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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30. 00:37

카인의 후예(황순원)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30. 00:37

1. 작가 소개 (황순원)

1915년 3월 26일 평안남도 대동(代同)에서 태어났다. 1929년 평양 숭덕소학교(崇德小學校)를 나와 같은해 정주(定洲)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에 입학, 다시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로 전학했다.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 이듬해 시 《나의 꿈》을 《동광》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3년 시 《1933년 수레바퀴》 등 다수의 작품을 내놓고, 이듬해 숭실중학을 졸업한 뒤 일본 도쿄[東京] 와세다 제2고등학원[早稻田第二高等學院]에 입학했다. 이 무렵 도쿄에서 이해랑·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연구단체인 '학생예술좌(學生藝術座)'를 창립, 초기의 소박한 서정시들을 모아 첫 시집 《방가(放歌)》(학생예술좌)를 출간했다.

1935년 동인지 《삼사문학(三四文學)》의 동인으로 시와 소설을 발표, 다음해 와세다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고 모더니즘의 영향이 짙은 제2시집 《골동품(骨董品)》(학생예술좌)을 발간했다. 이해 동인지 《창작》을 발행하고 시와 소설을 발표했으며, 1939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1937년부터 소설 창작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단층(斷層)》의 동인으로 주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발표하다가, 첫 단편집 《늪》(1940)의 발간을 계기로 소설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이후 《별》(1941), 《그늘》(1942) 등의 환상적이며 심리적인 경향이 짙은 단편을 발표했다.

195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80년부터 '문학과 지성사'에서 《황순원전집》이 간행되었다. 아시아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1942년 이후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평양에서 향리 빙장리로 지냈다. 《기러기》 《병든 나비》 《애》 《황노인》 《머리》 《세레나드》 《노새》 《맹산할머니》 《독 짓는 늙은이》 등의 단편과 시 《그날》 등 많은 작품을 써두고 8·15광복을 맞았다.

1946년 서울중학교 교사를 역임, 이 무렵 《술》(1947), 《목넘이 마을의 개》(1948), 장편 《별과 같이 살다》(1947) 등을 발표하고, 광복 후의 단편만을 모은 제2단편집 《목넘이 마을의 개》(1948)를 간행하여 단편작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이후 《별과 같이 살다》 《카인의 후예》 《인간접목》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일월》 《움직이는 성》 《신들의 주사위》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춤으로써 황순원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소설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 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소설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인물사전


2. 시대적 배경

미군이 1945년 9월8일 인천에 상륙하기 이전인 8월9일 소련군은 이미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진주하였고 8월24일 평양에 사령부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은 군정을 통한 직접통치를 피하고 각 지방별로 좌우합작의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자치를 하게 함으로써 간접통치 방식을 썼다. 그러나 김일성을 비롯한 항일 빨치산 세력이 들어오면서 국내 좌익을 누르고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1946년에 들어서자 재빠르게 개혁사업에 들어갔다. 김일성위원장을 중심으로 독재 정권을 세우고 이른바 ‘반제반봉건 민주혁명’을 실행에 옮겼다. 민주혁명의 중심사업은 ‘토지개혁’ 과 ‘중요산업국유화’ 였다.
1946년 3월에 단행된 토지개혁은 4%의 지주가 전체농지의 58%를 소유하고 소작농이 전체 농민의 73%를 차지하고 있던 북한의 농촌경제를 개조하기 위해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졌다. 토지개혁의 결과 지주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었으나 소작빈농이 하층 중농의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토지개혁에서 혜택을 입은 이들이 공산당에 대거 입대하여 처음에 4천5백여 명의 당원으로 출발한 공산당원이 토지개혁 직후에는 27만명으로 늘어났다.
토지개혁과 중요산업 국유화는 노동자, 농민에게 한동안 유리한 경제 환경을 만들어 주고 농업 및 공업생산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으며, 공산당의 입지를 강화 시켜 주었다. 그러나 다른 사회주의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급속한 사회개혁은 민족 반역자뿐 아니라 양심적인 지주, 자본가, 종교인, 지식인들에게도 큰 타격을 주어 이들은 38선을 넘어 대거 남한으로 왔다. 그리하여 1947년 말에 이미 월남민이 80만을 넘어섰으며 그 뒤 한국전쟁 중에 월남한 수를 합하여 월남민의 총수는 200만을 넘어섰다. 개혁의 피해자들이 고향을 떠난 것은, 역으로 북한의 개혁을 한층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 반면, 남한사회는 월남민으로 인구가 증가하여 실업자가 더욱 늘어나고 이들이 남한의 반공세력으로 굳게 뭉쳐 반공정책을 강화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3. 등장인물 소개

박훈 -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아버지가 죽자 지주가 된 전형적인 지식인이다. 양심주의자이고 관조적인 사랑의 소유자이나 삼촌의 죽음(용제영감)을 계기로 도섭영감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그에게 칼을 들고 덤벼드는 행동적 인물이다.

