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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 소개

F. 스콧 피츠제럴드 (Francis Scott Fitzgerald 1896-1940)

1896년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지 2년 만에 부친의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뉴욕으로 이사 했다. 프린스턴 재학시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남부에서 군 복무를 하다가, 종전과 함께 뉴욕으로 올라 왔고, 1920년에 자전적 소설 ‘낙원의 이쪽’ 을 발표했  다. 첫 장편인「낙원의 이쪽」이 순식간에 전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는 작가로서의 운 좋은 첫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성공으로 경제적 여유가 생긴 그는 아내 젤다와 함께 파티와 환란의 세계에서 지내다가 결국 파탄의 지경에 이른다. 그런 여건 속에서도 1925년에 유럽에서 10개월가량 머물면서 <위대한 개츠비>를 완성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를 192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었다. 만년 알코올 중독과 병고에 시달린 그는 1940년 ‘최후의 대군‘을 집필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 옮긴이 소개

김동욱
한국외대 영문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미시시피 대 문학석사, 뉴욕 주립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과 듀크 대학,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교환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 현재 서강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위기>, <문학을 위한 변명>,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 <전환기 비평 논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앵무새 죽이기>,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오만과 편견>, <오페라의 유령>,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등이 있다.


3. 책 소개

'재즈의 시대'였던 미국의 1920년대를 배경으로 무너져가는 아메리칸드림을 예리한 필치로 그려낸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

1925년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장편소설로 공허한 꿈을 좇는 미국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자신과는 출신도 환경도 다른 상류계급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 한 청년이 과거의 사랑을 회복시켜 보겠다는 일념으로 청춘을 바쳐 돈을 버는 데 몰두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이다.

청춘의 절망과 욕망에 대한 집착을 담은 청춘소설이라는 평도 있지만 자연 풍광에 대한 뛰어난 묘사와 인물들에 대한 섬세하고 예리한 심리묘사 등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강하게 담고 있는 스토리여서 더욱 화제였고, 여러 차례 영화화되기도 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만 해마다 30만 권 이상 팔린다. 새천년을 앞두고 뉴욕 랜덤하우스 출판사는 20세기 영어로 쓰인 위대한 소설 100권을 선정했는데, 1위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2위가 <위대한 개츠비>였다.


4. 시대적 배경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의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겪었지만 대량생산에 따른 경제적인 호황으로 부를 향락하는 시기였고 동시에 전쟁과 그 후의 물질적 풍요는 전통적인 가치와 도덕률에 크게 타격을 입히고 있던 시기였다.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규범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노력보다는 눈앞의 현실적 만족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쾌락적 충동에 이끌리어 아무런 목적 없이 파티를 열어 남녀가 마시고 춤추고 잡담으로 소일하는 등 일시적인 쾌락과 감각적인 것에만 몰두해 갔던 시기였다.

‘재즈시대'(Jazz Age), ‘떠들썩한 20년대'(Roaring Twenties),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 등 1920년대를 지칭하는 여러 표현들에서 엿보이듯이 이 시대는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향락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뒤섞여 혼돈스럽던 시대였다.


5. 내용 소개  

<입신출세를 꿈꾸는 순박한 야심가 개츠비의 이야기>
  닉은 중서부에서 뉴욕으로 와서 교외에 있는 작은 집을 빌리는데, 그 옆에는 제이 개츠비의 호화로운 대저택이 있다. 큰 부자인 개츠비는 그 저택에서 밤마다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그가 항상 파티를 여는 이유는, 예전의 가난한 시절에 데이지와 사랑을 하였는데 그가 1차 세계대전 때 유럽으로 싸우러 간 틈에 그녀가 톰이라는 큰 부자와 결혼하였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단순히 돈이 데이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수단을 써서 부자가 되었고, 의도적으로 데이지의 저택과 가까운 곳에 있는 대저택을 산다. 그리고 매일 밤 파티를 열어 어떻게든 그녀의 관심과 사랑을 되찾으려 한다.

우연히 이웃인 닉의 주선으로 개츠비는 데이지와 다시 만난다. 단순한 개츠비는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태도를 보고 사랑을 다시 되찾았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어느 무더운 여름 날 다함께 뉴욕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데이지가 운전하던 개츠비의 차가 데이지의 남편인 톰의 숨은 애인을 치어 죽인다. 개츠비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오해한 톰은 개츠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의 장례식 날, 데이지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남편과 함께 여행을 떠나버린다.

