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법어(지눌)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8. 23:37
Ⅰ. 저자소개
지눌 국사[知訥, 1158~1210]
조계종(曹溪宗) 개조(開祖)이다. 속가의 성은 정(鄭), 호 목우자(牧牛子), 시호 불일보조(佛日普照)이다. 황해도 서흥(瑞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국학(國學)의 학정(學正)을 지낸 광우(光遇),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1165년(의종 19)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182년(명종 12) 승과(僧科)에 급제했으나 출세를 단념하고 수도에 더욱 정진했다.
1188년(명종 18)에 공산(公山: 현재의 팔공산)의 거조사(居祖寺)에 머물면서 정혜사(定慧社)를 조직하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발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독자적인 사상을 확립, 불교 쇄신운동에 눈떴다. 이어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3년 동안의 참선 끝에 은둔생활을 탈피, 적극적 보살행(菩薩行)의 현실 참여를 목표로 삼았다.
1200년(신종 3) 송광산(松廣山) 길상사(吉祥寺)로 옮겨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가 존재할 수 없다고 설파,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하고 선(禪)으로써 체(體)를 삼고 교(敎)로써 용(用)을 삼아 선·교의 합일점을 추구했다. 한편, 의천(義天)이 교로써 선·교의 합일점을 모색한 반면, 종래의 구산선문(九山禪門)을 조계종에 통합, 종풍(宗風)을 떨쳐 의천의 천태종(天台宗)과 함께 고려 불교의 양대산맥의 내면적 통일을 기한 큰 업적을 이룩했다.
희종은 즉위하자 송악산을 조계산(曹溪山), 길상사를 수선사라 고쳐 제방(題榜)을 친히 써주고 만수가사(滿繡袈裟)를 내렸다. 지눌은 법복을 입고 당에 올라가 승도를 소집, 설법하다가 주장을 잡은 채 죽으니 탑을 세워 탑호를 감로(甘露)라 하고, 국사(國師)에 추증하였다.
저서 : 《진심직설(眞心直說)》,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계초심학입문(誡初心學入門)》,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염불요문(念佛要門)》, 《상당록(上堂錄)》, 《법어》,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竝入私記)》 등
Ⅱ. 돈오점수, 돈오돈수, 교관겸수, 정혜쌍수
지눌의 보조법어에 주요 내용은 돈오점수와 정혜쌍수로 압축될 수 있다. 책의 내용을 말하기에 앞서 이 돈오점수와 정혜쌍수에 대해서 지눌국사의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1.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먼저 지눌국사가 쓴 목우자수심결 中 돈오점수에 관한 내용을 인용해보면
- 대개 도道에 들어가는 문은 많지만, 요약해 말해본다면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와 ‘점수’(漸修, 차츰차츰 닦아감)라는 두 문에 불과하다. 비록 “돈오돈수(頓悟頓修, 단박에 깨치고 깨치자마자 더 이상 닦을 것이 없어짐)를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들은 들어갈 수 있다”고 하나, 그 과거를 미루어 따져본다면 이미 수많은 생을 살면서 깨달음(돈오)에 의지해 닦으면서(점수) 차츰차츰 변화해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진리를 듣자마자 즉시 깨달아 한꺼번에 모든 일을 마친 것이다.
진실을 말해본다면 이것(돈오돈수) 또한 먼저 깨닫고 뒤에 닦은 근기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돈오점수’의 2가지 문은 모든 성인聖人들께서 걸으신 길이니, 예전의 모든 성인들께서는 먼저 깨닫고 뒤에 닦으며, 그 닦은 바에 따라 경지를 증득하셨다. 이른바 ‘신통변화’라는 것은 깨달음에 의지해 닦아가는 중에 차츰차츰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닫는 즉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
여기서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즉 도를 천천히 닦아나가는 것이 돈오점수이다. 지눌은 특히 돈오돈수가 있다고 하지만 이미 밑바탕에는 돈오점수의 과정이 있어서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2. 정혜쌍수와 교관겸수
정혜쌍수는 지눌대사의 대표적인 사상이고 , 교관겸수는 고려시대의 승려 의천(義天:1055∼1101)이 고려의 불교가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으로 나누어져 대립하자 교선일치(敎禪一致)를 주장하고 교관병수설에 따라 천태종(天台宗)을 개창할 때 주장했던 사상이다.
