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니샤드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8. 23:59
Ⅰ. 책 소개
“나는 누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탐구심이 만들어낸 고대 인도의 고전이다. 우파니샤드를 ‘인도사상의 젖줄’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인도 철학이 우파니샤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파니샤드라는 말은 ‘비밀스런 지혜’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지혜를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에 담아 전해 주는 책이 바로 우파니샤드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해설을 곁들여 자신의 참모습과 세상의 참모습의 의미를 차근차근 들려주면서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Ⅱ. 우파니샤드의 사상적 특징
우파니샤드 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상적 특징은 브라흐만에 대한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를 주체적으로 파악했다는 점과 그런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인 브라흐만이 다름 아닌 인간의 실재라는 관점 하에서 아트만(Atman)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규정되는 인간 내면의 자아 탐색에 눈을 돌렸다는 점이다.
우파니샤드 전반에 흐르는 유력한 사상은 현상 세계의 잡다한 상의 근저에는 바로 최고의 원리인 브라흐만이 있다고 상정하여, 현상 세계의 잡다상들은 이 유일한 절대자로부터 분화하고 유래한 아트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에 의존하여 성립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항상 변하고 유한하고 고통스러운 현상 세계를 초월해 영원한 실재인 브라흐만에 도달하려는 것이 바로 우파니샤드의 근저에 깔려있는 고대 인도인들의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브라흐만이란 과연 무엇이고 아트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가? 우선 브라흐만은 고대의 브라흐마나 시대에서부터 우주의 비인격적 최고 원리로 고양되어지던 개념으로, 다시 말해 보이지는 않지만 널리 퍼져 있고, 그것 자체가 우주라는 개념이다. 이 브라흐만의 존재에 대해서 한 우파니샤드에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천지 사방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브라흐만이다. 실로 브라흐만은 전체 우주이다.”
즉, 우파니샤드의 철인들이 말하는 브라흐만이란 결국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트만은 바로 이런 브라흐만이라는 궁극적인 실재에서 나온 브라흐만의 일부이자 현상세계를 이루는 브라흐만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바라문의 철인 중 한사람인 웃달라카는 그의 아들과의 대화중에서 “이 만유는 미세한 것을 본성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진실이다. 그것은 아트만이다. 너는 그것이다. 그대는 브라흐만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아트만의 개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 웃달라카는 ‘챤도기야 우파니샤드’에서 브라흐만으로부터의 세계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최초에는 이 세계에 둘도 없는 一者인 有만이 있었다. 어떻게 非有로부터 有가 생길 수 있겠는가? 이 一者가 多가 되고 싶어 불을 방출했고, 불은 물을, 물은 음식을 방출했다. 그 다음 一者가 이 셋 안으로 살아있는 내적 자아로서 들어가서 그 셋을 섞어서 각각 또 셋을 만들어내어 만물의 이름과 형상을 산출시켰다. 최초의 그 셋은 진리이고 그들로부터 나온 차별적인 것들은 말에 의하여 이름 붙여진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아트만이란 최초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이자 브라흐만 그 자체로써, 사람들은 각각 변형되어진 그 차별적인 모습들을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그 각각은 결국 같은 것이며 또 그것은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과 동일한 것이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우파니샤드의 우주론적 사변은 분명히 다양한 만물의 본질을 이루는 하나의 통일적 실재가 깔려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우주론적 사변을 인간에 대한 고찰에 연결시켜 우주와 인간의 본질이 동일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파니샤드에선 이런 일원론적이며 우주론적인 사변과 인간에 대한 고찰을 윤회의 개념에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브라흐마나에서는 전해지지 않는 왕족만의 가르침인 ‘오화설’과 ‘이도설’에서 보여 지고 있다. 오화설은 사자가 화장되면 그 영혼이 상승하여 1.달에 도착하고, 2.비가 되어, 3.지상으로 떨어져 음식이 되며, 4.그것이 먹혀져 정자가 되고, 5.이것이 모태로 들어가 태아로서 재생한다는 것이다.
이 오화설을 통해서 아트만과 브라흐만에 대한 일원론적인 우파니샤드의 개념은 더욱 선명해진다. 사자의 영혼이 상승하여 달에 도달하는 것은 아트만이 궁극적으로 브라흐만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동시에 아트만인 인간의 영혼, 즉 자아는 결국 브라흐만,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또 브라흐만에서 분리되어 나온 아트만이 불, 물, 음식의 세 가지로 나뉘어 다시 차별적인 세계 만물의 근본이 되는 것은 불에 의해 화장된 사자의 영혼이 다시 비가 되어 내리고 그것이 음식이 되어 만물로 재생한다는 부분에서 보여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도설이란 사자가 지나가는 길을 신도와 조도로 나누고 어느 길을 지나는가는 생전의 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설이다. 여기에서 신도를 지나게 되는 자아는 최종적으로 브라흐만에 도달하게 되지만 조도를 지나게 되는 자아는 오화설에서와 같이 다시 지상에 재생하게 된다고 본다. 결국 여기에서도 인간의 자아, 곧 아트만은 궁극적으로 브라흐만에 일치한다는 일원론적이며 우주론적인 사변을 볼 수 있다.
한편, 이 오화이도설에 의해 윤회설을 통한 우파니샤드의 개념은 정리할 수 있지만, 사람들을 윤회하게 하는 원동력의 실체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이것을 업(Karman)이라고 본다. 우파니샤드에서 보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란 바로 업에 의해서 생겨나는 윤회로부터의 자유, 즉 해탈이 바로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파니샤드에서 해탈이란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본질을 깨닫고, 범아일여의 진리를 직관하여 궁극적으로 브라흐만과 자아를 합일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정신적인 수행을 통해 우주와 자아에 대한 본질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이 바로 우파니샤드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우파니샤드에 대한 고찰
우파니샤드 사상에 있어서 역시 최고의 진리는 나 자신이 바로 아트만이며 그것이 또한 브라흐만이라는 궁극적 실재와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 자체를 소우주로 보는 견해는 곧 대우주의 실재가 바로 소우주로서의 인간이라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렇게 주체적으로 파악된 인간의 본질은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의 본질과 동일시되게 된다.
자기가 곧 최고의 절대적 실재인 브라흐만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사람은 모든 욕망과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 이외에 따로 원하거나 두려워할 다른 아무 대상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만물의 실재 또한 자신과 다름없는 브라흐만의 변형이자 곧 브라흐만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깨달은 자’는 모든 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물질적인 것에 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본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우파니샤드 사상의 진정한 결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자유며 집착과 욕망, 그리고 일체의 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겠는가?
우파니샤드는 그 문제를 바로 인간 내부로의 탐구에서 시작하여 인간 자신에게서 찾으려 한 최초의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주체적인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는 결국 자신과 만물의 근본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래서 인간과 만물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우파니샤드 철학이 인간의 사유에 있어서 가질 수 있는 가치란 바로 이런 점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 우파니샤드 사상은 인간 내부의 본질에 대한 주체적인 사유의 확립과 그러한 탐구를 통한 진리의 깨달음에 대한 최초의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자료정리 : 한상훈 hsh3608@nate.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