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15:52
Ⅰ 묵자를 읽기 전
묵자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사실 중국 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실제로 ‘중국 철학’이나 ‘동양 사상’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면 거의 모든 책에서 묵자의 사상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주(周)나라의 통치력이 약화되어 제후국들의 권력 다툼과 잦은 전쟁으로 혼란했던 춘추 전국(春秋戰國) 시대에 등장한 묵자의 사상은 유가(儒家)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상이었다. 그러나 한(漢)나라 이후 묵자와 그의 사상은 철저히 외면당해야 했다.
그 이유는 묵자가 유가를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묵자는 유가와 그 사상이 위선적이고 형식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서슴지 않았는데 특히, 공자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한나라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유가 사상이 중국 역대 왕조의 통치 이념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 공자와 유가를 정면으로 비판한 묵자의 사상은 당연히 배척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묵자의 사상은 중국 역사에서 약 2천 년간 빛을 보지 못하다가 중국의 근대 지식인들에 의해 새롭게 재조명되면서 중요한 사상으로 자기 자리를 찾게 되었다.
Ⅱ 묵자의 생애
묵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묵자의 생애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묵자에 대한 대표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묵적(墨翟)은 송나라 대부로서 성을 방어하는 기술이 뛰어났고 절용을 주장했다.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은 공자의 후세 사람이라고도 한다.”라고 적혀 있다.
묵자는 당시의 하층 계급이던 공인이나 노동자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묵자의 사상이 지배층을 비판하고 하층민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옹호했기에 당시에는 매우 위험한 사상으로 간주되어 묵이란 성(姓)이 묵형을 받은 데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묵형이란 죄인의 얼굴에 먹으로 글자를 새겨 넣는 형벌을 말하는데, 묵자가 활동하던 전국 시대에 주나라의 형법상 지배층을 형벌로 다스리지 않았고, 피지배층에게만 형벌을 가했다는 사실에서 묵자가 형벌을 받은 하층민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어떤 학자는 묵자의 피부가 검었기 때문에 묵씨라 불렸다고도 말한다. 즉 피부가 검다는 것은 그가 노동을 하는 계층이었음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의 사상을 따른 제자들 대부분이 하층 무사 집단이나 기술자 집단이었다는 점에서도 묵자가 하층 계급 출신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을 종합해 볼 때, 묵자는 하층 계급에 속하면서 일정하게 학식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Ⅲ 묵자의 시대 배경<춘추 전국 시대>
춘추(春秋) 시대는 중국 주나라의 후반기인 약 300년(기원전 8세기~기원전 5세기)의 기간을 이르는 말로 구체적으로는 기원전 770년, 주 왕조가 낙양(洛陽)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를 말한다. 이 시대를 동주(東周) 시대라고도 하는데, 이 무렵 주 왕조는 명맥만을 유지했을 뿐, 세력이 강해진 제후들이 독립하여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던 시대였다.
전국 시대는 진(晉)나라의 유력 귀족인 한·위·조 세 성씨가 실권을 잡은 해(기원전 453년), 또는 이 세 성씨가 정식 제후로 승격한 해(기원전 403년)로부터 시작되며,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통일로 끝이 난다.
묵자가 살았던 춘추 시대 말기와 전국 시대 초기는 제후국 사이의 잦은 전쟁으로 도덕적·사회적으로 혼란이 극심했던 시대였다.
이 시대는 사회·경제적으로 보면 앞 시대와 달리 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때다. 춘추 시대 말기 농업 생산력이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철기의 도입과 확산 때문이었다. 향상된 농업 생산력과 농지 개간으로 인해 생산물이 증가하자 전국 시대 각국의 군주들은 보다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늘어난 부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
경제 발전은 사회 조직에도 변화를 가져와 이제까지 사회의 기본을 이루고 있던 공동체적인 씨족 제도가 무너지고 가장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 단위의 경제생활이 이루어졌다. 이들 가족 단위 중 일부는 몰락하여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대로 광대한 토지를 취득하고 많은 부를 소유한 세력 있는 호족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 결과 토지의 사유화를 바탕으로 지주 계급이 등장하였고 상인을 중심으로 시장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 경제 전반의 변화는 제후국들 서로에게도 영향을 미쳐 나라를 부유하고 강하게 하기 위한 전쟁을 부추겼다. 전쟁은 사람들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그전까지 유지되던 평화롭고 공동체적인 윤리관이나 도덕관도 변하게 했다. 그 결과 무한 경쟁과 이기적인 행동이 자주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한편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인재 등용의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가문의 배경이 없더라도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몰락한 귀족의 자손이나 선비, 심지어는 상공업자나 농민도 군주나 유력 인사에게 접근하여 각자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법률·군사·외교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 이른바 제자백가다.
