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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9. 00:04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00:04

1. 시대상황

아우구스티누스가 태어나던 3-4세기의 유럽은 시기는 콘스탄티누스의 치세에 이어 도나우 강 넘어 북방민족(고트족)의 남하로 인해 로마제국이 서서히 멸망하던 시기였으며 오현제 시대를 지나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거쳐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되는 시기이다. 이런 로마의 종교 공인과 관련하여 법학자인 예링은 “로마는 세계를 세 번 통일했다. 첫째는 무력으로 국가를 통일했고, 둘째는 정신의 힘으로 교회를 통일했고, 셋째는 중세에 로마법으로 각국의 법을 통일했다.”고 ‘로마법 정신’에서 언급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로마가 기독교를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말한다.

가. 연표

312년 밀라노 칙령
395년 로마제국 동서분열
410년 서고트의 족장 알라리크가 로마에 침입하여 대약탈을 자행. 알라리크는 아프리카에서 급사.
415년 히스파니아에 서고트왕국 성립(~711).
429년 반달족이 북아프리카에 건너가 반달왕국을 건설(~534).
443년 론강 상류 유역에 부르군트족이 왕국을 건설(~534)
449년 앵글로족, 색슨족, 주트족이 브리타니아에 침입하여 정착.
451년 칼케돈 종교회의에서, 그리스도의 단성론(單性論)을 부정.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

이때 동시대를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확산과 로마제국의 분열 등을 눈으로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차분하게 앉아서 책을 보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대가 혼란스러우면 자아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힘든 일이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 역시도 조선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신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이랬을 것이다.

2. 작자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11.13~430.8.28]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에서 출생하여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다. 서양사에서 중세시대의 시작을 로마제국의 분열과 서로마제국의 멸망한 때로 보기 때문에 혹자들은 고대문화 최후의 위인이라고도 말한다.

이 말은 중세의 새로운 문화를 탄생하게 한 사람이란 말과 동일하게 쓰인다. 아버지는 하급관리였고 어머니는 열성적인 그리스도교도였다. 어린 시절 카르타고 등지로 유학하며 수사학(修辭學) 등을 공부하였고, 로마제국 말기 청년시절을 보내며 한때 타락생활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19세 때 키케로의 《철학의 권유 Hortensius》를 읽고 지적 탐구에 강렬한 관심이 쏠려 마침내 선악이원론(善惡二元論)과, 체계화하기 시작한 우주론(宇宙論)을 주장하는 마니교로 기울어졌다.

그 후 그는 회의기를 보내며 신(新)플라톤주의에서 그리스도교에 이르기까지 정신적 편력을 하였다. 386년에 밀라노의 주교(主敎)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다. 388년 고향으로 돌아가서 수도생활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사제(司祭)의 직책을 맡게 되었고, 395년에는 히포의 주교가 되어 그곳에서 바쁜 직무를 수행하는 한편, 저작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 

주요저서로는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 신국론(神國論), 고백론 등이 있다.


3.기본 내용

책의 원제인 confessions은 영문 해석으로 고백 또는 고해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지나왔던 과오를 반성하고 신에게 감사하며 앞으로는 신을 더욱더 섬기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저서이다.  크리스트교로 돌아와 영세를 받은 지 12년만인 그의 나이 46세 때 쓴 글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책을 통해 신을 알고, 신을 사랑하는 열정을 인간의 마음속에서 불러일으키려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감과 애착을 표현하려고 한다.

전 13권으로 된 이 책은 크게 3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부분은 제 1권에서 9권까지는 주로 자서전적인 부분으로서 사제로서 자기반성을 말하고, 제11권에서 13권은 자기의 종교적 입장을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제 1권은 신을 찬미하고 영원한 평안을 구하는 뜻을 나타낸다. 유년기, 소년기에 저지른 죄를 상기하여 자책에 사로잡힌다. 제 2권은 청년기로 들어선 다음의 일이다.

여러 곳에서 극적인 요소를 볼 수 있는 이 책에서, 특히 제 8권에서는 이미 바울의 편지를 읽고 신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으나 낡은 습관에 사로잡혀 결심하기 어렵던 때에 밀라노의 정원에서 어린이들의 노래를 하늘로부터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큰 감동을 받는다. 2부분은 제 10권 부분으로, 현재 히포의 주교로서 하나님에게 감사함을 고백하면서 자서전적인 앞부분과 철학적인 뒷부분의 내용을 이어 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제3부는 제11권으로부터 제 13권까지로서, 내용적으로는 「창세기」제1장에 대한 주해를 통해 창조자로서의 하나님을 찬미하는 부분이다.