교와 관을 함께 닦는 것이 불교의 바른 수행이라고 한 의천은 교학(敎學)을 중시하는 교종에 비해 경전을 멀리하고 직관적 종교체험으로 선(禪)을 중시하는 선종을 비판하며 참선의 의미를 찾는 방법으로 교관병수를 제시하였다. 경전을 읽는 교의 방법과 참선을 수행하는 관의 방법을 함께 닦아서 진리를 깨우치는 수행방법이다. 이러한 교관병수 사상은 고려시대의 천태종을 중심으로 실천되었다. 이 교관겸수는 특히 교종위주의 통합이라는 면이 선종위주의 통합을 강조하는 정혜쌍수와 차이가 있다.
정혜쌍수는 13세기 불교 신앙운동인 수선사(修禪社) 결사운동을 통하여 지눌(知訥)이 강조한 불교신앙의 개념이다. 그는 불교적 수행의 요체는 정(定)과 혜(慧)에 있고 정과 혜는 한쪽에 치우침 없이 고루 닦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정혜쌍수(定慧雙修)이다. 정(定)은 산란한 마음이 한 곳으로 집중하여 정신적 통일을 이룬 선정(禪定)의 상태를 말하며, 혜(慧)는 이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혜(智慧)를 의미한다.
한편 지눌에 의하면 정과 혜는 인간의 심성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자성정혜(自性定慧)와 수행을 통하여 얻어지는 수상정혜(隨相定慧)의 두 종류가 있는데 수행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는 자성정혜를 발현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즉 진심(혹은 불성)을 먼저 깨달은 다음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는 점진적 수행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지눌의 사상은 선종(禪宗)의 입장에서 교종(敎宗 )과 선종의 갈등을 교리적으로 극복하면서 이를 발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Ⅲ. 보조법어의 차례와 간략한 내용 소개
1. 원전 머리말
2.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3. 수심결(修心訣)
4. 진심직설(眞心直說)
5.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6.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원전 머리말은 보조법어를 옮기면서 들어간 내용이기 때문에 원래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혜결사문 부터 간화결의론의 각 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혜결사문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승려들이 명예와 이욕이 급급해 타락해 가는 현실을 염려하여 ‘정•혜쌍수’로써 정법불교의 선언적 교재로서 엮어놓은 책이다. 그의 나이 33세 때의 저술이다.
수심결은 정혜결사문의 미진함을 보완한 것으로, 단박에 깨닫고 천천히 수행하는 이른바 ‘돈오점수’와 ‘정혜쌍수’를 주로 설하였다. 41세 이후에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진심직설은 보조의 선사상을 적나라하게 서술한 선철학서이다. 모두 15장으로 되어있으며 지눌의 대표적인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원돈성불론은 화엄경에서 크게 감명을 받고 이통현의 신화엄경론과 계합하여 화엄사상에 대해서 자세히 쓴 이론서이다.
간화결의론은 보조의 입적이후 수선사 2세 사주이던 혜심에 의해 발견된 책이며 간화선의 실수방법을 천명한 책이다.
보조법어는 지눌국사의 명문과 사상을 후세에 한데 묶어서 해설 해놓은 책이다.
Ⅳ. 한국 불교사에서 지눌의 위치
불교는 4세기에 고구려에 들어와서 현재 불교가 우리나라에 소개된지 1600~1700년 가량 되었다. 처음에는 삼국을 중심으로 각각 다른 형태로 발전되어가다가 삼국이 통일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불교는 역사상 가장 중흥기를 맞게 된다.
