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

« 2024/5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10. 4. 29. 17:02

수상록(몽테뉴)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17:02


1. 책 소개

   수상록은 한마디로 그의 은둔 생활에서 탄생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원제 " 에세이"라는 낱말은 "시도"라는 뜻으로, 그가 거짓 없는 진실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자 기 스스로를 시도해 보고, 또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직접 시도해 본, 그러한 정진과 노력의 흔적을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저자의 주관적, 객관적인 모든 경험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 유유자적한 태도와 자신의 생각을 일정한 규범속에 고정 시키지 않고 겸허한 시론의 형식으로 은근히 표현한 점은, 그 표제가 뜻하고 있는 그대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저자 : 몽테뉴 지음   /  윤지선 옮김       출판사 : 청 목 원 - <자료 출처 - 네이버>


2. 작가 소개

- M.E.몽테뉴

저자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는 1533년 2월 28일 프랑스에서 태어나 1592년 9월 13일에 사망했다. 그는  철학자로써 대표작으로는 수상록이 있다. 몽테뉴는 어려서 라틴어 교육을 받았고, 1554년 페리그 재판소에 근무하여 1557년 보르도 고등법원 참사관이 되었다. 그는 때때로 궁정에 찾아가 프랑스와 2세, 샤를 9세의 신임을 얻었다. 1565년 프랑수아즈 드 라 샤세뉴와 결혼, 156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가 되었다. 아버지의 명으로 번역한 15세기 에스파냐 신학자 레이몽 스봉의 《자연신학(自然神學)》을 1569년에 간행하였다. 1571년 37세로 법관생활에서 물러나 독서와 저작 생활로 들어갈 결심을 하였으나, 신 ·구파의 종교전쟁에 휩쓸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1577년 나바르왕 앙리(뒤의 앙리 4세)의 시종이 되었다. 1580년 써 모은 수필을 간추려 《수상록》(2권)을 보르도에서 간행하였다. 이 해 신장결석(腎臟結石) 치료를 겸하여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관광길에 올라 1년 반을 외국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 《여행기 Journal de voyage》(1774)가 나왔다. 여행 중에 보르도 시장에 선출된 것을 알고 1581년 말 귀국하였다.
1583년 보르도 시장에 재선되었으나 종교적 내란과 페스트의 유행 등 많은 난국을 맞았다. 1586년에 몽테뉴 성으로 돌아가 《수상록》에 증보와 수정을 가하고, 다시 제3권의 수필을 새로 집필하여 1588년 파리에서 《수상록》(3권)을 출판하였다. 그가 ‘결연(結緣)의 딸’이라고 부르기까지 한 구르네와 알게 된 것도 이 해이다. 만년에는 앙리 4세로부터 궁정 출사(出仕)를 간청 받았으나 굳이 사양하고 《수상록》 가필(加筆)에 착수하여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는 처음에 금욕적(禁慾的) 인생관에 호의를 가진 듯이 보였으나, 중도에는 온건한 회의론에 기울어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 Je?)’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루크레티우스를 통하여 에피쿠로스의 자연주의에도 공명하였다. 그러나 후기에는 자기의 체험과 독서생활을 근거로, 있는 그대로의 인간, 변천하는 대로의 인간을 그려, 자연에 대하여 단순히 몸을 맡기는 데에 인생의 지혜를 추구하였다. 그가 죽은 뒤에 그르네는 그가 마지막 손질한 것을 기초로 하여 《수상록》의 신판을 펴냈다. 그는 이 《수상록》(3권)으로 프랑스에 모랄리스트의 전통을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이래의 프랑스 문학, 유럽 각국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B.파스칼은 몽테뉴의 인생관을 비판하면서도 인간을 관찰하는 점에서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 옮긴이 윤지선

역자 윤지선은 경북 출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주요 역서로는 ‘행복한 죽음’ A. 까뮈 지음, ‘마농의 샘’ 마르쉐 빠론 지음 등 다수 작품이 있다.


3. 작품 시대 배경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이다. 프랑스의 르네상스 문학은 이탈리아에 갔던 인문학자들이 이탈리아 문학을 들여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라틴어로 글을 썼지만 F.라블레(1494?∼1553?)가 나타나 프랑스어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써서, 교회와 소르본(파리대학 신학부)의 교조주의(敎條主義) 및 위선(僞善)을 민망할 정도로 조소하였다. 이어 1549년경부터 P.롱사르(1524∼1585)를 맹주로 하는 플레이아드 시파(詩派)가 페트라르카풍(風)의 서정시를 창작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종교전쟁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문학은 기울기 시작하였으나, 이 어려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M.E.몽테뉴(1533∼1592)는 고대의 영지(英智)를 밑거름으로 하여 3권의 《수상록(隨想錄)》을 집필, 인간성의 본질을 추구하였다.