권별로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

1권에서는, 출생으로부터 15세까지(~369년)의 일을 회상하면서 억지 공부를 하고 그 외에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용 중에 “저는 소년 시절에 공부하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리하여 저에게 공부하기를 강요하는 사람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이런 강요를 받았고, 그런 강요 덕분에 지금 정도의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런 강요를 받는 일은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

2권에서는 성장기 때(16세 때, 369~370년)에 청년 시대 학업을 중단하고 사랑에 빠져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 도둑질까지도 저질렀던 부끄러운 시절을 회고한다.

3권에서는 카르타고에서 보낸 17세부터 19세까지의 일을 회상한다. 학업 과정에서 그는 불순한 사랑에 빠진다. 그는 이런 감정을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았으나 사랑하길 원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키케로 와 성경을 동시에 읽으면서 웅변술을 명예를 위해 배우고 성경은 재미가 없어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즉 성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나 이내 키케로에 비해 문체가 단순한 것에 실망한다.

4권에서는 우울한 일기를 쓰듯이 수사학 선생을 하며 미신을 믿고 마니교에 심취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마니교는 합리적으로 체계적인 이론을 갖추고, 특히 영혼과 물질, 선과악의대립 및 영육의 갈등을 잘 설명해 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어머니 모니카는 이것을 한탄한다.

5권에서는 28세~30세 사이의 일을 이야기한다. 그는 당시 천문학에 통달하게 되면서 마니교의 세계관에 의문이 생겨 마니교의 주교로 유일한 석학이라고 일컬어지는 파우스투스를 만나지만, 그가 생각보다 지식이 깊지 않고 단지 달변가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아채곤 무척 실망했다. 그 후 마니교와 결별하고 로마로 가서 수사학을 가르치다가 밀라노로 가게 된다.

6권에서는, 어머니 모니카가 밀라노에 온 서른 살 때의 일을 이야기한다. 그는 밀라노 주교인 암브로시우스(Ambrosius,339-397)의 설교와 가르침에 의해 점차 가톨릭 신앙에 눈을 돌린다.

7권에서는, 서른한 살 때의 일을 회상한다. 점차 미혹으로부터는 깨어나지만, 아직도 그는 하나님이란 공간 물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성이나 악의 기원의 문제가 새롭게 마음을 괴롭힌다. 실제로서의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지만 아직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8권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에 있어 큰 전기가 되는 32세 때의 일이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는 기독교 신도로서 살고자 하는 결심을 굳히기 위해 주교 심플리키아누스를 방문한다. 그러나 낡은 습관이 새로운 의지를 억제해 결정 단계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어느 날, 아프리카 동향 사람 폰티기아누스로부터 이집트의 수도자 안토니우스와 그 전기를 읽고 회심한 두 명의 궁정 관리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격렬하게 자신을 질책한다.

그가 도저히 내면의 고뇌를 참을 수 가 없어 마당으로 나가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 때 근처 어느 집에서 “그것을 집어 읽어라, 그것을 집어 읽어라”라는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 온다.

그는 이것을 천상의 노래라고 믿고, 서둘러 성서를 뽑아 읽어 내려간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글을 읽자마자 그는 충만한 확신의 빛이 마음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가 이것을 알고 아주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9권에서는, 세례를 받게 되는 과정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을 끊고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기를  위해서, 수사학 교사를 그만두고 친구가 제공해 준 산장으로 물러간다. 그 곳에서 그는 어머니와 친구들과 함께 성서를 읽고 사색의 날을 보내면서 세례를 준비한다.

세례를 받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 돌아오려고 오스티아에서 카르타고행 배를 기다리는 동안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다. 죽음 뒤에 독실한 신앙과 깊은 사랑으로 가득한 어머니의 일생이 회상되고 그 감화와 덕을 칭송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도로 끝이 난다.

10권에서는, 히포의 주교로서 현재의 자신이 위치를 다시 한번 새겨본다. 우선,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는 것은 어떠한 것이고, 또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를 이야기한다. 그 다음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고, 또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될까를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감각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심상이 저장되어 있는 인간의 기억 능력과 그 본질에 대해 많은 양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한다.

