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

« 2024/5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1. 작가 소개

- 장영희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1년간 번역 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자 번역가, 수필 가, 칼럼리스트, 중. 고교 영어교과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 <종이시계> <햇볕 드는 방> <톰 소여의 모험> <이름 없는 너에게> 등이 있다. 또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살아 있는 갈대>는 부친 장영록 박사와 공역한 것으로 더욱 각별하고 소중하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 ‘한국 번역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에는 삶에 대한 진지함과 긍정적인 태도를 담은 수필집 <내 생에 단 한번> 으로 ‘올해의 문장 상’을 수상했다.
아버지인 故 장왕록 박사의 추모 10주기를 기리며 기념 집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엮었다.

(출처 : 북 랭크)

<장영희의 또 다른 책>

- 내 생애 단 한번

이 책의 대부분은 저자의 생활반경과 체험 속에서 우러난 것들이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등식을 대비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는 한 개인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파장이 큰 우리네 삶의 체취와 감상들이 반듯하고 따뜻하게 녹아있다. 이 책의 주요 테마는 '생명의 소중함' '희망' '신뢰'의 메시지다. 삶의 곳곳에서 마주치는 편린들을 통해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감동적으로 엮어내고 있다. 시종 밝고 경쾌하며 친근한 내용으로 일관된 이 책에는 교수라는 호칭에 안 맞게 장난치기 좋아하고, 틈만 나면 공상에 빠지는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저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면 늘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정의로움과 작은 것들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참된 인간의 마음이 깨끗하게 투영되어 있다.
(출처 : 예스 24)


2. 내용 소개

- 작가의 말  “같이 놀래?”

미국 토크쇼 중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다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는 언젠가 집중적으로 마리아 슈라이버라는 아동문학가가 쓴 <티미는 왜 저래?>라는 책을 소개했다. 사실 하나도 새롭거나 재미있을 것 없는 도덕적 이야기 이지만, 영향력 있는 토크쇼에서 이 책을 다룬 것은 물론 교육적인 목적이다.
토크쇼 중에 윈프리는 탐 설리반이라는 시각장애인 사업가와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설리반은 절망과 자괴감에 빠졌던 자기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말은 단 세 단어였다고 했다. 어렸을 때 혼자 놀고 있는 그에게 옆집 아이가 “같이 놀래?” 라고 물었고, 그 말이야말로 자신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 주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고 했다.
이에 슈라이버는 “같이 놀래?”는 자기가 쓴 모든 작품의 주제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모든 아이들이 서로 ‘다름’을 극복하고 함께 하나가 되어 ‘같이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작품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비단 슈라이버 뿐 만 아니라 어쩌면 동서고금을 통해 쓰여 진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기본적 주제는 ‘같이 놀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2001년 8월부터 3년간 <조선일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라는 북 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이다.
내가 여기에 소개한 책들은 작품의 스코프나  깊이로 볼 때 어차피 원고지 10매는커녕, 100매, 아니 각기 한 권의 책으로도 충분히 다 설명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칼럼을 처음 시작할 때 신문사측은 내개 한 가지 주문을 했다. “선생님의 글을 보고 독자들이 ‘아,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하고 도서관이나 책방으로 뛰어 가도록 해 달라”고.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욕심을 버리고 단지 아주 솔직하게 그 책들 하나하나가 내게 소중한 만큼, 독자들에게도 그 소중함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문학 교수로서 비평적으로 ‘고전’의 요건에 어떻게 걸 맞는지 분석하기 전에 단지 하나의 독자로서 그 작품이 내 마음에 어떻게 와 닿았는지,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 그래서 그 작품들로 인해서 내 삶이 얼마나 더욱 풍요롭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1)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구요?
  방법을 꼽아 볼게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넓이만큼, 그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 마음의 성역

‘마음의 성역’ 이라는 말은 19세기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이 그의 대표작 <주홍 글씨,1850>에서 쓴 말이다. 아름답고 젊은 부인 헤스터와 불륜을 범한 딤즈데일 목사에게 접근해 복수를 다짐하며 교묘하게 그의 영혼을 고문하는 늙은 칠링워스, 아이의 아버지를 밝히라는 주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간통녀Adultress를 상징하는 주공글자 ‘A’를 달고 딸 펄과 묵묵히 살아가는 헤스터, 죄의식과 고뇌로 점차 쇠약해지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더욱 감동적이고 호소력 있는 설교를 하는 딤즈데일 목사.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갈등의 주류를 이루는 이 소설에서 호손의 목적은 결국 미로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들여 가보는 것이다. 조금씩 죽음에 다가서는 딤즈데일을 보다 못해 칠링워스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헤스터에게 딤즈데일이 말한다.
“우리가 지은 죄는 남을 해치지는 않았으나, 냉혹하게 남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한 칠링워스야 말로 가장 큰 죄를 지은 죄인이요!”

