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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소개

따뜻한 남쪽 해변으로 간다는 목표 외에는 아무런 계획도 상세한 일정도 없이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며 수십 일간 길을 찾아 헤매면서 그는 불확실한 인생의 사막을 헤쳐 갈 지혜를 얻게 된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20대의 사하라 사막 여행을 재해석하며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사막을 건너는 것과 더 닮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사막을 건널 때에는 산을 오를 때와는 다른 계획과 방법이 필요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수많은 기업과 개인을 상대로 인생이라는 사막, 변화라는 사막을 건너는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적용해 왔다

사하라 사막 여행은 이후 몇 차례 직업을 바꾸고 결혼과 이혼의 과정을 거쳐 자녀를 키워낸 그의 개인적인 삶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한편, 세계적 컨설턴트로서 독창적인 변화 관리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개인과 조직의 변화, 팀워크, 삶의 균형, 다양성, 혁신, 재능 발견 등에 관해 조언을 들려주는 컨설턴트 및 연사로 활동하고 있다. 고객으로는 AT&T, IBM, P&G, 아메리카 은행, 유니레버, 베스트푸드, 몰슨 캐나다, 폭스바켄 캐나다 사 등이 있다. 인커리지 사와 함께 전환기에 들어선 기업들을 위한 경험적 변화 관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Shifting Sands'를 개발했다. 현재 브리티시 컬럼비아 밴쿠버 아일랜드에서 10대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스티브 도나휴 앤드 어소시에이츠'라는 컨 설팅 회사의 CEO로 있다.


2. 내용 요약

1)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

내가 탤리스를 만난 건 1976년 10월 이었다. 시즌의 마지막 대서양 횡단 항해를 하는 알렉산드라 푸슈킨 호에서 우리는 우리 둘만의 노래를 부르며 유럽으로 가고 있었다.
유럽에 도착한 후 파리에 아파트를 얻어 그곳에서 생활을 했다. 파리의 11월은 우리가 출발했던 토론토의 2월 날씨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추위를 무척 싫어했던 탤리스와 나는 11월의 프랑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결심을 했다. 우리는 돈도 넉넉지 않아 갈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캠퍼스 게시판에서 프랑스인 두 명이 붙여 놓은 쪽지를 보게 되었고 이십대 후반의 엔지니어 장뤽과 드라이크리닝 사업을 하던 오십대 남자 앙드레를 만나 그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게 되었다.

『-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혹은 변화의 사막을 건널 때 나침반은 세 가지 역할을 한다.
1.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찾아준다.
2. 우리를 더 깊은 사막으로 이끌어 준다.
3. 우리가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에 중점을 둘 수 있게 해준다. 즉 우리가 좀 더 여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목적지는 저 멀리 흘려버려라
인생의 사막에서도 목표는 존재한다. 사막에도 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산은 우리가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이정표나 길잡이가 되어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감각이다. 먼저 자신을 안내해 줄 내부의 나침반부터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게 보일 때까지는 목표나 도착지는 염두에 두지 않아야 한다.

* 눈높이 낮추기
내안의 나침반을 찾아내는 두 번째 방법은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다. 일단 목적지를 접어두고 나면 바로 눈앞에 있는 그 순간에 집중 할 수 있다. 나침반 바늘은 우리가 여행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여행에 집중하면 우리 안의 나침반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따뜻한 곳으로 가려는 우리들과 달리 장뤽과 앙드레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다. 장뤽은 나이지리아 유전에서 일자리를 잡아 떼돈을 버는 것이었고 앙드레는 지구의 은유적인 끝부분인 통북투를 가는 것이었다.

* 목적의식을 가지고 방황하기
사람들이 방황하면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

1. 목적지에 중점을 두는 것
2. 변화의 사막 가장자리를 배회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
3. 무의식적으로 배회하는 것

2)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우리는 차를 타고 남쪽으로 며칠을 내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의 관문인 최초의 오아시스 갈라다이아에 도착했다. 사막에서는 오아시스를 만나면 항상 쉬었다 가라고 한다. 그런 말에는 다 이유가 있다.
처음 보는 오아시스를 탤리스와 함께 탐험하고 오랜만에 프랑스식 신선한 야채 샐러드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사하라 사막에서 꼭 오아시스에 멈추어 쉬어야 할 이유

1.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2.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3.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 벽 쌓기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오아시스 주변에 벽을 쌓는 것이다. 밤에 전화기 코드를 뽑아 두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전화를 받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식사를 하겠다는 약속도 하나의 벽이다. 휴가를 가면서 노트북을 두고 가는 것은 여름 휴가의 오아시스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터번을 두른 문지기를 세워 두는 것과 같다.