오작녀 - 어린 시절부터 훈과 좋아하는 관계였으나 신분적인 차이로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남편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여인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훈이 돌아온 뒤에 그의 수발을 헌신적으로 들어준다. 사랑하는 박훈에게는 온순하고 헌신적이면서, 박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는 당찬 여인이다.

도섭 영감(오작녀 아버지) - 원래 부유한 집 아들이었으나 아버지가 가산을 탕진하면서 부터 떠돌아다니다가 훈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마름이 된다. 해방 후 토지개혁에 앞장서서 지주인 훈을 배신하고 자신의 이득을 추구해나간 냉혈한 기회주의자이다.

삼득이 - 오작녀의 동생으로 말없고 단순하고 무뚝뚝하지만 항상 박훈을 지켜 주려고하는 착한청년이다.

용제 영감(박훈의 삼촌) - 지주,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것에 몰입하게 되는 인물이다. 토지개혁으로 광산으로 끌려갔어도 자신이 아직 처리하지 못한 저수지 공사 때문에 광산에서 도망쳐 나와 저수지까지 오게 된다.

박혁 (용제영감의 아들) - 울분을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 성격의 인물이다. 아버지가 다른곳으로 끌려가자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에게 가장 심하게 했던 도섭 영감을 죽이려 한다.

오작녀 남편 - 건달이지만 나름대로의 의리와 멋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오작녀를 내쫓은 것도 그녀가 싫어서가 아닌 그녀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도록 도와준 멋진 인물이다. 하지만 결국은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다 총에 맞아 죽는다.

개털오바청년 - 전형적인 공산당 조직의 하수인, 용제영감과 박훈에게 상당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4. 줄거리 요약


산막골 고갯길을 넘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박훈이었다. 엔간히 술이 취한 듯 걸음이 허청거렸다. 그는 지난 넉 달 동안이나 어떤 보람을 느껴가면서 운영해오던 야학을 당에서 나온 공작대원에게 접수를 당한 것이다. 원래 그는 평양에서 공부를 하던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조부와 아버지가 죽자 지주가 되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가 야학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 항상 아카시아 울타리에서 기다리는 여인이 있었다.
오작녀이다.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지만 남편의 구박으로 쫒겨나서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의 권유로 훈이 돌아온 뒤에 그의 수발을 헌신적으로 들어주며 같이 지냈다.
며칠이 지나고 남이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는다. 남이 아버지는 면 농민 위원장으로 농민치고 보기 드물게 허약한 사람이었다. 공작대원들은 이 살인사건이 야학을 못하게 막자 불출이와 명구가 저질렀다는 단서를 잡고 그들과 함께 야학을 했던 훈이를 보안서로 불러들어 조사를 한다. 개털오바 청년이 한마디를 했다.

“나는 다 알고 있다! 너희 간나아 새끼들이 야학이라고 시작하는 것부터가 일종 반동 결사다! 농민들을 꾀이려 한 수작이다. 역사라구 해가지고 단군 얘기나 하고....... 다 안다. 너희 간나이 새끼들 본심을! 역사를 그렇게 안개에 싸가지고 진정한 역사적 발전을 감춰보려는 게지? 안된다! 아무리 너희 반동들이 발버둥을 쳐도 이미 역사는 우리 무산대중의 것이다. 우리 무산대중을 조국, 소비에트 러시아의 예를 봐라. 그래 아직도 농민들을 놈들의 노예로 만들어보려는 거냐? 안된다! 지금 노동자와 농민은 자본주의와 지주에 대한 불같은 증오심으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개시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 뒤에는 약소민족의 해방자이시며 은인이신 위대한 스탈린 대원수가 계신다!”

남이 아버지가 죽은 후 면 농민 위원장으로 도섭영감이 임명됐다. 도섭영감은 마름을 한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주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군당부의 압력을 받아 토지 개혁 운동에 앞장을 섰다.

“그러면 동무, 동무가 오늘부터 놈들의 테러에 맞아 죽은, 전 농민위원장 동무의 뒤를 이어 일을 맡아 보시오. 우리의 사업은 잠시라도 공백이 있어서는 안되는거요. 그러면 동무 지금도 이야기 했지만 먼저 지주와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무자비한 투쟁을 해야하오. 그렇게 하면 동무의 과거의 과오는 말하지 않게소.”