제자백가 또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말처럼, 이 시대는 정치적·사회적 변동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상가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입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공자·맹자·순자(荀子) 등의 유가는 효제·인의·예를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묵자를 창시자로 하는 묵가는 가족이나 신분 질서를 초월한 겸애사상을 말했으며, 한비(韓非)와 같은 법가는 법에 의한 엄격한 지배, 군주 권력의 절대화에 의한 부국강병의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았다.
이 밖에도 심한 정치 변동에 대한 반발과 혼탁한 세상에 대한 염증으로 문명 생활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농사에 종사할 것을 주장한 농가, 인위적인 정치와 인위적인 도덕을 반대한 노자·장자 등의 도가도 있었다.
Ⅳ <묵자> 책의 성격
《묵자》는 묵자 자신이 쓴 것이 아니고, 묵자를 따른 제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쓴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묵자》는 제자백가들의 책 중에서도 가장 읽기 어려운 책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유가를 계승한 맹자가 묵자를 배척한 뒤로 학자들이 《묵자》를 소홀히 다루었기 때문이다.
《묵자》는 그렇게 정리가 안 된 채 오랫동안 도가의 경전인 《도장(道藏)》에 끼어 있기도 하다가, 청나라 때 와서 필원(畢沅)이 《묵자주(墨子注)》 16권을 따로 출간함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 뒤 1894년 손이양(孫峰讓) 《묵자간고(墨子間鈐)》 15권을 출간함으로써 비로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여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뒤 중화민국 초기에 양계초(梁啓超), 호적 등과 같은 학자들이 주를 달고 분류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읽는 《묵자》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후한 시대의 역사서 《한서》에 의하면 《묵자》는 원래 71편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약 20여 편이 빠져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모두 53편으로 양계초에 의해 5부 15권 53편으로 분류되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묵자》 연구자들은 양계초의 분류에 따르는데, 이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제1부는 친사(親士)·수신(修身)·소염(所染)·법의(法義)·칠환(七患)·사과(辭過)·삼변(三辨)으로 묵가 사상의 개요에 해당한다.
제2부는 상현(尙賢) 3편·상동(尙同) 3편·겸애(兼愛) 3편·비공(非攻) 3편·절용(節用) 2편·절장(節葬)·천지(天志) 3편·명귀(明鬼)·비악(非樂)·비명(非命) 3편·비유(非儒)로 묵가의 열 가지 주장이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제3부는 경(經) 상하(上下)·경설(經說) 상하·대취(大取)·소취(小取)로 후기 묵가의 제자들이 추가한 부분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논리학·물리학·기하학·생물학 등 오늘날의 자연과학과 관련된 내용으로 묵가 집단이 실제로 경험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제4부는 경주(耕柱)·귀의(歸義)·공맹(公孟)·노문(魯問)·공수(空輸)로 묵자의 가르침과 행적이 모아져 있다.
제5부는 비성문(備城門)·비고림(備高臨)·비제(備梯)·비수(備水)·비돌(備突)·비혈(備穴)·비아부(備蛾傅)·영적사(迎敵祠)·기치(旗幟)·호령(號令)·잡수(雜守)으로 모두 군사적 방어 방법에 대한 것들이다.
Ⅴ 책 내용
제1부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기초
1. 친사(親士) - 선비를 가까이 하라
묵자는 나라에 들어가서 살펴보았을 때, 그 나라에서 선비를 우대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곧 멸망할 것이라 하였다. 賢者를 보고서도 서둘러 등용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군주는 태만한 사람이며, 현자가 아니면 등용을 서두를 필요가 없고, 선비가 아니면 더불어 국사를 논할 상대가 못된다고 주장하였다. 현자를 등용하는 일에 태만하고 선비를 상대하지 않으면서 능히 그 나라를 보전한 군주는 일찍이 없었던 것에 비추어 보아 묵자의 가르침은 타당성을 얻는다.
