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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셰익스피어의 생애 (1564 ∼ 1616)

셰익스피어는 로마제국의 정신적 압제에서 해방되어 인류 문명사상 인간 이성이 가장 개명했던 영국 르네상스의 정점기인 엘리자베    스 여왕 1세 때 영국의 중부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워릭셔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Straford-upon-Avon)에서 1564년 4월23일에 태어났다.

윌리엄의 아버지인 존 셰익스피어(John Shakespeare)는 스트랫퍼드에서 부유한 상인으로 피혁가공업과 중농을 겸하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그 읍에서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하였으며 나중에 읍장에까지 선출되었다. 그러나 1576년 무렵 존 셰익스피어는 심한 재정난을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부인이 물려받은 토지까지 저당 잡히게까지 되었다고 한다.
 
윌리엄의 어머니인 메어리 아든(Mary Arden)은 부농의 딸로서 그녀의 부친인 로버트 아든(Robert Arden)은 그녀에게 스트랫퍼드 부근에 있는 윌름코트의 일부 땅을 남겨주었다. 죤과 메어리 셰익스피어는 슬하에 4명의 딸과 4명의 아들 모두 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딸들은 조안(Joan) 하나만 빼고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고 윌리엄은 네 명의 아들 중 장남이었다.

윌리엄은 초,중급학교에 다녔던 것이 확실시되며 거기서 당시 1500년대 유럽의 국제어인 라틴어를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고전교육을 받았고 이때 받은 교육이 훗날 극작가로서 그에게 필요했던 고전 소양과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그는 14세 혹은 15세가 되었을 때 학교를 그만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셰익스피어는 18세가 되던 1582년 8년 연상인 26살의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와 결혼했다. 앤은 쇼터리 부근에 있는 휴랜드 농장의 부유한 농장주 리처드 해서웨이의 딸이었다. 셰익스피어 부부의 첫 번째 아이인 수잔나(Susanna)는 1583년 5월에 태어났고 2년 뒤인 1585년 2월에 쌍둥이 햄닛(Hamnet)과 쥬디스(Judith)가 태어났다.

1585년에서 1592년까지의 그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다만 시골학교 교사 혹은 귀족의 심부름꾼 등으로 전전하며 살아간 흔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1592년에 이르러서는 그가 유명한 극작가의 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이러한 사실은 그의 라이벌 선배 작가인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의 글에서 알 수 있다.

1590년 전후의 시기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탁월한 치세로 국운이 팽창할 때였고 문화적으로도 신본주의에서 벗어나 인문주의의 기치를 내건 르네상스 시대의 정점에서 인간의 무한한 창조적 잠재력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당시의 연극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부활시킨 르네상스 문화의 유입으로 새로운 민족적 형식과 내용의 드라마를 창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셰익스피어의 타고난 재능은 크게 발휘되고 빛날 수 있었다.

1593년 런던에 페스트의 창궐로 인해 극장들이 폐쇄되었다. 이로 인해 셰익스피어는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과시하였다. 1593년 그는 에로틱한 장편의 시 『비너스와 아도니스 Venus and Adonis』를 써서 젊은 궁정인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던 사우샘프턴 공작 3세(3rd Earl of Southampton)에게 헌정하였다.

1594년 셰익스피어는 궁내부 장관극단(the Lord Chamberlain's Men)에 소속되어 극작가로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당시 이 극단의 유명한 주연 배우는 리처드 버비지(Richard Burbage)였고 그는 리처드 3세, 햄릿, 오셀로, 리어 등과 같은 주인공의 역을 맡아 공연하며 대단한 인기와 명성을 누렸다. 1599년에 오면 템즈강 남쪽에 글로브 극장(The Globe) 을 신축하고 엘리자베스1세 여왕을 계승한 제임스 1세의 허락을 받아 극단의 이름을 “왕의 극단”(King's Men)이라 바꾸어 불리는 행운을 얻어 다른 어떤 극단보다도 더 자주 궁궐에서 공연을 하였다. 그러나 1613년 그의 마지막 작품인『헨리8세』를 공연하던 중 글로브 극장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존 셰익스피어가 재산을 잃고 불행해진 데 반해 그의 아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성공적인 극작 활동으로 모은 재산을 착실히 관리하며 그의 생애동안 커다란 부를 모아 들였다. 1597년 그는 스트랫퍼드에 있는 가장 큰 토지 중의 하나인 새로운 땅(New Place)을 매입하였고 1598년에는 ‘새로운 땅’이 위치하고 있는 채플가의 거주인으로 등록되었다. 그의 부친이 돌아가시던 1601년에는 장남으로서 헨리 가에 있는 두 집을 상속 받았고 1616년 그가 사망할 때는 실질적으로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다.