오아시스에서는 그 적막함 고요함 덕분에 지금까지 건너온 사막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또한 앞을 내다보고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이렇듯 오아시스에 머무르는 시간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 대부분은 고속도로 교차점이나 대상들이 다니는 길 위에 있다. 오아시스에서 생각을 해본 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음자브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카르다이아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으로 한없이 뻗어있는 일차선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때 나 는 불현 듯 내가 장뤽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단순함과 고집이 센 그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 오아시스(인살라) 로 가면서 그곳에는 모기가 창궐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모두가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었지만 장뤽은 도무지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말도 안돼. 사막에서는 모기가 살지 못해.”

인살라에 도착한 후로 우리는 잘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인살라는 악취가 심한 늪지 교차로로 모기떼가 항상 윙윙거렸다. 장뤽 역시 말라리아에 걸려 열병을 앓게 되었다. 하지만 그를 간호하면서 우리 넷은 매우 친해졌다.

3)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한참을 달리던 우리 일행은  고속도로 위를 가로 막고 있는 알제리 병사와 중장비들을 보고 기어를 낮추었다.
“제기랄” 장뤽은 외쳤다.
중장비들은 도로를 닦고 있었다. 도로정비를 하는 것이 아닌 도로에 쌓인 모래를 치우고 있는 것이었다.
도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 이제부터는 사막이다.

우리는 이제 포장도로를 벗어난 여정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푸조가 선두에 섰고 트럭이 그 뒤를 이었다.

“제기랄! 이건 프슈프슈야.” 장뤽이 소리쳤다.
나는 프슈프슈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것은 아주 부드러운 가루 모래로 사막의 운전자에게는 악몽과 같은 존재였다.

- 갇히는 것은 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인생의 깊은 부분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도 갇혀 본 경험이 없다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갇히게 되면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막히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잘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침 중반이지만 태양은 찌는 듯이 뜨거웠고 금새 옷은 젖었고 우리는 차를 힘껏 밀며 빼내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럴수록 차는 더 깊숙이 모래 속으로 들어가기만 했다. 앙드레는 타이어의 바퀴 바람을 빼어야만 표면적이 넓어져서 차가 빠져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장뤽이 그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장뤽은 그렇게 되면 다음에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운전할 때 차가 망가진다고 하며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차를 빼내려고 애쓰는 장뤽을 우리는 더 이상 도와지 않았다. 오히려 차를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뤽을 보며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몇 분후 장뤽은 차 밑에 흙을 넣기 시작했고 이어 타이어의 바람을 뺐다.

* 밀어붙이지 않기
정체된 상황은 바로 우리의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에 또 다른 역설이 존재한다.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고 차의 높이를 낮춰라 그러면 차가 모래 위로 올라설 수 있다. 우리도 우리의 자아에서 언제 그리고 어떻게 공기를 빼야 할지 알게 되면 굉장한 상승을 맛볼 수 있다. 우리의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면 현실 세상과 좀 더 가까워지고 좀 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 자기의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의 고집 때문에 일행의 안전이 위협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겸허해질 수 있는 작은 기회를 찾는다.
겸허해진다 함은 그저 자기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작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약점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겸허함이며 이를 통해 더 높이 일어설 수 있다.우리가 사막에서 겪는 변화는 종종 우리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바뀌는 것이다.
겸허해질 수 있으면 방황도 가능해진다. 우리는 사막에서 신기루를 찾아 헤맨다. 내 안의 나침반을 찾는 것은 과학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따라왔던 방향이 신기루였음이 드러나면 겸허해질 수 있다. 그때 그 기분을 그대로 느껴라 그것이 본인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목적 있는 방황을 계속해야 한다.

4)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

타이어의 공기를 뺐더니 효과는 바로 났다. 그리고 프슈프슈를 뒤로 하고 우리는 타만라세트로 가는 길을 달렸다. 이 길은 프랑스어로 piste라고 하는 뼛속까지 진동하게 만드는 그 유명한 빨래판 길이었다. 타이어에 바람을 뺀 덕에 프슈프슈를 나올 수 있었지만 도로에서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자동차의 부품들도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고 자동차에도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붉은 소형밴의 도움으로 타이어의 바람을 넣을 수 있었고 소형 밴도 우리와 함께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프슈프슈보다는 단단했지만 수없이 많은 자갈로 덮여있는 지뢰밭과 같은 이 길에서 차들은 자주 고장이 났다. 타이어가 터지고 차동장치가 바위에 부딪치며 우리는 여러 번을 서서 차를 고쳐야 했다.