2. 수신(脩身) - 자기 자신부터 수양하라
묵자는 修身을 강조하면서 여러 상황에서의 근본을 이르며 이를 닦기를 애쓰라고 하였다. 전쟁을 하는 데 포진법이 있지만 용기가 근본이며, 장례를 치를 때 예의가 있지만 슬픔이 그 근본이며, 선비에게 학문이 있지만 실천이 그 근본인데 근본이 단단하지 않은 사람이 결과만을 갖추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더불어 먼저 가까운 것을 살핀 다음 먼 것을 가까이 하라고 하였다.
‘가까운 사람들과 친하지 않으면서 멀리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려 애써서는 안 되고, 일이 앞뒤 없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면 많은 일을 하려 애써서는 안 되며, 무언가를 손에 쥐고도 그것에 대해 모른다면 굳이 더 알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
3. 칠환(七患) -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곱 가지 재양
묵자는 나라의 일곱 가지 환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일곱 가지 환난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환난은 성곽과 해자는 지키지 못하면서 궁궐을 짓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적군이 국경을 침범 해와도 사방 이웃 나라들이 구원해주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는 백성들의 노동력을 쓸모없는 공사에 고갈시키고, 무능한 자들에게 상을 주어서, 백성의 노동력이 쓸모없는 일에 고갈되고, 손님을 접대하느라 재물이 헛되이 탕진되는 것이다.
네 번째 환난은 벼슬아치들은 제 녹만을 지키려하고, 벼슬하지 않는 선비들은 파당을 짓고, 임금은 법을 정비하여 신하를 토벌하고, 신하는 무서워 임금을 거슬러 간언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임금이 스스로를 성스럽고 지혜롭다 생각하여 신하들에게 일을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를 안전하고 강하다고 생각하여 지키고 대비하지 않으며, 사방 이웃 나라들이 음모를 꾸며도 경계할 줄 모르는 것이다. 여섯째는 신임하는 자들은 충성스럽지 못하고, 충성스러운 자들은 미덥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 일곱 번째 환난은 가축과 곡식은 백성을 먹이기에 부족하고, 대신들은 나라를 경영하기에 부족하며, 상을 내려도 백성들을 기쁘게 할 수 없고 벌을 주어도 두렵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묵자는 일곱 가지 환난을 가지고 나라에서 살아간다면 사직은 반드시 존재할 수 없고, 일곱 가지 환난을 가지고 성을 지킨다면 적이 쳐들어오면 나라는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였다.
4. 사과(辭過) - 사치와 허례허식을 하지 마라
묵자는 옛날의 성왕이 궁실을 지을 때 단지 생활의 편의를 고려하였을 뿐 결코 보고 즐기기 위하여 짓는 일이 없었다는 예를 들며 궁실을 짓는 법은 이롭지 않는 것에는 비용과 노력은 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제2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열 가지 주장
1. 상현(尙賢) - 현명한 이를 숭상하라
현명한 사람이 군주가 되어 국가를 다스리되 다시 그 다음의 현명한 사람이 국가의 대신인 삼공(三公)이 되어 군주를 보필해서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던 묵자는 천하가 광대하기 때문에 몇 명의 현자가 다스릴 수는 없다고 보고, 국가를 여러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각 구역에 제후국을 두고 다시 그 아래에 향(鄕)과 리(里) 등의 구역을 만들어 각각의 구역에 제후와 향장(鄕長), 이장(里長) 등을 두어 각각 그에 합당한 현명한 사람들을 임명, 다스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상동(尙同) - 백성들이 서로 하나가 되게 하라
묵자가 보는 관점에서 사람이란 일인일의(一人一義: 사람마다 각각의 뜻이 있으며) 십인십의(十人十義: 열 사람이면 열 사람 각각의 뜻이 다름)이므로 방치하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니 따라서 부락민은 이장에게, 이장은 향장에게, 향장은 제후에게 그리고 제후는 군주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하였다.
