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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30. 02:49

레미제라블(빅토르 위고)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30. 02:49


Ⅰ.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빅토르 위고(1802~1885)는 프랑스 최고의 정복자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휩쓸고 있을 때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운이 좋은 군인으로 전쟁에서 무훈을 세우고 장군이 되었는데 그리 고상한 가문 출신은 아니고, 그의 어머니는 지식과 예술적 재능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신앙 의식과 상냥함이 결핍된 인물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유럽의 여러 곳을 여행한다. 산업혁명의 물결로 그의 아버지는 위고를 이공과 대학을 입학시킬 예정이었으나 평소 시를 좋아하고 소설을 즐겨 쓰는 위고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 쓰고 어머니와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17세 때 《문학 수호자 Le Conservateur litteraire》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하지만 이 잡지가 잘 되지 않았고 이때 만나던 위고의 연인인 ‘아델 푸셰’와도 헤어질 위기에 처하나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집필한 《아이슬란드의 한 Han d'Islande》과 두 번째로 만든 잡지인 《오드집 Odes》이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명성을 사회에 알리게 된다.

그가 그의 이름을 문학 집단에 알리게 되던 1820년대의 프랑스에서는 새로이 등장한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두 경향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그는 다가오는 흐름, 즉 막 피어오르는 낭만주의의 힘을 간파하고 점차 낭만주의로 흐르게 된다. 희곡 《크롬웰 Cromwell》(1827)의 서문은 낭만주의 문학의 선언이라 할 만큼 그는 고전주의를 비판하여 낭만주의의 실질적 수령이 되었다.

이후 1841년까지 희곡과 소설(‘파리의 노트르담’도 이때 제작된다) 서정시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지만 이시기의 빅토르 위고는 아내와 친구의 불륜, 그리고 1843년 출간된 《성주들Les Burgraves》의 실패와 같은 해 사랑하는 딸 레오포르딘이 남편과 더불어 세느강에서 익사하자 그는 심한 내적고통을 받게 된다.

이후 그는 10년간 문필을 중단하고 민중을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려는 욕구에 1845년에 상원의원이 되었다가 1851년에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로 제정(帝政)을 수립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해 결국 게르느제(영국해협)에서의 19년간의 망명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망명생활 동안에 나폴레옹 3세를 비난하는 《징벌시집(懲罰詩集) Les Chtiments》(1853), 딸의 추억과 철학사상을 노래한 《정관시집(靜觀詩集) Les Contemplations》(1856), 인류의 진보를 노래한 서사 《여러 세기의 전설 La Lgende des sicles》(1859),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 Les Misrables》(1862), 《바다의 노동자 Les Travailleurs de la mer》(1866), 《웃는 사나이 L’Homme qui rit》(1869)등 위고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충실한 시기’라고 할 정도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게 된다.

위고의 이러한 왕성한 집필력의 이면에는 망명지의 오뜨빌하우스에서의 고독이 자리 잡고 있다. 망명기간동안 그는 거의 혼자였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위고의 명성을 빌어 영국과 유럽 등을 돌아다니며 사교에 치중하였고 오뜨빌하우스에 들르는 사람은 그의 며느리가 가끔 집을 돌보기 위한 것뿐이었다. 장시간의 고독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위고의 웅대하고도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위고의 망명기간 중 철혈제상 비스마르크의 등장으로 프로이센이 통일 독일을 이루고 팽창하는 프로이센과 그의 조국 프랑스간의 전쟁이 일어난다. 프랑스는 프로이센에 비해 군사력이 현저히 낮아져 있었으므로 순식간에 프랑스군은 프로이센에 의해 괴멸당하고 나폴레옹 3세(보나파르트)가 폐위되었지만, 아직 파리는 프로이센의 점령 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망명지에서 파리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시를 조국을 위한 봉사에 사용하는 한편 파리 시민들의 용기를 지지하고 격려함으로써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게 된다. 이후 다시 입문한 정치에서의 실패와 또 한 번 2년간의 망명을 거치고 1885년 빅토르 위고는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조용하고 소박하게 해달라는 그의 유언과는 반대로 이례적인 국장(國葬)으로 많은 프랑스인들의 애도 속에 그의 장례는 성대히 치루어 졌다.