곧 토지개혁이 실시되어 지주의 토지를 모조리 몰수해서 농민에게 무상분배를 한다는 말이 이 가락골 마을에도 떠들어오자 사람들은 짐짓 지주들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훈은 누군가 자꾸 자신의 뒤를 쫒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오작녀의 남동생인 삼득이 였던것이다.

훈이는 삼득이 에게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몇 년 전 훈이 처음으로 모판을 만들고 모내기를 했을 때 삼득이와 오작녀가 없었으면 농사는 지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해에 심한 공출이 나왔다. 훈이네는 소출이 공출량 보다도 적었다. 공출 미납한 사람들이 주재소로 불려가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훈이 대신 삼득이가 주재소로 가서 심한 형벌을 받았다. 훈이 또한 그 일을 생각하며 밥을 먹을 때마다 목이 메이곤 했다. -

헌데 이런 삼득이가 요즘 와서는 자기의 뒤를 밟게끔 까지 되다니....... 마음이 서글퍼졌다.
훈이가 윤주사와 토지개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산모퉁이에 서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오작녀의 남편이었다.
둘은 술 한 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꺽.......참, 선생님 오늘 실례 많았습니다. 피꺽......제 혼자서 지꺼레놔서....... 왜 이르케 자꾸 피께질이 날까, 에헴.......피꺽....... 사실 오늘 선생을 뵙구 할말이 있었습니다.”
오작녀 남편의 더운 입김이 확 얼굴에 와 끼얹혀졌다.
“내가 이렇게만 말해도 짐작 하시갔지요? 그래 선생과 한번 단둘이 담판을 지을라구요, 아시갔습니까?”
“세상에서는 흔히 내가 난봉이 나서...... 사실 그동안 난봉두 꽤 피워봤디만....... 내가 난봉이 나서 오작네를 구박해 못 살게 된 줄루만 알구 있디요. 그르나 그르티가 않습니다. 이르케 된 바에 숨김없이 다 말하갔쉐다마는, 정말은 내가 오작네를 싫어한 게 아니야요. 인물두 눈이 좀 세게 생긴 게 녀자티구 뭣하디만, 것두 보기에 따라선 시원하게 생겠다구두 볼 수 있디요. 하여튼 내가 네펜네 싫어서 버린 게 아닙네다. 그저 그년이 이상한 버릇이 있어놔서요. 시집온 날부터 아예 허리 위루는 다티디 못하게 하거든요. 허리떨 꼭 졸라 매구서 아래보담 두 더 소둥히 너기디 않갔이요? 처음에는 그저 부끄러워 그르거니 했디요. 그르나 그렇디가 않아요. 언제까지나 젖 가슴은 못 다티게 하는 거야요. 그래 본때가 글렀다구 손질을 하기 시작했디요. 그래두 영 말을 안듣디 않갔이요? 그래 필시 이년이 나 말구 생각하는 딴 사내놈이 있구나 하구, 그러믄 그놈하구 가 잘 살라구 때레 내쫓은 거야요....... 이르케 된 게디 내가 처음부터 그년이 싫어서 그랜 건 아닙네다. 지금와 생각하니 그 다른 남자가 바루 선생이었드군요?”


오작녀가 앓아 누웠다. 신열이 계속 되었다. 훈이는 김의사를 찾아가 왕진을 요청했지만 김의사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곧 있으면 토지개혁을 한다고 하는데 지주와 같이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작녀를 진찰하러 올 때에도 훈이와 거리를 두며 왔고 오작녀를 진찰한 후에도 밖에 선 채 상태를 훈이에게 알려 주었다. 병은 발진티부스였다. 별로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훈이는 정성을 다해 오작녀 옆에서 간호를 해 주었다.
다행히도 이틀만에야 열이 좀 내렸다. 그리고 오작녀의 상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훈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정리할 것을 좀 정리해 두리라는 생각이었다. 궤에 들어있는 토지문서와 아버지의 인감도장은 따로 꺼내어 한 묶음 쌌다. 그리고 오작녀에게 마지막으로 줄 물건들을 가지고 오작녀 방으로 건너갔다.

