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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30. 00:41

인간문제(강경애)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30. 00:41

1. 작가 소개

강경애(1906~1944년)

황해도 송화 출신인 강경애는 장연에서 성장해 평양 숭의여학교를 다녔으며 이때 장연 태생의 양주동을 만나 연애에 들어간다. 숭의여학교 3학년 때 동맹휴학과 관련해 퇴학당한 그는 양주동과 함께 서울로 와서 동거에 들어갔으나 1년이 못 되어 헤어지고 장연으로 돌아간다. 강경애가 처음 만주에 간 것은 1920년대 후반으로, 1년 반 정도 용정 일대의 교육기관에서 강사 노릇도 하고 무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다시 장연으로 돌아왔다. 강경애는 1931년 6월, 남편 장하일과 함께 다시 간도로 이주하며, 신병이 악화되어 장연으로 아주 돌아온 1939년까지 대체로 간도에 머물며 창작과 평론 활동을 펼쳤다. 그의 대표작 인간문제를 동아일보에 연재한 것(1934.8~12)도 간도에서였다.

내용 출처 : http://cafe.naver.com/2hyung.cafe

『작가의 생애와 작품』

1906년 -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남(4월)
1910년 -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이주함
1921년 - 평양 숭의여학교 입학
1923년 - 학생 동맹휴학 관련자로 퇴학
1924년 - 《금성》지에서 <책 한권> 발표
1925년 - 《조선문단》에 시<가을> 발표
1931년 - 단편 <破琴> 발표, 장편 <어머니와 딸>로 등단, 결혼 후 간도 용정으로 이주함
1932년 - 단편 <父子>, <그 여자>, 수필 <간도를 등지면서>, <간도야 잘 있거라> 발표
1934년 - 《동아일보》에 장편 <인간문제> 연재, 중편 <소금>, 수필 <표모(漂母)의 마음>
1935년 - <모자(母子), <원고료 이백 원>, <해고> 발표
1936년 - 단편 <지하촌(地下村)>, <산남> 발표
1937년 - <어둠> 발표
1939년 - 《조선일보》간도 지국장을 맡음, 고향인 장연으로 돌아옴
1944년 -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남


2. 시대적 배경 (1910~1930년대)

일제는 한국을 식민지화한 이후 농촌을 수탈하고 농민들을 극심하게 착취하였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농촌은 더욱 황폐해지고 대다수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는 토지조사 사업(1910년)을 강행하여 식민지 지주제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인과  한국인 지주들을 앞세우며 수탈을 확대, 강행해갔다. 특히 일본인 지주 등이 헐값에 땅을 불하받는 반면 한국인 농민들은 토지를 상실하고 개인 지주나 농장의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노예처럼 초과 노동을 강요당하였다. 더구나 1920년대에 들어 일제는 쌀 증산을 위하여 산미증식계획과 수리 조합사업 등을 강행하였고 이로 인해 더욱 궁핍해진 농민들은 만주나 일본으로의 이주를 하였다.

한편 1920년에 회사령이 철폐되어 일본의 자본이 본격 침투했고 이로부터 많은 공장이 설립되고 노동자의 수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자본가들은 더 많은 초과 이윤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착취하였고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더욱이 미성년자나, 부녀자들도 열악한 환경에서 아무런 보호 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이런 노동조건을 극복하려는 노동자들의 의지와 자각이 높아지고, 새로이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보급되면서 1923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직업별 노동조합의 결성이 본격화되었고 노동쟁의 도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소시민, 지식인 출신의 운동가들이 주도함으로써 노동자들 자신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지만 노동 야학 등을 통해 계몽활동이나 의식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노동자들은 점차 운동의 주체로 성장해갔다. 그래서 1930년을 전후로 노동운동이 크게 고조되었다.


3. 내용 요약

용연 마을, 이 마을의 최대 지주인 덕호가 살고 있다. 덕호는 자신의 힘과 재력으로 불합리한 제도를 이용하여 농민들을 착취하고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데 여념이 없다.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식량을 빌려주고 곡식을 추수할 때 쯤 돈을 받으러 가서 주지 않으면 논에 있는 벼들을 아직 베지도 않은 상태로 뺏어가고 또한 식량 값이 오르기 전에 자신이 빌려준 돈과 곡식의 양을 바꾸는 식으로 엄청난 차익을 얻는다. 또한 면장이 되면서 말로는 농민들을 위한 수단이고 계획이라는 명목아래에 세금을 더 많이 걷으며 소작인들이 먹고 살기 더 어렵게 만든다.
어느 날 덕호는 민수에게 이웃마을 소작인으로부터 빌려준 돈을 받아오라고 시킨다. 하지만 민수는 그 집의 궁핍한 생활을 보고 돈을 못 받아 오고, 덕호가 화를 내며 던진 산판을 맞고 멍이 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죽게 된다.
민수가 죽고 그의 마누라도 따라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자 그의 남은 딸(선비)은 덕호네 집으로 들어가서 그 집안의 하인 할멈과 함께 덕호네 집안일을 하며 살아간다.