빅토르 위고에게는 치밀한 지성이나 분석적인 정신이 없는 대신 크고 풍부한 감정과 감수성이 있었다. 차라리 그는 감정의 큰 불덩어리였다. 이러한 감정은 그의 작품과 생활에서 일차적으로 사랑으로 나타난다. 특히 가족에 대한,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한 끝없는 애정으로 나타난다. 또 이 사랑은 확산되어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압박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박애 사상으로 번져 그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

물론 그에게 결점이나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이 지나쳐 때로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흐르는 점, 위대와 장중을 좋아하는 허장성세, 웅변조, 지나친 언어의 기교, 대중에 영합하는 통속성 등 열거하면 많다. 그러나 이 모든 결점을 내포하면서도 그는 19세기의 프랑스 문단의 최고봉 이었으며 프랑스 문학사의 빛나는 거성 이었다


Ⅱ. 시대배경 (17~19세기의 프랑스)

프랑스의 가장 사랑받는 왕이라는 부르봉 왕가의 루이 13세(재임 1610~43) 하의 리슐리외, 루이 14세(재임 1643~1715)때의 마자랭과 콜베르와 같은 탁월한 재상의 활약으로 프랑스는 국가의 권위, 국민의 신뢰, 경제의 재건 등을 되찾았다. 루이 14세는 수차례의 전쟁을 통하여 유럽대륙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해외 식민지 개척에도 힘을 기울여 신대륙에 Louisiana, Canada, Antilles 등 방대한 해외령을 확보하고 인도에도 식민지 개척의 거점을 확보하였다. 이때는 절대주의 왕권의 절정을 이루어 태양왕이라고도 불렸다.

루이 16세 때의 프랑스 대혁명(1789)은 많은 전쟁을 치루고 프랑스를 영광스럽게 한 루이 14세때의 국력소진으로부터 비롯되어 루이 15세 때 악화, 그리고 루이 16세에 재정위기와 특권계급의 저항으로 귀결된다. 루이 16세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상업으로써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는 부르주아가 소속된 제3계층의 도움을 얻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으나, 170년간 소집되지 않던 삼부회가 왕당파와 왕에 의해 다시 해산되어 버리게 된다. 

이에 격분한 파리시민은 1789년 7월 14일 무장을 하고, 자의적 왕권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점거함으로써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그 후 불안한 다른 나라의 왕들이 연합군을 일으켜서 프랑스로 침공하게 되지만, 오히려 흥분한 시민군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 왕당파를 무차별로 학살하게 됩니다. 왕당파를 숙청한 시민군이 오히려 침공군을 물리치게 되고 자신감을 얻은 시민군은 드디어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낸다. 이때부터 프랑스는 왕권의 상징이던 흰색 양측에 빨강과 파랑을 더한 새로운 삼색기가 휘날리게 된다.

그 후 프랑스는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1794년 선거를 치루기로 결정하였지만, 같은해 10월 5일 선거를 실시하기 전에 왕당파가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 폭동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에 의하여 진압되었다. 이후 2차에 걸친 총재정부가 이어졌다. 총재 정부는 왕당파적 반혁명과 공화파의 공화국 체제에 대한 충성 사이의 중재를 추구하며 4년 동안(1795~1799)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좌우 균형 정책, 재정적, 경제적 위기, 패전 등은 총재 정부를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었다. 1799년 11월 9일의 쿠데타로 보나파르트는 제1총재의 칭호를 얻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나폴레옹이 집권한 후 프랑스는 전에 없이 강력하게 권력의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나라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근대 민법전(일명 나폴 레옹 법전) 제정, 근대적인 행정, 사법, 교육, 군사제도를 확립하는 한편, 피정복지에 근대적인 제도를 확산하여 프랑스 혁명정신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 대중적, 자유주의적 특성을 갖는 개인주의도 실현되었다. 나폴레옹은 1804년 군사독재 체제를 확립하고 황제가 된다.