닉은 이러한 동부의 현실이 싫어져서 중서부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6. 저자의 생애와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가 바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 자신이 바로 개츠비의 역할을 맡아도 좋을만큼 그는 세련된 20년대 말쑥한 신사의 매력을 풍긴다. 실제로 가난하고 불우한 군인이었던 그가 상류사회를 동경했고, 글을 써서 돈과 명성을 얻어 자수성가했으며, 동경하던 젤다까지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은 개츠비와 꼭 닮았다.

작품 속의 개츠비가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던 여자 '데이지' 역시 피츠제럴드가 한 평생 사랑하고 미워하기도 했던 여자 '젤다'와 놀랍도록 닮았다. 젤다 피츠제럴드를 검색해보면 그녀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부인으로써가 아니라 여류작가, 발레리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녀는 '데이지'만큼 경솔하고 천박한 근성을 가진 여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데이지만큼 무료하고, 권태롭게 살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남성편력과 정신분열증, 그리고 남부러울 것 없던 그녀의 48세의 자살은 그런 것들을 뒷받침해준다.        

소설 속의 개츠비가 그의 연인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 그 즈음, 현실의 피츠제럴드는 1918년 여름 어느 무도회장에서 젤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절, 개츠비와 피츠제럴드는 군인이었다. 상류층인 데이지의 가문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개츠비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왔듯이 앨라바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인 젤다의 신분 또한 세일즈맨 아버지를 둔 피츠제럴드를 주눅 들게 하였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듯이 피츠제럴드는 젤다와 결혼하려는 열망으로 소설에 매달렸다. 가난한 샐러리맨과는 살 수 없는 기질의 젤다가 그와의 약혼을 깨버리지 않았다면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피츠제럴드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1920년 3월 26일 피츠제럴드가 그의 처녀작인 ‘낙원의 이 쪽'(This Side of Paradise) 으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졌다. 이 작품은 그를 단숨에 문단의 총아로 만들어놓았다.

일주일 후 피츠제럴드와 파혼하였던 젤다는 유명인이 된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1919년 봄, 젤다가 앨라바마에서 군 제대 후 뉴욕으로 간 피츠제럴드에게 보낸 편지에는 '내 예감에 우리는 함께 죽을 거야'라고 적혀있다. 이 편지는 그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 피츠제럴드가 '낙원의 이 쪽' 마지막장에 그대로 인용했다고 한다. 재능 많고 아름다운 젊은 부부는 10년 동안 행복한 삶을 산다. 그 시절은 <위대한 개츠비>가 집필된 피츠제럴드의 황금 시절이기도 하다. 

마흔 살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 젤다 세이어의 정신병으로 인해 그녀와 별거 상태였다. 아내의 정신병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육신도 과도한 음주와 질병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그 해 MGM 영화사는 그와 맺은 전속 대본가 계약을 중단했다. 아내의 병원비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피츠제럴드가 심장 마비로 죽기 4년 전, 그의 나이는 마흔이었다. 불행히도 그는 끝까지 자신을 실패한 인생으로 믿고 죽어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무도 그가 위대한 미국 작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피츠제럴드의 분신인 개츠비 또한 데이지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죽고 4년 뒤에 아내는 정신병동 화재로 숨졌다. 그의 묘비 앞 석관 뚜껑 위에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져있다.
So we beat on,                              
(우린 계속 노를 저어가지)
boats against the current,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며)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끝없이 과거를 되씹으면서)'

끊임없이 그의 과거를 넘어서려고 발버둥 쳤던 개츠비의 노력은 끝내 헛된 것으로 결론이 난다. 그러나 강물을 거스르려했던 개츠비의 노력을 피츠제럴드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보았다.


7. 1920년대 미국 최고의 데카당스 문학

피츠제럴드가 미국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스탕달이 프랑스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같다. 스탕달이 그랬듯 피츠제럴드는 전통적으로 문학의 주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되는 통속적인 소재들로 한 시대의 사회상을 통찰력 있게 그려냈다. 평론가들이 피츠제럴드를 연애와 돈 얘기 밖에 모르는 속물이라고 비웃자 "맙소사! 그것이 나의 소재이고, 그것이 내가 다뤄야 하는 전부이다."라고 그는 답하였다.