“저, 오작녀, 내 마지막 기념으로 하나 줄 게 있소. 이게 어머니께서 내 혼숫감으로 끊어다 두었든게요. 받아두시오. 그리고 이건 어머님이 끼시든 가락지요. 같이 기념으로 받아두우.”
“선생님, 전 안됩니다!”
“지주의 재산 몰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진 몰라두, 내가 이걸 오작녀에게 주었다구 해서 법령에 저촉되진 않을 게요.”
“건 안됩니다! 선생님이 개지구 계시다가 이후에.......”
“이후에 이런 물건이 내게 소용될 리가 없소. 그리구 사실은 이 집까지두 오작녀에게 물려주려구 생각했었소. 남편되는 분만 찬성하신다면....... 그런데 그분이 통 소식이 없구먼요.”
“안됩니다! 건 안됩니다!” 오작녀의 어깨가 마구 물결쳤다.
“선생님, 왜 절 살레놨습네까? 죽는 대루 내버려 두디 않구, 왜 살레놨습네까?”
훈은 온몸의 힘을 빼앗긴 사람처럼 그저 두 손을 상대편의 어깨에 얹고 있었다. 그리고 저두 모르게 입 밖에 내어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도 살구 싶지는 않다! 나도 살구 싶지는 않아!”


농민대회는 소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개털오바 청년은 잠시 말을 끊고 앞에 모여선 농민들을 둘러보고 나서 갈한 목청을 돋구어 반동지주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박용제 영감, 박훈, 윤기풍.......’
개털오바 청년의 지시로 사람들은 지주들을 숙청하러 가려고 했다. 그때 도 농민위원회에서 나온 캡 쓴 사내가 개털오바 청년에게 한마디 했다.
“동무, 창의성을 발휘하시오.”
대번에 개털오바 청년의 얼굴에서 핏기가 걷히었다. 그 캡 쓴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털 오바 청년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몹시 후회했다.

‘농민대회를 시작하기 전에 왜 미리 이런 대열을 만들어 놓지 못했을까. 창의성! 자기네의 사업 진행에는 언제나 이 창의성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걸 발휘 못한 자기는 응당 자기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자 겁이 났다. 이, 도에서 나온 동무의 보고 여하로 자기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새로이 얼굴의 핏기가 걷히는 심사였다. 그러나 자기는 여기서 주저 앉아서는 안된다. 이 과오를 씻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좀 더 투쟁 실적을 올려야 하겠다. 그럼 오늘 자기는 이 가락골 마을에 남아, 면내에서 가장 큰 반동 지주들인 박용제와 그 조카 박훈을 숙청하는데 전력을 다하자!’

사람들은 박용제 영감의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개털오바 청년은 농민대회 결정서를 읽었다.

“이 반동 지주 박용제가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면협의원이 되어 놈들의 앞잽이 노릇을 하는 한편, 일제말기에 이르러서는 웃골에 저수지를 판다는 명목하에 수많은 농민의 피와 땀을 착취한 사실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롭다! 이 박용제를 우리 민주 발전 방해로 규정짓는다. 자 이집 열쇠를 모두 이리 내오!”

“이게 제 소유루 있는 토지 전부웨다. 이르케 제 소유를 전부다 드릴께니 그대신 소원을 하나 들어주십시오.”
“그 저수지만은 냉겨 주십시오.”

청년의 입가에 절로 쓴 웃음이 지어졌다. 언제까지나 버리지 못하는 지주의 소유근성!
용제영감은 청년의 이런 웃음에나마 힘을 얻은 듯,

“아까 선생이 읽은 글에서는 내가 그 저수지를 파기 위해 동네 사람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었다구 했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일본시대에 안주 수리조합이나 서폐양 개수공사의 보국대로 뽑혀나갈 것을 내가 도에 말해가지고 저수지 파는 데로 돌린 겁니다. 누구에게나 물어보십시오. 그때 안주나 서폐양에 가는 것 보다 얼마나 좋아들 했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토지개혁이 실시되면 자신들에게도 땅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용제영감을 외면했다. 결국 용제영감은 열쇠를 개털오바 청년에게 주었고 자신은 서에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사람들은 각각 방에 들어가서 물건에 붉은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들이 없는 틈을 타 자신도 물건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대문의 문패를 떼어버린 후, 그 자리에 가지고 온 간판을 붙였다. 리인민위원회 간판이었다. 이제는 훈이네 집으로 향했다. 내친걸음이라 이제는 과히 주저하는 빛도 없었다. 훈이는 그때 과수원 쪽 비탈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집으로 오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앉아 이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대문 앞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훈이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리 챙겨두었던 가방을 들고 다시 나왔다. 개털오바 청년이 종이를 펴들고 읽기 시작했다.

