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공자)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8. 16:21
Ⅰ. 공자의 생애
공자는 애공 22년(B.C 551) 노 나라의 추읍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다. 공자는 원래 송나라 귀족의 후손이었다. 부친은 숙량흘淑梁紇이고, 안씨顔氏성을 가진 여자 사이에서 공자를 낳았다. 공자는 3세에 부친을 잃고, 24세에 모친상을 당했다. 19세에 송의 올관씨에게 장가들이 20세에 아들 ‘이’를 얻었고, 66세에 상처喪妻를 했다고 전한다.
공자의 어린 시절은 늘 궁핍했기 때문에 한동안 쌀을 지키는 창고지기나 가축을 먹이는 ‘승전’이라는 직책을 얻어야만 했다. 그러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미 소년기에 ‘육예(六藝)’를 익혔으며 30세에는 예악을 완성하였다. 또한 34세에는 주 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禮)’를 묻고, 장홍에게 ‘악(樂)’을 물어 익혔으며, 35세 대는 제 나라에 가서 안평중과 교류했다. 37세에 이르러 제 나라에서 노 나라로 돌아온 공자의 명성은 높아져서 많은 문도(門徒)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는 또한 옛날의 서적을 정리하여 『시경(詩經)』을 간추려 편찬하고, 『춘추(春秋)』를 지었다. 공자의 언행은 후학들에 의해 『논어(論語)』로 편찬되었다.
공자의 생애는 가난한 사학의 교사였다. 한(漢)나라 사람들은 오직 유학만을 존중하면서 그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를 위대한 성인으로 추종하였다. 당과 송 이후에도 공자의 학문은 계속 떠받들어져 오고 있다. 공자는 73세(B.C 479)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Ⅱ. 논어의 개관
『논어』는 공자의 말, 공자와 제자 사이의 대화, 공자와 당시 사람들과의 대화, 제자들의 말 그리고 제자들간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논어』는 20편으로 되어 있는데 전후반으로 나누어 전반 10편을 상론, 후반 10편을 하론이라고 한다.
각 편 첫장에서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를 따다가 편명으로 삼았다. 각 편마다 단편적인 여러 가지 내용이 언급되어 있으나, 사람은 반드시 배워야 함을 밝힌 학이(學而)편에서 시작하여 팔일(八佾)편에서는 예(禮), 이인(里仁)편에서는 인(仁), 공야장(公冶長), 옹야(雍也)편에서는 제자의 인물, 향당(鄕黨)편에서는 공자의 용의 행동 음식 의례, 자로(子路)편에서는 정치, 마지막 요왈(堯曰)편에서는 역대 성인의 정치적 이상을 설명하고 있다.
각 편은 서로 연결이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일관된 정신이 있으니 공자의 인(仁)을 구현하고자 하는 정신과 그의 인격을 엿볼 수 있다.
Ⅲ. 공자의 인애(仁愛)사상
『논어』에서 핵심을 이루는 사상은 인(仁)이다. 즉 천하의 인간사가 모두 인에 의해 위로되고 평정될 수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위정자는 인의 덕치를 베풀어 만인들이 다 같이 평등한 행복을 누리도록 애써야 함은 물론이고 인민은 위정자의 그와 같은 은혜에 심복(心腹)할 것을 강조한다.
인이란 어떤 것인가? 인은 인간의 본성이요, 인간이 실천해야 할 바른 도리인데 인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에게는 생리적이고 감각적 욕구와 함께 부자 형제간에 훈훈한 정감이 있는데, 그 훈훈한 감정이 인(仁)이다. 그것은 인간의 참다운 본성으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후천적인 습성에 따라서 설로 달라진다.”고 했다.
공자는 인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말했다. “자기를 닦으면 자기를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가게 되며,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충서(忠恕)를 실천하게 되고, 실행을 하면 공경(恭敬)히 독실한 행동을 하게 된다. 정(政)으로써 그 행동을 동일케 하고, 형(刑)으로써 그 간사함을 막는 것이니, 예악형정(禮樂刑政)은 그 극점에 이르면 하나로 된다. 그리고 민심을 똑같게 하여 치도(治道)로 나가는 소이(所以)가 되는 것이다.”
또한 공자 윤리의 주요 덕목 중의 하나가 충서(忠恕)이다. 충서는 인이 이웃과 사회, 그리고 전 인류로 확충되어 나가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이요, 덕이다. ‘충(忠)’이란 치우침 없는 바른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이다. ‘서(恕)’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충서는 그의 도덕규범으로서의 인을 대신하는 이름으로 치우침이 없는 바른 마음을 갖고, 그러한 마음을 척도로 삼아 남의 마음을 헤아려서 행하라는 것이다.