피츠제럴드는 1차 세계대전으로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 1920년대 뉴욕 상류층의 모습을 일종의 데카당스 문학으로 형상화해낸다. 화자인 닉 캐러웨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들은 이 경기호황 속에서 흥청댄다. 닉은 중립적인 태도로 이들이 '도덕적인 차렷' 자세를 하고 있기를 원하지만, 닉 역시 한 쪽 발은 중서부의 보수적인 문화에 딛고 있으면서 다른 한 쪽 발은 동부의 타락한 문화 속에 딛고 있다.

소설의 시선이 이렇듯 이중적인 것은, 피츠제럴드 자신이 프린스턴 출신의 가난한 작가로서 부르주아의 비도덕성을 비난하면서도, 부르주아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모순된 인물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단순히 작가 자신의 상류사회와 성공에 대한 동경을 이상화한 자전적 작품이라면 <위대한 개츠비>는 그토록 위대한 작품이 될 순 없었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발휘된 그의 상업적, 작가적 역량은 이때만큼은 천재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절정에 달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인간간의 믿음과 유대, 미국의 선조들이 쫓던 빛나던 꿈들, 열정이 모두 사라진 허구적 시대를 깊은 애증과 통찰력을 갖고 다루고 있다.

<데카당스문학이란?>

데카당스. 쇠퇴, 또는 퇴폐라고 번역된다. 성숙했던 사회가 쇠퇴로 기울어질 때, 그 문화가 불건전한 양상과 성격을 갖는 것을 데카당스라 부른다. 문화의 미적 퇴폐의 과정이나 그 결과 또는 난숙기의 예술적 활동이 그 정상적인 힘 또는 기능을 잃고, 형식적으로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이상한 감수성, 자극적 향락 따위로 빠지는 경향. 종종 쇠퇴기에 있어서 사회 전반의 부패 현상에 대응하는 탐미주의나 악마주의의 형태가 되어 극단적인 전통 파괴, 배덕, 생에 대한 반역 등의 경향도 수반한다.

그 특성으로는 자의식, 끊임없는 회의, 지나친 세련성, 신앙과 환영의 소멸 등이다. 문학에서는 원래 로마제국 말기의 병적인 문예의 특징을 가리켰으나, 19세기 말에 보들레르와 베를렌의 영향을 받은 모리스 드 블래시, 로랑 다이아드, 로당바크, J.모레아스 등 상징파 시인들이 데카당(퇴폐파:1886∼89)이라고 자칭하여, 이후 그들의 예술적 경향을 데카당스라고 평하였다.

그들은 J.K. 위스망스의 소설 ‘역로’(1884)에 나오는 주인공의 생활신조를 의식적으로 실천하면서 평범한 부르주아 도덕이나 고전적 질서에서의 탈출을 시도하고, 진기하고 인공적인 것을 좋아하며 추악함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미(美)를 발견하는 등, 현실부정의 전위적인 문학 활동을 하였다.


8. 감상

<위대한 개츠비>는 지난 2001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후 호기심에 구입하게 된 책이고, 2007년에 들어서 다시 읽게 된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출간된 1925년이 아닌 2001년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현상에 대한 대답은 하나, <상실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실의 시대의 한 구절인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이상 읽은 사람이면 누구든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어”는 2001년 한국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이러한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왜 고전명작으로 꼽히게 되었고, 다시 읽는다면 2001년에 느꼈던 감정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 내려갔다.

사실 책의 스토리는 이미 다 알고 있어서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받은 또 다른 느낌은 1920년대 미국 젊은이의 ‘사랑과 비극’이 아니라 그 당시 미국 젊은이의 ‘혼란과 허무’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미국문학의 영원한 기념비'라는 칭송을 받을 만큼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피츠제럴드가 이 작품에서 다루고자 했던 문제가 단순히 재즈시대의 미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안고 있는 궁극적인 갈등인 이상과 현실이라는 인간 존재의 영원한 문제라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가지게 된 또 하나의 의문점은 작가가 왜 이 작품의 제목을 단순히 ‘개츠비'라고 하지 않고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위대한 개츠비>라고 했는가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서술자인 닉의 표현대로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일찍이 발견된 적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작가는 개츠비는 꿈을 꿀 줄 아는 자라는 점에서 그 위대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톰과 데이지의 세계가 무책임하고 방향을 상실한 세계인 반면 과거의 순수한 사랑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꿈꾸는 자'로서의 개츠비의 삶은 그 낭만적인 꿈에 대한 치열한 추구 때문에 위대하다고 보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좌절될 수밖에 없는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자료정리 : 박혜미 loveham1982@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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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