  <주홍 글씨>뿐만 아니라 호손의 작품의 근저에는 항상 ‘머리와 마음의 균형’ 이라는 주제가 깔려 있다. 아내와 불륜을 범한 남자를 벌하고 싶은 것은 인간적인 욕망이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간교한 수법으로 남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한 칠링워스는 호손이 말하는 ‘용서 받지 못할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죄를 통해 승화된 헤스터가 선행과 자선을 통해 가슴의 A가 '천사Angel', 또는 '유능한Able'을 의미하도록 귀결 짓는 호손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결국 호손이 제시하는 구원의 메시지는 그가 살았던 19세기보다는 머리만 점점 비대해지고 마음은 자꾸 작아지는 현대 우리들에게 더욱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2)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에밀리 디킨슨

* 우동 한 그릇

일본 작가 쿠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은 일본 국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이 이야기를 읽어 온 국회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섣달 그믐날 ‘북해정’ 이라는 작은 우동 전문점이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아주 남루한 차림새의 새 모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안주인이 인사를 하자 여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우동을 1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그녀의 등 뒤로 열두어 살 되어 보이는 소년과 동생인 듯 보이는 소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물론이죠, 이리 오세요.”
안주인이 그들을 2번 테이블로 안내하고 “우동 1인분이요!” 하고 소리치자 부엌에서 세 母子를 본 주인은 재빨리 끓는 물에 우동 1.5인분을 넣었다.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나눠 먹은 세 母子는 150엔을 지불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인 부부가 뒤에 대고 소리쳤다.
다시 한 해가 흘러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문을 닫을 때쯤 한 여자가 두 소년과 함께 들어왔다. ‘북해정’의 안주인은 곧 그녀의 체크무늬 재킷을 알아보았다.
“우동을 1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이리 오세요.” 안주인은 다시 2번 테이블로 그들을 안내하고 곧 부엌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말했다.
“3인분을 넣읍시다.”
“아니야, 그럼 알아차리고 민망해 할 거야.”
남편이 다시 우동 1.5인분을 끓는 물에 넣으며 말했다.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형처럼 보이는 소년이 말했다.
“엄마, 올해도 ‘북해정’ 우동을 먹을 수 있어 참 좋지요?” “그래, 내년에도 올 수 있다면 좋겠는데...”

다시 한 해가 흘렀고, 밤 10시경, 주인 부부는 메뉴판을 고쳐 놓기에 바빴다. 올해 그들은 우동 한 그릇 값을 200엔으로 올렸으나 다시 150엔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주인장은 아홉 시 반부터 ‘예약 석’ 이라는 종이 푯말을 2번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안주인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10시 30분경 그들이 예사했던 대로 세 母子가 들어왔다. 두 아이는 몰라보게 커서 큰 소년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고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입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같은 재킷을 입고 있었다.
“우동을 2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자 이리 오세요.”
부인은 ‘예약 석’이라는 종이 푯말을 치우고 2번 탁자로 안내했다.
“우동 2인분이요!” 부인이 부엌 쪽에 대고 외치자 주인은 재빨리 3인분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부부는 부엌에서 올해의 마지막 손님인 이 세 모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아, 그리고 준아. 너희에게 고맙구나. 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졌던 빚을 이제 다 갚았단다. 현이 네가 신문 배달을 해서 도와주었고, 준이가 살림을 도맡아 해서 내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었지.”
“엄마 너무 다행이에요. 그리고 저도 엄마에게 할 말이 있어요. 지난 주 준이가 쓴 글이 상을 받았어요. 제목은 ‘우동 한 그릇’이에요. 준이는 우리 가족에 대해 썼어요. 12월 31일에 우리 식구가 모두 함께 먹는 우동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고, 그리고 주인아저씨랑 아주머니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소리는 꼭 ‘힘내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들렸다 구요. 그래서 자기도 그렇게 손님에게 힘을 주는 음식점 주인이 되고 싶다 구요.”
부엌에서 주인 부부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음 해에도 북해정 2번 탁자 위에는 ‘예약 석’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 그러나 세 母子는 오지 않았고, 다음 해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오지 않았다. 그 동안 북해정은 나날이 번창해서 내부수리를 하면서 테이블도 모두 바꾸었으나 주인은 2번 테이블 만은 그대로 두었다. 세 테이블들 사이에 낡은 테이블은 곧 고객들의 눈길을 끌었고, 주인은 그 탁자의 역사를 설명하며 언젠가 그 세 모자가 다시 오면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곧 2번 탁자는 ‘행운의 탁자’로 불려 졌고, 젊은 연인들은 일부러 멀리서 찾아와서 그 탁자에서 식사했다
십 수 년이 흐르고 다시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그날 인근 주변 상가의 상인들이 북해정에서 망년회를 하고 있었다. 2번 탁자는 그대로 빈 채였다. 10시 30분경, 문이 열리고 정장을 한 청년 두 명이 들어왔다.
주인장이 “죄송합니다만...”이라고 말하려는데 젊은이들 뒤에서 나이든 아주머니가 깊숙이 허리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우동 3인분을 시킬 수 있을까요?”
주인장은 순간 숨을 멈추었다. 오래 전 남루한 차림의 세 母子의 얼굴이 그들 위로 겹쳤다. 청년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14년 전 저희는 우동 1인분을 시켜 먹기 위해 여기 왔었지요. 1년의 마지막 날 먹는 맛있는 우동 한 그릇은 우리 가족에게 큰 희망과 행복이었습니다. 그 이후 외갓집 동네로 이사를 가서 한 동안 못 왔습니다. 지난해 저는 의사 시험에 합격했고 동생은 은행에서 일하고 있지요. 오래 저희 세 식구는 저희 일생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일을 하기로 했죠. 북해정에서 우동 3인분을 시키는 일말입니다.”
주인장과 안주인이 눈물을 닦자, 주변의 사람들이 말했다.
“뭘 하고 있나? 저 테이블은 이 분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는 거잖아.”
안주인이 “이리 오세요, 우동3인분이요!”하고 소리치자 주인장은 “우동 3인분이요!”하고 답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 진정한 위대함