4. 내용 소개

1부  

- 방법과 결과
우리가 누구를 모욕해서 그의 양심을 사고 그의 손에 잡혀서 꼼짝 못하게 된 경우, 그의 마음을 풀어 주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그저 그 앞에 굴복하여 가련하고 측은하게 보임으로써 그의 동정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담력으로 굳은 지조를 지킴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는 수도 있다. 실로 인간이란 놀랍도록 헛되고 가지각색이며 변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기에 어떠한 견실하고 공정한 판단을 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슬픔
나는 슬픈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이 심정은 언제나 해롭고 철부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비참한 일을 참는 것이 극도에 달하면, 사람은 정신 전체가 혼란해지며 자기 행동의 자유를 잃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대단히 언짢은 소식을 듣고 놀랐을 때, 몸이 얽매여 얼어붙는 듯하며 모든 동작이 오그라져 붙었다가, 눈물과 통곡으로 토해 내면 설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얽매였던 마음도 풀리고 몸도 편해지는 것과 같은 식이다.
"얼마나 속이 타는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미지근하게 속을 태우는 것이다" -페트라르타-
실컷 마음 놓고 맛보게 하는 정열은 범상한 정열에 지나지 않는다.

- 게으름
공지가 기름지고 비옥하다면 수만 가지 쓸데없는 잡초만 무성해진다. 이땅을 유용하게 이용하려면 이것을 개간해서 씨를 뿌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정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정신에게는 어떤 문제에 전념하도록 제어하고 강제하는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 이런 저런 공상의 막연한 들판에서 흐리멍텅하게 헤매게 된다.
심령은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처럼, 사방에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있지 않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말투
어떤이들은 말이 쉽고 빠르며 태연히 말을 내놓기가 아주 용이한 반면 어떤 이는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이 웅변이 우리 시대에 설교가와 변호사의 주요한 직무가 되어 있는 만큼, 말이 느린 사람은 설교가로 적당하고, 빠른 사람은 변호사가 되기에 알맞다고 생각한다. 급작스레 즉석에서 둘러대는 것은 재치에 적당한 일이고, 서서히 침착하게 말하는 것은 판단력에 적합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준비할 여유가 없으면 완전히 침묵을 지키는 자와, 여가가 있어도 말을 더 잘 할 수 없는 자는 둘 다 비정상적이다.

- 선과악
사람들은 사물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물에 관해서 가지고 있는 의견 때문에 속을 태운다고 한다. 왜냐하면 불행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판단에 의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경멸하거나 또는 좋은 일로 돌려놓는 것이 우리들의 힘에 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과 빈곤과 고통을 우리들의 주요한 적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통 전율할 사물 중에도 가장 끔찍한 것으로 부르는 죽음을, 다른 자들은 인생의 고초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의 안식처이자 자연의 최고선이며, 우리들이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곳이며, 모든 불행에 대해서 공통된 효과를 지닌 처방이라고 부르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어떤 이들은 자기 집 일을 처리하고 친구들에게 뒷일을 당부한 후 노래 부르며, 훈계하며,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어떤 때는 거의 우스갯소리까지 섞어 가며,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같이 친지들에게 축배를 들어가며 죽어가기까지 한다.
우리는 죽음을 상상하는 조바심 때문에 고통을 참을 수 없게 되며, 고통이 우리들을 죽음으로 위협하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심하게 느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그러나 이성으로 따져보면, 죽음은 그렇게도 급하게 오고 그렇게도 피치 못할 일이며, 그렇게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가지고 무서워 한다는 것은 비굴한 일이라는 비난이 나오니까, 우리는 차라리 다음의 구실이 더 적당한 변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픔이외의 다른 위험이 없는 모든 아픔을 우리는 위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도망하면 적이 더 악을 쓰며 추격해 오는 것처럼, 우리가 그 밑에서 떨고 있으면 고통도 더욱 거만해진다. 고통은 잘 버티는 자에게 더 순해질 것이다.
꼿꼿한 삿대도 물 속에서는 휘어져 보인다. 사물은, 본다는 것보다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이다.
누구나 오래 불행하다는 것은 모두 스스로의 탓이다. 죽음도 삶도 참아 낼 용기를 갖지 못하는 자를, 저항하기도 달아나기도 원치 않는 자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 죽음
  ‘매일 매일 그대에게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그대는 기대하지 않는 시간이 오는 것을 감사로 맞이하리라.’ -호라티우스-
죽음이 어디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어디서든 그것을 기다리자. 죽음의 예상은 자유의 예상이다. 죽기를 배운 자는 노예의 마음씨를 씻어 없앤 자이다. 죽기를 알면 우리는 모든 굴종과 강제에서 해방된다. 생명을 잃는 것이 악이 아님을 잘 이해한 사람에게는 이 인생의 불행이라는 것이 없다.
나는 지금 인생에 애착이 없는 것은 아니며, 죽는다는 것이 쓰라리기는 하지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좋으실 때에, 아무 때나 데려가도 아무 아까울 것이 없는 사정에 있다. 나는 아무것에도 매인 곳이 없다.
그대가 실컷 산다는 것은 세월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고, 그대의 의지에 달려 있다.

