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형이상학 정초(칸트)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00:02
1. 저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4 ~ 1804.2)
1724년 동프러시아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가난한 집안의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뒤늦게 50대에서야 모교인 쾨니히스베르크대학 교수가 되어 80세에 죽을 때까지 철학사에 남을 대저작들을 남겼다.
칸트는 데카르트에서 시작한 합리론과 베이컨에서 시작된 경험론을 종합,철학적 사유의 새로운 한 시대를 열었다. 그의 인식론 윤리학 미학에 걸친 종합적·체계적인 작업은 뒤에 생겨난 철학사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저서로 비판 3부작인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력비판』이 있다.
2. 역자소개
백종현(白琮鉉) - 서울대 철학과 졸업 독일 프라이브르크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 인하대교수·한국철학회『哲學』편집인 ·한국칸트학회 회장, 저서로『독일철학과 20세기 한국철학』『哲學論說』등이 있으며, 칸트가 저술한 대표적 저서인 3부작을 번역했다.
3. 책 소개
이 책은 도덕철학을 주제로 한 칸트의 주요 저술 중 첫 번째 것으로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사이에 출간 되었다. 책은 <머리말>, <맺음말> 그리고 세 개의 절로 구성 되어 있는데, <머리말>에서 칸트는 윤리학 내지 도덕철학이 철학, 곧 전체 학문 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고 3개의 절을 통하여 “도덕성의 최상 원리를 탐색하고 확립”함으로써 윤리 형이상학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언급하며, 맺음말로 마무리 되고 있다.
4. 내용요약
제 1절 평범한 윤리적 이성인식에서 철학적 이성인식으로의 이행
칸트는 평범한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도덕관념을 분해하고 반성함으로써 그것을 철학적 인식으로 발전시킨다. ‘이 세계에서 또는 도대체가 이 세계 밖에서까지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의지뿐이다.’
본문을 처음 여는 이 첫 문장이 말하는 바는, 선의지만이 그 자체로 또는 내재적으로 무조건 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선의지는 그것이 생기게 하는 것이나 성취한 것으로 말미암아, 또 어떤 세워진 목적 달성에 쓸모 있음으로 말미암아 선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의욕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
‘선의지’는 옮은 행위를 오로지 그것이 옳다는 이유에서 택하는 의지를 말한다. 그것은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는 마음이나 또는 자연스런 마음의 경향성에 따라 옳은 행위를 지향하는 의지가 아니라, 단적으로 어떤 행위가 옳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행위를 택하는 의지이다. 그러므로 이 의지작용에는 어떤 것이 ‘옳다’, 무엇이 ‘선하다’는 판단이 선행되어야 하고 ‘옳음’과 ‘선함’은 결코 경험에서는 얻을 수 없는 순수 이성의 이념이므로, 선의지는 오직 이성적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것으로서 다름 아닌 순수한 이성적 존재자의 실천을 지향하는 이성, 곧 ‘순수실천 이성’이다.
선의 개념은 ‘이미 자연적인 건전한 지성에 내재해 있고, 가르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단지 계발될 필요만 있는 것이다.’그러나 선한 의지가 자연적으로 발동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 인간에게 더 이상 악행이라든지 ‘당위’의 문제는 없을 것이다. 선의지는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이념의 실천이 이성적 존재자의 ‘의무’라고 납득하는 데서 생긴다.
그래서 윤리 규정은 당위로서 ‘~하라!’는 명령으로 나타나며, 그것도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것에 준거해서 행동해야만 하는 필연적 실천 명령으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명령은 이성적 존재자에게는 ‘실천 법칙’이다. 선의지만이 그 자체로 선한 것이라 함은 결국 “의무로부터”의, 오로지 의무에서 말미암은 행위만이 “본래적인 도덕적 가치”를 가지며, 의무로부터 행위란 도덕적 실천 법칙을 그 행위의 표준으로, “의욕의 원리”로, 곧 준칙으로 삼는 행위를 말한다. “의무란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말미암은 행위의 필연성”이며, 도덕의 가치는, 곧 이런“의지의 원리”안에 있다.
그러므로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그것에서 기대되는 결과에 있지 않으며, 그러므로 또한, 그 원리의 동인을 이 기대되는 결과로부터 얻을 필요가 있는, 어떤 행위에도 있지 않다.”‘최고의 무조건적 선’“탁월한 선은, 법칙의 표상에 따라 행위하는, 인격 자체 안에 이미 있는 것으로, 비로소 그 행위결과로부터 기대될 필요가 없다”,
선은 이미 그리고 오로지 행위의 동기 가운데 있는 것으로 행위의 결과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제 2절 대중적 윤리 세계지혜에서 윤리 형이상으로 이행
이 절에서 칸트는 인간의 실천 이성 능력을 정밀하게 분해함으로써, 이성적 존재자로서 인건은 단지 자연 법칙에 종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법칙에 종속해 있음을 밝혀낸다. 그것은 인간은 한낱 자연적 경향성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법칙에 대한 존경, 곧 의무로부터 행위할 수도 있음을 천명하는 것으로, 그로써 ‘정언 명령’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리고 그것은 비로, 대중적 도덕 철학에서 윤리 형이상학으로 넘어가는 길을 여는 것이다.