유럽을 무너뜨린 나폴레옹 전쟁에는 세 가지 주요 원인이 있다. 프랑스 모델에 따라 유럽을 건설하려는 야심에 찬 황제의 그칠 줄 모르는 야망과 모험정신, 프랑스의 벨기에 지배를 견디지 못한 영국의 적개심, 나폴레옹이 그 후계자라고 인정되는 혁명적 프랑스에 대항하는 유럽 귀족의 증오 그리고 1808년부터는 이방인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반항과 결합된 증오가 그것이다.

1812년의 러시아 원정은 나폴레옹 그에게는 커다란 재앙이 되었고, 잇따른 전쟁의 참패로 마침내 1814년 나폴레옹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나폴레옹은 망명지였던 엘바에서 탈출하여 다시금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전 유럽이 참가한 동맹 세력에 부딪쳐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1815년 백일천하도 막을 내렸다.

1815년은 이른바 왕정복고라 불리 우는 부르봉 왕조의 루이 18세(루이 16세의 동생)로 즉위하던 해이다. 그러나 복고왕정이 곧 혁명 이전의 상태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국왕이 인가한 헌장은 입헌군주정, 대의정부, 법 앞의 평등과 같은 1789년의 성과를 승인했던 것이다. 이러한 헌장은 자유주의자들이 활약하던 시기(1816~1820)에는 큰 힘을 발휘 하였지만, 왕의 조카 베리공이 살해되자 왕은 다시 극단적인 왕정주의자를 불러들이고 다시 대혁명의 성과는 수그러들게 된다.

이 체제는 그를 이은 샤를 10세의 시기에도 지속되어 1830년까지 유지되었다. 하지만 민중의 지지를 받는 자유주의 세력이 증가하고, 오를레앙 루이 필립을 옹호하는 집단이 샤를 10세를 폐위하려 하자 사를 10세는 4개 법령을 발표 하고 자본가 귀족과 결탁하여 선거법을 개정하였다.

이에 공화주의자, 노동자, 파리의 학생, 부르주아가 연합하여 1830년 7월 혁명을 일으키고 루이 필립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하지만 대중의 승리는 오직 부르주아지의 이익으로만 이어졌고, 이에 대한 대중의 귀족에 대한 원망, 노동자의 비참함 등으로 파업, 공화파의 소요가 끊이지 않았다. 자유주의 사상에 무관심했던 루이 필립은 어떠한 개혁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프랑스는 정체한 채로 있었다.

또 다시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나 왕이 쫓겨나고, 공화주의 과도정부를 구성하였다. 이 과도정부는 인도주의적이며 낭만주의적인 이상 분위기 속에서 사회공화정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우파의 후보인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1851년 12월 2일에 그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1852년 국민투표를 거쳐 제위에 올라 나폴레옹 3세가 되었다.

나폴레옹 3세는 1852년에서 1863년까지는 독재적인 통치를 하였으나, 이후 보수파 지지 기반의 일부를 잃고 부터는 자유주의적인 통치를 하였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는 1870년 발발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항복하고 막을 내리게 된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프로이센과 휴전협정을 맺고 알사스와 로렌 지방을 할양하게 된다.

이에 시민들은 3월 18일 봉기하여 파리 혁명정부, 즉 파리코뮌을 구성하였다. 혁명정부는 정치체제를 자치연방으로 정하고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 금지를 선포하였다. 그러자 군대는 저항하는 파리를 두 달 동안 포위 공격하였다. 이 군대의 개입은 시가지 전투에서 2만명 내지 4만명의 희생자를 낸 ‘피의 주일’과 약식 처형으로 기록되었다.

최초의 노동자 정부로 평가되기도 하는 파리코뮌은 72일의 단명으로 끝난 미완의 혁명이었다. 깊은 상흔을 남긴 사회 내란이 있은 후, 왕당파의 왕정복고 기도는 실패하고 1875년 헌법이 제정되어 제 3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왕당파와 공화파의 타협 위에 성립한 제 3공화국은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된 정치체제를 이루었다.

공화파의 성립이후 프랑스 정부는 견해를 달리하는 여러 정치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가 물러났다가를 반복하게 되는 도중 드레퓌스 사건(1894~1899)이 발생한다. 이는 유대인 장교가 첩자 활동을 했다는 군대의 고발로 시작되었는데, 증거는 모호했으나 보수파에게는 군대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자신들만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광신적 애국주의를 문제 삼는 모든 ‘나쁜’ 프랑스인들을 적대시했다.