그 이유는 신라가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 데에는 정신적 승리가 더 큰 작용을 했다고 보아야한다. 그리고 그 정신적 승리는 바로 불교정신을 토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① 연구의 노력 ② 시대적 좋은 인연 ③ 지배층의 마음으로부터의 공명과 삼위일체가 커다란 원동력이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원효, 의상, 자장, 원광과 같은 쟁쟁한 학승, 계율승, 호국승, 사상승들이 등장하여 불교 발전에 이바지한다. 고구려나 백제의 불교는 반야공사상을 중시하는 삼론종(三論宗)에 머물러 있었던 감이 있고, 백제에서는 율(律)을 중시하였지만, 율의 심오한 가치관 정립을 위한 철학적 의미까지는 파고 들어가지 못하고 소승적 경지에 머물고 만 것이다.
그러나 신라에서는 일찍이 자장에 의해 화엄적인 사고방식이 도입되었고, 그보다 앞서 원광 이래로 유식(唯識)의 도리와 보살계(菩薩戒)의 사상도 소개되어 원효가 활약하는 7세기말, 즉 통일전야에 있어서의 불교이해는 이미 선진 중국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정확한 것이었다. 중국인들이 원효를 ‘동방의 부처’로 불렀음은 이의 증거다.
원효는 중국에서 소개될 때 백가쟁론되던 불교의 여러 종파가 내세운 사상을 회통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한국 불교는 고려시대에 교종과 선종의 대립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때 지눌이 등장하게 된다.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7-1210)의 출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려 불교는 선교병립(禪敎병立)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의천(義天, 1055-1101)은 고려에 천태종(天台宗)을 중흥시키고, 호국기원(護國祈願)의 목적과 교학진흥의 뜻을 겸하여 《대장경(大藏經)》의 수집, 간행에 진력한 공이 컸으나 선 · 교 양종의 원융적인 회통(會通)에 미흡한 점이 아쉽다. 그러나 지눌이 신라의 화엄전통을 재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이다.
《진심직설 眞心直說》 등은 바로 그가 증득한 결론으로 고려불교의 수확이며 원효 불교의 르네상스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중선경교(重禪輕敎)는 신라의 원효와 같은 현실세계에 과감히 파고드는 무애행(無碍行)의 실천이 없었다. 고려불교는 이후 다분히 기복적(祈福的) 산중 은둔적 불교, 궁중과 부녀자 불교로 전락되어 가는 경향이 있게 된다.
고답적인 산중 선불교나 교불교는 또 다른 형이상학을 낳아 민중과의 거리가 넓어졌다. 결국 지눌이 의례(儀禮)의 불교가 흘러넘치게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비판도 있다.
Ⅴ. 내용소개
정혜쌍수와 돈오점수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기 때문에 내용은 지눌의 명작중의 명작인 진심직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진심직설은 총 15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책은 한국의 선종서적 중에서 으뜸가는 책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심결 修心訣·간화결의론 看話決疑論과 함께 지눌의 사상 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글이며, 고려 때부터 불교 교육의 교재로 사용되는 등 한국 선종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한 책이다. 판본은 1799년 송광사 간행본이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진심(眞心)의 내용과 진심을 얻는 수행방법에 대해 설명한 책이며 1권 1책, 목판본으로 되어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진심을 밝힘으로써 입도(入道)의 기점(基漸)을 삼는다고 말했다. 진심을 바로 믿는 일(正信)부터 시작하여 진심의 정체, 기능, 진심을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이유, 진심의 소재, 진심을 닦는 방법, 진심의 공덕 등을 설명했다.
여기서 진심은 곧 인간 본래의 성품이 부처임을 믿는 것이며, 여러 불경에 표현된 보리(菩提)· 여래(如來)·불성(佛性)·원각(圓覺) 등의 개념도 곧 진심의 다른 이름 이라고 한다. 그는 근본적인 어리석음이 곧 불성이며, 깨달음인 열반과 대립된 개념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를 깨닫지 못하여 진심이 미혹 속에 있다고 가르친다. 진심을 드러내고 망상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10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중 어느 한 문(門)의 경지라도 얻으면 진심의 경지인 무심(無心) 을 얻는다고 했다.