F.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주제가 무겁지 않고 영어 문체가 비교적 쉬운데다가, 무엇보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애’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작가 피츠제럴드가 생각하는 개츠비의 ‘위대함’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피츠제럴드는 책의 첫 부분에서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갖다 붙인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그것은 바로 개츠비가 암담한 현실 속에서 “아무리 미미해도 삶 속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즉 언제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낭만적 준비성’, 그리고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젊고 순수한 우리 학생들은 여전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함’을 꿈꾼다. ‘돈과 권력, 영웅심에 연연하지 않고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그런 위대함을. 그리고 그들의 그런 굳건한 믿음과 희망이야말로 진정 위대하다고 믿는다.

* 사랑과 생명

문학의 주제를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 가’ 에 귀착된다. 동서고금의 모든 작가들은 결국 이 한 가지 주제를 전하기 우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완벽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는다.  -<요한1서 4장 18절>
*삶의 무게와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한마디의 말, 그것은 사랑이다.  -소포클레스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  -셰익스피어
*사랑 없는 삶,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는 삶은 그림자 쇼에 불과하다.  -괴테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도스토예프스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빅토르 위고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다.  -토마스 만
*사랑에는 늘 약간의 광기가 있다. 그러나 광기에는 늘 약간의 이성이 존재 한다  -니체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  -생텍쥐페리

구구절절이 다 옳은 말들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이제껏 본 사랑에 관한 말 중 압권은
<논어(12권 10장)>에 나오는 “애지 욕기생 愛之, 欲其生”,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 이다” 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말이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물론 사람답게 제대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삶을 의미하지만, 생명을 지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랑하는 일은 남의 생명을 지켜주는 일이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생명을 지키는 일이 기본 조건이다. 사는 게 힘들다고, 왜 날 못살게 구느냐고 그렇게 보란 듯이 죽어 버리면, 생명을 지켜 주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사랑할 몫도 조금씩 앗아가는 것이다.


3) 대지에 입 맞추고 끊임없는 열정으로 사랑하라.
   환희의 눈물로 대지를 적시고 눈물을 사랑하라.
   또 그 환희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것을 귀중히 여기도록 하라.
  
