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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8. 23:33

성호사설 (이익)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8. 23:33

 
1. 성호 이익

1681 년 아버지 이하진의 유배지였던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나다.
1690 년 어머니가 이익의 건강을 염려하여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했으나, 열 살에 이르러 글 모름을 부끄럽게 여겨 학문에 매진
1705 년 과거 시험을 보았으나, 선조의 이름을 쓰는 것이 격식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락하다.
1706 년 둘째 형 이잠이 장희빈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도리어 역적으로 몰리어 곤장을 맞다가 죽자, 크게 슬퍼하다
1709 년 영남 지방을 유람하며 백운동 서원과 도산 서원을 방문하다.
1713 년 첫아들 맹휴를 얻고, <맹자질서>를 쓰기 시작하다.
1714 년 천마산을 유람하여 궤사정, 관음사, 운흥사, 대흥사, 용천사를 거쳐 화담 서원을 방문하다
1720 년 <성호사설>을 쓰기 시작하다. 40여 년 동안 긴 작업을 계속하다.
1727 년 조정에서 이익의 덕망을 듣고 공직을 내렸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다.
1744 년 악성종기 등으로 병고가 깊어지다.
1755 년 반신불수가 되어 거동이 불편해지다. 전국적으로 기근과 전염병이 돌다.
1759 년 안정복으로 하여금 <동사강목>을 완성하게 하다.
1762 년 <성호사설유선>이 완성되다.
1763 년 11월에 세상을 떠나다. 조정에서 선생의 학덕을 높이 평가하여 이조판서를 추증하다.

1681년 (숙종7) ~ 1763년 (영조 39)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 여주(驪州). 자 자신(子新). 호 성호(星湖).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응시, 낙방하였다. 이듬해 형 잠(潛)이 장희빈(張禧嬪)을 두둔하다가 당쟁의 제물로 장살(杖殺)되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낙향,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처음 성리학(性理學)에서 출발하였으나 차차 이이(李珥),유형원(柳馨遠)의 학문에 심취하였는데, 특히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하여 천문,지 리,율산(律算),의학(醫學)에 이르기까지 능통하였으며,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

-투철한 주체의식과 비판 정신을 토대로 그의 주요저서인 《성호사설(星湖僿說)》과 《곽우록(藿憂錄)》을 통해 당시의 사회제도를 실증적으로 분석,비판하여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중농사상(重農思想)에 입각하여 전제(田制)개혁의 방향을 개인의 토지점유를 제한하여 전주(田主)의 몰락을 방지하려는 한전론(限田論)에서  찾았으며, 노비신분을 점차적으로 해방시킬 것 등을 주장하는 한편 당쟁의 발생은  이해(利害)의 상반에서 오는 것이라고 분석, 양반도 산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사농합일(士農合一)이론을 주장하였다.

-인재등용에 대해서는 과거제도에만 의존하지 말고 공거제(貢擧制)를 아울러 실시할 것 등도 제시하였다. 27년(영조 3)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63년 83세의 고령에 이르자 나라에서는 우로예전(優老例典)에 따라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로 승자(陞資)의 은전을 베풀었으나 그 해에 죽었다.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그의 학문은 직계 후학들에 의하여 계승,발전되었다. 초서(草書)에 능했으며 저서에는 앞에 든 것 외에도 《성호집(星湖集)》 《이선생예설(李先生禮說)》 《사서삼경》 《근사록(近史錄)》 등이 있고, 편저에 《사칠신편(四七新編)》 《상위전후록(喪威前後錄)》 《자복편(自卜編)》 《관물편(觀物編)》 《백언해(百諺解)》 등이 있다.


2. 시대적 배경

< 끊임없는 당파 싸움 >
-이익이 살았던 때는 조선 중기로, 숙종 경종 영조 임금이 다스리던 시기. 중국에서는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가 시작된 시기이다.

-당시 동인과 서인의 당파 싸움.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었다. 동인에는 이황과 조식에게서 배운 이들이 많았고, 서인에는 이이와 성혼에게 배운 이들이 많았다. 남북노소의 사색당파가 조정에서 싸움을 벌이는 동안 나라 살림은 점점 어려워지고 백성들은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 어지러운 세상, 시달리는 백성 >
-성호 이익이 태어나기 약 100여 년 전에 조선은 임잰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두 차례의 전란으로 인구는 크게 줄어 있었고, 집 없이 떠도는 유민들도 많아짐. 농경지 크게 줄고 농업 생산량이 감소한데다가 권력자들의 농민에 대한 약탈은 더 심해져 갔다.

