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데이비스 보더니스)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8. 23:51
1. 작가소개
-데이비스 보더니스 (David Bodanis )
데이비스 보더니스는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강의를 해왔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그는 사회 연구의 대학 주요 조사을 고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의 이름은 entitled ‘An Intellectual Tool-Kit’이다. 그는 또한 여러 베스트 셀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Passionate Minds, Electric Universe, E=mc2, The Secret House 등이 있다. 청소년기를 프랑스와 영국에서 지냈으며 현재는 영국에서 활동 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 : http://www.davidbodanis.com
2. 책 소개
2000년 출판. 한국에는 2005년 번역
상대성 이론 100주년, 2005년 세계 물리의 해, 아인슈타인 타계 50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가운데 하나인 E=mc2을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인 것처럼 탄생과 유년기, 성장기로 나눠 쉽고 재미있게 기술했다.
먼저 빛의 속도는 측정 가능하다는 올레 뢰머의 계시적 발견으로부터 에너지 장에 관한 마이클 패러데이의 선구자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아인슈타인이 E=mc2을 발견하는 데 배경이 된 과학과 과학자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E=mc2의 신비를 벗겨나가면서 E=mc2이 뜻하는 바를 설명하고, E=mc2의 힘을 통해 진행된 눈부신 지적 혁명의 과정과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E=mc2의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조명했다.
3. 책의 목차
1부 탄생
01. 1905년, 베른 특허국 사무실
2부 E=mc2의 조상들
01. E 에너지
02. = 등호
03. m 질량
04. c 속도
05. 2 제곱
3부 초창기
01. 아인슈타인과 공식
02. 원자 속으로
03. 눈 덮인 한낮의 적막 속에서
4부 성장기
01. 독일의 차례
02. 노르웨이
03. 미국의 차례
04. 오전 8시 16분, 일본 상공
5부 시간의 끝까지
01. 태양의 불꽃
02. 지구의 탄생
03. 브라만 청년, 하늘을 바라보다
에필로그
아인슈타인의 또 다른 업적
4. 내용 요약
[ 1부 탄생 ]
1) 1905년, 베른 특허국 사무실
1905년, 26살인 특허국의 말단 직원이 상대성이론 논문을 발표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 물리학퀴즈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성적은 6점 만점에 4.96으로 평균에 속했다. 아인슈타인은 잦은 농담과 결석으로 교수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그 때문에 좋은 추천서를 받지 못해 졸업 후 원하는 곳에 취직하지 못하였다.
중, 고등학교 때의 희랍어 교수‘요제프 데갠하르트’는 아인슈타인에게 “너는 결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꺼야!”라는 말을 함으로써 영원히 역사책에 기록되게 되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대여섯주만에 38장의 논문 초안을 만들어 냈고 그것을 <물리학연보>에 보냈다. 몇 주 후에 3장의 보충논문을 더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에게“그 착상을 재미있고 매혹적이지만 주님이 나를 골탕먹이면서 그걸 비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네”라면서 자신의 이론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2부 E=mc2의 조상들]
1) E 에너지
에너지의 개념이 도입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마이클 페러데이이다. 전기 엔진의 모체를 발명해냈다.
전기의 딱딱 거리는 소리와 자기장의 조용한 힘, 빙빙 돌아가는 구리 전선의 움직임이 모두 연결된 것이고 전기량이 증가하면 자기력은 감소한다는 것을 발견해 냈다. ‘에너지’라는 완벽한 개념을 알아내진 못했지만 별개로 인식되던 두 종류의 힘이 서로 연결되있다는 것을 처음 증명하였다.
2) = 등호
처음부터 =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e ∥ mc2
e →mc2
e 〕〔 mc2
와 같은 형태로 발전해 왔다.
3) m 질량
질량이라는 것 자체는 1600년대 말 뉴턴이 증명하였다. 몇 백년 후 라부아지에에 의해 보존법칙이 성립하게 된다. 라부아지에는 금속이 연소하거나 녹스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무게를 재보았다. 가벼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게는 오히려 더 무거워 졌다.
라부아지에는 실험을 통해서 물질은 형태가 변할 수 있으나 존재 자체가 생겨나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도시에 성벽을 건설한 후 시민들의 반발을 사게된 라부아지에는 기요탱이 만든 단두대에 처형당하게 된다.
4) c 속도
c가 빛의 속도가 된 경위는 라틴어가 과학의 언어로 선택받았던 16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celeritas는 ‘민첩함’을 뜻하는 라틴어로 ‘celerity(속도,속력)’의 어원이다.
갈릴레오는 빛의 속도를 측정하려고 했던 최초의 인물이다. 멀리 떨어진 언덕에서 빛을 비추면서 빛이 골짜기를 지나는 시간을 측정하였는데 그것은 실패였다.
뢰머라는 천문학자가 목성의 위성인 ‘이오’의 움직임을 관찰하다 빛의 속도를 알아내게 되었는데 그 때 측정된 빛의 속도는 1,079,252,848.8km/h 이다. 이 것은 0.05초안에 런던에서 로스엔젤레스로 이동할 수 있는 속도이다.
5) 2 제곱
속도의 제곱의 개념은 여성 과학자 샤틀레에 의해 성립되었다. 진흙판에 무게추를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는데 추가 2배 빨리 떨어지면 4배 깊이 박혔고 3배 빨리 떨어지면 9배가 더 박혔다. 이것으로 인해 운동에너지 가속도 제곱에 대해 알아내게 되었다.