   -도스토예프스키

* 안과 밖

지난해 학회 참석차 파리에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젊은이를 만난 적이 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고기를 잡는 외항 선원이었는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를 탔고 2년 만에 휴가를 얻어 부산에 있는 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내 직업을 알고 나서 그 젊은이는 말했다.
“대학교 선생님이요? 저는 대학이라는 데를 꼭 가보고 싶어요. 그 거한 데를 꼭 가고 싶다 구요. 그런데 그곳은 죽어라 노력해도 제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세상 같아요.”
그 젊은이를 보면서 심훈의 소설 <상록수,1935>를 떠올렸다.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은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했다가 서로 동지 겸연인 사이가 되고, 각기 자신의 고향에서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하기로 약속한다. 영신은 부녀회를 조직하고 교회 건물을 빌려 아이들을 가르치며 새 학원을 짓기 위해 모금 운동을 한다. 그러나 학원 낙성식 날 영신은 맹장염으로 쓰러진다. 영신을 간호한 후에 동혁이 고행에 돌아와 보니 고리대금업을 하는 강기천이 동혁의 동지들을 매수하여 동혁이 각고 끝에 조성해 좋은 농우회 회장이 되고, 농우회관은 강기천의 뜻대로 진흥회 회관이 된다. 이에 화가 난 동혁의 여동생이 회관에 방화를 하자 동혁이 대신 잡혀간다.
기독교계의 추천으로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영신은 병이 악화 된다. 출옥을 해서 동혁이 영신을 찾아가 보니 영신은 애타게 동혁을 찾다가 이미 숨을 거운 뒤였다. 동혁은 영신의 몫 까지 다해 농촌계몽운동을 할 것을 다짐하며 슬픔 속에 새로운 각오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아주오래 전에 읽었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교실로 쓰는 교회 건물이 낡았으니 학생을 80명만 받으라는 주재소의 명령에 따라 영신은 배움에 굶주린 학생들을 억지로 내쫓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 영신은 깜짝 놀란다. 쫓겨난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담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나무에 올라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감격한 영신은 아예 칠판을 밖으로 옮긴다. 그리고 칠판에 커다랗게 적는다.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작품 중에서 유독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말이 주는 너그러움이, 따뜻함이,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낯선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내게 남은 시간

28세의 나이로 총살 직전에 살아난 사형수, 그는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고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불후의 명작들을 쓴 세계적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였다. 농도제의 폐지, 검열 제도의 철폐, 재판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주의 서클에 가담했다가 1847년 체포되어 사형이 언도되었으나 사형 집행 직전, 황제의 특사에 의해 감형되어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 4년간의 징역 후 풀려나온 그는 후에 시베리아 유형의 체험을 기록한 <죽음의 집>을 발표했다.
‘영혼의 리얼리즘’ 작가로 불릴 정도로 인간의 내면 묘사에 천착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에 일생 동안 그를 괴롭혔던 사상적, 종교적 문제, 선과 악에 관한 사색을 모두 쏟아 부었다.
여기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작중 인물 드미트리의 입을 빌려 인간의 마음이란 “악마와 신이 서로 싸우고 있는 싸움터”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정신적인 지주로 등장하는 조시마는 “지옥이란 다름 아닌 바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데서 오는 괴로움” 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그는 역설한다. “대지에 입 맞추고 끊임없는 열정으로 사랑하라. 환희의 눈물로 대지를 적시고 그 눈물을 사랑하라. 또 그 환희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것을 귀중히 여기도록 하라. 그것은 소수의 선택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1878년에 쓰기 시작하여 1879년에 처음으로 발표되고 이듬해 완결된 이 작품에는 ‘작가로부터’ 라는 머리말이 붙어 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여기서 이 작품이 미완성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후 20년간 계속 쓸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결국 그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불과 2개월이었다. 다음해 1월 28일에 급사했기 때문이다.


4)  혼란과 불행과 죽음 위에 내 희망을 쌓아 올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세계가 차츰 황폐해 가는 것을 보고 수백만의 고통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보면 언젠가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이 잔악함도 결말이 나고,
    또 다시 평화와 고요가 돌아오리라고 믿습니다.
   