기억의 힘은 위대하지만, 하나님에 이르려면 이것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개자라는 것과 영혼의 모든 병을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찬미한다.

11권에서는, 성서의 이해를 통해 진리에 인도될 것을 바라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창세기」서두 구절에 대한 해명을 착수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 “하나님은 왜 천지를 만들 생각을 하였는지” 라는 반문을 대해 그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영원과 시간을 대비하면서 상세하게 전개한다.

시간의 문제를 다루는 이 부분이 이 책을 단순히 기독교 신앙에 관한 저작일 뿐만 아니라 철학사적으로도 중요한 고전으로 자리 잡게 만든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

12권에서는, 앞에서 끌어들인 성서 구절의 해명을 계속한다. 우선, 하늘에 대해서 보이는 하늘과 보이지 않은 하늘을 구별하고, 보이지 않은 하늘, 즉 ‘하늘들의 하늘’이란 하나님에게 의지하여 항상 그 영원성에 참여하는 예지적 피조물(천사)이고, 땅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의 물체적인 것이 그것에서 만들어지는 무형의 질료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이다’라고 말한다.

마지막 13권에서는, 12권에 이어서 「창세기」제 1장의 해명을 계속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평화를 주시옵소서. 당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라는 기도로 책을 마친다.

4. 의의 및 영향

이 책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젊은 날 자신을 돌아보는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의 형식을 띤 명상록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참회록’이라고 번역되듯이 참회하는 과정을 통해 신앙심이 더 깊어졌음을 보여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 신자와 비기독교인을 떠나서 중세는 말할 것도 없고, 근세에 이르러서도 내적 생활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5. 감상

가. 고뇌하는 청춘은 아름답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큰 배)의 기관같이 힘이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라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민태원’의 청춘예찬의 일부다.

고백론을 보면 성자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도 신을 의심하고 신을 버리고 수도원을 뛰쳐나와 향락의 길로 빠져들어 20대를 보낸다. 비록 그것이 내일을 위한 발전적인 고뇌였다 하더라도 그의 후의 모습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의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시절 방황하는 것은 사람의 성장하는데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류역사와 함께 해온 동력인 젊음, 그것을 위해 파우스트는 악마에게까지 영혼을 팔았다. 그 젊음과 함께 하는 것이 방황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고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잘못이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돌아 나올 수 있는 것이 젊음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지금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지 알면서도 그 길로 가게 된다. 가족과 사회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해야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젊음은 실수를 해도 아름답다.

이 고백론은 일종의 젊은 날의 실수담이다. 당신을 거부했다. 그러나 결국 당신에게 돌아왔다. 우리 주변에는 젊은 날의 방황을 딛고 중년이나 노년에 꽃을 피우고 업적을 남긴 사람도 많이 있으며 남들보다 뒤늦게 시작해서 일찍 시작한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남기는 이들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작이 빠르다거나 바르게 산다고만 해서 훌륭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고백론에서 말해준다.

나. 종교의 역할

종교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 시대에는 무엇 하나 결정된 것이 없다. 아이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인생이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신이 흔들리고 신념을 잃고 표류할 때 강한 호소력을 갖는 것은 정말 진솔한 경험담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더 잘 통한다.

예를 드는 것은 사람을 빨리 이해시키는 방법의 하나인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고백의 목적은 과거의 자기 잘못을 낱낱이 고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함,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말하려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고백론과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그의 지난날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회오, 보다 더 높은 곳에서 진실을 찾고자 하는 그의 몸부림은 우리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그가 자신의 영혼의 고뇌, 진실에의 갈구, 가장 인간적인 아픔을 숨김없이 쓰고 있다는 것은 이 고백론이 시대성을 초월하여 현재성을 갖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래서 1600년 전에 쓴 고백이지만 그것을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과 믿음의 편력을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론적인 신앙인도 온실에서 자란 한 쪽의 선만을 아는 도학적인 신앙인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과 바른 신앙을 찾아 온 몸으로 부딪치며 그의 삶을 살았고 그 삶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에 힘입은 자신의 결단으로 승리의 길을 택하였다. 상처받으면서 몸으로 익힌 진리는 단시일 내에 사라지지 않는다. 경험은 이성이 길을 찾을 때 정답은 아니지만 근접한 답을 제시해 준다.

 


자료정리 : 문수환  newintell@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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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