- 습관
한 시골 여인이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았을 때부터 두 팔에 안고 쓰다듬어 주는 버릇이 생겨서 이 짓을 사뭇 계속 했더니,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큰 황소가 된 뒤에도 거뜬히 안아 들 수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습관이란 것은 실로 배신적인 맹위를 떨치는 훈장님인 까닭이다. 습관은 우리들의 판단력과 신념에까지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 현학자
식물이 습기가 너무 많으면 질식하고 남포에 기름이 너무 가득하면 불이 꺼진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다. 이와 같이 정신 작용은 공부와 지식과 재료가 너무 과하면 아는 것이 잡다하게 많아서 거기에만 사로잡혀 버리고, 사리를 풀어 볼 방법을 잃으며, 이 무게 때문에 학자는 허리가 굽어지고 곱추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지식의 준비만으로는 족하지 않다.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키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지식을 받아 담는다. 그것뿐이다. 지식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뱃속에 음식을 잔뜩 채워 보았자 그것이 소화가 안되면, 그것이 우리 속에서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들을 더 키워 주고 힘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될 것인가?
남의 지식으로 학자가 되어도 적으나마 내 자신의 예지가 아니면 우리는 현명해지지 못한다.

- 어린이 교육
농사짓는 일에서, 심기 전의 일 처리와 심는 일은 모두 확실하고 용이합니다. 그러나 심은 것이 생명을 가지고 나오면, 그것을 가꾸어 올리기에는 가지각색의 방법과 곤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 있어서도 심는 데는 그리 기교가 안 들지만 그들이 출생한 다음에는 여러 가지 조심이 필요하며, 기르고 가르치기에 숱한 일거리와 근심이 있습니다.
선생은 제자에게 학과의 글자가 아니라, 그 의미와 실질을 설명해보라고 요구할 일이며, 그가 얻은 소득을 그의 기억의 증명에 의함이 아니고, 그의 생활의 실천으로 판단해야 할 일입니다. 그가 배운 바를 스승은 제자에게 시켜서 여러 모습으로 보여 주고, 그만큼 여러 가지 제목에 적용해 보게 하며, 플라톤의 교육 방법의 진도를 본받아 그가 배운 바를 진실로 이해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나를 볼 일입니다.
어린애의 교육에는 욕망과 애정을 돋우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책을 짊어진 당나귀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매질해서 그 주머니에 학문을 잔뜩 넣어 줍니다만, 이 학문을 잘하려면 담아두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 식인종
세련된 인간들은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사물들을 관찰하며, 그것을 비판하고, 자기들의 해석을 그럴듯하게 붙여 보며, 사람들을 믿게 하려고 이야기를 좀 다르게 꾸미고 싶어하는 마음을 참지 못한다. 그들은 결코 사물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게 전해 준 바에 의하면, 자기 습관이 아니라고 해서 야만적이라고 부르는 것 말고는, 이 나라에 아무것도 야만적이며 조악한 것이 없다고 나는 본다.
나는 이러한 행동이 흉측하고 야만적인 행위인 것을 주목하며 언짢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잘못은 잘 비판하면서, 우리들 자신의 야만 행위에는 주목하지 못하는 것이 슬프다.

- 운명
‘우연은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일을 결정한다’ -메난데르-
때에 따라서 운명은 약이 된다. 페레스의 쟈손은 가슴에 농양을 앓다가 의사들도 손을 드는 증세였는데, 죽어서라도 고통을 없앨 생각으로 적군의 밀집 부대 속으로 정신없이 돌격해서 몸을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더니 결국 내종이 터져서 병이 나았다.
운수는 경우에 따라 우리들의 의견을 교정해 주는 것이 아닐까?

- 그림자
세상 사람들의 모든 미망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용납되어 있는 것은 명성과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심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이 아닌 그림자일 뿐이다.

- 불평등
사냥개는 달리는 속도를 보고 칭찬하는 것이지 그의 목 띠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며, 보라매는 그 날개를 보고 하지, 그 끈과 방울을 보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사람을 평가할 때 그대는 둘러싸 감아서 묶어 놓고 평가하는가?
그의 마음은 어떤가, 마음은 건전하며 그 모든 부분이 유능하고 잘 하게 되어 있는가? 그 마음이 자기 것으로 풍부한가? 마음이 침착하고 공평하고 만족하여 있는지, 이것을 봐야 하는 것이며, 이런 것으로 우리들 사이에 있는 극도로 많은 차이를 판단해야 한다.

- 이름
아무리 야채의 종류가 많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 샐러드라는 이름 속에 포함된다.
좋은 이름을 가지면 좋다는 말이 있다. 즉 신용과 명성을 얻는다는 것이다. 사실 발음하기 쉽고 듣기 좋은 아름다운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린애들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아비 된 자로서 마음을 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 심령
모든 동작은 자기의 속을 내보인다. 파르살리아 전투에서 명령하고 지휘하는 데 드러나던 케사르의 심령은 그가 한가롭게 연애하던 솜씨에도 드러난다. 말을 알아보려면 경마장에서 다룰 때뿐 아니라 천천히 걸어갈 때와 마구간에서 쉴 때 보아서도 판단된다.
심령 각자는 자기 영역에서의 여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물의 외적 소질을 가지고 우리의 변명을 삼지 말 일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일은 우리들이 할 일이다. 우리들의 행, 불행은 오로지 우리 자신들에게 매여 있다.