    - 안네 프랑크

* 내가 이상을 버리지 않는 이유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너무 웃자라 불편하거나 쓸모없게 된 나무가 있을 경우 톱이나 칼로 잘라 버리는 대신 온 부락민들이 모여 그 나무를 향해 크게 소리 지른다고 한다. 예컨대 “너는 살 가치가 없어!” “우린 널 사랑하지 않아!” “차라리 죽어 버려!” 등, 나무가 들어서 가슴 아파할 만한 말을 계속하면 시들시들 말라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몇 면 전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말 한마디가 이렇게 생명을 좌우할 만큼 폭력적일 수 있고 오랫동안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사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은 ‘욕’ 일지도 모른다. 아주 옛날 원시인들이 모닥불 피워 놓고 둘러앉아 환담하다가 어떤 이해관계로 논쟁이 붙고, 누군가 화가 나서 상대방을 곤봉으로 내려치려다 대신 욕 한마디 하고 나서 분노를 삭혔  다면, 그래서 그의 생명을 해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인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안네의 일기,1947>는 문자 그대로 안네 크랑크라는 열세 살 난 유대인 소녀의 일기이자 전쟁의 참회를 가장 현실적이고 감동적으로 전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품이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 준 것일까요?” 라고 자문하는 안네는 “만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 세상에 살아남는 일이 허락 된다면, 나는 꼭 이 세상을 위해, 인류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하고 꿈을 밝힌다. 작가가 되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은 안네의 소망은 단지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이었다.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1일로 끝이 난다.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안네는 자신의 이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이상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인간은 결국 선하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란과 불행과 죽음 위에 내 희망을 쌓아 올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세계가 차츰 황폐해 가는 것을 보고 수백만의 고통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보면 언젠가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이 잔악함도 결말이 나고, 또 다시 평화와 고요가 돌아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이상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말보다는 무기로, 타협보다는 대결로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에 안네의 이상은 너무나 크고 아름다웠다.

* 거울 속의 감옥

따지고 보면 인간만사가 다 돈, 돈이 문제다. 신파극 주제가처럼 돈에 울고 돈에 웃고, 돈에 살고 돈에 죽고,,,,. 영국 시인 바이런은 ‘돈이란 알라딘의 램프’ 라고 정의 했고, 새무엘 버틀러는 사랑의 신 큐피드의 화살도 금촉일 때 더욱 명중률이 높다고 했다. 그러니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문학작품에서도 돈이 배제될 수 없다.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간성 상실의 예로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이나,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를 들 수 있다.
스크루지나 샤일록이 미움 받는 구두쇠라면, 19세기 영국의 여류작가 조지 엘리엇의 <사일러스 마아너,1861>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동정 받을 만한 구두쇠이다.
마아너는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쓰고 고행을 떠난 직조공이다. 그는 자기가 짠 직물을 파는 일 외에는 마을 사람과 아무런 왕래도 없이 외딴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하루에 16시간씩 꼬박 앉아 짠 직물을 팔아서 번 금화를 쓰지 않고 냄비에 담아 마루 밑에 감추어 두고 밤마다 꺼내어 어루만져 보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금화를 누군가 훔쳐간 것이다. 자살까지 생각하며 비탄에 빠져 잃어버린 금화를 찾아다니다가 허탕치고 돌아온 어느 날 밤, 마아너는 난롯가에 잠들어 있는 두 살배기 여자아이를 발견하다. 아이의 반짝이는 금발을 금화로 착각하고 순간적으로 들떴던 그는 그 아이가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고아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아너는 그 아이를 키우기로 작정한다.

그때부터 마아너는 딱딱하고 차가운 금화 대신에 딸 에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우며 자기를 버렸던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친절을 베풀기 시작하고, 마을 사람들도 마아너를 따뜻하게 대한다. 그는 에피를 통해 난생처음으로 사랑을 준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이 세상에 선이 존재함을 새롭게 배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지만, 이 소설에서 강조되는 점은 돈에 집착했을 때 고립되고 의미 없는 삶을 살던 마아너가 그 돈이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인간성을 회복하고 진실 된 인간관계를 발견한다는 아이러니이다.

투명한 유리에 금이나 은을 칠하면 거울이 된다. 유리를 통해서는 바깥세상도 보이고 다른 사람들도 보인다. 내가 웃고 손을 내밀면 상대방도 웃고 손을 내밀어 준다. 하지만 거울에는 자기만 보인다. 금, 은으로 사방에 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거울 속사람들처럼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만 돌보며 감옥인 줄도 모르는 채 감옥 속에서 살아간다.
사일러스 마아너는 에피를 통해서 거울 속 감옥에서 벗어났고, 그리고 말한다. “누가 뭐래도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5) 계절은 봄이고
   하루 중 아침
   아침 일곱 시
   진주 같은 이슬 언덕 따라 맺히고
   종달새는 창공을 난다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하느님은 하늘에
   이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다
   
   - 로버트 브라우닝

* 아, 멋진 지구여...