“우리 민주 혁명에 불평을 품고 매일같이 술로써 소일하는 한편, 무지한 청년들을 유혹하여 반동결사를 조직해가지고 우리 면농민위원장 동무를 살해하게 한 사실, 그리고 지주의 권력으로 소작인의 딸이자 남의 유부녀인 여성동무를 유린한 사실, 이런 사실로 보아.......”
“이보시오!”
오작녀가 어지러운 걸음으로 대문에 나와 청년의 말을 가로 챘다.
“대관절 누가 그런 소릴 들었소?”
“여성동무 우리는 동무를 상대하고 잇을 여지가 없소, 자, 그러면.......”
“왜 남의 집 열쇠를 달래는 거요?”
“동무, 내 동무가 여러 해 동안 이 집에서 고된 종살이를 했다는 걸 다 아오. 그런 사실은 내 중앙에 보고하겠소. 그러면 중앙에서도 무슨 말이 있을 게요. ”
“당신네는 아무것도 몰라요!”
“뭘 모른단 말이오?”
“당신네는 아무것도 몰라요!”
오작녀는 입술을 잘끈 깨물고 나서,
“우리는 부부가 됐이요!”

모였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도 여자 지주가 자기 머슴과 결혼하여 화재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걸로 그 여자지주는 숙청을 면한 것이었다.
이 자리를 수습하고자 청년은 오작녀 남편을 찾았다. 남편은 목줄기까지 붉은 물을 들여가지고 오작녀에게 말을 했다

“나한테 시집오기 전에 생각하고 있은 딴 사내가 있었니, 없었니?”
“나한테 시집오기 전부터 박가를 생각하고 있디 않았느냔 말이다!”
오작녀가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나도....... 너 같은 년을 내 여편내로 생각하지 않은지 오래다!”

오작녀는 어깨숨을 쉬면서 훈의 발 밑에 풀썩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박훈은 숙청을 면했다.

도섭영감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기 딸년 때문에 일을 잡쳤다는 생각이 들수록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도섭영감은 도끼를 들고 예전 박훈의 할아버지의 송덕비 앞으로 갔다. 일찍이 자신이 감독하여 지대를 닦는다, 콘크리트를 한다, 하여 세운 비였다. 
비석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꼭 무엇에 취한 사람같이 비석을 아주 무섭게 부섰다. 그리고 붉어진 눈으로 훈이네 집을 향해,
“독사를 쥑일래믄 깨깨 쥑에야 한다아!”

오작녀가 전에 훈이 주었던 보퉁이를 끌어다 훈의 앞에 놓았다.
“그 옷감만은 오작녀가 받아두우,”
“이건 오마니께서 선생님의.......”
“내 혼숫감으로 끊어두었던 물건이란 말이지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내게 이런 것은 소용없을 게요.”
물기 머금은 오작녀의 눈이 별안간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흠칫했다. 바람소리에 섞여 밤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오작녀는 조그맣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큰애기바위골 뻐꾸기.......”

큰애기바위골 뻐꾸기 전설
- 그 옛날, 이 가락골 마을에는 큰 부호가 하나 살았다. 대문이 열두 대문이나 되는 큰 집이었다. 그 집에서 삼대 째 내려오는 외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자기 집 여종 하나와 좋아지냈다. 큰아기라 불리는 애였다. 이 도련님은 서울로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되고 큰아기에게는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몇 해가 지나도 도련님이 돌아오지 않자 큰아기는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그 남편이 여간 부랑자가 아니어서 큰아기를 못살게 굴었다. 큰아기는 밤마다 산으로 올라가 빌었다. 그만 자기를 바위가 되게 해달라고.......
그러한 어느 날 하늘에서 천둥이 울면서 큰아기를 바위로 변하게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서울에 갔던 도련님이 돌아왔다. 하지만 큰아기의 이야기를 듣고 산에 있는 큰아기바위를 붙안고 며칠이고 울다 그 자리에서 그냥 숨지고 말았다.
이듬해 봄, 큰아기바윗가에 전에 없이 붉은 진달래꽃이 피었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뻐꾸기 한 마리가 구슬피 울었다. -


오작녀 남편이 훈이를 찾아왔다.
훈은 이 사내의 속뜻을 몰라 머뭇거리자 사내는 술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했다. 훈이도 이 사내와 한번 술에 취해보고 싶은 생각을 했다. 이 사내는 자신이 탄광에서 일 했을 때 만난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훈은 이자가 돈을 요구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훈이 말했다.