2부

- 줏대
확실한 법칙과 확실한 지침을 머릿속에 결정하여 세워 놓은 자에게 균형 잡힌 습관과 질서와 사물들 상호간의 일관된 관계가 그의 인생을 통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인간을 판단하려면 오랫동안 그의 행동의 자취를 더듬어 보아야 한다. 만일 그가 그 자체를 위해서 지조를 견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잡다한 사정에 따라서 그가 보조를 바꾸고 있는 것이라면 제멋대로 가게 내버려 두라. 그 자는 바람결을 따라가는 자이다.

- 양심
양심은 우리의 속을 노출시키며, 우리 자신을 비난하고 우리 자신과 싸운다. 외부의 증인이 없어도 양심은 우리 의사에 반해서 우리들의 속을 드러내 보인다.

- 도덕
도덕은, 안온하고 평화롭게 이성에 따라 지도되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더 행동적인 것으로 보인다.
‘도덕은 투쟁 속에서 크게 성장한다.’ -세네카-
‘ 나쁜 일을 하기란 얼마나 쉽고 비열한 일이며, 아무 위험도 없는 곳에서 착한 일을 하기란 얼마나 속된 일인가. 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에서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마땅히 도덕군자의 의무로다.’ -사투르니누스-

- 교만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교만한 마음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품은 너무 지나친 호평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분수없는 심정이며,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실제 있는 것과는 다르게 보여준다.
내 속에 있는 진실이 무엇이건, 이 진실을 추려 내는 능력과 내 신념을 쉽사리 굽히지 않는 이 자유의사를 나는 주로 내게서 얻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가장 견실하고 일반적인 사상들은 나와 함께 출생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전적으로 내 것이다. 내가 판단력을 양성하는 데에 적당하다고 본 몇 사람들의 건전한 사상에 비추어서, 내 사상을 세우고 강화하였다. 이런 인물들이 내 사상을 확고히 파악하게 하였고, 그것을 좀더 완전히 누리고 소유하게 되었다.

- 분노
분노만큼 판단력의 성실성을 혼란시키는 정열은 없다. 격정을 통해서 보면, 마치 안개를 통하여 보는 물체와 같이 과오가 우리들에게 더 크게 보인다. 그리고 무게와 신중성을 가지고 행하는 징벌은 그것을 당하는 자가 더 잘, 그리고 더 많은 성과를 가지고 달게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분노와 분격으로 심란해진 사람에게서 정당하지 않은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 욕망의 파도
‘허용된 일은 매력이 없다. 금지된 일은 욕심을 도발한다.’ -오비디우스-
욕망과 향락은 사람을 똑같은 고통위에 둔다. 애인이 냉혹하게 굴면 괴롭다. 그러나 힘 안 들이고 쉽게 넘어오는 것도 실은 더 거북하다. 불만과 분노는 자기가 욕심내는 사물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나오는 만큼, 그것이 연정을 자극해서 열이 오르게 하며, 그 반대로 포만은 염증을 일으킨다. 이것은 무디고 둔하며, 지치고 잠든 정열이다.

  ‘근절되었다고 믿은 악은 더 멀리 확대되고 있다’ -루틸리우스-
‘자물쇠를 채워 둔 곳은 절도를 유인한다. 강도범은 열려진 집을 놓아두고 지나간다.’-세네카-
아마도 내가 내 집 문을 들어오기 쉽게 개방하는 것이, 우리나라 내란의 난폭에 대해서 내 집을 수호하는 데 다른 방법들보다 더 유효할 것이다. 방비는 공격을 유인하고, 불신은 침해를 끌어온다.

- 영예
‘영광이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영광일 뿐 아닌가?’ -주베날리스-
이는 에피쿠로스의 주요한 학설중의 하나이다. 그 학파가 ‘네 생활을 감추라’고 가르치며, 사람들에게 공적 직책이나 교섭을 맡아서 번거로움을 사는 수작을 금한 것은, 역시 필역 적으로 우리가 명확히 보여주는 행동에 관해서 세상이 표해 주는 칭찬인 영광을 사람들이 경멸한다는 사실을 예측케 한다.

‘심령의 진실하고도 현명한 위대성은 우리의 본성이 주로 추구하는 선을 행적에 두지 명성에 두지 않는다.’ -키케로-
내가 내 인생에 주장하는 온 영광은 안온하게 살아 보았다는 일이다. 철학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좋은 평온으로 향하는 어떠한 길도 발견할 수 없었던 이상, 각자는 독자적으로 그것을 찾아 볼 일이다.
우리의 심령은 드러내 놓고 보여 주기 위해서 자기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눈밖에 다른 어느 눈도 들여다 볼 수 없는 자신의 내부에서 연기한다. 거기서 심령은 죽음과 고통의 공포와 수치의 공포에 대해서까지 우리를 비호한다. ‘어떤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고, 도덕 자체의 명예를 위해서’ 이 소득은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 내리는 유리한 판단에 지나지 않는 명예와 영광보다도 더 위대하고 훨씬 더 바라고 희망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선행에 대한 보상은 그것을 수행한 사실이다.’ -세네카-
‘어떤 봉사의 과실은 봉사 그 자체이다.’ -키케로-
화가나 어떤 장인이나, 또는 수사학자나 문법학자가 명성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용서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도덕의 행동은 그 자체가 너무 고상해서 자체의 가치밖에 다른 대가를 바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인간의 허영 된 판단 속에서 그것을 찾을 일이 아니다.
모든 명예로운 인간들은 자기 양심에 실수하기보다는 차라리 명예를 잃는 편을 택한다.