1611년 이후 셰익스피어는 스트랫퍼드로 은퇴하였고 1616년 그의 탄생일로 추정되는 4월 23일에, 즉 묘하게도 생일 날짜와 같은 날에 향연 5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4월25일 스트랫퍼드에 있는 성 삼위일체(Holy Trinity) 교회에 안장되었고 셰익스피어의 미망인 앤은 1623년 사망하여 셰익스피어 옆에 안장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혈통은 1670년 그의 증손녀의 죽음과 함께 끊어지고 말았다.

셰익스피어가 죽은 지 7년이 지난 1623년에 ‘왕의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했던 존 헤밍(John Heminge)과 헨리 콘델(Henry Condell)이 배우들의 손에 흩어져 있던 셰익스피어의 연극대본을 모아 출판하였고 그들의 노력 덕분에 역사 속에 사라질 뻔한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이 우리 손에 들어와 오늘날까지 읽히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희극, 비극, 사극, 낭만극을 포함하여 희곡 37편과 장편시 2편 그리고 소네트 154편을 썼다. 그의 희곡작품을 대략 시기적으로 분류해 보면 초기에는 습작적인 경향을 보이며 영국 역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극(Historical Plays)에 집중하던 시기, 그와 다소 중첩되기는 하나 낭만희극(Romantic Comedy)을 쓰던 시기,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 사후 제임스 1세가 등극하면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비극(Tragedy)의 시기, 만년에 희극과 비극을 쓰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삶의 전관과 화해의 경지에서 쓴 희극과 비극이 결합된 로맨스극(Romances)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 시대 배경
 
셰익스피어가 작품 활동을 했던 소위 튜터 왕조 시대는 영국의 번성기였으며, 질서 있고 잘 다스려지던 사회였다고 여겨져 왔다.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스리던 시대는 영국의 민족주의, 해상활동, 그리고 경제적 번영 등으로 애국심과 사회적 만족감 등이 팽배하여, <쾌활한 영국>의 신화까지 낳을 정도로 안정된 사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인들의 눈에는 그들의 사회가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으며 심각한 갈등과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고 한다.
 
먼저 종교, 철학적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자. 당시 영국 사회의 종교적인 토대는 헨리 8세때 행해진 종교개혁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으며, 특히 카톨릭과 신교가 정치와 맞물려 깊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신교와 카톨릭 사이의 갈등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기간에도 계속되었으며 엘리자베스에 대한 반란을 기도하는 카톨릭 교도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종교적 질서의 분열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영국사회는 새로운 경제 질서의 대두로 인해 사회적으로 심각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상업과 무역의 발달로 인해서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되었으며, 이와 함께 기존의 계급구조가 크게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반적으로 사회적 지위나 계급은 부와 재산에 밀려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두드러진 것은 개인주의였다. 자본가가 생기면서 부와 재산이 계급보다 중요해지자 계급질서의 고리가 흔들리게 되었고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의 대두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교육의 기회가 거의 없었던 중세시대와는 달리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교육기회의 확대로 대학교육을 받은 남성의 수가 크게 늘고 있었다. 특히 대학교육을 받은 소위 지식계층은 사회나 정치에 깊은 회의를 나타냈고, 기존의 질서를 변화시키는 사회변혁의 주역이 되었기 때문에 그 여파는 급속도로 사회에 파급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셰익스피어의 사회는 다음과 같이 양면성이 공존하던 시대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한편으로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이며, 계급적인 사회구조가 지방이나 시골경제를 기반으로 존재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계급이나 질서를 위협하며 새로운 도시 중심의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 두 세력의 상호관계는 복잡하면서도 광범위했고, 때로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또 때로는 기존의 계급구조가 새로운 세력을 수용하며 자신들의 기반을 놓치지 않으려고 조화를 꾀하는 관계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3. 햄릿(Hamlet)

◎ 등장인물

(1) 햄릿: 죽은 선왕의 아들이며 현재 덴마크 왕인 클로디어스의 조카

(2) 거트루드: 덴마크의 왕비이며 햄릿의 어머니

(3) 클로디어스: 현재 덴마크의 왕으로 선왕의 동생

(4) 오필리아: 클로디어스의 신임을 받고 있는 폴로니어스의 아름다운 딸

◎ 내용소개

덴마크 왕국 수도의 엘시노아 성에서는 왕자 햄릿이 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 있었다. 부왕이 죽자 숙부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오르고 그는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 왕비와 재혼하였다. 햄릿은 어머니의 이런 행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혹시 숙부가 부왕을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부왕의 모습과 닮은 망령으로부터 그 동안의 사정을 들은 햄릿은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은밀히 계획을 세운다. 그는 이러한 계획을 들키지 않도록 미친 사람처럼 행동한다.