“혹시 원하신다면 제 힘이 자라는 데까지 뭣이든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뭣이든 도와준다?”
오작녀 남편의 눈망울이 갑자기 번뜩이며,
“그게 무슨 말이웨까? 내게 돈을 주겠단 말이오?”
오작녀 남편은 숨결마저 씨근거리며,
“거 어떻게 하는 말이웨까?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못 알아듣습니까? 대체 돈이란 뭡니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것, 이 나아까지 남처럼 풍성하게는 못 살았지만 돈에 코가 께워 살지는 않았쉐다. 궁줄에 들었는가 하면 또 살 길이 열리군 했지요. 이번에도 튀전판에서 돈냥이나 쥈쉐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노름만은 그냥 하지요. 순안서 나더라 민청부위원당인가 뭔가 하라기에 요즘 세상에 그런 이름쯤 걸어두는 것도 손해 볼 일 없을 것 같아 이름만은 걸어두고 있지요. 하여튼 돈 얘긴 다신 맙시다. 세상이 어떻게 됐든 간에 나도 한때 이름있는 활랭이 댔쉐다. 아시겠쉐까, 선생님?”

이튿날 훈은 머리가 몹시 지끈거렸다. 전날 오작녀 남편과 지나치게 술을 들이켰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무엇보다도 훈의 가슴을 내리누르는 것은 어떤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저도 모르게 오작녀남편에게 지껄여댔다.

‘오작녀와 나 사이를 오해 마시오. 지금이라도 나 있는 집을 내줄 테니 와서 같이 사시오. 오작녀는 아직 전처럼 깨끗한 몸이오.’
훈은 자신의 옹졸됨이 자꾸만 뉘우쳐졌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오작녀 남편이 눈망울에 확 불이 켜지더니! 이건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하는 수작이야? 아직도 그 꼬딱하고 야시꺼운 심보를 못 버렸어? 오작네가 불쌍하다, 오작네가 불쌍해! 하면서 훈의 뺨을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눈앞이 아찔하고 크허리가 시큰했다. 그렇게 오작녀 남편과 헤어진 것이다.

며칠 후 훈이 뒷산에 있는데 사촌동생 혁이 찾아왔다. 아버지인 용제영감이 토지개혁 한다고 서로 데려간 이후 돌아오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혁이가 아버지를 찾으러 서에도 가보고 평양에도 가 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를 알 수 가 없었다. 혁이는 자신이 이곳에 있어도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며 남한으로 같이 내려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평양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 남한으로 월남하기 위한 계획을 수정해 줄 것을 부탁한다.  


훈이는 혁이의 부탁을 받고 평양으로 가서 청년을 만났다. 그리고 계획을 수정했다. 날짜를 글피 늦추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훈이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 부탁을 더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부탁이 있는데요.”
무어 말이냐고 이쪽을 바라보는 청년의 시선을 면바로 받으며,
“배에 자리를 더는 낼 수 없을까요?”
“선생님께서 쓰시게요?”
“네, 제 자리하고 한 자리만 더.”
훈은 자기로서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한자리도 아니요 두 자리씩이나 부탁한 것이다. 물론 그 중의 한 자리는 오작녀의 것이었다. 생각 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마음속에 오래오래 품고 있던 것이 절로 흘러나왔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훈이는 다시 가막골로 돌아왔다. 사촌동생은 먼저 와 있었다. 오작녀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둘은 이야기를 했다. 이러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작녀는 귀를 방안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글핏밤 열한시 반까지 곤이섬 나루루 모이게 했어.”
“그러니 그날은 새벽 일찍 아무도 모르게 여길 떠나는게 좋을 거야.”
“그렇게 해야겠군요. 그런데 형님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오작녀가 샛문 쪽으로 바짝 기울였다.
“나도 자리를 부탁해뒀네.”
오작녀는 눈앞이 아찔했다. 온몸이 땅속으로 자지러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한편 용제 영감이 돌아왔다. 그는 토지개혁이 있던 날 사동탄광으로 끌려간 것이었다. 용제영감은 그것은 노동이라기보다 일종의 가혹한 징역살이로만 생각됐다. 자기가 이러니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 건 뻔한 일 같았다. 다시는 이 세상에서 못 만나는 사람들로 여겼다. 이런 용제 영감의 가슴속에 한가지 간절해지는 것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미완이지만 자기가 계획하던 저수지나 한번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그가 탈출에 성공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 마을까지 도망쳐 온 것이었다. 용제영감은 자기집 마굿간 말을 타고 저수지로 향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도섭영감과 그 일당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자신이 이곳으로 온 목적을 달성한 용제영감은 서로 가는 트럭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게 된다.

훈과 혁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에는 이미 팔 다리가 식어있었다. 둘은 시체의 옷을 갈아입히고 피를 훔쳐내느라 분주했다. 그러는 중에 밖에서 도섭영감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독사는 깨깨 쥑에 없애야 한다아!”