- 줄리우스 케사르
주바 왕이 그에게 대적하려고 대군을 인솔해서 온다는 소문이 돌자 그의 군대가 공포에 싸인 것을 보고, 적의 역량을 약하게 보이게 하는 대신에, 그는 우리가 흔히 하는 것과의 전혀 반대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즉, 그가 몰려오는 적의 군세가 얼마나 되는 가를 실제보다도, 그리고 그의 군대 속에 떠도는 소문보다도 훨씬 더 적의 수를 늘려서 말하였다. 과연 부딪치고 보니 실제로 기대했던 것보다 적이 더 약하다는 것은, 소문으로 적군을 약하게 보다가 실제로 대단히 강한 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심한 속임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전투에 앞서 군졸들의 사기 진작을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이나 일을 이미 준비하고 성숙한 뒤에 일에 착수했다. 그러나 필요한 기회가 닥쳐와서 상황이 그것을 요구할 때에는 세상에 케사르 만큼 자기 생명을 값싸게 내놓는 자도 없었다.
그는 옛날 로마 인들이 그들의 전쟁에 단순하고 소박한 도덕밖에 이용하지 않으려던 조심성과는 동떨어지게 달랐었다. 그래도 그는 지금 우리가 하는 것보다는 더 양심적으로 행동하였고, 승리를 얻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든 승인한 것은 아니었다.

- 탁월한 인물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 셋을 들자면,
하나는 호메로스이다. 그는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자들은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에 관한 지식의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능력의 종자와 같이 이용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그가 그의 업적을 시작한 나이, 그가 그렇게도 영광스런 위업을 완수하는 데 쓴 방법이라는 것이 대단치 않은 것, 그가 그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경험 많은 장수들 사이에 권위를 세워서 자신을 따르게 한 일, 모험적이며 거의 철부지라고 말하고 싶은 수많은 그의 업적을 운수가 품어주고 밀어 준 하늘의 은총 등을 고려해 보았다.
그의 학문과 능력의 탁월성, 그 순수하고 명쾌하고 오점과 시기심으로 더럽혀진 일이 없는 그의 영광의 오랜 지속과 위대성, 그리고 죽은 뒤에 오래도록 그의 메달을 몸에 지닌 자에게는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가 경건한 신념으로 되었던 사실, 그리고 다른 역사가들이 어느 임금이나 왕공의 공훈을 두고 쓴 것보다도 더 많이, 임금과 왕공들 자신이 그의 공훈에 관해서 기술하였고, 모든 다른 역사를 경멸하는 마호메드 교도들이 지금까지도 다만 그의 역사에는 별다른 특권을 주어 이것을 용인하고 숭앙한다는 사실을 고찰해 본 자라면, 그는 이 모든 것을 뭉쳐 생각해서 단 하나 내 선택에 의문을 품게 할 수 있었던 케사르 보다도 역시 그를 택한 것이 옳았다고 고백할 것이다.

셋째로는, 에파미논다스이다.
그의 결단성과 용감성으로 말하면, 야심으로 양진된 것 외에도 그는 예지와 이성이 잘 조절된 한 심령에 세울 수 있는 것으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한평생 가장 만족을 가져 본 것은, 레욱트라의 승리로 그의 부친과 모친에게 기쁨을 준 일이었다. 그가 이렇게 영광스런 행적에서 정당하고 충만하게 가질 수 있는 자기 기쁨보다도, 부모들의 기쁨을 더 좋아한 것은 실로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그는 자기 나라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유를 알아보지 않고는 사람 하나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질병과 의술
이것을 시작한 이래로 7,8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담석증과 친히 사귀게 되었다. 나는 이 담석증과의 살림에 화협해 가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위안과 희망을 발견한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그들의 비참한 존재와 야합하기 때문에, 아무리 혹독한 경우라도 그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용납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한 쪽 팔이 없더라도, 다리병신이라도, 앉은뱅이라도, 이가 없어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세네카-

철학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훈련시킨다. 시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철학은 책임을 맡아서 가르쳐 주고 있는 우리의 오성을 지배하는 것으로 그칠 일이다. 담석증을 다루는 데에서, 철학은 우리의 심령이 자기를 알아보며 그 습관화된 행습을 좇을 수 있게 하고, 고통의 발밑에 수치스럽게 포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싸우며 버티어 나가고, 싸움에 지쳐서 엎어지는 것이 아니라 흥분하고 열도 오르고 어느 정도까지는 교제도 하고 대화도 할 수 있게 심령을 유지해 주면 될 일이다.
의약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나는 그것을 내 경험에 의해서 두려워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한도에서, 인간의 어떤 족속도 이 의약의 권한 아래 있는 자들보다 더 일찍 병들고 더 늦게 낫는 족속들을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건강 자체가 섭생의 강제 때문에 변질되고 퇴락한다. 의사들은 질병을 지배하는 것만으로 만족치 않고, 사람들이 어느 계절에도 그들의 권위를 잊을 수 없게 하기 위해 건강한 자를 병들게 만들어 놓는다.

