어떤 것도 달게 마시는데, 이것들은 먹고 마시는 음식의 정상적인 맛을 알지 못한 것으로 굶주림과 목마름이 입과 배를 해쳤기 때문이다. 어찌 사람의 입과 배에만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인해 해가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에도 그러한 해가 있다. 만약 사람들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인한 해가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부귀가 남만 못하다고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13.29 우물 파는 비유
맹자가 말했다. “인의를 지향해 노력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우물을 아홉 길이나 되도록 팠더라도 물이 솟아나는 데까지 도달하지 못했으면 우물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14.8 포악한 행위를 위한 관문
맹자가 말했다. “옛날에 국경의 관문을 설치한 것은 포악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였는데, 오늘날 국경에 관문을 설치하는 것은 포악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이다.
자료정리:신승현 99egg@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