상동(尙同)이란 이처럼 아래에서 위로 점차 올라가면서 아랫사람이 위에 있는 현자를 모방하거나 동일하게 되어 가는 것을 일컫는다. 그리하여 그 정점에는 최고의 현자(賢者)로서 하늘의 뜻을 받드는 군주, 즉 천자(天子)가 있어 천하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정점(頂點)에 있는 군주로서의 천자는 백성의 모범이 되어 모든 백성이 그를 닮아가게 되고 천자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뜻으로 통일된 < 상동일의(尙同一義) >의 이상적 평등 사회를 이룩할 수 있게 된다.
3. 겸애(兼愛) - 차별하지 말고 두루 사랑하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고, 자기 집, 자기 나라를 사랑하듯이 다른 나라를 사랑하면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이 번영하는데, 이는 단순히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다.’
이와 같은 묵자의 주장은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교설은 유가(儒家)에서 주장하는 인애 (仁愛)와 비슷하나 유가의 그것이 부자(父子) ·군신(君臣)이라는 관계를 중시하고,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차례로 멀리 미치는 것임에 비해, 묵가의 그것은 이러한 가깝고 먼 것의 구별보다는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만인을 사랑하라고 주장한 점이 크게 다르다. 다음은 일부 발췌문을 포함하고 있다.
“묵자가 말하기를 남의 나라 보기를 내 나라와 같이 하고, 남의 집 보기를 내 집을 보는 것과 같이 하고, 남의 몸 보기를 제 몸같이 하라(墨子言 視人之國若視其國 視人之家若視其家 視人之身若視其身).”고 하였다.
나와 타인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면 싸움이나 소란이 없어지고 사람들은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으므로 천하에 큰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군신(君臣) 부자(父子) 형제(兄弟)간에도 자기를 앞세우고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묵자는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로움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인인(仁人)의 도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천하의 해로움은 무엇인가?
국(國)과 국(國)이 서로 공격하고, 가(家)와 가(家)가 서로 찬탈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기의 국(國), 자기의 가(家), 그리고 자기(自己)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어떠한 사태로 전락하는가가는 묵자가 규정하는 해지대자(害之大者), 즉 가장 우려할만한 사태이다. 이 사태는 바로 서로 차별하는 것(交別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큰 나라가 약소국을 공격하고, 큰 家가 작은 家를 어지럽히고, 강자가 약자를 겁탈하고, 다수가 소수를 힘으로 억압하고, 간사한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천한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대하는 것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이다"
"천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강자는 반드시 약자를 억누르고, 부자는 반드시 가난한 사람을 능멸하고, 귀한 사람은 반드시 천한 사람에게 오만하며, 간사한 자들은 반드시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천하의 화와 찬탈과 원한이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묵자는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롭게 해주도록 하는 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묵자의 사상인 겸애(兼愛)와 교리(交利)가 제시된다. 이 부분이 묵자의 겸애사상과 교리상의 원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겸상애와 교리지법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묵자가 말하기를 그것은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가(家) 보기를 자기 가(家)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보기를 자기 보듯이 하여야 한다."
以兼相愛 交相利之法 易之 然則兼相愛 交相利之法 將奈何哉
子墨子言 視人之國若視其國 視人之家若視其家 視人之身若視其身
겸애(兼愛)는 별애(別愛)의 반대개념이라 할 수 있다.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인 평등주의, 박애주의이다. 묵자는 세상의 혼란은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별애 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나아가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리(相利)의 관계를 만들어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상리의 관계는 개인의 태도나 개인의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구조와 제도의 문제이다. 그러나 '묵자'에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 대하여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애정(愛情)과 연대(連帶)라는 원칙적 주장에 머무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비공(非攻) - 침략 전쟁을 반대 한다
‘겸애’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비공(非攻)’은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강자가 약자를 침범하고 죄 없는 나라를 침공하는 행위에 일체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강대했던 제후의 나라들은 공벌(攻伐)하는 것을 현명한 행동이라 하면서 작은 나라들을 침략의 희생물로, 백성들을 재앙 속으로 몰고 갔다. 묵자는 이를 가장 큰 죄악으로 단정하며 단호히 반대하였는데, 단지 사악하고 포악한 왕을 몰아내기 위해서 벌이는 폭력과 전쟁에 대해서만은 공(攻)이 아닌 주(誅)라고 보고 긍정하였다.