이때 앙드레는 차량별로 사고가 날 때마다 각자 보수를 하고 멀쩡한 차는 계속 움직이자고 제안했다. 가다 보면 모래에 박혀 차가 고장이 날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모두 손 놓고 앉아서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앙드레는 사막판 ‘등 뛰어넘기 식’ 달리기를 제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 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일행과도 계속 연락을 취할 수 있을 터였다. 이런 식의 운전법에 정해진 명칭이 없었기에 탤리스는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다.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는 역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규칙은 사하라 사막에서 효과가 있고, 또한 변화의 사막에서도 효력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혼자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 대신 여행을 해줄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방향을 찾아야 하고, 전진하고, 스스로를 돌보고, 자아와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혼자일 수는 없다. 우리는 정신적인 지원, 친구들, 길잡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균형의 문제가 아니다. 혼자서 여행해야 할 시간과 다른 사람의 지원을 받아야 할 시간의 비율에 대한 공식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식별의 문제이다. 여행을 하는 도중에 어느 순간이든 다른 사람의 어깨가 필요할 때가 있고,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또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개발해야 할 기술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언제 필요한지를 뚜렷하게 인식하는 능력이다.

차가 처박힐 때마다 나는 푸조를 빨리 해방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수리를 하는 동안 장뤽의 조수가 되어 그의 손에 연장을 쥐어주었다.
캠프자리를 잡고 우리는 오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여행한 것을 자축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여행이야기를 들려주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다.
우리가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도 다행이었지만 가장 위험하고 험난한 여정, 마지막 오아시스인 아가데즈까지의 여행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가데즈로 가기전의 마지막 오아시스인 타만라세트에 도착하자 나쁜 소식을 들었다. 알제리와 니제르의 국경이 봉쇄되어 더 이상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그 때문에 니제르처럼 예민한 이웃 국가는 아예 외국인들에게 국경을 봉쇄해 버린 것이다.

프랑스인인 앙드레와 장뤽은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앙드레는 나와 탤리스 둘이서 계속 여행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했다. 우리가 받은 알제리 비자는 곧 유효기간이 만료될 상황이었다. 돈도 거의 다 떨어졌다.
탤리스는 나와 함께라면 계속 남쪽으로 가겠다고 결정했다. 나만 결정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완전히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클라우스에게 나는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그날 밤을 그와 함께 은자의 처소근처에서 보내며 생각을 했다.

‘탤리스와 나는 아가데즈까지 간다.’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오아시스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내 안의 나침반이 계속 남쪽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5) 캠프파이어에서 한걸음 멀어지기

프랑스인들이 떠나자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회한, 두려움, 설레임 같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장뤽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했던 현금을 주고 갔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우리는 돈을 아끼기 위해 오아시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캠프를 치기로 했다.
땅거미가 지자 캠프안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불을 쬐고 있었다.
그때 유목민이 나타났다. 사막에서 유목민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우리는  무서움에 떨었지만 그는 소금과 후추를 빌려갈 뿐이었다. 얼마 후 그가 다시 나타나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갔다. 그때까지도 나와 탤리스는 겁을 먹었다.
‘혹시 우리를 죽이진 않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들의 캠프로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그곳에는 고기와 술이 있었고 나와 탤리스는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유목민에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스승형
- 그들은 우리가 현재 어디쯤 건너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캠프파이어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능 선수형
- 그들은 지금 내가 건너고 있는 사막과 똑같은 사막을 건넌 경험이 없는 유목민이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사막을 몇 번 건넌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막을 여행할 때 꼭 지켜야 할 규칙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인생이 산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유목민들은 혼자가 되는 법과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인생에 대한 모든 답을 다 알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종류의 유목민들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겸허해지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더욱 인간적인 사람들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유목민
- 변화의 사막을 건너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전문적인 유목민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걸어서 언덕배기의 우리의 캠프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별빛에 의해 캠프에 돌아온 나는 그날 처음 내가 사막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이 되고 ‘국경이 열렸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아가데즈로 가는 차와 계약을 했다. 장뤽이 준 돈이 우리를 구한 것이다.
국경이 열렸다는 소식을 들은 한 아가씨가 나에게 ‘자기의 동생들이 연락이 안된다며’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여권에 잘 넣어두었다.

*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기
인생의 사막에 대비해서 완벽하게 준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렇다고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것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무책임하거나, 알면서도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책임감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줄 새 시대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캠프파이어에서 벗어나서 인생이라고 하는 사막의 불확실성을 좀 더 쉽게, 덜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대담하게 맞는 마음가짐이다.