환자의 신념이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의약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리라고 예측하게 만드는 일은 그들의 훌륭한 규칙이며, 그것은 모든 광상 적이고 허황하고 초자연적인 기술에 수반되는 규칙이다. 가장 무식하고 어설픈 의사라도 그를 믿어 주는 자에게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가장 경험 있는 의사보다도 더 효험이 있다고 보기까지 이 규칙을 지키고 있다.
의사는 계획을 똑바로 맞추어 가기 위해서 너무나 상세한 일과 고찰과 사정이 필요하다. 그는 환자의 기질과 기분과 경향과 행동 및 그의 사상 자체와 공상들까지도 알아 두어야 한다. 바깥사정과 장소의 성질, 공기와 기후의 조건, 유성들의 자리와 그 영향에 관해서 책임을 져야 하며, 병에 관해서 그 원인과 징후와 결과를 알고 있어야 한다. 약에 있어선 그 무게, 힘, 산지, 모양, 나이, 복용법 등을 알아야 하고, 이 모든 부문들을 상호간에 관련지어서 완전한 균형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우리의 의술을 애호하는 자들은 역시 그들대로 양호하고 위대하고 강력한 고찰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나와 반대되는 사상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판단력이 남의 것과 합치되지 않는 것을 본다고 겁을 내거나, 사람들을 방향과 파당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과 교제를 않고 지낼 생각은 전혀 없다. 그 반대로 다양성이라는 것은 자연이 좇고 있는 가장 전반적인 방식이며, 정신은 더 부드럽고 더 많은 형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물질로 되어 있는 만큼, 이 다양성은 육체 보다 정신에 더 많기 때문에 나는 우리 기분과 의도가 합치하는 것을 보는 일이 드물다고 본다. 의견의 가장 보편적인 소질, 그것은 다양성이다.

3부

- 칭찬
남이 칭찬해 주는 것이 도덕적 행동에 대한 보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근거가 너무 불확실하고 불분명하다.
자기 개인 생활에까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훌륭한 인생에서 보는 일이다. 우리의 모든 일이 허용되고 모든 것을 감추어 두고 있는 가슴속, 마음속에 질서를 세워 보는 일이다. 그다음 단계는 아무에게도 보고할 필요가 없고, 연구도 기교도 없이 살아가는 자기 집에서의 일상적인 행동에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자기 아내와 하인이 보아도 별로 눈에 띌 일이 없게 살아간 자는, 세상에서도 놀라운 인물이다.

- 진실
과거에 관해서 우리에게까지 전해 온 모든 것이 진실이고, 그것을 어느 누가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에 비하면 무(無)만도 못한 일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있는 동안 흘러가는 모든 사물의 모습을 두고 말해도, 우리들 중의 가장 호기심 많은 자가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짧은 소견의 하찮은 일들뿐인가.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만큼의 세상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생활 형태가 끊임없이 늘어가고 변화해 가는 것을 보리라는 것은 믿을 만한 일이다.

- 권력
내 생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거칠고 힘드는 직업이 당당하게 임금노릇을 해내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서워지는 그들의 직책의 끔찍한 무게를 보아서, 나는 사람들이 대개 하는 것보다 더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준다. 그렇게도 엄청난 권력을 가지면 절도를 지키는 것도 힘이 든다. 그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는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면 기록과 보고에 오르지 않는 것이 없고, 조금이라도 일을 잘하면 혜택이 많은 사람에게 미치며, 그 자리에서는 그대 능력이 설교하는 자의 것과 같이 주로 판단력이 불확실하고 속이기 쉽고 만족시키기 쉬운 민중들에게 미치기 때문에, 거기 앉으면 성정이 좀 탁월하지 못한 사람들도 도덕적으로 처신하려는 특수한 자극을 받는다.

- 소문과 미신
세상의 많은 속임수를, 아니 더 과감하게 말해서 세상의 모든 속임수들은, 우리가 무식하다는 말을 듣는 일은 두려워하게 하고, 우리가 반박하지 못하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이 가르쳐 온 데서 생긴다.
정직성
진리의 길은 하나이고 단순하며, 개인적인 이득의 길과 사람들이 책임 밑는 사무상의 편의의 길은 이중이고 고르지 못하며 우발적이다.
‘우리에게 가장 맞는 일은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들이다.’ -키케로-
나는 속임수에게서 그 적당한 지위를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나는 속임수가 곧잘 유익한 일을 해 주었고, 대부분 사람들의 직책을 가꾸어 주며 유지시켜 주고 있는 것을 안다. 여러 가지 행동에는 좋은 것, 용서될 수 있는 것, 비합리적인 것이 있는 것처럼 악덕에도 합법적인 것이 있다.