이 사건이 끝날 무렵에 프랑스는 오랫동안 적대적인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우파에는 사회보수주의, 호전적인 민족주의, 비타협적인 카톨릭교의 대표자들인 보수파가 속해 있고, 좌파에는 발덱 루소를 우두머리로 한 드레퓌스 지지자들인 민주주의 연합, 급진파들, 사회주의자들의 연합 세력이 속하였다. 이와 같은 심각한 분열 속에 있던 프랑스는 식민지 전쟁에 늦게 뛰어든 독일이 세르비아 사건을 빌미로 세계1차대전(1914년)을 일으키자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Ⅲ. 등장인물 소개

- 장 발장(Jean Valjean)
파브롤의 전지사.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한 조각의 빵을 훔치다가 붙잡혀 뚤롱의 도형장(徒形場)으로 가게 된다. 탈옥을 거듭한 끝에 19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석방, 그해 1815년이 이야기의 발단. 그는 개과천선하여 몽트외이유 쉬르메르의 시장 마들렌느 씨가 되나 또 다시 암흑의 세계로 들어간다. 뒤에 르블랑 씨라고도 하고 윌띠므 포슐르방이라고도 이름을 바꾼다. 이야기는 그의 생애를 둘러싸고 전개, 그의 죽음으로서 끝난다.

- 샤를르 프랑스와 비앵브뉘 미리앨
디뉴의 주교(主敎). 덕망이 있는 인물로서 평판이 좋았으며 도형수 장 발장에게 커다란 정신적 영향을 준다.

- 코제트
팡띤느와 똘로미에스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 고아가 되어 시골에 맡겨졌는데 ‘종달새’라 불리며 학대받는다. 장 발장에게 구해져 파리로 나와 그의 딸이 된다. 라느와르라고도 불리며 뒤에 마리우스와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된다.

- 쟈베르
장 발장을 철저히 추적하는 원칙주의자이며 청렴결백한 경위

- 팡틴느
몽트뇌이유 쉬르메르 출신의 고아. 파리에서 재봉사노릇을 하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고향에서 여공 노릇을 하다가 코제트의 양육 때문에 어쩔수 없이 매춘부가 된다. 뒤에 마들렌느(장 발장)시장에게 도움을 받는다.

- 떼나르디에 부부
몽페르메이유의 여관 주인. 둘 다 냉혹하고 욕심이 많다. 남자는 워털루 상사라고 하는데 워털루 전쟁에서 과거가 있다. 코제트를 맡아 있으면서 학대를 한다.

- 포슐르방
몽트뢰이유 쉬르메르에서 마차에 치었을 때 마들렌느 시장에게 구출된다. 뒤에 수도원의 정원사가 되어 장 발장을 헌신적으로 비호한다.

- 마리우스 뽕메르
나폴레옹에게 남작 작위를 받은 군인을 아버지로 하고 파리의 부르주아 집 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고아. 코제트의 연인이 되어, 바리케이드에서 장 발장에게 구출된다.

- 에뽀닌느
떼나르디에 부부의 딸 부모가 악행을 저지르는 동안 옆집에 살던 마리우스를 사랑하게 되어 마리우스 대신 죽음을 당한다.

- 가르보슈
떼나르디에 부부의 아들 어릴 때 부모와 떨어져 혼자 파리의 부랑아 생활을 하다 민중폭동에 가담하게 되는 청년 위고는 이를 통해 파리의 부랑아에 대해서 말한다.


Ⅳ. 줄거리

미리엘 주교는 신앙과 자비만으로, 석방된 죄수 쟝 발장을 다시 착한 인간으로 돌아오게 한다. 마들렌느로 이름을 바꾼 쟝 발장은 영불해협 근처 작은 도시에서 신분을 감추고 공장을 경영, 시민들의 신망을 얻어 시장에 당선된다. 그는 남성의 이기심에 희생된 가련한 팡틴느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 다만 쟈베르 형사만이 집요한 의심으로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그러던 중 쟝 발장은 8년 전부터 수배 중 이던 전과자 쟝 발장이 최근에 잡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극심한 갈등이 그의 마음속에 벌어지고, 그런 끝에 그는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자수하고 또다시 징역형을 받는다. 시장 시절에 도와주었던 전직 여직공이며, 사생아의 양육을 위하여 창녀로 전락한 가엾은 여인 팡틴느를 위하여 그는 다시 탈주한다.