크게 1~15까지 내용을 보면 1. 진심정언 , 2.진심이명, 3.진심묘체, 4. 진심묘용, 5.진심체용일체, 6.진심재미, 7.진심식망, 8.진심사의, 9.진심소재, 10. 진심생사, 11. 진심정도, 12.진심공덕, 13.진심체공, 14.진심무지, 15.진심소주로 되어 있다.
1장의 내용은 선을 일으키는 데 믿음이 그 길잡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천 리를 가려면 첫걸음이 모름지기 옳아야하나니, 만약 첫걸음이 어긋나면 천 리가 다 어긋나므로 첫 믿음을 잃으면 온갖 선이 다 무너짐을 강조하고 있다. “털끝만큼 어긋나면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다.”는 이야기로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2장에서 지눌은 “허망한 생각을 버리는 것을 진이라 하고 신령하게 밝은 것을 심이라 하는데 이것을 더하여 진심이라 한다. 각기 온갖 선이 발생하기 때문에 본체는 변하지 않으나 한 법이 인연에 따라 이름을 세운다. 그러나 진심에 사무치면 모든 이름을 다 알 수 있지만, 이 진심을 모르면 모든 이름이 다 막히게 되니 부디 진심을 자세히 알라.”라고 말한다.
3장에서는 진심이 이름을 알았더라도 그것의 실체를 알기는 어렵다는 것을 세존의 영취산의 침묵, 달마의 면벽, 유마거사의 함구 등을 통해 말을 하고 있다. “마음이 사무치면 모두가 다 옳고 물건마다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본체를 알면 어떤 작용을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음이 경계를 따라 굴러다녀도 굴러가는 그곳에 진실로 그윽하다. 흐름을 따라 언제나 본성을 체득하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다.” 한다.
5장에선 진심의 본체와 작용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고 있다. “물결 밖에 물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물 밖에 물결이 있는 것이 아니니 젖는 성질은 하나이므로 다르지 않다.”라고 말을 한다. 같이 물에 젖어 있으나 무엇에 의해 변화하는가, 바람인가 물결 그 자체인가에 대한 속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6장에서는 성인과 범부가 본래 같으며 다만 어둠 속에 있는 나무 그림자나 땅속에 흐르는 샘물과 같아서 그것이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7장은 이어 망속에 있는 진심을 어찌 꺼내어 범부에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답으로 무심을 내놓고 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으면 저절로 비어서 신령하고 고요하게 된다.”
8장에서는 거동을 하는 동안 도를 잃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다니는 것도 선이요, 앉아 있는 것도 선이며, 말하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몸이 항상 편안하다.”라는 내용은 도는 항상 무슨 일을 하건 나타난다는 것을 말한다.
9장에서 진심의 본체는 어디에나 두루 있으며,
10장에서 진심을 생사를 초월하고, 생멸에 대해서 무엇 때문에 흘러가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11장 진심을 찾는 방법에서는 정과 조를 행해야만 진심을 찾는데 이때 정은 무심으로 망심을 쉬는 것이며 조는 온갖 선을 행하는 것이다.
12장부터 14장까지는 무엇이 진심인지 다시 한번 말하고 있다.
마지막 15장에서는 “망년된 생각이 있으면 망년된 인연도 있고, 망년된 인연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도 있다. 본래의 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Ⅵ. 감상
정과 혜를 나란히 닦아 성불을 목표로 하는 수행에만 전념하자는 정혜결사(定慧結社) 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까? 정이란 바깥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혀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혜는 맑은 정신으로 세상의 실상을 환히 비추어보는 지혜를 가리킨다. 지눌은 그 둘을 함께 닦는 수행을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이라 일컬었다.
이론과 실천의 균형은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문에서 이론과 실제가 가까워지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으나 별다르게 성과가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철학이나 사상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과 이것이 결국에는 하나라는 점을 말하는 지눌은 분명 시대를 앞서 간 사람이 분명하다. 그리고 불교에서 실천과 믿음을 강조하여 나태하고 타락한 범부들과 수행자들에게 경종을 던진 것이다.