* 언제 몸을 숙여야 할지 배우기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친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져 용감하게 모험을 하려고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충고나 비판 또는 평가를 피해야 한다. 때때로 스스로 자아비판이나 판단도 피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더 엄격해지기 쉽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스스로의 비판 한 마디가 다른 사람이 작성한 평가서보다 더 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막을 여행해야하는데 필수적인 ‘바람빼는’ 작업을 피하라는 말이 아니다. 겸허해져야 할 때가 되면, 상실한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면, 자아에서 공기를 빼야 한다.

6)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트럭은 차가운 사막의 밤공기를 뚫고 몇 시간동안 계속 달렸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캠프를 출발한지 30분 만에 국경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 위에 그어진 선 하나. 그리고 옆에 설치되어있는 초소...
병사가 우리들 앞으로 다가왔다. 운전사는 무엇을 열심히 병사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병사는 나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에게 국경통과를 허가했다. 순간 나는 내 여권 안에 있는 편지 때문에 나만 남겨진 것을 직감했다.
나는 보초가 내 여권을 포함해 모든 여권을 트럭 운전사에게 돌려주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국경선에서 잡혔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나를 놓아 준다는 의미였다.
탤리스가 외쳤다. “빨리 올라타!”
있는 힘껏 달려가는 트럭을 따라갔다. 보초는 소리를 치면서 따라왔지만 나를 잡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국경선을 통과하여 아가데즈에 도착했다.

우리는 니제르의 수도를 향하는 트럭을 탔다.
아가데즈와 니아메를 이어주는 울퉁불퉁한 960km 길의 중간 어디에선가 사하라 사막은 끝난다. 정확히 어느 모래 언덕이 마지막인지 어떤 나무가 사막의 끝인지를 구분하기는 힘들다. 나 또한 사하라 사막을 통과했는지는 못 느낀다.

사하라 사막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서 변화의 사막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끝난다. 사막을 다 건넜을 때처럼 진짜 경계선을 알아보고 멈추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중요하다. 사막에서의 경험을 여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막을 건너고 나서 몇 달 만에 또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깊은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있고, 사막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슬픔이나 상실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의식적으로 사막을 건널 때 우리는 유목민이 된다. 사막을 건너는 방법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인생 자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멈춰 서서 스스로 배운 것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유목민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제는 몸소 체득한 경허이나 지혜를 즐길 때가 된 것이다. 사막에서의 경험을 흡수해서 자기 인생의 일부로 만들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하지만 처음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순간, 찬 맥주를 마신 순간, 서아프리카의 북 소리를 들은 순간. 사막의 반대편에 다다랐다는 것을 느낀 그런 순간이나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
탤리스와 나는 사막을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헤어지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친해진 우리 둘은 아프리카의 남부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 남쪽으로 향하는 이유는 사막을 건널 때와는 다른 것이었다.

* 뜨거운 물로 샤워하기
잠깐 멈추어 서서 본인이 걷고 있는 인생의 사막을 돌아보라. 허상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경계선에 도착했는지 생각해보라.
변화 즉 인생의 전환기나 한 단계의 종식을 알리는 뜨거운 샤워를 한 적은 없는가?
인생의 사막에서 뜨거운 샤워를 찾는 것은 현재의 위치를 깨닫고 현재의 생활에 더욱 충실하며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진정한 경계선을 찾게 되면 마음의 평화를 얻어 의미 있는 나침반의 방향대로 갈 수 있다. 진정한 경계선을 건너고 나면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3. 인상깊은 내용

* 사람들은 이 일을 마치면,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시간이 날 거라고 생각하며 오아시스를 지나친다. 그러나 사막은 한없이 계속된다. 여가 시간과 주말, 사교의 시간을 빼앗는 핸드폰과 이메일로부터 해방되어라. 오아시스에서는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고, 사막을 건너는 일에만 몰입하느라 소홀히 했던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한 사색의 오아시스, 친교의 오아시스, 반항의 오아시스, 대화의 오아시스를 찾아라.

- 나의 현재 상황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여유를 가져야 하는 이유...계속 나아가기만 하면 지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쁘다고 핑계대고 친구들과, 친척들과, 지인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지 반성을 자주 못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 인생의 사막에서는 때때로 다른 차에 깃발을 흔들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모든 일을 혼자 하려다가 결국 구조를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하기 전에 먼저 도움을 요청하라.

- 난 가끔 상대방에게 부탁을 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는 버릇이 있다. 내 생각에는 다른이  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그러는 경우지만 이것이 가끔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기도 하고 나 또한 부담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생각해 봐야겠다. 장뤽이 더 빠른 시간에 타이어의 바람을 뺐다면... 우리들이 자신들의 자존심을 약간 굽히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빨리 구한다면 그 일들은 훨씬 빨리 해결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가 빨리 도움을 청하고 거짓을 고백했다면 이렇게 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자료정리:김철중 ztoa99@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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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