-조정에서는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 펼침. 모든 농민들이 세금 대신 관청에 곡물을 바쳐야 하는 ‘방납’ 대신 땅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일정한 양의 곡물을 바치도록 하는 ‘대동법’을 실시. 군대에 복무하지 않는 대신 바쳐야 했던 군포를 두 필에서 한 필로 줄이는 ‘균역법’을 실시함. 그러나 이는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게 되면서 농민들은 파산하여 고향을 떠나 도시 빈민이 되기도 했다.

-돈으로 신분을 살 수 있는 제도가 생겨나 양반 계층이 늘고 노비종모법(어머니가 노비일 경우, 아버지가 양반이나 평민이더라도 자식은 무조건 노비가 되는 법) 등으로 노비가 늘어남으로써 신분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 성호의 학문 세계 >
-몇몇 학자들 사이에서 서서히 반성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 그 동안 예법과 도리를 중시하던 주자학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이고 백성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연구하고자 함.

-그 무렵 중국 청나라에는 서양의 앞선 과학 기술과 문물이 퍼져 학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개인의 마음 문제에만 사로잡혀 있던 주자학을 과감히 떨치고 고증학이라는 새 학품이 자리매김하고 있었음. 중국의 고증학은 사신들이 오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우리 나라에도 전해져 실학 사상이 싹트는 계기가 됨. 이수광은 서양의 천문학, 만국지도, 천주교를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하멜의 제주도 표류 등 우리나라에 서양의 과학 기술이 전해지게 되었다.

-‘산길에 풀이 무성해지고 들길이 물에 가로막혔는데, 옛길만을 고집스럽게 가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렇게 생각한 이익은 서학을 통하여 서양의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새롭고 합리적인 사상들을 피워내기 시작. 그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던 주자학에서 벗어나 천문, 역사, 지리, 동식물, 수학, 의학 등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졌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를 갖춤


3. 성호사설 소개

-30권 30책 - 평소에 책을 읽거나 어떤 현상을 보고 들은 것들, 그리고 제자들과 대화한 내용 등을 그때 그때 기록해 40년 간 모아 놓은 것들을 조카들로 하여금 정리하게 하고, 그것을 다시 제자 안정복이 간추려 30권 30책으로 만듦.

-천지문 - 천문과 지리 이야기 : 223항. 우리나라의 영토에 큰 관심을 가져 울릉도, 안시성, 대마도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 지구가 둥글다는 것, 지구의 아래위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 태양의 궤도, 춘분, 일식을 비롯하여 당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역법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만물문- 세상 만물 이야기 : 386항목에 이르는 만물문에는 인간의 생활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옷, 음식, 농사, 가축, 화초 및 화폐와 도량형, 병기 등에 관한 글. 망원경, 조총, 자명종, ‘남초’ 라고 불리던 담배 등 당시 수입된 물품에 대해서도 자세히 묘사. 그 밖에 윷놀이, 장기, 줄타기 등 민속놀이에 관한 이야기 등 주로 체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들이 많다

-인사문 - 사람과 사회 이야기 : 정치와 제도, 사회와 경제, 학문과 사상, 인물과 사건 등을 폭 넓게 서술한 990항목의 글. 이익이 주장하고자 하는 사회 개혁의 내용들이 담겨 있는데, 특히 노비 제도와 서얼 차별 제도를 없앨 것, 과거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 고리대의 근원이 되는 화폐 제도를 폐지할 것 등 현실 문제에 대한 비판적이고도 개혁적 내용도 실려 있다.

-경사문 - 고전과 역사 이야기 : 모두 1048항으로 되어 있으며, 성호 이익의 경전과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탁월한 식견이 담겨 있다. 사서 육경과 중국과 한국의 역사서를 읽으면서 잘못 해석된 구체적인 내용과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붙여 놓았다. (사서 : 대학, 논어, 맹자, 중용 / 육경 : 시경, 서경, 주역, 춘추, 주례, 예기)

-시문문 - 시와 문장 이야기 : 모두 378항목으로 중국과 우리 나라의 역대 문인들이 남긴 시문들에 대한 비평을 싣고 있다.

-<성호사설>의 의의 : 이익의 실학사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책. 학문을 현실에 이용하려는 자세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양의 과학 기술이 앞서 있음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한 점도 당시로서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책으로 펴내고자 쓴 것이 아니므로 다소 체계적이지 못하고, 화폐를 폐지해야 한다는 등 시대적 흐름을 잘못 읽은 주장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앞 시대의 실학적 성과를 집대성하여 후대에 전파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유형원 이후 발전되어 온 실학이 성호사설에 이르러 모두 통합되었다가, 그 뒤 각 분야의 전문 학자들에 의해 더욱 분화되어 깊여 연구되었다.