어느 여름 덕호의 딸인 옥점과 그의 애인인 신철이 집에 오게 되고 신철은 선비를 보는 순간 한눈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하루 이틀 있다가 올라가려고 했지만 한달 두 달이 되도록 계속 있게 되고 신철은 계속 선비에게 말을 걸 시기를 찾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옥점의 집요한 애정 표현을 모른척하면서 선비로부터 느껴지는 순수함에 마음이 끌리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남기고 서울로 올라간다.
신철은 서울로 돌아가서도 결혼에 대해 큰 압박을 갖게 된다. 덕호 영감이 신철의 집에까지 찾아와서 신철 아버지를 만나고 혼인이야기에 대해 나누고, 그 아버지 또한 덕호 집안의 제력을 보고 신철이를 옥점이와 맺어 주려고 한다. 신철은 이런 아버지를 보며 실망하고 집을 나오게 된다. 인천 부두에서 노동을 하면서 신철은 노동자들에게 현실을 알게 해 주고 진정한 노동자로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그저 자신들 하루 먹고 사는 것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을 계몽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첫째를 만나면서 다시금 노동운동에 힘을 가하게 된다.

첫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그리고 이서방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선비가 뒷산으로 싱아를 따러 갈 때 옆에서 선비의 싱아를 빼앗아 먹고 놀리던 첫째 또한 용연마을 소작인으로 덕호네 일을 도와주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추수기에 덕호와 다투는 일이 생기고 이 일로 첫째는 이 마을에서 일거리를 얻지를 못하게 되고 ‘선비를 만나 아들, 딸 낳아 오순도순 잘 살겠다는’ 아직은 선비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두고 용연마을을 떠나 상경했고 인천 부두 노동현장에서 신철을 만나게 된다. 신철로부터 노동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노동운동에 대해 눈을 뜨면서 신철을 도와 방적공장 여공들에게 종이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리고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을 성사시키게 되지만 그 후 경찰에 잡힌 신철이 사상을 전향했다는 소식을 받게 되고 괴로워한다.

한편 덕호네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선비는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덕호의 말에 속아 순결을 잃게 되고 이 일이 덕호의 아내와 옥점에게 알려져서 집에서 쫒겨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처지로 내쫓겨진 간난이를 찾아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그 후 선비는 간난이와 함께 인천의 방적공장의 노동자로 일을 하는데 그곳에서 간난이에 의해 노동운동에 눈을 뜨게 되고 노동운동을 하다가 밖으로 탈출한 간난이의 뒤를 이어 활동을 하지만 폐병에 걸려서 죽게 된다.


4. 등장인물 소개 (interview types)

『선비네 집』

민수 (선비의 아버지)

자기소개 좀 해 주시죠?
- 저는 ‘덕호’라는 용연마을 지주 밑에서 수십 년을 일해 온 일꾼이며 딸아이와 마누라를 둔 가장 입니다. 덕호 라는 그 영감 밑에서 아무 불평 없이 착실하게 일을 했고 그만큼 그 영감도 저를 인정하고 중요한 일들을 제게 맡기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다 돈 때문에 그렇게 됐죠. 덕호 영감이 저에게 다른 마을 소작인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오라고 했어요. 그 당시 눈도 많이 내리고 예년 보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 집에를 가 봤더니 아이들은 밥을 며칠 굽었는지 다들 얼굴이며 몸에 뼈밖에 남지 않았고 생활도 많이 부실해 보였어요. 그러니 제가 어찌 돈을 달라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다른 소작인으로부터 받은 돈이 있어 1원을 그 식구에게 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영감이 ‘돈을 받아오지는 못할지언정 주고 오냐고!’ 하면서 산판을 저에게 던지는 거요. 그 후로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이렇게  됐죠. 세상에 그런 못된 영감이 어디있는지...

선비 어머니

- 저도 그렇게 많이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할 말은 없네요. 일만 죽어라 하다가 저도 이 영감 죽은 후 시름시름 앓다가 따라 갔거든요.