Ⅳ. 시대배경
춘추 전국시대 : 주나라 평왕이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기 이전의 시대를 서주(西周)시대라 하고, 도읍을 옮겨 동쪽으로 낙양을 수도로 삼았을 때부터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동주(東周) 시대 혹은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라 한다. 춘추전국 시대는 보통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로 나뉜다. 춘추시대는 평왕이 도읍을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시작된다. 춘추 시대란 명칭은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라는 역사서가 이 시기의 역사를 싣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춘추시대에 들어서면서는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점점 약해져 천자로서의 위력이 없어지고 대신 강력한 제후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된다. 이 가운데서 패권을 잡은 다섯 제후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한다.
전국 시대는 진(晉)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 세 나라로 분리되고 그 세 나라가 제후로 봉해진 기원전 403년부터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이다. 전국 시대란 명칭은 전한 말기 유향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이라는 책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춘추 시대에는 패자들이 힘이 약한 주나라 왕실을 존중한다는 관념을 가졌으나, 전국 시대에는 이러한 관념이 없어지고 오로지 힘과 힘이 대결하는 약육강식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일곱 나라를 전국칠옹(戰國七雍)이라 한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추구와 권모술수가 소용돌이치며 명군과 명신, 명장과 모신(謀臣)들의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근 2백 년 동안 계속되는 한편으로, 다양한 학파와 사상가가 나타나 각자의 주장을 펼침으로써 중국의 학술과 사상을 고도로 발전시켰다. 이렇듯 춘추전국 시대는 혼란과 약육강식의 시대이면서도 동시에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학술과 사상을 발전케 한 시대였다.
Ⅴ. 공자의 明문답
제 1 편 학이(學而)
1장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한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2장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유자가 말했다. “사람 됨됨이가 효성스럽고 공손하면서 윗사람에게 덤벼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또 윗사람에게 덤벼들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 근본이 서야 도가 생기게 되므로 효도와 공손이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3장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가 말했다.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남 보기 좋게 꾸미는 사람치고 인한 사람은 드물다.”
4장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가 말했다. “나는 하루에 세 가지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할 때 충실히 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사귀는데 신의가 없지 않았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열심히 익히지 않았는가?”
16장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공자가 말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제 2 편 위정(爲政)
1장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공자가 말했다. “정치는 덕으로 해야 한다.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고 많은 별들이 그 북극성을 중심으로 도는 것과 같다.”
2장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공자가 말했다. 『시경』 삼백 편을 한 마디로 덮어 말한다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3장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공자가 말했다. “백성들을 법제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기는 하나 부끄러워 할 줄은 모른다.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고 또 선한 일도 하게 된다.”
4장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가 말했다. “내가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뜻을 세웠고, 마흔 살에 어떤 일에도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로 들으면 무슨 말이든 그대로 알아들었고, 일흔 살이 되어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11장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공자가 말했다. “옛 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내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17장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가 말했다. “유(자로)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노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제 3 편 팔일(八佾)
4장 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 與其奢也寧儉, 喪, 與其易也寧戚.”
임방의 예의 근본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훌륭하도다, 임방의 질문이여!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초상은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하느니라.”
15장 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공자가 태묘에 들어가서는 매사를 물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추 지방 출신의 공자를 예를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는가. 태묘에 들어가서 매사를 묻는 구나.”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이다.”
26장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공자가 말했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하며, 예를 시행할 때에 공경스럽지 못하며, 상을 당해서 슬퍼하지 않으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보겠는가?”
제 4 편 이인(里仁)
3장 子曰, “唯仁者能好人, 能惡人.”
공자가 말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남을 좋아할 수 있고, 또 남을 미워할 수 있다.”
8장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
공자가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13장 子曰, “放於利而行, 多怨.”
공자가 말했다. “이익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
14장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공자가 말했다. “벼슬 자리가 없다고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만한 실력이 없음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알려질 만한 실력을 구하라.”
19장 子曰,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
공자가 말했다. “부모가 집에 계시면 멀리 떠나지 않으며, 떠나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방향을 알려야 한다.”
제 5 편 공야장(公冶長)
11장 子貢 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자공이 말했다. “저는 남이 나에게 원치 않는 것을 저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사(자공)야, 그것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3장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는 들은 것을 아직 실천하지 못했는데, 또 새로운 가르침을 들을까봐 두려워 하였다.
제 6 편 옹야(雍也)
18장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공자가 말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
21장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공자가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즐긴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제 7 편 술이(述而)
2장 子曰, "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공자가 말했다. “잠잠히 마음속에 새기며, 배우면서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는 데 게으르지 않는 것, 이들 중에 그 무엇이 나에게 있겠는가.”