5. 절용(節用) - 물자를 절약하라
묵자는 당시 위정자들이 사치스럽고 방탕하게 생활하는 것에 근거하여 이들의 생활태도를 비판하고 경제적이고 검약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곧 국가가 빈궁하게 되는 원인이므로 절약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묵자는 구체적으로 관실, 음식, 의복, 장례의식, 배와 수레, 여러 방면에서 절용의 원칙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제시하면서 이는 실용(實用)에 부합되고 민리(民利)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6. 절장(節葬) - 장례는 검소하게 하라
묵자는 또한 장례 시에 쓰이는 의식이나 비용을 절약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유가에서는 오랫동안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는 것을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효(孝)로 여겨왔지만, 이러한 후장구상(厚葬久喪)의 제도는 국가와 사회의 제물을 크게 낭비하고 사람들의 생활과 건강에 크게 손상을 입히는 등 백성들의 생업과 노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결국에 가서는 국가를 빈곤하게 하고 정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7. 천지(天志) - 하늘의 뜻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다
묵자는 하늘을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존재로서 인간사회에서 가장 높은 천자를 제재하고 관할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또한 하늘은 의(儀)를 좋아하고 불의(不義)를 싫어한다고 하여 의(儀)는 하늘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이에 묵자는 의(儀)란 백성을 사랑하는 것으로서, 그 누구든 하늘의 뜻에 따르고 겸애하며 자신의 일에 열심히 종사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반대로 하늘의 뜻을 거슬러 서로에게 해를 끼치며 대국으로서 소국을 공격하고 강자로서 약자를 괴롭힌다면 벌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8. 명귀(明鬼) - 귀신을 밝힌다
묵자는 ‘하늘’과 함께 ‘귀신’은 사람들을 공평무사하게 대하는 존재로서 귀신의 상벌은 신분이 고귀하거나 미천하거나에 상관없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귀신의 존재를 믿고 받드는 것이 천하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주장하였다.
9. 비악(非樂) - 음악을 반대 한다
묵자는 음악을 듣고 즐기는 사실자체는 악(惡)이 아니나, 왕공 대부들이 음악활동을 좋아하고 음악활동을 하게 되면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과하게 거둬들여야 하고, 위정자들은 백성들의 삶에 관심을 둘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백성들은 생업에 종사하여야 하는데 그들마저 음악에 빠지게 된다면 음악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야 하므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이는 백성들의 부담을 가중시켜 생활을 어렵게 한다고 하였다.
10. 비명(非命) - 운명이란 없다
묵자는 운명론을 부정한 사상가였다. 그는 고대의 성왕들이 난세를 다스리고 치세를 만든 것은 운명이 아닌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운명론은 노력하기 싫어했던 폭군들이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무책임한 핑계로 규정짓고 이를 성왕들의 사적과 백성들의 경험적 지식을 통해 반박하고자 하였다.
11. 비유(非儒) - 유가를 비판 한다
묵자는 유가의 사상과 행동에 대한 비판을 펼쳤다. 특히 유가의 혼상의례, 운명론적 사고방식, 처세태도, 공자와 관련된 전문과 일화에 대한 것이었다.
묵적은 예에 바탕을 둔 공자의 문화주의가 형식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이에 따라 그는 모든 문제에서 명(名)보다는 실(實)을 따지라고 한다. 본래의 정신이나 취지, 목적에서 어긋나는 겉치레를 없애고 꼭 필요한 만큼만을 취하는 검약을 강조했던 것이다.
제3부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
1. 공맹(公孟) - 행동하는 지식인
공맹(公孟)이라는 편명은 ‘공맹자가 묵자에게 말하였다’로 시작하는 첫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공맹자는 공자의 대제자인 증자의 제자였다) 이편은 23절로 되어있고 묵자와 제자들 및 기타사람들의 대화이다. 주된 내용은 비명(非命), 명귀(明鬼), 절장(節葬), 비유(非儒) 등과 비슷하다.
2. 노문(魯問) - 충신을 아끼고 인의를 행하라
노문(魯問)은 노나라 왕이 제나라의 침공을 두려워하여 묵자를 불러 그에게 협의하고 대책을 묻는다는 내용으로부터 축약되어 나온 것이다.