선비

선비양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죠?
- 그런가요? 호호~

소개 좀 해 주실래요?
- 저는 위의 부모님아래에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몸담았던 덕호 어르신 집으로 들어갔지요. 거기서 그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는 할머니를 도와 허드렛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간난이‘ 언니를 만나 같이 인천 방적공장에서 한 1년 정도 일도 했고 그 언니 덕분에 노동운동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죠. 하지만 공장에서의 가혹한 노동과 생활환경의 열악함 때문에 폐가 좋지 않아서 저도 짧은 나이에 죽었답니다.

집안 식구 수명들이 짧군요.
- 그런 셈이죠.

그런데 왜 서울로 올라갔나요?
- 덕호 어르신이... 아니 덕호 영감이 저의 순정을 빼앗아 갔어요. 어머니가 아프실 때 저희집에 자주 오셔서 먹을 것도 갔다주고 재정적인 도움을 주신분이라 그분을 믿고 그 집에 들어갔건만 그것이 다 제 외모 때문이었어요. 공부 시켜준다고 사람 설레게 해놓고 정말 아버지처럼 부르라고 해서 아버지로 모시고 따랐는데...
어느 날 옥점이 모녀가 제가 그 영감과 내통했다는 것을 알고 저를 모함했어요. 신철이라는 사람과 제가 내통했다는 거짓으로 절 내쫒게 했죠. 영감도 그 말을 믿는 듯 했어요.
그래서 저는 ‘간난이’언니 엄마에게 가서 언니가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고 어머니도 자신의 딸과 같은 처지가 된 제가 불쌍해 보였나 봐요. 그래서 ‘간난이’ 언니를 찾아 서울로 올라오게 된 거에요.

그럼 서울에서는 어떻게 살았어요?
- 처음에는 간난이 언니가 서울의 방적공장에서 일을 해서 그 돈으로 살다가 인천에 크게 방적공장이 생긴다기에 같이 인천으로 갔죠. 인천의 방적공장은 엄청 컸어요. 서울의 것 보다 10배는 더 컷을 걸요. 거기에서 저희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지냈어요.

‘간난이’라는 사람은 누구에요?
- ‘간난’ 언니요? 그 언니도 고향 선배언니에요. 그리고 저하고 처지도 비슷했죠. 저보다 먼저 덕호 영감에게 순정을 빼앗기고 나중에 쫓겨나서 서울로 올라온 언니에요. 그리고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말도 아주 유식하게 잘하고 또 언니가 공장에서 노동인권에 대해서 우리 동료들에게 그 의식을 일깨우려고 노력한 훌륭한 분이에요.

그렇군요. 그럼 그 공장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정말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에게 제공되는 화장품이며 기타 생활용품을 시중가격보다 싼 정가로 우리에게 판매한다고 했고 또한 나머지 돈은 회사에서 저축을 해서 3년 후 계약이 만료가 되면 목돈으로 준다고 했죠. 그리고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기숙사생활을 만들었고 우리들의 저축을 장려하여 외출을 3주에 한 번씩만 허용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노동운동에 눈을 뜨면서 이것들이 다 우리를 이용해 먹고 우리들의 권리를 빼앗고 인권을 착취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노동운동을 시작하려 했죠.

혹시 남자친구 있었나요?
- 저요? ㅋㅋ 아뇨 없어요. 하지만 절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죠. 첫째라는 아이인데 어렸을 때 산에서 싱아를 빼앗아 먹고 날 귀찮게 한 아이... 그게 그 아이가 제에게 보인 애정의 표시 였나봐요. 제 어머니가 앓아계실 때 어느 새벽에 첫째가 밤을 새워 가며 캐 온 듯한 소태뿌리를 가져왔는데 그 정성을 저는 웃방 구석에 팽개쳤어요. 그리고 덕호 영감이 준 돈만 가지고 있었죠. 정말 지금 생각하면 첫째의 순수했던 마음을 제가 몰라봐 부끄럽고 제 자신에게 화가 나요. 제가 공장에 있을 때에도 첫째를 우연히 밖에서 보게 됐는데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다음에 만나면 나도 너를 좋아했다고 지금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지금 이렇게 됐네요.