911테러 뉴스의 사고를 당한 아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한 번 더’를 외치를 사람을 보며 손톤 와일더의 <우리 마을,1938>이라는 작품을 떠올렸다. 이는 이렇다 할 줄거리도, 극적인 요소도 없이 다만 제목 그대로 미국 뉴햄프셔 주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의 일상을 묘사 하고 있다.
3막에서 둘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에밀리가 묻힌 묘지가 나온다. 두고 온 세상에 미련이 남아 에밀리는 무대 매니저에게 꼭 하루만 다시 삶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의 열두 번째 생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 받는다. 아침밥을 잘 씹어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 출장에서 돌아오는 아버지, 이모와 조지에게서 온 생일 선물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지상에서의 하루를 살며 에밀리는 회한에 젖어 소리친다.
“엄마, 절 그냥 건성으로 보시지 말고 진정으로 봐 주세요. 지금으로부터 14년이 흘렀고, 저는 조지와 결혼했고, 그리고 이제 죽었어요. 윌리도 캠프 갔다 오다가 맹장염으로 죽었잖아요. 하지만 지금, 바로 지금은 우리 모두 함께이고 행복해요. 우리 한 번 서로를 눈여겨보기로 해요.”
그러나 물론 에밀리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웹 부인은 기계적으로 이런저런 선물 설명을 하기에 바쁘다. 에밀리는 견디다 못해 무대 매니저에게 그냥 돌아가겠다고 한다.

서로 질시하고 싸우고 110층짜리 마천루가 삽시간에 무너지는 곳이지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사랑하는 연인들이 있고 노을 진 단풍 산이 저토록 아름다운 이 지구는 그래도 살 만한 곳인데, 항상 너무 늦게야 깨닫는 것이 우리들의 속성인지라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진정으로 얘기를 나눌 틈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간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서 본 한 구절이 생각난다.
“당신이 1분 후에 죽어야 하고 꼭 한 사람에게 전화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겠습니까?”


6)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재미있게 노는
    꼬마들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J.D. 샐린저

* 가던 길 멈춰 서서

시인 중에도 ‘거지’가 있다. ‘걸인 시인’으로 알려진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조모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열세 살 때 친구들과 도둑질을 하다 체포된 후 퇴학을 당하고 액자 공장에서 도금 기술을 배우지만, 그 일을 혐오해서 몰래 책을 읽다가 들키기 일쑤였다. 조모가 죽자 그는 고향을 떠나 일정한 직업 없이 걸식을 하면서 방랑한다. 그러나 28세 되던 해 그는 금맥이 터졌다는 소문을 듣고 미국으로 가서 서부로 가는 화물 기차에 뛰어오르다가 떨어져서 무릎 위까지 절단한 장애인이 된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외다리로는 걸인 생활을 하기 힘들어지자 시인이 되기로 작정, 서너 편의 시를 종이 한 장에 인쇄해 집집마다 다니며 팔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자비로 출판한 시집 <영혼의 파괴자 外>를 계기로 그는 특이한 삶을 산 방랑걸인 시인으로 서서히 관심을 끌기 시작,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그의 대표작 <가던 길 멈춰 서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온 세상이 풍비박산 나는 듯 왁자지껄 시끄러운데, 이 아름다운 봄날 가던 길 멈춰 서서 나뭇가지에 돋는 새순을 한 번 만져 보고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7)  “우리 각자의 영혼은 그자 하나의 작은 조각에 불과해서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합쳐져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존 스타인벡

* 인간 시간표

<시간을 정복한 남자> 라는 책에 소개된 소련의 과학자 류비셰프도는 인간시간표의 표상이었다. 82세로 세상을 떠날 때 학술서적 70여 권과 단행본 백 권 분략의 연구 논문을 남길 만큼 업적이 많았지만 그는 동시에 1주일에 한 번 이상 공연을 관람했고 정상적으로 직장에 다녔으며 친지들에게 애정 어린 편지도 자주 썼다.
그의 비밀도 사실은 ‘인간 시간표’였다는 것이다. 1965년 어느 날 류비셰프의 일기엔 이렇게 기록돼 있었다.
“서적 색인 정리에는 15분, 도브잔스키 읽기 1시간 15분, 곤충 분류학 2개의 그물 설치 20분, 곤충 분석 1시간 55분, 안드론에게 편지 15분,,,,,,,.”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 사상가, 사업가, 과학자, 발명가, 자선가 등, 다방면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벤자민 프랭클린도 완벽한 ‘인간 시간표’의 예이다.
그가 자신의 성공담을 아들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쓴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1793>은 자서전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하루 계획을 세우고 밤 9시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는 철저하게 규칙적으로 생활함과 동시에 열세 가지 덕목을 정해 놓고 철칙으로 지켰다.
그는 “절제(과식하지 말고 기분 좋아질 만큼 술 마시지 말 것), 과묵(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말 것), 질서(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사업에 있어 시간을 맞출 것), 결단력(결정한 것을 꼭 행동에 옮길 것), 검약(나 또는 다른 이에게 선행을 하는 일 외에는 절대로 돈을 쓰지 말 것), 근면(1분도 낭비하지 말 것), 중용(극단적인 것을 피할 것), 청결(몸, 옷, 주거지의 불결함을 참지 말 것), 침착(사소한 일이나 불가피한 상황에 동요하지 말 것), 정결(건강이나 자손을 위해서만 성교를 할 것), 겸손(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닮을 것)”을 지켰고, 거의 무학이지만 막대한 독서량으로 실력을 키운 것이 자신의 성공의 근간이 되었다고 스스로 분석한다.