당손이 할아버지와 삼득이 도움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제 혁이와 훈이는 월남을 위한 준비를 해야했다.
훈이 사촌동생의 얼굴에서 어떤 심상치 않은 빛을 보았다.
“도섭영감 말이야요. 그 영감을 내 손으로 죽여 없애고 말갔이요.”
그러나 훈은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 영감이 그러는 건 자기가 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생각하면 가엾은 늙은이지.”
혁은 그냥 허공에 눈을 박고 있었다. 어떤 한 점을 꽉 붙들고 잇는 눈이었다. 그만 훈은 이 사촌동생이 하려는 일을 자기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 지나가던 흥수를 만났다. 흥수는 오작녀 남편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건네고는 사라졌다.

훈은 사촌 동생이 산을 내려 비석거리 모퉁이를 돌아 뵈지 않게 되기까지 거기 서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이 사촌동생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일 사촌동생은 이리 와서 도섭영감을 없애버리고 나서 만경대 곤이섬 나루로 나오마 했다. 오후 다섯시면 밤 열한시 반 안으로 지정한 장소까지 와 닿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섭영감을 죽이고 사촌동생이 무사히 이곳을 벗어날 것 같지가 않았다. 홀연 훈은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도섭영감을 없애버려야 할 사람은 사촌동생이 아니고 바로 자기가 아니냐. 나다. 내가 없애야 한다, 내가 없애야 한다!

오늘 밤이 오작녀와도 마지막이었다. 오작녀에게 내일 새벽에 같이 떠나자는 말을 미리 해두지 않은 게 얼마나 잘했는지 몰랐다. 저녁을 먹은 후 훈은 오작녀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어찌됐든 수고했다는 말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오작녀도 오작녀대로 내일 훈이 이곳을 떠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내의를 개켜 안고 샛문을 들어섰다.
내의를 보자 훈은,
“엊그제 갈아입었는데.......”
“그래도 이제 갈아입으실 때가.......”
오작녀의 말소리마저 몸속에서 떨려 나왔다.
훈은 자기 자신이 내일이면 이미 오늘의 자기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조요한 심정으로 무슨 이야기든 오작녀에게 다 할 수 있을 것같았다. 내일 자기가 하려는 일도 그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작녀!”
하지만 오작녀는 훈이 자기에게 마지막 말을 하려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에, 그게 아무리 짧은 동안이라도 훈과 같이 있는 동안만은 그에게서 아무 말도 미리 들어두고 싶지가 않은 것이었다. 내일 떠날 때 들어도 늦지 않다, 내일 떠날 때 들어도 늦지 않다.
“오작녀!”
오작녀의 귀에 문득 어떤 소리하나가 들려왔다. 그녀의 입에서 절로 말이 새어나왔다.
“아, 큰애기바위골 뻐꾸기.......”
훈도 하려던 말을 잊고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바람소리였다. 저녁에 잔 듯하면 바람이 다시 인 것이다. 이젠가 이젠가 해도 뻐꾸기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작녀의 물기어린눈에 점점 꿈꾸는 듯한 빛이 더해지며
“이제 들려올 거에요. 어젯밤에도 울었어요. 요새는 매일같이 울어요. 아마 올 봄엔 진달래가 예년에 없이 많이 피려는가 봐요.”


이튿날 이른 아침 훈은 선산으로 올라가서 자신의 마지막 사진인 어릴 적 돌 사진을 불에 붙였다. 훈은 이것으로 자기의 모습은 이 세상에게 하나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점심이 지난 후 당손이 할아버지에게 종이를 남기며 사촌동생 혁이가 지나가면 건네주라고 말을 하고 도섭영감 집으로 간다.

이날 농민대회가 열렸다. 도섭영감을 농민위원장 자리에서 숙청하기 위해서였다. 당에서 볼 때 이제는 도섭영감의 이용가치가 없어진 것이었다. 토지개혁이 있기까지 면내 제일가다시피 하는 지주와 가까이 지내던 이 사람을 내세워 지주와 농민 사이를 이간 붙이자는 것이었다. 그 이용가치가 이제는 없어진 것이다.
도섭영감은 눈앞이 캄캄해왔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앞으로 내 하는 일을 봐서 지나간 일은 모두 덮어주기로 하지 않았는가. 그래 오늘날까지 자기네가 하라는 대로 해오지 않았는가. 지나칠 만큼 해오지 않았는가. 그것 수고했다는 말은 없이 이렇게 숙청을 해?
도섭영감은 아들이고 누구고 비위에 거슬리는 놈은 모조리 낫으로 찔러버리고만 싶었다.