4. 성호사설 내용

< 천지문; 천문과 지리이야기 >
-223항목 : 백두대간 / 서양의 천문도 / 비 / 무지개가 물을 마시다 / 이슬이 맺혀 서리가 된다 / 물 이용법 / 지구 / 윤관의 비 / 울릉도 / 우박 등등

무지개가 물을 마시다
맑은 하늘에 습기가 가득하면 무지개가 뜬다. 무지개는 주로 소나기가 지나간 후에 잘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무지개가 물을 마신다’ 고 했다. 또한 무지개가 사라지는 것은 무지개가 물을 모두 마셔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호, 어찌 무지개가 물을 마신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무지개는 습한 곳에 나타날 뿐이다. 공중에 습한 기운이 덮고 있을 때 해를 등지고 하늘을 보아라. 무지개는 필시 그 곳에 떠 있을 것이다……

< 만물문 ; 세상과 만물 이야기 >
-386항목 : 말똥구리 / 담배 / 곤충도 먹을 수 있다 / 휴대용 비망록 / 무기 / 말 기르기 / 철과 소금에 대하여 / 여왕벌이 돌아다니다 / 가지를 꺾으면 속이 상한다 / 금과 은 / 콩 등등

여왕벌이 돌아다니다
왕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라 안을 두루 살피고 다녔다. 나는 벌을 키웠는데, 여왕벌도 왕처럼 행동했다.
벌집에는 반드시 여왕벌이 살고 있다. 그 여왕벌에게는 집을 방어하고 일벌들을 지켜 줄 만한 힘과 지혜가 없다. 오히려 여왕벌은 일벌들에게 보호를 받으며 편하게 지낸다. 일벌들은 여왕을 모시며 기꺼이 목숨까지 바친다. 여왕벌이 있어야 종족을 보존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왕벌이 한쪽 구석에 쳐 박혀 알만 낳는 것은 아니다. 여왕벌은 날마다 한 낮이 되면 벌집을 돌아다닌다. 일벌들은 붕붕거리며 여왕벌의 행차를 반겨 준다. 여왕벌은 그 때마다 일벌들과 의사소통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하루라도 그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그 일은 벌들의 세계에서 서로가 단결을 다지는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한다. 진정으로 백성들의 편안함과 위태함을 살피고자 한다면, 수시로 궁궐 문을 박차고 나가 세상을 둘러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인사문 ; 사람과 사회 이야기 >
-990항목 : 인재 등용 / 병사를 길러 적을 대비하다 / 노비 / 학문은 글로 논하는 게 낫다 / 균전 / 붕당 / 대동 / 인정 많은 나라 / 문무를 겸비한 정치 / 여섯 가지 좀 / 걸인 / 세 가지 놀이 / 미리 군사를 길러 놓다 / 세 가지 허비 / 나무를 심으면 물을 줘야 한다 / 법을 바꾸다 / 어진 자를 구하여 백성을 돌보다 / 백성이 군자다 / 젖먹이 군인 / 적게 먹기 등등

여섯 가지 좀
세상을 간사하게 살고 남의 것을 탐하는 자들이 많을수록 국력은 쇠약해 진다. 나는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부류를 여섯 가지 좀으로 나누었다.

그 중에 첫째는 노비이다. 노비는 미천한 신분에 갖은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자이다. 어찌 보면 가엾고 불쌍한 인생이지만, 사회적으로 도움이 도지 않기에 첫 번째로 꼽는다… 노비는 한 집안의 큰 재산이라 노비가 도망치면 주인은 죽기살기로 찾아 다닌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산을 수색 시키고, 동네방네를 들쑤시고 다닌다. 그러다 보면 주인은 알게 모르게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그 때문에 나중에 노비를 붙잡고도 길거리로 나앉은 주인이 제법 많다. 결국은 빈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산간에 불을 질러 버린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노비들이 갈수록 많이 늘어나서 생기는 사회적인 병폐이다. 노비제를 아예 없애 버린다면, 소모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좀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는 과거를 밥 먹듯이 준비하는 유생들이다. 이들은 집안일은 거들떠보지 않는 부류이고, 효도와 공경과도 거리가 먼 자들이다. 또한 허구한 날 붓끝으로 비싼 종이만 허비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 중에는 누군가 운 좋게 소가 뒷걸음질하여 쥐를 잡듯 과거에라도 붙으면 금세 교만해진다. 그렇게 관직을 얻은 자는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는 거머리가 되어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에 바쁘다…

셋째는 벌열이다. 벌열은 자신에게만 공적이 있는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의 후손들까지 벌열이라 하여 서민과 구별 짓는다…

넷째는 기교를 부리는 자들이다. 이들은 소위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광대와 귀신을 쫓는 무당을 일컫는다. 그들은 사람들의 혼을 빼서 엽전을 벌어들이니 좀이라 할 만하다.