『첫째네집』

첫째

소개 좀 해 주실래요?
- 제 이름은 첫째에요. 동생이 있었다면 이름은 둘째가 되었을 텐데 동생이 없어요. *^^*
저는 마을에서 소작인으로 살았어요. 특히 덕호 영감 밑에서 일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갔죠. 그런데 한번은 ‘욱’ 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일 이후로 전 일자리를 잃고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어요. 그 일이 뭐냐면 덕호 영감이 개똥이네 논의 벼를 그대로 가져가는 ‘입도선매’ 라는 것을 하더라고요. 결국 주먹이 오고가서 경찰서에 끌려갔죠. 이 일로 덕호 영감하고 사이도 나빠졌어요. 헌데 더 웃긴 것은 저는 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한 건데 그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고 대접도 하지 않는 거에요. 같이 싸워서 권리를 찾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저 덕호 영감 눈에서 벗어날까 두려워했죠. 돈이란 게 그렇게 무서운 건지...
그리고 돈을 못 버는데 살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어머니와 이서방을 놔두고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오려고 상경한 거에요. 빨리 돈을 벌어서 어머니한테 돌아가려고요...

그럼 서울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 주로 인천 부두에서 노동자로서 살았어요. 그곳에 큰 방직공장을 짓는데 그 건설현장에서 막노동도 했고 짐들도 나르고 그랬죠. 그러다가 유신철 이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분은 정말 유식하고 이런 곳에 있을 분 같지는 않아 보였어요. 그분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현재 우리의 노동사회에 대한 잘못된 환경에 대해 배웠고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생각을 알리려고 노동운동을 하게 되었죠. 선비가 있는 방적공장에도 그런 안내문들을 알리는 일을 했는데 그곳의 사람들도 저처럼 빨리 노동운동에 눈을 뜨기를 바랬어요.

선비라는 사람을 아나요?
- 선비 말씀인가요? 네... 제가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아이에요. 전 그 아이를 만나 ‘행복하게 같이 아들딸 낳고 살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질 않아 그러지 못했어요. 선비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다가 인천으로 올라왔을 때 선비를 한번 본적이 있었어요. 방적공장 여직원들이 야유회를 가는 것 같았는데 거기에 선비가 있더라고요. 마음은 너무 기뻤지만 차마 말도 떨어지지 않았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어요. 저는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철조망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지내다가... 마지막에 한번 얼굴을 본 것이... 선비가 폐결핵에 걸려 간난동무 집에 영원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네요.

이서방

- 전 첫째네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쪽 다리를 다친 후로 이 나무다리 없이는 걷기가 힘듭니다.

주로 무슨 일을 하시나요?
- 일을 어떻게 합니까! 이런 몸을 이끌구... 그저 밥이나 굶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구걸하고 다닙니다. 첫째가 어렸을 적에는 제가 여기저기서 얻어온 식량으로 세식구(첫째, 첫째엄마, 이서방) 가 먹고 살았죠. 지금도 많이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첫째가 어디로 갔는지 소식도 없어 안타까울 뿐이에요. 보고 싶은데...

첫째 엄마

- 할 말이 없네요. 제가 무슨 말을 합니까.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그냥 지내고 있습니다. 첫째가 집을 나간 것이 다 제 잘못인거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첫째가 덕호 영감에게 대들어서 경찰서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전 아들놈에게 ‘덕호 영감에게 대들지나 않았으면 그래도 일자리나마 얻어서 먹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첫째에게 원망을 많이 했죠. 첫째는 그게 서러워서 어디로 떠난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와 줬으면 좋겠네요.

『덕호네집』

덕호

정덕호씨 맞습니까?
- 그렇소. 내가 정덕호란 사람이요. 무슨 일로 오셨소?

이 용연 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란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 허허, 무슨 그런 말을... 물론 내가 이 마을 최대 지주인건 사실이요. 하지만 솔직히 정당하게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좀 쑥스럽소.

그럼 그 뒷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 참네... 내가 재산을 모은 법은 간단하오.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제때 값지 않으면 이자를 더 물게 하고 아니면 땅을 빼앗았소. 그리고 말로는 그 사람들을 위한다는 식으로 했지. 그러다가 한번은 개똥이라는 사람한테서 빌려준 돈을 받으려고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잖소. 그래서 그가 지은 벼를 보니 살이 아주 통통히 농사를 잘 졌다군. 그래서 바로 그 것을 빼앗아 버렸소. 그런데 첫째라고 하는 무식한 녀석이 달려드는 것이 아니오? 내 생각 같아서는 경찰서에 집어넣고 싶었지만 마을 사람들 눈도 있고 내 위치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소. 내가 또 이곳에서 면장을 지내고 있기에 세금도 많이 거두웠지. 그러니 자연히 돈이 쌓이더군.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해도 뭐라 하지 못하지. 나한테 잘못 보여서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게 없거든! 그러니 나는 편안하게 돈을 벌수도 있었던 것이오.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별 어렵지 않으니 해 주지. 우선 내 마누라 (옥점이 엄마), 그리고 우리 귀여운 딸(옥점이) 이 있고 머슴살이 하는 유서방과 할멈이 있소, 그리고 선비라는 계집아이도 있었지...