얼 짱, 몸 짱, 실력 짱 등 누구든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철저한 자기 훈련, 자기 관리로 인간 시간표가 된 이들은 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 사랑할 수 없는 자

신체장애에 ‘악이나 공포’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분명 문학도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서 ‘악당’들은 대부분 신체적으로 모종의 결손이 있거나 ‘정상’이 아닌 모습을 하고 있다. <헨젤과 그레텔>에 등장하는 마녀는 다리를 절고, 럼펠스틸스킨은 난쟁이이고. <보물섬>의 롱 존 실버는 나무다리에 애꾸눈, <피터 팬>의 악한 캡틴 훅은 외팔에 갈고리를 끼고 있다.

만화나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신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사람이 자동적으로 악한 성품이나 도덕적 결핍과 연결되는 예는 허다하다. 70년대의 <외팔이 시리즈>를 비롯하여 ‘하록 선장’ 은 애꾸눈이고, <뽀빠이>의 브루터스는 거인인데다 팔뚝에 커다란 흉터가 있고, <은하철도 999>에 등장하는 악인 등도 곱추  이거나 외팔이거나 모종의 신체 기형, 도는 결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디즈니 프로덕션의 <미녀와 야수>는 단적으로 ‘아름다움과 추함’ 이라는 외모의 상치로 선과 악의 대비를 시도한 제목이다.
매부리코에 관절염으로 다리를 절룩거리는 근시 노파가 밝고 아름다운 성품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적이 없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설 공주는 품성 적으로도 완벽한 선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여왕은 백설 공주에게 사과를 먹이는 악한 일을 하기 위해 사마귀가 나고 허리가 굽어 신체적으로 추한 노파의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동화 속에서 ‘착한 일’이 보상받는 길도 매우 ‘육체적’이다. 미운 오래새끼는 아름다운 백조가 되고, 징그러운 두꺼비는 잘생긴 왕자님이 되고, 괴물같이 생긴 짐승은 멋진 왕이 되고, 딸을 만난 행운이 완전하기 위해서 심 봉사는 눈을 떠야 하고, 착한 혹부리 영감은 혹이 덜어져 나가서 ‘정상’이 되어야만 이야기가 끝날 수 있다.
소위 ‘고전’에 속하는 문학작품에서도 이런 전통은 계속된다. 어만 멜빌의 <백경,1851>에 등장하는 외다리 선장 에이헤브이자마, 이제 못지않게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도 유명하다. 실제 역사상의 리처드 3세는 장애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그의 악한 성향을 표현하기 위해 조산으로 인해 추하고 몸이 비고인 기형으로 그를 묘사하고 있다.

나는 기형이고. 미완성이고. 반도 만들어지지 않은 채
너무 일찍이 이 생동하는 세계로 보내져
절뚝거리고 추한 나의 모습에
곁에만 자나면 개들도 짖는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날을 즐기는
사랑하는 자가 될 수 없기에
나는 악인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는다.

  - 1막 1장

어떤 때는 반대로 장애에 극단적인 ‘선’의 의미가 부과되기도 한다. 어리석을 정도로 순수한 사랑의 주인공 노틀담의 곱추, 코주부 시라노 드 벨쥐락이 있고, <크리스마스 캐럴,1843>의 티미도 있다.

신체장애는 단지 의학적 케이스일 뿐, 악이든 선이든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또한 인간 치유의 역할을 가진 문학이 한 집단에게 부정적한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문학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젠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장애이든, 인간관계 장애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애이든- 아무리 권력 있고 부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왜 유독 신체장애에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8)  별들이 드리운 밤을 눈앞에 보며,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 알베르 카뮈

* 로미오의 실수

  어떤 학생이 있었다. 흡연에 대한 찬반 토론을 하는 시간에 그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은 영문학도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모두 다 아시죠? 로미오는 줄리엣이 단지 잠든 것인 줄 모르고 독을 마시고 죽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로미오가 흡연가 였 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겁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독을 마시기 전에 아마 줄리엣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위해 담배를 피웠을 겁니다. 그러는 동안에 줄리엣은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나 둘은 행복한 재회를 했을 겁니다. 그러므로 로미오의 비극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9) 모든 삶의 과정은 영원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고통, 기쁨,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어차피 자나가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회생하는 봄에 새삼 생명을 생각해 본다.
   생명이 있는 한, 이 고달픈 질곡의 삶 속에도 희망은 있다.