- 세 가지 사귐
우리는 자기 성격과 기질에 너무 강하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주요한 능력은 여러 가지 일에 전념할 줄 아는 것이다. 필요에 몰려서 한 가지 진로에 매여 지내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지 사는 것은 아니다. 가장 훌륭한 심령은 가장 변화가 많고 가장 적응력이 있는 심령이다.
서적은 내 정신을 공부에서 벗어나 방탕하게 하는 부류에 속한다. 무엇이든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내 심령은 동요하며, 사방으로 그의 힘을 시험해 보고, 그의 조작을 때로는 힘의 편으로, 때로는 질서와 우아성으로 향해서 행사하며, 자체를 정제하고 절도를 지키고 강화한다. 내 정신은 그 자체로서 소질을 잠깨 워 가질 능력을 간직하고 있다. 본성은 누구에게나 해 주듯 내 정신의 소용에 충분한 자체의 재료와, 생각하여 판단할 자체의 주제를 충ㅇ분히 주고 있다.
자기를 살펴서 힘차게 부릴 줄 아는 자에게 명상은 또한 강력하고 충만한 공부가 된다.
마음은 가장 자연스럽고 긴장이 덜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가장 좋은 직무는 가장 강제가 적은 직무이다. 정말 자기 힘에 맞춰서 예지가 욕망을 조절해 주는 자들에게는, 그 예지가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까! 그보다 더 유용한 지식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버릇처럼 늘 하던 말이지만,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는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할 것이다.

나의 본질적인 형태는 나를 표현하고 사람과 교제하는 데 적합하다. 나는 천성이 사교와 우정을 즐기며 모든 것을 털어내 놓고 명확하게 보여준다. 나는 고적함을 즐기고 권유하지만, 그것은 주로 내 심정과 사상을 내 자신에 끌어오는 데 그치며, 내 생활이 아니라 내 욕망과 근심을 제한하여 압축하기 위함이며, 외부의 사세로 외로워지는 것도 체념하고 굴종과 부담을 극도로 피하기 때문이며, 사람이 많은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다. 내가 사는 자리가 고적한 것은, 오히려 나를 뻗쳐서 밖으로 키워 준다. 나는 혼자 있을 때 국가와 우주의 일에 더 열중한다.
내가 친분을 가지고 교제하고 싶은 사람들은 점잖고 재능이 있다고 알려진 위인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다른 자들은 싫증이 난다. 그것은 잘 생각해 보면, 우리들 중의 가장 희귀한 전형이며, 그것은 주로 본성에서 받아 온 전형이다. 이 교제의 목적은 단지 친분과 우의와 이야기 동무를 갖는 것이다. 즉 심령의 단련일 뿐이지 다른 성과는 없다. 우리들의 이야기에서는 무슨 주제든지 똑같다. 무게나 깊이가 없어도 상관없다. 거기에는 늘 우아한 풍치와 온당성이 있다. 모든 것이 거기서는 성숙하고 지조 있는 판단으로 물들어 있고, 호의와 솔직성과 쾌활미와 우정이 섞여 있다.
예쁘고 우아한 여자들과 교제하는 것도 내게는 한 가지 포근한 재미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역시 그 점에 박식한 안목을 가졌기 때문에 - (키케로)’ 심령은 여기서는 학문에서만큼 누릴 거리를 갖지 못한다 해도, 이 편에 더 많은 육체적 감각은, 내 생각으로는 그 비중이 서로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전자에 가까운 정도의 무게를 준다.

우리의 온 생각을 거기에 매어 두고 무분별하게 맹렬한 정열로 덤벼드는 것은 철부지 같은 짓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랑도 의지의 책임도 없이, 연극배우처럼 풍습과 나이가 모두 하는 버릇이라고 거기에 달려들며, 말로만 하고 마음을 주지 않는 일은 실은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지만, 그 비굴한 꼴은 마치 위험이 무서워서 명예도 이익도 쾌락도 버리는 꼴이다. 이러한 교제를 하는 자는 어떤 아름다운 심령을 감동시키거나 만족시킬 아무런 성과도 바랄 수 없다. 진심으로 누려 보았으면 하는 것은 진심으로 바라야만 한다.
셋째 것으로서 책들과의 교제는 훨씬 더 확실하며 더한층 우리들 차지이다. 이것은 다른 장점에서는 먼저 것들만 못하다. 그러나 그것은 제 몫으로 언제나 꾸준하며, 그 봉사를 얻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언제나 내가 가는 곳에 있으며 어디서나 나를 도와준다. 그것은 노년기에, 그리고 내 고적함 속에서 나를 위로해 준다. 그것은 내가 한가로움 때 권태증의 무게를 덜어 준다. 그리고 어느 시간에라도 내게서 귀찮은 동무들을 떼어 준다. 그것은 내 번민이 극도로 심하지 않을 때에는 고통을 덜어 준다. 불쾌한 생각을 풀어 보려면 책의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된다. 책은 쉽사리 그런 생각을 흩어 주며 그런 것을 빼앗아 간다.

- 기분 전환
‘여자는 단지 명령만 내리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넘쳐흐르도록 풍부한 눈물을 언제나 준비하고 있다.’ -주베날리스-
사람들은 이 격정에 대항하려다가 톡톡하게 대가를 치르고 만다. 왜냐하면 대항하면 그녀들을 더 자극하게 되어 더 큰 슬픔 속으로 밀어 넣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염증을 씻어 낼 수 없을 때에는 그 방향을 전환시켜서, 위험이 적은 다른 부분으로 돌려놓는다. 나는 이것이 심령의 질병에도 가장 적절한 치료법이라고 본다.