워털루 전쟁의 패잔병인 테나르디에의 여관에서 노예처럼 혹사당하고 있는 팡틴느의 딸 코제트를 구해 낸 쟝 발장은 코제트를 데리고 파리로 돌아온다. 곧바로 쟈베르가 나타난다. 그들은 간신히 그의 눈을 피하여 어느 수녀원에 은신처를 찾아낸다. 정원사로 일하면서 코제트의 성장에 보람을 느끼는 사이 코제트는 아름답게 성장했고, 훌륭한 신분임에도 민중 속에서 신념을 불태우는 마리우스와 사랑을 나눈다. 그는 쟝 발장 몰래 코제트를 만난다.

파리 시내가 온통 바리케이드로 뒤덮여 있던 어느 날 쟝 발장은 우연히 두 젊은이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코제트의 행복을 위하여 자기의 사랑을 희생하기로 마음먹는다. 1832년 왕정에 항거하는 공화파의 대폭동에 가담한 마리우스가 비밀결사 동지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바리케이드로 간 쟝 발장은 그 청년이 부상당하여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어깨에 둘러메고 하수도를 통하여 그를 구한다.

그때 폭도들에게 붙잡혀서 처형을 기다리던 쟈베르 형사를 보고 쟝 발장은 집행을 자원한다. 그런데 쟝 발장은 그를 풀어 주고 공포 한 발을 쏜다. 쟈베르의 신념이 흔들렸다. 그는 가치관의 전도와 내부의 모순을 감당할 길이 없어 세느강에 투신자살한다.

마리우스는 쾌유되고, 결혼식을 거행한다. 쟝 발장은 숨겨 두었던 60만 프랑을 코제트에게 준다. 그후 그는 마리우스에게 자기의 정체와 코제트가 자기의 딸이 아님을 밝히고, 이제 따로 떨어져 살겠다고 결심한다. 그런 다음 그는 유유히 성자의 모습으로 죽어 간다.


Ⅴ. 레 미제라블의 구성

제 1 부 팡틴느

제 1편 옳은 사람
미리앨 주교의 출신배경과 그의 생각, 그리고 그의 선행

제 2편 추락(墜落)
장 발장의 유년시절부터 장발장이 감옥에 가게 된 경위 그리고 출감 후 미리앨 주교와의 첫 대면 그리고 장발장이 미리앨 주교의 행동으로써 깨닫고 참회하는 장면

제 3편 1817년의 일
  루이 18세가 재위 22년이던 때의 시대상황에 대해 서술하고 또 똘로미에스(학생)가 제봉사인 팡틴느를 꾀이는 내용. 사소한 시대상황에 대한 서술을 두고 위고는 “인생에서 사소한 일은 없고, 식물에서 자잘한 잎은 없다.”라고 표현한다.

제 4편 위탁은 때로 양도가 된다
똘로미에스에게 버림을 받은 팡틴느는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서 어린 코제트를 여관주인인 떼나르디에 부부에게 맡김. 여기에서 떼나르디에 부부의 냉혹함이 잘 서술되어 있음.

제 5편 전락(轉落)
마들렌느로 이름을 바꾼 장발장은 구슬제조업자로써 성공하게 된다. 많은 돈을 벌어 들인 장발장은 그 돈으로 자선사업을 시작하고, 그로 인해 시장으로 선출된다. 이때 미리앨 신부의 죽음을 듣게된다.

제 6편 쟈베르
경위 쟈베르의 첫 등장. 그리고 쟈베르의 인물 묘사 및 그의 철두철미함이 잘 나타나있다.

제 7편 샹마띠외 사건
장발장으로 오인 받아 샹마띠외라는 사람이 잡힌다. 그로 인한 장발장의 내면적 갈등과 결국 장발장이 자수를 하는 내용

제 8편 반격(反擊)
다시 한 번 감옥에 갇힌 장발장은 죽어가는 팡틴느를 위해 또 한 번 탈출을 감행한다.