단지 평범한 윤리적 가치판단[…]에서[…] […]철학적 가치판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대중 철학으로부터 형이상학으로까지 […]자연스런 단계들을 거쳐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실천적인 이성능력을 그것을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규칙들로부터, 의무 개념이 생겨나는 곳에 이르기까지 추적하여 명료하게 서술해야만 한다.
“자연의 사물은 모두 법칙들에 따라 작용한다. 오로지 이성적 존재만이 원리에 따라 행위를 하는 능력,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의는 “자체로 온전하게는 이성과 맞지”않기에 자주 “주관적인 조건들”곧, 외적인 동기에 따른다.
“객관적인 원리의 표상은 , 그것이 의지에 대해 강요적인 한에서, 지시명령, 또는 명령이라 한다.” 어떤 명령이 실천법칙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져야한다. 이것은 이성의 자율로서 단정적인 “정언적 명령”이다. [정언적] 명령은 행위로부터 결과할 것에 관여하지 않고, 형식 및 그로부터 행위 자신에 나오는 원리에 관여한다.
행위의 본질적으로 -선함은, 그 행위로부터 나오는 결과가 무엇이든, 마음씨에 있다. 이 명령을 윤리성의 명령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유일한 정언 명령이자. “의무의 보편적 명령”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
칸트는 자율성에 대하여 “그러므로 인간과 모든 이성적 자연존재자의 존엄성의 근거”라고 말한다. 그 자체로 존엄한 인간은 “목적 그 자체”이다. 인간은 물건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는 인격, 목적으로 생각 되어야 한다. 다음 명령은 인간의 순수 실천 이성에게는 자명한 실천 명령이다.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을 항상 동시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도덕성은 그 아래에서만 이성적 존재자가 목적 그 자체일 수 있는 조건이다. 다시 말하면 윤리성과, 윤리적일 수 있는 한에서의 인간성만이 존엄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윤리적으로 선한 마음씨 또는 덕으로 하여금 그토록 높게 존엄성을 요구할 권리를 주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보편적 법칙을 수립하고 스스로 그에 복종할 수 있는 이성존재자의 힘, 곧 자율성이다. 다시 말해 의지의 자유가 인간과 이성적 존재자의 존엄성의 원천인 것이다.
제 3절 윤리 형이상학에서 순수 실천 이성 비판으로 이행
이 장에서 칸트는 “의지의 자율을 설명하는 열쇠”인 자유 개념을 해명하고, 정언 명령의 가능 근거를 되짚어 반성함으로써 “윤리 형이상에서 순수 실천 이성 비판으로 넘어가는 길”을 간다. 3절에서는 1, 2절과는 다르게 인간은 도덕 법칙을 준수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성적 존재자의 선의지는 ‘자유’를 매개로 도덕법칙과 결합 할 수 있다. 자유는 이성적 존재자의 본질적 속성이고, 도덕 법칙은 이성적 존재자의 자유로운 법칙수립, 자율이다. 그렇게에 이성적 존재의 자유 의지란 바로 도덕 법칙 아래 있는 의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의지로서 순수한 실천 이성의 존재자인 인간은 응당 도덕 법칙을 준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의지의 자유가 자율, 다시 말해 자기 자신에게 법칙인 의지의 성질 말고 다른 무엇일 수 있겠는가?”의지의 자유가 자율이라는 것, 곧 ‘의지는 모든 행위들에 있어 자기 자신에게 법칙이다’라는 명제는 “바로 정언 명령의 정식(定式)이자 윤리성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와 윤리 법칙 아래에 있는 의지는 한 가지 이다”
칸트는 “이성은 실천 이성으로서, 또는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로서, 그 자신에 의해 자유롭다고 간주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는 오로지 자유의 이념 아래서만 자신의 의지일 수 있고, 그러므로 그런 의지는 실천적 의도에서 모든 이성적 존재자들에게 부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는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의 속성이 전제되어야”하는 것이다. 윤리 법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자유로워야 하는데, 우리의 의지는 자유롭기 때문에 우리가 윤리 법칙을 준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순환논변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이성적 존재자로서 인간은 한편으로“감성세계에 속해 있는 한에서 자연법칙들 아래에 있고”다른 한편으로 “예지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자연에 독립적이며 경험적이지 않고 이성의 법칙들 아래에 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유로부터 자율로, 다시 이 자율로부터 윤리적 법칙을 우리가 추론하는 데 어떤 비밀스런 순환론이 포함돼 있는 것 같은 의혹은 제거”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실로 정언명령은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현실적으로 신적 존재자라면, 그의 행위는 항상 의지의 자율에 따른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당위와 도덕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감성적 욕구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위와 정언적 명령 그리고 도덕 법칙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도덕법칙을 따르는 존재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도덕적 법칙 아래”에 서게 함으로 인간이 되고 인격적 존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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