선비라는 계집아이가 누구죠?
- 그 계집아이? 예전에 민수라고 내가 부리던 한 하인이 있었소. 수십 년 동안 내 아래에서 일만 묵묵히 한 놈인데 어느 날 갑자기 죽었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내가 그놈에게 그때 뭘 던져서 (산판) 그 놈이 죽었다고 하는데 말도 안 돼는 소리요! 하여튼 그 놈 딸 이였소.
그 계집아이가 생긴 것이 이런 시골에 있기는 아까웠지... 그래서 그 어미 아플 때 내가 몇 번 약도 주고 돈도 좀 주면서 돌봐줬고 그 부모들 다 죽은 뒤 내가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소. 물론 그 아이가 불쌍해서 라기 보다 그저 이뻤고 또 그때 있던 간난이라는 애가 싫증나고 해서 그랬소. 이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그래도 내가 그 계집을 얼마나 이뻐라 했는데! 내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 지금 마누라 버리고 첩으로 두고 같이 살려고 했소. 근데 그것이 신철이라는 놈과 내통했다는 말을 들으니 정이 확 가시더군. 어느 날에 보니까 없어져서 이 계집이 도망갔구나 했지.

신철이라는 사람은 누구요?
- 그 사람은 우리 딸 애인이요. 난 그 사람이 내 사위가 됐으면 했소. 그래서 내가 서울에 올라가서 신철이라는 사람도 만나봤고 또 그의 아버지도 만나보았소. 교육자의 집안이라 그런지 아버지도 훌륭해 보이더군요. 그래서 혼사 이야기도 했었는데... 신철이는 내 딸이 싫었나 보오. 어느 날에 딸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이 집을 나갔다고 하더군요.

옥점 어머니

- 난 뭐 할 말이 없네. 이 영감이 속 안 썩히지 않고 살면 그만이오. 그리고 우리 예쁜 딸이 빨리 결혼을 했으면 좋겠소. 그리고 선비 그 계집 솔직히 나도 질투 했었소. 영감이 얼굴 이쁜 계집에게 눈이 돌아가는데 좋아할 사람 있겠소? 

옥점

소개 좀 해 주실래요?
- 저는 서울서 유학을 하고 있어요. 유학을 하면서 유신철 이라는 사람을 만났고 그에게서 호감을 느꼈죠. 저가 그를 만난 건 어느 기차 안 이었어요. 그의 널찍한 몸과 남자 같은 자세가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지난 여름방학 때 그를 데리고 집에 왔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나 봐요. 거기서 하필 신철씨가 선비를 볼게 뭐람... 선비는 모르겠는데 신철씨가 선비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았어요. 나에게는 말도 잘 안 하고 관심도 주지 않으면서 선비를 보는 눈빛은 이상해 보였거든요. 내가 그의 집까지 가서 부모님께 결혼의사를 보였고 우리 아버지가 또 그 집에 가서 혼인문제를 밝혔는데 신철씨는 저의 뭐가 그리 싫은지 아니면 선비 때문인지 자꾸 대답도 피하고... 나중에 연락을 들었는데 집에서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그 덕분에 선비에 대한 질투심만 가득 찼죠. 그래서 엄마랑 같이 선비를 모함해서 내 쫒았잖아요. 하지만 아직도 전 신철씨가 보고 싶어요.

『신철이네 집』

신철 아버지

- 저는 그저 평범한 교육자이고 두 아들의 아빠일 뿐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신철