제 2 부 코제트

제 1편 워털루
1815년 6월 18일의 워털루전투 이야기. 여기에서 마리우스의 아버지와 떼나르디에가 만난다. 워털루 전투에 대해 위고는 그날의 비를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제 2편 군함 <오리옹>호
자수 후 탈출을 했던 장발장은 팡틴느의 병원에서 다시 잡혀 감옥에 들어가나 군함 수리 도중 동료를 구하고 죽는 척 위장하여 탈출한다.

제 3편 죽은 여자와의 약속
팡틴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발장은 떼나르디에 부부에게서 코제트를 구해낸다.

제 4편 고르보의 저택
파리의 외곽에 있는 고르보라는 저택에서 숨어살던 장발장과 코제트는 이웃집 할머니 때문에 다시 자베르 경위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제 5편 어둠속의 사냥에 소리 없는 사냥개
쟈베르 경위에게 쫓기던 장발장은 쁘띠 쀡쀠스 수녀원으로 들어가 예전 시장 시절에 도와주웠던 포슐르방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제 6편 쁘띠 삑쀠스
쁘띠 쀡쀠스 수도원의 역사와 거기에 있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

제 7편 여담(餘談)
프랑스에 있는 수도원에 대한 위고의 생각과 수도원 제도의 모순성과 합리성

제 8편 묘지(墓地)는 주는 것을 받아들인다
자베르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수도원에 살기로 한 장발장이 관으로 들어가 묘지에 묻혔다가 수도원으로 다시 들어가서 사는 장면


제 3 부 마리우스

제 1편 파리의 미립자(微粒子)연구
위고는 파리의 부랑아들을 조그만 인간이라고 말하고 파리의 부랑아 들에 대한 묘사를 한다 이때 떼나르디에 부부의 아들인 가르보슈가 부랑아로 등장한다.

제 2편 大 부르주아
마리우스의 외 할아버지 질르노르망에 대하여 기술하고 마리우스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서도 묘사한다.

제 3편 할아버지와 손자
마리우스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를 못 마땅히 여긴 질르노르망이 마리우스를 쫓아낸다.

제 4편
Abaisse(‘아베쎄’라고 발음 하고 비천하다는 뜻 = 민중을 뜻함) 현재 정부에 대한 비판과 ABC회원들에 대한 내용

제 5편 불행의 승리
마리우스가 할아버지에게 쫓겨나고 그로 인한 경제적 궁핍과 그 때문에 느끼는 사회적 제도의 모순성에 대한 기술

제 6편 두 별의 마주침
마리우스의 산책길과 장발장과 코제트의 산책길이 같아서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되는 장면을 묘사함

제 7편 파트롱 미네뜨

제 8편 마음씨 나쁜 가난뱅이
떼나르디에는 장발장의 호의를 역이용해 장발장을 위협하지만, 떼나르디에와 그의 친구들을 쫓고 있던 자베르 형사에 의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이때 자베르 형사는 위협받던 사람이 누구인지 의심을 하게 된다.


제 4 부 쁠뤼메 거리의 목가와 쌩드니 거리의 서사시

제 1편 역사의 몇 페이지
1830년대의 프랑스의 사건들에 대한 열거

제 2편 에뽀닌느
마리우스는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코제트를 그리워하고, 이를 본 에뽀닌느는 마리우스가 예전에 부탁했던 코제트의 주소를 알려준다.

제 3편 쁠뤼메 거리에 있는 집
장발장이 수도원을 나와 기거하는 곳에 대한 설명과 코제트가 여인이 되기까지의 성장과정과 코제트와 마리우스가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던 때

제 4편 낮은 곳에서의 구원이 높은 곳에서의 구원이 되다
가보르슈는 어려움에 처한 노인을 도와주는 내용

제 5편 그 결과가 시작이라니 얼토당토 않은 일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극적인 만남

제 6편 소년 가브로슈
가르보슈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용을 묘사

제 7편 은어
부랑아들이나 사회의 하층민들이 사용하는 은어에 대한 위고의 생각

제 8편 환희와 비탄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
동시에 감옥에서 탈출한 떼나르디에와 그의 일당이 장발장을 해치려고 하는 과정과 그를 말리는 에뽀닌느에 대한 이야기도 있음