* 생명의 봄

“지금 난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이 끔찍한 시기를 견디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환청이 들리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제껏 나의 모든 행복은 당신이 준 것이고, 이제 더 당신의 삶을 망칠 수 없습니다.”
1941년 3월 28일, <등대로> <미세스 댈러웨이> <세월> 등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글을 적은 쪽지를 남편에게 남겨 놓고 산책을 나가서, 돌멩이를 주워 외투 주머니에 가득 넣고 아우스 강으로 뛰어들었다.
예술가나 작가 중에는 유난히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많다. 반 고흐나 차이코프스키가 그렇고, 작가 중에 미국 시인 하트 크레인은 보트에서 뛰어내렸고, 랜텔 제렐은 신혼여행 가는 자동차에서 뛰어들었고, 실비아 플라스는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새라 티즈데일은 떠나간 연인에게 <나 죽으면 그대는...>이라는 아름다운 서정시를 유서 대신 써 놓고 수면제를 먹었고, 또 다른 미국 시인 앤 색스턴도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자살에 성공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림자처럼 다가오는 치매기에 대한 공포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1961년6월 권총자살 했다. 1928년에는 그의 아버지가 똑같은 방식으로 자살했으며 그의 형, 누이에 이어 1996년에는 손녀이자 유명한 배우였던 마고 헤밍웨이가 자기 할아버지의 기일에 자살함으로써 한 가족 중 다섯 명이 자살한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는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를 쓴 이장희가 있다.

성서 구절을 실제상활에 적용시켜 해석해 놓은 유대교의 <미드라시>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고 한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보석 세공인 에게 “반지 하나를 만들되 거기에 내개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감정 조절할 수 있고, 동시에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다시 내게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석세공인은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다.
왕자가 대답했다. “그 반지에 ‘이것 역시 곧 지나 가리라’고 새겨 넣으십시오. 왕이 승리감에 도취해 자만할 때, 또는 패배해서 낙심했을 때 그 글귀를 보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입니다.”

모든 삶의 과정은 영원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고통, 기쁨,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어차피 지나가게 마련이다. 이 고달픈 질곡의 삶 속에도 희망은 있다.


10)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

* 그 사람을 가졌는가

“선생님, ‘인생 성공 단십백’이 뭔지 아세요?” 학생이 물었다. 모른다고 답하자 학생이 말한다.
“한평생 살다가 죽을 때 한 명의 진정한 스승과, 열 명의 진정한 친구, 그리고 백 권의 좋은 책을 기억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래요.”
‘진정한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 함석헌 옹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에서 말한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문학의 숲’ 으로 가는 길에서 中 > 

책 읽는 즐거움, 특히 인류가 역사 속에서 이룩한 소중한 지적 재산인 문학작품을 읽고 즐기는 기쁨을 상실하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불행한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립 시드니가 말했듯이 문학은 단순한 현실의 모방이 아니라, 시인과 작가가 무질서한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와 도덕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구성한 보다 심원한 미학적인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고전적인 문학작품을 읽게 되면 현실 세계에서 접할 수 없는 정신적인 만족을 얻게 되고 그 기쁨이 가져오는 심리적인 인식작용을 통해서 비로써 우리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변신하게 된다. 예부터 대학에서 젊은 학생들이 전문분야를 공부하기 전에 고전읽기를 교양교육의 중심으로 설정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태동(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3. 새기고 싶은 글귀

사랑은- 생명 이전이고
죽음- 이후이며-
천지창조의 시작이고
지구의 해석자
  -에밀리 디킨슨

“이제껏 내 길을 밝혀주고 내가 계속해서 삶을 기쁘게 대면할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준 세 가지 이상은 친절과 아름다움과 진리였다.” 
-아인슈타인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고, 네가 세상을 보고 찡그리면 세상은 너에게 화를 낼 것이다.”
-<정글북>의 작가 러디야드 키플링

“불가능을 꿈꾸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괴테

“모든 인간은 누구나, 설사 그 사람이 백치라 할지라도 감정의 백만장자이다.”
-<카프카의 친구>등의 작가 아이작 싱어(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자료정리:곽미희 mihee1984@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

:
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