소개 좀 해 주시겠습니까?
- 전 서울의 일류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입니다. 전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현 실태를 일깨워 주고 우리 노동자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고 싶었어요. 전 원치 않은 결혼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집을 나오게 되었고 아는 동무의 집에서 같이 하숙을 하게 되었죠. 얼마 후 인천으로 가서 노동자들의 삶을 느껴보고 그들을 계몽 시키려고 노력했고. 거기서 첫째라는 사람을 만났고 이사람 역시 제가 보기에 아직은 무지하지만 가르치기만 한다면 훌륭한 노동 운동가가 될 거라 확신했죠. 저도 물론 열심히 노동운동을 했지만 저 혼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운동 주동자로 경찰에게 잡혀서 감옥에 살게 되었고 저도 역시 사람인지라 할 수 없이 사상전환을 하게 되어 지금은 돈 많은 부인 만나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원치 않은 결혼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 실수 있나요?
- 그러죠. 제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한 여자를 만났어요. ‘옥점’이라는 여성인데 처음에 봤을 때 귀여웠고 집에서 사랑을 많이 받아서 철이 좀 없다는 것을 느꼈죠. 그녀를 일시일시로 데리고 놀 여자지 오래 사귀어 놀 여자가 되지 못할 것을 알았어요. 어느 날은 그녀를 따라 그녀 집에 갔는데 거기서 선비라는 여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굴도 순수하고 예쁘고 게다가 착한 그녀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첫눈에 반하게 되었죠. 하지만 말할 자리가 아니었고 그 후 전 계속 그녀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옥점씨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오시더니 저희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에 대해서 말씀 하셨나봐요. 저는 선비를 좋아하는데 그리고 ‘옥점’과 결혼하기 싫은데 저보고 ‘네가 출세하려면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까지 존경해 오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순간 무너져버렸고 그 이유로 제가 집을 나온거에요.

인천에서의 노동생활은 어땠나요?
-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 사람들과 같은 덩치를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일도 힘들고 또 거기에다 더 힘든 것은 사람들의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내가 일을 못한다고 나를 무시하고, 방해가 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일만 해 가는 그저 위에서 하라는 데로 하고 있는 그런 노동자들이 저를 더욱 힘들게 했죠. 그래서 그 후 더는 노동시장에 나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고 노동운동을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사상을 전환한 이유를 듣고 싶은데 말해줄 수 있나요?
- 우선 제자신의 간사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집에서 나올 때에는 ‘옳은 삶’을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제 생각은 좀 더 편한 곳으로 생각하고 갈망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싫었던 옥점이가 선비보다도 먼저 생각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노동운동을 주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여기서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한 가정형편의 궁핍등의 상황이 제가 사상을 전환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기타 인물』

간난이

- 전 별로 할 말이 없네요. 어렸을 적 덕호 영감에게 순정을 뺏기고 나중에 내 쫓기어 서울에서 방적공장을 다녔어요. 그 후 선비가 나를 찾아왔고 우리는 인천의 큰 방적회사로 가서 일을 하게 되었지요. 사실 저는 일을 하는 것 보다 중요한 임무가 있었어요. 그건 우리 사회의 노동가들에게 노동의식을 새롭게 바꿔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의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 투쟁하고 서로 화합하여 옳은 대우를 받도록 하고 싶었어요.


5. 기억에 남는 글귀

『그는 웬일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자기의 초라한 모양을 굽어보았다. 순간에 그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듯한 고적함을 깨달았다. 자기는 노동자의 동무가 되려고 필사의 힘을 다하여 노동시장에 나왔거늘 그들은 저렇게 자신을 비웃고 조그만 동정을 기울이지 않는다.』
- 신철이 처음 노동시장에 나와서 하루를 일하고 3~4일을 쉰 뒤 다시 나와서 일을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이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무시할 때

『헤어지는 그들은 신철이를 흘금흘금 돌아보며 킥킥 웃었다. 신철이는 그나마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했으니 작별의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그들이 이렇게 픽픽 웃는 데는 그만 입이 꽉 붙고 말았다. 그는 어정어정 발길을 옮겨 놨다. 그리고 웬일인지 노동자와 자기 사이에는 언제부터인가 짐작할 수 없는 그때부터 어떤 보이지 않는 간격이 꽉 가로막혀 서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동시에 자신은 좌우편을 가까이할 수 없는,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듯하여 그는 불쾌하였다.』
- 하루 노동을 마치고 돈을 받은 뒤

『이 시커먼 뭉치! 이 뭉치는 점점 확대되어 가지고 그의 앞을 캄캄하게 하였다. 아니, 인간이 걸어가는 앞길에 가로질리는 이 뭉치, 이 뭉치야 말로 인간 문제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 인간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이문제를 위하여 몇 천만 년을 두고 싸워 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앞으로 이 당면한 큰 문제를 풀어 나갈 인간이 누굴까?』
- 마지막 선비가 간난이네 집에서 폐병으로 죽어있는 모습을 보고 첫째가 생각한 장면

 

자료정리:김철중 ztoa99@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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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