깨달음만으로 부처님이 되지는 않는다. 워낙 오랫동안 범부로 살아가는 습관에 속속들이 젖어있기 때문이다. 얼음이 본래는 물이라 해도, 얼음을 물이라고 하지 않는다. 변화시키는 외부적 요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진심이다. 치열한 수행과정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야 한다. 이를 점수(漸修)라고 한다.
이는 수행과 깨달음에 관한 선종(禪宗)의 사상을 교종(敎宗)인 화엄사상을 가지고 설명한 것으로, 선교일치를 표방하여 당시 불교계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 보조법어를 통해 한국불교에 간화선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간화선은 용어정리에서 함께 설명하였다.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자는 땅으로 인하여 일어선다. 땅에 의지하지 않고 일어설 수는 없다.” 보조법어의 ‘권수정혜결사문’의 첫 구절이다. 우리가 잘못 살아가는 것은 마음을 잘못 써서 그런 것인데, 올바르게 되는 것 또한 바로 그 마음에 달렸다는 뜻이다. 궁극적인 해답은 자신 안에 있음을 말한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진심직설의 내용 중
마음이란
뜨겁기는 타는 불이요.
차기는 얼음이며
빠르기는 구부리고 우러르는 동안
사해 밖을 두 번 어루만진다.
가만있을 때는 깊고 고요하며
움직일 때는 하늘까지 멀리 가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이구나.
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정신이다. 이미 생각할 때 목적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선은 항상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고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답변을 준비하는 동안 또 다른 선문을 던진다.
아함경에서 부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 한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는 생각하기를 “바다 건너 저쪽은 평화로운 땅이다. 그러나 배가 없으니 어떻게 갈까. 뗏목을 엮어 건너가야겠군.”하고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바다를 건너갔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뗏목이 아니었다면 바다를 건너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뗏목은 내게 큰 은혜가 있으니 메고 가야겠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이 뗏목으로 나는 바다를 무사히 건넜다. 다른 사람도 이 뗏목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물에 띄워 놓고 이 제 나는 내 갈 길을 가자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
이것이 불교에서 진리를 말하는 태도이다. 아무리 소중한 진리라도 언제까지 그것을 품고 갈수 없으며 다른 이를 위해 베풀어야 하는 ‘배워서 남 주자.’의 가르침이다.
Ⅶ. 용어해설
간화선(看話禪)
화두(話頭)를 근거로 하여 참선하는 방법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달마조사로부터 전해 내려온 화두를 들고 좌선하는 방법이다. 간화선은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참선법이다.
선은 우리의 마음을 한 곳에 집중시켜서 일사불란한 상태로 몰입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은 인간의 실존과 만나는 일이다. 자신의 진실한 생명을 바로 보는 방법으로 참선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선의 본래 목적은 견성성불(見性成佛)에 있다. 자신의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는 것이 선의 목적이다. 마음의 본질을 깨닫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 바로 참선이다. 선은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이라고 해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가능하다. 걷고 머물고 앉고 눕는 사람의 기본적인 동작에서부터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고요한 어느 상태에서도 참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앉아서 하는 선 수행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해서 흔히 좌선(坐禪)을 많이 행하고 있다.
참석의 방법 중 우리나라에서는 화두를 들고 행하는 간화선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화두란 쉽게 말해서 하나의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간화선은 철저한 문제의식을 마음속에 새겨서 참구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속에 오로지 문제의식만을 남겨 놓고 다른 어떤 것도 떠올려서는 안 된다. 자신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든지 오직 자신의 문제 삼고 있는 화두만을 새겨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새긴다는 말은 곧 의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선을 행할 때는 아주 고요하고 맑은 생각으로 몰입해야 한다. 참선은 인생의 근본 뿌리를 찾는 일이기 때문에 진지하고 철저히 행해야 한다. 전문적으로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삼 개월 혹은 일년 이상씩 철저히 모든 일상사를 다 배제하고 몰입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마음을 집중시키는 훈련을 계속 쌓는다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자료정리 : 문수환 newintell@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