[3부 초창기]
1) 아인슈타인과 공식
1905년 아인슈타인이 E=mc2 발표했을 때, 처음에는 거의 무시당했다. E=mc2 을 간단히 말하자면 “질량과 에너지는 하나다”이다. 금속이 핵분열을 하면 그 전과 비교해 질량이 줄어들게 되는데 없어진 질량은 에너지를 통해 발산된다는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시대의 부호로 표현하자면 L=MV2 이고 아인슈타인 역시 이렇게 썼다고 한다. 또한 논문에서는‘상대성원리’라는 문구가 사용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이 가장 좋아했던 문구는 ‘불변의 가정’이라고 한다.
2) 원자 속으로
페르미라는 과학자는 원자의 핵 속으로 중성자를 집어넣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단단한 핵을 뚫기위해 중성자의 속도를 증가시켰지만 번번히 실패하였다. 페르미는 발상을 달리하여 중성자를 물에 통과시켜 속도를 줄였는데 그것이 핵속에 중성자를 집어넣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이것은 훗날 E=mc2 의 원리를 이용해 원자폭탄 ,핵폭탄을 제조하는 원리의 기초가 된다.
3) 눈 덮인 한낮의 적막 속에서
핵폭발의 원리를 처음 알아낸 과학자는 여성과학자인 리제 마이트너였다. 그 이전에 원자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힙겹게 파편들을 폭파시킴으로써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마이트너는 우라늄 원자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전력이 필요없고 중성자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분의 중성자를 투입하게되면 원자 핵은 진동하게 되고 진동은 점점 강렬해져서 원자 핵 내부의 전하는 파편들을 빠른 속도로 흩어지게 한다. 이것이 우라늄 핵 폭발이다. 이 폭발은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4부 성장기]
1) 독일의 차례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1939년 미국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서신을 하나 보낸다. 그것의 내용은 E=mc2 의 원리가 폭탄 제조에 이용될 수 있어서 신속하게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폭탄을 연구하던 독일이 원자폭탄의 제조에 성공할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이 편지는 미국이 폭탄제조에 뛰어드는데 한 몫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이 핵무기 연구에 들어갔을 때,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자원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명이다. 독일은 이미 전쟁 중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체코에서 우라늄을 얻었다.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것으로 중수(물의 형태이지만 속해 있는 수소가 일반 수소 질량의 2배이다.)를 선택하고 노르웨이에 중수 공장을 가동하였다.
2) 노르웨이
중수는 우라늄 폭발연구에 중심이 되는 물질이었다. 하지만 중수 공장은 가장 공격당하기 쉬운 표적이었다. 영국정부는 노르웨이에 있는 독일의 중수공장을 파괴하는 계획을 세운다. 1차 작전으로 30명의 특수 공수부대를 파견한다. 노르웨이의 혹한 날씨로 인해 글라이더로 침투를 시도했던 대원들은 모두 낙하하고 살아남은 대원들조차 독일군들에 의해 발각되 체포된다. 이렇듯 1차 작전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다.
2차 작전으로 자원한 노르웨이인들 6명을 보내게 된다. 그 당시 공장은 계곡사이에 위치항고 있었고 공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다리하나뿐이었다. 특수부대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다리아래 계곡을 통해 공장에 침투하는 것에 성공하고 중수 공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되고 독일은 중수공급에 차질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독일보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먼저 제조하는 계기가 된다.
3) 미국의 차례
폭파작전의 성공으로 미국 연합군은 시간을 벌게 된다. 미국 원자폭탄 연구의 주축인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를 과학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에 보내는 천재적인 인사결정을 하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활발한 연구를 위해 헌신을 다했고 원자 폭탄의 제조에 성공하게 된다.
4) 오전 8시 16분, 일본 상공
태평양 전선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던 더글러스 맥아더는 원자폭탄 투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연합 사령부의 의장과 전략 폭격부대의 책임자 또한 원자폭탄의 사용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국가 안전 보호에 관한 조항을 지지하면서도 필요한 시기가 되면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을 완곡히 주장하였다.
결국 대통령의 임시 위원회는 "1945년 6월 1일 : 번스 장관이 추천하고 있는 위원회가 동의한 바는 가능한 빨리 일본에 폭탄이 투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전 경고 없이 노동자들의 집으로 둘러싸인 군수품 공장 지대에 투하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오펜하이머에게 보내고 그는 그 결정을 수락한다.
핵폭발과 동시에 폭탄의 표피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첫 번째 원자 폭발은 히로시마에서 일어났다.
[5부 시간의 끝까지]
1) 태양의 불꽃
2) 지구의 탄생
3) 브라만 청년, 하늘을 바라보다
-> E=mc2 의 원리에서 나아가 발전된 이론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5. 감상
<프리미어>라는 잡지에서 카메론 디아즈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터뷰 마지막에 기자가 디아즈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디아즈가 한 질문은 ‘글쎄요. E=mc2이 도대체 무슨 뜻이죠?’였다. 그리고는 둘다 웃음을 떠뜨렸는데 디아즈는 “농담이 아닌데...”하고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우리들도 디아즈처럼 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만 막상 그 공식에 대해 공부해보려고 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책들이 E=mc2의 이론보다 아인슈타인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E=mc2의 기초가 된 과학자들의 원리, 노력 그리고 원자폭탄에 사용되게 된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화를 통해 설명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고 한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되는 것이 많지 않다. E=mc2’라는 위대한 이론을 세상에 알렸지만 그것이 수십만명을 죽이는 원자폭탄으로 제조되는 것의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천재 아인슈타인 또한 세상의 불합리한(?)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론 자체는 모든 과학적 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으며 우리 삶의 기초 물질들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료정리 : 임지영 jiyoung6077@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