6장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
공자가 말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고, 예에 유유자적한다.”
21장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공자가 말해따. “세 사람이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그 중에 선한 것을 가려서 본받고 선하지 않은 것을 고쳐야 한다.”
24장 子 以四敎, 文, 行, 忠, 信.
공자는 네 가지를 가르쳤다. 곧, 학문과 행동과 충성과 믿음이다.
제 8 편 태백(泰伯)
2장 子曰,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공자가 말했다. “공손하면서 예가 없으면 수고롭기만 하고, 조심하면서 예가 없으면 두려워하기만 하고, 용맹스러우면서 예가 없으면 난폭하기만 하고, 강직하면서 예가 없으면 위태롭다.”
9장 子曰,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공자가 말했다. “백성에게 따라오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다.”
17장 子曰, “學如不及, 猶恐失之.”
공자가 말했다. “학문을 하는 데는 아무리 해도 따라가지 못하는 듯이 하고, 오히려 배운 것을 잃어버릴까 걱정해야 한다.”
제 9 편 자한(子罕)
4장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공자는 다음의 네 가지를 끊어 버렸다. 자의대로 하지 않았고, 기필코 하지 않았고, 고집하지 않았고, 자기만을 내세우지 않았다.
18장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 進, 吾往也.”
공자가 말했다. “산을 쌓는 데에 한 삼태기를 채우지 못해 중도에 그치는 것도 내가 그치는 것이며, 땅을 고르게 다지는데 한 삼태기만 덮더라도 진척시켰으면 내가 한 것이다.
제 10 편 향당(鄕黨)
9장 席不正, 不坐.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제 11 편 선진(先進)
15장 子貢問, “師與商也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자공이 “사(자장)와 상(자하) 중에 누가 더 어짊니까?”하고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사는 지나치고, 상은 모자란다.”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사가 더 낫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
제 12 편 안연(顔淵)
1장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안연이 인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했다. “자기를 이겨내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을 하는 것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내고 예를 회복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인을 하는 것은 자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남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겠는가?” 안연이 말했다. “그 조목을 하나하나 듣고 싶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하지 않는 것이다.”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는 않으나 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7장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해따. “먹을 것이 풍족하고 병사가 많으면 백성들이 믿을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병을 버려야 한다.” 자공이 말했다.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이 두가지 중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먹을 것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죽음은 있는 것이요,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22장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번지가 인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혜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가 그 말을 깨닫지 못하니, 공자가 말했다. “곧은 사람을 추천하여 굽은 사람 위에 놓으면, 굽은 사람은 곧은 사람으로 고칠 수 있다.”
제 13 편 자로(子路)
16장 葉公問政. 子曰, “近者說, 遠者來.”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며, 먼 데 있는 사람이 오도록 해야 한다.”
제 14 편 헌문(憲問)
1장 憲問恥. 子曰, “邦有道, 穀, 邦無道, 穀, 恥也.”
헌이 부끄러움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 녹만 먹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 녹만 먹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11장 子曰, “貧而無怨難, 富而無驕易.”
공자가 말했다. “가난한 사람이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고, 부자가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27장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공자가 말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말라.‘
제 15 편 위령공(衛靈公)
2장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
공자가 말했다. “사(자공)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하나를 가지고 꿰뚫어 왔다.”
11장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먼 앞일을 생각해 두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데서 근심거리가 생긴다.”
20장 子曰,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28장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제 16 편 계씨(季氏)
1장 丘也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나는 들으니 ‘나라와 집을 다스리는 사람은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않을까를 근심하며,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을까를 근심한다’고 하였다. 고르면 가난이 없고, 화목하면 백성이 적지 않고, 편안하면 기울지 않을 것이다.
4장 孔子曰,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 友善柔, 友便, 損矣.”
공자가 말했다. “이로운 벗이 셋, 손해되는 벗이 셋이다. 곧은 벗과 미더운 벅과 지식이 많은 벗은 이롭고, 편벽된 벗과 비위를 잘 맞추는 벗과 말만 잘하는 벗은 손해가 된다.”
8장 孔子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천명을 두려워하며,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제 17 편 양화(陽貨)
3장 子曰, “唯上知與下愚不移.”
공자가 말했다.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과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은 변화시킬 수 없다.”
26장 子曰,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공자가 말했다. “나이 사십 세가 되어서도 미움을 받으면 그것은 마지막이다.‘
제 18 편 미자(微子)
제 19 편 자장(子張)
제 20 편 요왈(堯曰)
3장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공자가 말했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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