어느 날 성에 한 극단이 들어온다. 햄릿은 그들로 하여금 부왕과 숙부와 어머니인 왕비와의 관계와 비슷한 연극을 하도록 한다. 연극을 보던 숙부 클로디어스는 독살 장면이 나오자 예상대로 퇴장해 버린다. 이로써 햄릿은 망령의 말이 사실임을 확실시하게 된다. 숙부에게 복수를 하려던 햄릿은 실수로 연인 오필리아의 아버지 플로니어스를 살해한다. 이 충격으로 오필리아는 실성해서 물에 빠져 죽고 플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스는 아버지와 누이의 원수를 갚겠다고 왕에게 청한다.

왕 클로디어스는 레어티스에게 복수심을 자극하여 독을 묻힌 검을 가지고 햄릿과 대결하게 한다. 거트루드는 클로디어스가 햄릿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독주를 마시고 죽고, 햄릿도 친구에게 세상에 진실을 알릴 것을 부탁하며 독이 묻은 칼에 찔려 숨진다.

◎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중세 이래 덴마크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내려오던 슬픈 왕자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영국문학은 물론 세계 문학 속에 항상 새로운 문제를 제공해주며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매력이 발견되는 작품이다. 햄릿에 관한 연구논문이 방대한 것처럼 이 작품을 복수비극, 성격비극, 사랑의 비극, 문제비극, 정치극이라고 다양하게 불리는 이유도 제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 해석의 차이 때문이리라.

햄릿은 부친의 죽음이 자기 모친을 왕비로 삼고 현재 왕이 된 숙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망부의 음성을 듣고 고민 중, 이 말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극중극의 계략을 꾸며 숙부가 당황해하는 행동을 보고 망령이 한 말이 진실임을 발견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놓쳐버릴 수 없는 것은,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도 그가 머뭇거리면서 결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가 오늘날까지도 가장 논쟁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햄릿이 사색적일 뿐 성격의 담대성이 없었다는 성격적 무능설, 삶에 대한 비판의식이 너무나 예리해 행동이 미처 따르지 못했다는 비관론, 또는 도탄에 빠진 덴마크를 우선 구해야 되겠다는 구국 사명설, 햄릿은 복수를 부도덕이라고 치부하여 고민에 빠졌다는 양심설, 심지어 숙부이지만 지금은 부왕이 된 왕에 대한 시기심으로 어명에 복종하고 싶지 않았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설 등 매우 다양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햄릿이라는 인물의 성격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남기고 있는데, 이 인물의 특징은 19세기 이래 돈키호테의 행동형(투르게네프의 분류)과 대조되어 문학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찍이 괴테와 콜리지가 지적한 대로 '순수하고 내성적이며 우울한 성격'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어왔으나, 금세기에 들어오면서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강한 햄릿'의 해석이 유력해지고 있다.

◎ 감명 깊은 문장

-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물리쳐야 하느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일까.

- 만약에 인간의 이득과 사업이 자고 먹는 일에만 그친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짐승이지, 그 이상이 아니다.

-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 것. 엉뚱한 생각은 실천에 옮기지 말 것. 사람들과 절친하게 사귀는 건 좋지만, 너무 허술히 접근하지 말 것. 사귄 친구들이 진실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절대로 놓치지 말라............... (중략).............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 하는 것. 그렇게 하면 밤이 지나 낮이 오듯이 타인에게도 충실해지게 마련이야.

- 위인의 명성은 죽어도 반년쯤은 더 계속될 희망이 있다.

- 비록 온 세상이 악을 감싸고 눈가림 하더라도 악행은 반드시 폭로되게 마련이다.

-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4. 오셀로(Othello)

◎ 등장인물

(1) 오셀로: 베니스정부에 근무하는 귀족출신으로 무어인 장군

(2) 데스데모나: 브라반쇼의 딸, 오셀로의 아내

(3) 이아고: 오셀로의 기수.

(4) 카시오: 오셀로의 부관.