‘때로는 다른 취미나 몰두, 심려, 노고 등으로 정신을 전환시킬 필요도 있다. 결국 정신은 기력을 차리지 못하는 병자와도 같이 자주 장소를 옮겨서 요양시켜야 한다.’ -키케로-
정신의 고통에는 직접 충격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 상처를 부추기거나 꺾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기울여서 세력이 빗나가게 해야 한다.
죽음과도 심상한 얼굴로 상대하며, 그와 친밀해지고 그것을 희롱하는 태도는 오직 소크라테스만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사물의 밖에서 위안을 찾지 않는다. 죽음은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자연스런 사건으로 보인다. 그는 시선을 똑바로 겨누며 다른 곳은 쳐다보지도 않고 결심한다.

- 허영심
이 시대의 부패상은 우리 각자의 개인적 기여로 이루어진다. 어떤 자들은 그들이 더 강하니까 배반으로 기여하고, 다른 자들은 비행, 무신앙, 폭언, 탐욕, 잔인성 등을 통해 각기 더 강한 대로 이바지 한다. 더 약한 자들은 어리석음과 허영심과 한가로움을 여기 가져오는데, 나는 이 축에 든다. 아마도 이제 우리가 손해되는 일에만 쏠리는 것은 헛된 일의 계절이 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나쁜 짓을 하는 것이 다반사로 된 지금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로 보인다.
세상에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땅 밑으로 황금을 콸콸 쏟아 놓는 자가 있다. 다른 자들은 돈을 나뭇잎처럼 얄팍하게 펼쳐서 늘어놓는다. 그래서 어떤 자에게는 한 푼이 몇 냥 값어치가 나가고, 다른 자에게는 그 반대로 나가며, 세상은 외관상의 용도가 가치를 평가한다. 재산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조심하는 눈치를 보이면 인색한 남자가 된다. 돈을 쓰는 일과 후한 처사에서도 너무 조직적이고 기교를 부리면 역시 그 모양이 된다. 그것은 애써서 주의하고 조심하는 것만 못하다. 재물을 적당하게 쓰려는 자가 꼼꼼하게 제한해서 쓴다. 돈을 담아 두건 써 버리건, 그 자체로는 무관한 일이다. 그것이 좋게 든 그르게 든 보이는 것은 오로지 우리 마음 씀씀이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무장하고 땅을 갈며,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둑질이나 하고 약탈을 일삼으며 살아갈 생각만 한다.’ -베르길리우스-
나는 우리 인간 사회가 무슨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로 매이고 얽혀서 살아가는 것을 본다. 마치 잘 결합되지 않은 물체들을 질서 없이 자루에 쑤셔 넣으면 그들끼리 서로 얽매이는 방식을 찾아가며, 그것이 때로는 기술적으로 정리해 넣은 것보다 더 잘 자리 잡는 식으로, 사람들은 어느 장소에 갖다 놓아도 움직이며 서로 덮치다가 서로 쌓이며 정돈되어 간다.

- 사색과 감동
나를 감동시키는 사물 또는 더 잘 말해서 내 마음을 잡아 두는 사물은 대단히 적다. 사물이 우리의 마음을 잡아두지만 않으면 사물이 우리를 감동시킨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싫어하는 것과 쾌락을 좋아하는 것 사이에는 절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 두 가지 사이에 중용의 길을 닦으라고 명령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빚이 있고, 자기에게 얼마나 해 주어야 할일이 많은가를 아는 자들은, 대자연은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 결코 한가롭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일거리를 맡기고 있음을 알아본다. 그대는 집에서 할 일이 상당히 많다 자기를 떠나지 말라.

우리 직업의 대부분은 마치 희극 배우와 같다.
‘온 세상은 희극을 연기한다.’ -페트로니우스-
우리는 우리 역할을 적당하게 연기해야 하며, 그것도 빌려 온 인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 가면과 외모를 가지고 실제의 본질을 삼아서는 안 되고, 밖에서 빌려 온 것을 진짜로 삼아도 안 된다. 우리는 피부와 셔츠를 분간 못한다. 가슴을 치장할 것 없이 얼굴 화장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사람들이 직무를 수행할 때 그만큼 새로운 형상과 새로운 존재로 변형하며 실체를 변질시켜 가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간과 창자까지 고관대작이 되어서 자기 직무를 뒷간까지 끌고 간다. 나는 그들에게 자기에 관한 인사성, 그들의 종자에 관한 것, 또는 그들의 당나귀에 대한 것 등을 분간하게 가르칠 줄을 모른다.

‘그들은 본성을 망각할 정도로 운수에 몸을 맡긴다.’ -퀸투스 쿠르티우스-
그들은 마음과 본연의 말투를 그들 관직의 높이로 부풀려 올린다.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는 행운일거나! 그는 모든 공포심이나 운명의 믿음이나, 탐이 많은 아케론의 포효를 그 발밑에 유린한다. 그러나 전원의 신들과 목양신 판과 늙은 숨의 신 실바누스와 물의 요정 님파스 자매를 알고 있는 농민 역시 행복하여라.’ -베르길리우스-
모든 사물의 발단은 순하고 약하다. 그러나 그 시초를 똑바로 눈뜨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작을 때에는 숨어 있는 위험한 요소를 발견할 수 없는 것같이, 그것이 커지면 그 구체책을 발견하지 못한다.


자료정리:신승현 99egg@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


:
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