이때 훈이 찾아왔다. 훈이는 도섭영감에게 할 말이 있다며 뒷산 기슭으로 유인했다. 도섭영감 역시 화가 나있던 참에 훈이를 보자 오늘이야 말로 결판을 내겠다는 생각이었다. 산으로 올라가 훈과 맞선 영감은 훈의 칼에 옆구리를 찔린다. 영감은 이에 낫을 휘두르나 이때 훈을 뒤에서 미행한다고 생각했던 오작녀의 동생 삼득이 나타나 막아준다. 도섭영감과 삼득이는 한참 한데 어울려 엎치락뒤치락했다. 삼득이가 간신히 아버지의 낫을 빼앗아 멀리 팽개쳤다. 도섭영감이 벌떡 일어나더니 손에 잡을 무에 없는가 주위를 휘둘러보다가, 으으흠 하고 뱃속 깊이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를 지르며 아무떼고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도섭영감의 온몸에서 맥이 탁 풀려나갔다. 그러는 그의 심중은 차라리 오늘 훈의 칼에 자기가 죽는게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퍼뜩 생각난 듯이 쌈지에서 담배를 꺼내어 옆구리에 붙였다. 그리고는 말없이 쌈지를 아들에게로 던졌다. 그래도 살 수 있는 떼까지 살아야지!

삼득이가 약간 목멘 소리로,

“이런 일이 잇을 것 같아서 늘상 마음을 못 놓구 뒤따라 댕겠는데....... 오늘은 선생님이 과수원에 계신 걸 보고 새하레 갔다오는 새에 그만.......”
훈은 새로이 눈앞이 핑도는 심사였다. 삼득이가 여태껏 자기의 뒤를 밟은 것은 무슨 염탐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의 신변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던가.
“사실 선생님더라 어서 여길 떠나시라고 하고 싶었지만....... 누이가 불쌍해서.......”
“이제라도 곧 여길 떠나십시오. 다시는 이놈의 피를 묻히지 않도록.......”
“그리고 불쌍한 누이를 대리고 가주십쇼.”

훈은 이 어린 청년을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그의 몸 한가운데에 어떤 불씨 같은 게 남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왜 이러고 섰는냐, 어서 오작녀에게 가거라. 어서 오작녀에게로 가거라!
훈은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5. 인상깊은 문장

‘농민대회를 시작하기 전에 왜 미리 이런 대열을 만들어 놓지 못했을까. 창의성! 자기네의 사업 진행에는 언제나 이 창의성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걸 발휘 못한 자기는 응당 자기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자 겁이 났다. 이, 도에서 나온 동무의 보고 여하로 자기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새로이 얼굴의 핏기가 걷히는 심사였다. 그러나 자기는 여기서 주저 앉아서는 안된다. 이 과오를 씻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좀 더 투쟁 실적을 올려야 하겠다. 그럼 오늘 자기는 이 가락골 마을에 남아, 면내에서 가장 큰 반동 지주들인 박용제와 그 조카 박훈을 숙청하는데 전력을 다하자!’
- 개털오바 청년이 군 당국 관계자의 조언을 들은 뒤 자기자신을 비판하는 말

“거 어떻게 하는 말이웨까?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못 알아듣습니까? 대체 돈이란 뭡니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것, 이 나아까지 남처럼 풍성하게는 못 살았지만 돈에 코가 께워 살지는 않았쉐다. 궁줄에 들었는가 하면 또 살 길이 열리군 했지요. 이번에도 튀전판에서 돈냥이나 쥈쉐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노름만은 그냥 하지요. 순안서 나더라 민청부위원당인가 뭔가 하라기에 요즘 세상에 그런 이름쯤 걸어두는 것도 손해 볼 일 없을 것 같아 이름만은 걸어두고 있지요. 하여튼 돈 얘긴 다신 맙시다. 세상이 어떻게 됐든 간에 나도 한때 이름있는 활랭이 댔쉐다. 아시겠쉐까, 선생님?”
- 박훈이 오작녀 남편의 속뜻을 잘못 오해해서 오작녀 남편이 하는 말

훈은 사촌 동생이 산을 내려 비석거리 모퉁이를 돌아 뵈지 않게 되기까지 거기 서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이 사촌동생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일 사촌동생은 이리 와서 도섭영감을 없애버리고 나서 만경대 곤이섬 나루로 나오마 했다. 오후 다섯시면 밤 열한시 반 안으로 지정한 장소까지 와 닿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섭영감을 죽이고 사촌동생이 무사히 이곳을 벗어날 것 같지가 않았다. 홀연 훈은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도섭영감을 없애버려야 할 사람은 사촌동생이 아니고 바로 자기가 아니냐. 나다. 내가 없애야 한다, 내가 없애야 한다!
- 박훈이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바꿔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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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