(5) 브라반쇼: 베니스 원로원 의원,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 내용소개

베니스 공국의 원로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는 흑인 장군 오셀로를 사랑하게 되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때마침 투르크 함대가 사이프러스 섬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자, 오셀로는 이 섬의 수비를 위하여 처(데스데모나)와 함께 사이프러스로 떠난다. 오셀로의 기수 이아고는 갈망하던 부관의 자리를 카시오에게 빼앗긴 데에 앙심을 품고 두 사람에게 복수할 것을 계획한다.

사이프러스에 도착한 날 밤 이아고는 주벽이 있는 카시오에게 일부러 술을 먹여 소동을 일으키게 하고, 오셀로에게 부관의 자리를 파면 당하자 이번에는 데스데모나를 통하여 복직운동을 하도록 권장한다. 이아고가 계획한대로 카시오는 데스데모나를 만나 복직시켜 달라고 간청한다. 데스데모나는 이를 불쌍히 여겨 오델로에게 카시오의 복직을 간절히 부탁한다.

이아고는 은근 슬쩍 오델로에게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한다. 오델로는 이아고에게 이들의 감시를 부탁한다. 에밀리아는 남편 이아고의 부탁으로 오델로가 선물한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훔쳐낸다. 데스데모나를 대하는 오델로의 행동은 점점 차가워지고 데스데모나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나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델로는 카시오가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갖고 있다는 이아고의 말을 듣고 아내를 저주하며 복수할 것을 결심한다. 데스데모나를 대하는 오델로의 행동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데스데모나는 계속 카시오의 복직을 간청한다.

이아고는 오델로의 곁에서 계속 화를 돋우고 오델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이도록 부추긴다. 경솔하게도 그를 믿었던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침대 위에서 목졸라 죽인다. 그런데 모든 것이 에밀리아에 의해 폭로되자 오셀로는 슬픔과 회한으로 자살하고 이아고는 가장 잔혹한 처형을 받는다.

* 오셀로 증후군

-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러 자신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비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오셀로 증후군’이라고 하며, 일반인들에게는 의처증과 의부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셀로 증후군 환자는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객관적 증거도 없이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오셀로 증후군의 원인으로 지나치게 기억력이 좋고 편집증적 성격, 배우자에 대한 열등감, 본인이 바람을 피우고 싶거나 동성애적 경향이 있을 때, 성장과정에서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거나 적대적인 경우 등이 있다.

◎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작품인 <베니스의 무어인>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가정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은 햄릿의 경우처럼 주인공이 겪는 갈등으로 인해 나라가 흔들리고, 주인공의 죽음과 더불어 사회질서도 회복되고 주인공의 영혼도 구제된다는 내용과는 달리, 주인공의 운명과 국가의 운명은 아무 관계가 없으며 흑인 중년남자와 백인처녀 사이의 결혼은 비극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비평가 토머스 라이머가 지적한 대로 <오셀로>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신분을 초월한 축복받지 못한 결혼의 비극, 여자들은 손수건을 잘 관리할 것, 남편들은 질투를 하기 전에 과학적인 증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두 남녀의 결혼에 문제가 있긴 했으나 악의 화신인 이아고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조화된 음악의 세계였다. 흔히 오셀로를 사랑의 비극이라고 평하는 것은 흰 눈처럼 완전무결한 사랑이 오래된 탑처럼 무너져가는 실상이 이 작품의 주제이기 때문이리라.

질투심에 불타는 오셀로가 연연한 꽃잎처럼 잠든 데스데모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랑의 감정과 배신감이 부딪쳐 내적 투쟁이 일어나고 결국 자신의 삶의 보람이자 등불이었던 아내를 죽인다. 그러면 이아고는 왜 그와 같은 음모를 꾸몄을까? 그것은 '동기가 없는 악' 즉, 이아고는 악 그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악을 행한다는 콜리지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셀로의 영혼을 어둡게 했던 절망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비로소 구제된다. 그가 데스데모나의 시체 위에 쓰러져 통곡하며 이아고의 흉계를 깨달았을 때, 데스데모나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오직 자기만을 사랑했다는 것을 각성했을 때, 자기의 과오를 뼈저리게 느끼고 여지없이 패배했음에 눈을 떴을 때 오셀로는 사랑의 살인자인 이아고에게 승리하는 것이다. 즉, 절망 속에서 죽은 맥베스와는 달리 오셀로의 죽음은 죽음으로써 영혼을 구제받고 있으며 그를 사로잡고 있던 질투의 올가미를 벗어나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 우리 앞에 찬연하게 떠오른다.