묵자는 노나라 왕과의 대화에서 내정(內政)을 잘해 민력(民力)을 축적하고, 이웃나라와 교류하여 필요할 때 원조를 구해야 하고, 또한 국가의 힘을 합쳐 침략에 대비하는 등의 논리와 사상을 펼쳤다. 구체적으로는, ‘위로는 하늘을 높이고 귀신을 받들며, 아래로는 백성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며, 또한 가죽과 비단 등 많은 예물을 만들고, 겸손한 말과 태도로 사방 이웃의 제후들에게 예를 베풀고 교제하며 백성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공수(公輸) - 반전과 평화의 길
전국시대 노나라에 공수반이라는 장인이 있었는데, 후세의 토목장인들은 그를 조사가 받들 정도로 뛰어난 장인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특히 공수반은 전쟁에 쓰이는 기계를 잘 만들었는데, 수나라를 위해 배를 만들어 수전(水戰)에서 월나라를 패퇴시켰고, 이어 운제라는 무기를 만들어 송나라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묵자는 공수반이 초나라의 송나라 침공준비를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노나라로 출발하여 열흘밤낮을 걸려 도착한 뒤 초나라와 담판을 벌여 전쟁을 막았다. 이를 통해 묵자의 중심사상인 겸애(兼愛)와 비공(非攻)이 잘 드러나고 있다.
제4부 적의 공격에 맞서는 방어의 방법
1. 비성문(備城門) - 성문을 지키는 법
비성문(備城門)은 성문을 수비한다는 뜻으로, 묵자의 방어전술론에 의미를 두고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주장했던 묵자는 금골리가 나라를 지키는 방법에 대하여 물었을때 이렇게 답하였다.
‘성의 수비하는 기구들이 갖추어져 있고, 위아래가 서로 친하게 지내며, 사방 이웃 제후들의 구원을 받는 것이 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다. 또한 왕이 수비하는 사람을 등용할 때에는 반드시 수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
2. 호령(號令) - 전시에 백성을 올바로 다스리는 법
호령이란 군기(軍紀)를 의미한다. 적군이 공격해 올 때 어떻게 군기(軍紀)를 유지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병사들의 공훈과 과오에 대한 상벌에 대한 설명한다.
묵자는 전쟁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안정을 기할 수 없다고 보고, 하급관리와 사병과 백성들이 각기 다른 마음을 가져 통일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장수나 우두머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내용으로는 왕은 사람을 자주 보내 변두리에 있는 성이나 관문 그리고 요새들을 지키며 오랑캐들을 막느라고 수고하는 이들을 위해 상을 주는 것, 수비하는 병사들이 재원이 부족한지 살피는 것, 군수물자가 넉넉한지 살피는 것, 나무의 생장이 좋지 않으면 목재를 적게 쓰고 농지가 좋지 않으면 양식을 절약하도록 하는 것, 재물이 많으면 백성들이 좋은 음식을 먹게 해주는 것 등이 있다.
Ⅵ 서 평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묵자는 유자를 강도 있게 비판함에 따라 2000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있었다. 현재 묵자는 그 이름조자 생애조차 분명치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묵자의 사상이 잊혀 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이 책이 2007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가르침을 주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가까운 사람들과 친하지 않으면서 멀리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려 애써서는 안 되고, 일이 앞뒤 없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면 많은 일을 하려 애써서는 안 되며, 무언가를 손에 쥐고도 그것에 대해 모른다면 굳이 더 알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은 이 책이 왜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잊혀 지지 않았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그때 사람들도 지금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있었나 보다.
이밖에도 묵자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만연해져 있는 이기주의와 개발을 앞세운 환경 파괴, 무절제하고 충동적인 소비문화, 자기 과시적이고 형식에 치우친 혼례와 상례 풍습 등을 생각하게 하였다. 또한 지구촌 곳곳에서 아직도 그치지 않는 민족 및 인종 간의 갈등,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부당한 간섭과 횡포 문제 등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묵자의 사상은 인간의 생명과 가치를 존중하며 인류애를 강조한 평화 사상이라고 할 수 있기에 현재의 사람들도 읽을 가치가 있다.
자료정리 이승희 vitamin_hee@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