다섯째는 승려이다. 승려는 부처를 모시기 위해 중이 된 자들이 아니다. 부역을 피하기에 머리를 깎았을 뿐이다. 그들은 부처를 모신다는 핑계를 대고 산중으로 숨어 들어가 기름진 땅에서 나는 곡식을 축내는 무리에 불과하다. 그러니 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섯째는 게으름뱅이 농사꾼이다. 농사꾼의 고향은 논과 밭이다. 그들은 땡볕과 싸워서 이겨야 한 해의 추수를 두 배로 남길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농사꾼들은 버드나무 그늘 밑에 멍석을 깔아 두고 바둑이나 장기로 시간을 보낸다… 농사꾼의 게으름이 자신을 도둑으로 만들었으니 어찌 좀이 아니겠는가?

< 경사문 ; 고전과 역사 이야기 >
-1048항목 : 역사를 읽어 성패를 짐작하다 / 장기와 바둑 /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꺼리지 않다 / 인심 / 곽재우 / 성현이 도를 전하다 / 연좌법을 없애다 / 좋은 사람을 모두 알다 / 백성을 힘 빠지게 하다 / 만물의 이름 등등

좋은 사람을 모두 알다
송나라 때 조계인은 자신의 평생 소원을 세 가지로 꼽았다. 그 첫번 째는 세상 사람들을 모두 아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세상의 좋은 글을 다 읽는 것, 마지막은 세상의 산수를 다 구경하는 것이다. 소원이란 본래 한 가지도 실천하기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조계인은 세 가지 소원을 바랐으니 꿈이 야무진 인물이라 하겠다.

살아가면서 좋은 책을 만나고, 좋은 산수를 구경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을 다 아는 것만큰 몸뚱이가 천개라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춘추>를 읽다가 그와 같은 인물을 발견했다. 바로 오나라의 계찰이라는 사람이다.
계찰은 사신의 신분으로 제나라와 정나라에 가서 안평중과 자산을 만났다. 위나라에 가서는 거백옥을, 진나라에 가서는 숙향을 만났다. 끝으로 아들이 죽어 장사를 지낼 때 공자가 자신을 방문하여 만날 수 있었다. 이로써 계찰은 세상 사람들을 모두 만났다.

안평중, 자산, 거백옥, 숙향은 당대에 내노라 하는 성인들이다. 더구나 공자는 세상을 교화로 다스리던 최고의 성인이다. 계찰에게 세상 사람들을 모두 만나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성인들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을 살아도 한 사람의 성인 그림자도 만나기 어렵다. 그런데 계찰은 한 시대를 살며 이 모든 성인들을 만났으니 참으로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 시문문 ; 시와 문장 이야기 >
-378항목 : 정인홍의 시 / 삼창시 / 술 잘 마시는 사람 / 시가 길어지다 / 율부로 과거를 치르다 / 생각이 묘하게 떠오르면 적는다 / 남명 선생의 시 / 한석봉 / 이항복의 시 / 용병에 관한 글 등등

술 잘 마시는 사람
당나라 때 이백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끄나풀로 신선과 술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굴원이 향기로운 풀과 나무를 가까이 했던 것과 동일하다.

두보는 술을 좋아하는 여덟 명을 가리어 ‘음중팔선가’ 를 지었다. 여덟 명 중에는 이백도 들어 있었다.
신선은 목숨이 긴 편인데 술을 마셔 수명을 재촉했고, 기호를 끊으려다 술을 마시는 바람에 도리어 욕심을 부추겼다. 그러니 ‘음중팔선가’ 에 있는 사람들은 신선과 관계가 없다. 이백은 시로써 신선을 말한 것이지 술로 말한 것이 아니다.

시인들은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려고 할 뿐이다. 세상의 맛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만이 오직 신선이다. 두보는 나라를 근심해도 도울 길이 없자 모든 것을 잊으려고 했다.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자 술 마시는 것을 가리켜 신선이라 하게 된 것이다.

옛 속담에 ‘웃음 속에 칼이 있다’ 라고 했다. 이는 웃으면서 성내는 것이 눈을 부릅뜨고 화내는 것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다. 또한 ‘긴 노래의 슬픔이 통곡하는 것보다 심하다’ 라고 했는데, 두보에게는 그런 면이 있는 듯하다.

5. 감상

“의심을 없애기 위해 의심을 하며 책을 읽는다.”
이익은 책 속에서 의심 나는 점에 대해서는 메모해 두었다가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여 반드시 검증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러한 이익의 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머릿 속의 지식들은 흘러 다니고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평소 배우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검증해 나가고 그것들은 정리해서 완전히 내 지식으로 만드는 과정이 나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점점 지식은 늘어가지만 그것들이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알면서도 모르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사회 문제점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자 실학의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이러한 것도 학문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기존의 학문을 넘어서서 새로운 현실적인 학문의 장을 열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과거를 현재와 미래의 거울로 삼기 위해 앞으로 이러한 책들도 주의 깊게 봐야겠다.

 


자료정리 : 황아영 yayings@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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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