◎ 감명 깊은 문장

- 아, 눈에 보이지 않는 술의 정령이여, 너의 이름을 알 수 없으니 나는 너를 악령이라 부르겠다.

- 남자건 여자건 간에 좋게 평가되는 것은 영혼의 값비싼 보배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 악한의 분명한 얼굴은 그가 나쁜 짓을 할 때만 나타난다.

- 공기처럼 가벼운 사소한 일도, 질투하는 이에게는 성서의 증거처럼 강력한 확증이다.


5. 맥베스(Macbeth)

◎ 등장인물

(1) 맥베스 : 글래미스의 영주, 코더의 영주, 후에 스코틀랜드의 왕

(2) 맥베스의 아내

(3) 밴쿠오 : 스코틀랜드의 귀족

◎ 내용소개

스코틀랜드 왕 덩컨의 신하 맥도날드가 노르웨이 왕의 원조를 얻어, 반란을 일으키자, 맥베드와 그의 동료 밴쿠오 장군이 반군을 진압하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두 장군은 세 마녀를 만나는데, 마녀들은 "맥베드가 장차, 코더의 영주가 되고, 왕이 될 것이며, 밴쿠오의 자손 또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이어서, 코더의 영주가 된다는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본 맥베드는 사건의 전모를 부인에게 알려, 그녀와 함께 자신의 성을 방문한 덩컨 왕을 살해한다. 왕의 시해가 알려지자. 덩컨의 장남 맬컴은 왕궁에서 탈출을 하고, 맥베드는 왕위에 오른다. 맥베드는 "자손이 왕이 되리라."는 예언 때문에 밴쿠오를 살해하지만, 그의 아들은 살아남아 탈출한다.

불안이 고조된 맥베드는 마녀들을 찾아가, 그들로부터 맥더프를 조심하라는 경고와, 버남의 숲이 던시네인으로 오기 전에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예언을 듣는다. 맥베드는 맥더프의 성을 점령하여 그의 부인과 자녀들을 살해하지만 맥더프는 덩컨의 장남이 있는 잉글랜드로 도망하여 잉글랜드의 지원을 받아 스코트랜드를 공략한다.

맥베드 부인은 살인의 고통에 시달리다 죽고, 맥베드는 맥더프가 이끄는 잉글랜드 군이 진입해 온다는 소식과 함께, 잉글랜드의 군대가 병력을 감추려고 나무로 위장한 채 접근해 오는 것을 본 신하에게서 버남의 숲이 던시네인으로 움직여 온다는 보고를 받게 되고, 성을 점령한 맥더프의 칼에 쓰러진다.

◎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4대비극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인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의 역사극에서 모티브를 취재한 것으로 1606년 덴마크 왕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상연하기 위해 쓴 것이다. 외형상으로 볼 때 가장 짧으며 단일한 내용, 급속한 전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포와 절망 속에서 죄를 더해 가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고독이 표현되어 있는 대사의 시적 완성도가 높은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살인에서 시작하여 살인으로 끝나며 피가 피를 부르고 무대 한쪽이 피바다를 이룬다. 어떤 이는 <맥베스>를 실제로 상연해서 "세계가 피의 바다로 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다면 그 연극은 실패작"이라 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작중인물들에 대한 심리적 경향이 매우 특이하게 장식되고 있는데, 주인공인 맥베스와 그의 부인에 대한 성격묘사가 그러하다.

맥베스는 애초에 야심은 있었지만 이를 실천할 능력이 부족하고 마음이 약하여 고민한다.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는 것이 반역죄임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한 인간적인 번민에 사로잡히게 되나 그의 부인은 이와 반대로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욕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맥베스가 왕위에 오르자 상황은 정반대로 진행된다. 양심이 남아 있던 맥베스는 미래의 상황에 불안을 느끼고 위험인물들을 처단하며, 그의 아내는 지난날의 죄책감에 시달려 결국 몽유병환자가 되어 비참한 생의 종말을 고한다.

한마디로 이 비극은 야심의 비극임과 동시에 양심의 비극이다. 장군인 맥베스가 덩컨 왕을 죽이고 왕관을 쓰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양심의 반격과 신하들의 반란으로 무참히 죽는다는 인과응보의 비극이다. 이처럼 인간이 자기 분수에 넘어 지나친 야심을 갖게 되면 이것이 바로 인간파멸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자료정리:양소영 soyoung6670@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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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