제 9편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장발장, 마리우스, 가르보슈의 고민과 내면세계를 묘사

제 10편 1832년 6월 5일
1832년 초 전염병의 확산으로 민심이 흉흉해져 있던 파리는 라마르끄장군의 죽음을 기폭제로 하여 민중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제 11편 원자는 대선풍에 협력한다
가르보슈와 ABC의 벗 회원들이 폭동으로 가담하게 되는 행위

제 12편 꼬랭뜨
꼬랭뜨라는 선술집을 요새로 하여 바리케이드를 치고 정부군과 전투하는 장면

제 13편 마리우스 어둠 속으로 들어가다
마리우스의 폭동 가담에 대한 내용

제 14편 고상한 절망
정부군에 대항하여 싸우던 마리우스가 위험에 처하자 에뽀닌느가 그를 대신해 죽는 장면. 그리고 에뽀닌느의 마리우스에 대한 사랑

제 15편 롬므 아르메 거리
코제트가 마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견하고 그에 충격을 받은 장발장의 내면심리


제 5부 장 발장

제 1편 네 벽에 갇힌 전쟁
마리우스가 가담한 시민군은 그 선술집에 갇힌 형상이고 거기에서 정부군에 의하여 완전 진압되기전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해내고, 또한 쟈베르 형사의 목숨도 살린다.

제 2편 거수의 내장
파리의 하수도에 대한 설명과 그곳의 내력

제 3편 진창임과 동시에 영혼
마리우스를 구해낸 장발장은 정부군을 피해서 파리의 하수도로 잠입하게 되고 그때의 상황을 상세히 묘사

제 4편 탈선한 자베르
장발장에 의해 구해진 자베르 형사는 하수도에서 나오는 장발장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되고 그때 장발장을 놓아줌. 이때 자신의 행동과 신념의 괴리 속에서 자베르 형사는 세느강에 투신 자살한다.

제 5편 손자와 조부
장발장에 의해 구해진 마리우스는 조부의 집에서 살아나고, 조부와 장발장의 허락 하에 코제트와 결혼을 하게 된다.

제 6편 잠 못 이루는 밤
코제트의 결혼으로 혼자가 된 장발장이 심리를 묘사함

제 7편 고배의 마지막 한 모금
떼나르디에는 마리우스에게 장발장의 실체를 폭로하지만, 마리우스는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떼나르디에에게 약간의 돈을 주어 그를 돌려보낸다.

제 8편 황혼의 희미한 빛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장발장에 대한 대화 내용

제 9편 마지막 어둠, 마지막 새벽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장발장은 편안한 죽음을 맞는다.


Ⅵ. 좋은 문장

『 인간은 몸에 육체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무거운 짐인 동시에 유혹이다. 인간은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며 또 그것에 끌려다닌다.
인간은 그것을 감시하고 제어하고 억제하여, 최후의 막다른 길에 이르러서가 아니면 그것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굴복에도 역시 과실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저질러진 과실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실추이기는 하나 무릎 위에 떨어진 것에 불과하므로, 기도로서 끝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성자가 되는 것은 예외요,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은 통칙이다. 판단을 그르치고, 게으름을 부리고 죄를 범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옳은 사람이 되라. 』

- 미리앨 주교 그가 생각하는 유일한 교리

『 무지한 인간에게는 되도록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된다. 무료로 교육하지 않는 사회는 죄다. 사회는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암흑에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의 영혼에 그늘이 가득 차 있게 되면, 거기서 죄가 이루어진다. 죄인은 죄를 저지른 자가 아니라 영혼 속에 그늘을 만들어 준 자이다. 』

- 1부 1편의 미리앨 주교의 말 中

『 사랑은 영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영혼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영혼처럼 성스러운 불꽃이요, 영혼처럼 불후불멸 불가분의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 속에 있는 영원불멸한 한 점의 등불이어서 아무것도 그것을 제한하고 그것을 끌 수가 없다. 사랑은 골수까지 그것이 불타오름을 느끼고 하늘 끝까지 그것이 빛남을 본다. 』

-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보내는 편지 中


자료정리 :  홍상호 ohon35@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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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