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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9. 16:57

법의 정신(몽테스키외)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16:57


1. 몽테스키외의 생애 (1689. 1. 18.~1755. 2. 10.)
 
  그의 아버지 자크 스통다는 16세기경 왕에 봉사하여 작위를 받고 상당한 재산을 가진 유서 깊은 무과 가문 출신이었고, 어머니 마리 프랑수아 드 페늘은 영국 출신의 신앙심 깊은 부인이었다. 몽테스키외는 처음에는 집에서, 나중에는 마을에서 교육을 받다가 1700년 파리에서 가까운 모(Meaux)의 교구에 있는 콜레주 드 쥐이에 들어갔다. 이 학교는 보르도의 유명한 가문들이 후원하고 있었으며 소유자 오라토리오회 사제들이 계몽적이고 근대화한 방식으로 견실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몽테스키외는 1705년 보르도 대학교 법학부에서 계속 공부한 뒤 1708년 졸업하면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 직후 법률실무를 쌓기 위해 파리로 갔다가 1713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보르도로 돌아왔다. 2년 후 잔 드 라르티그와 결혼했다. 부유한 프로테스탄트였던 그녀는 지참금으로 10만 리브르를 가지고 왔고 얼마 후 딸 2명과 아들 장 바티스트를 낳았다. 몽테스키외는 부인의 사업수완을 높이 평가하고 파리로 떠날 일이 있을 때마다 기꺼이 재산 관리를 그에게 맡겼다.

그는 1726년 숙부 몽테스키외 남작 장 바티스트가 죽자 몽테스키외 남작이란 지위와 함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영지와 보르도 의회 부의장직을 물려 받았다. 그 직책은 어느 정도 명예직으로 연금을 받긴 했지만 한직이었다. 몽테스키외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사회적, 재정적 안정을 얻었다. 그는 법률 사무소에 전념하면서 로마법을 꼼꼼히 연구했는가 하면, 재산을 관리하는 틈틈이 새로 설립된 보르도의 학회에서 과학, 특히 지학, 생물학, 물리학적 지식을 쌓았다.

1721년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출판했는데, 이 책은 2명의 페르시아인 여행자의 눈을 통해 프랑스, 특히 파리의 문명을 날카롭게 풍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몽테스키외는 유명해졌고, 이 책에는 당시 파리에서 움트고 있던 새로운 사상이 가장 재기발랄하게 표현되었다고 여겨졌다. 그는 곧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되어 1728년부터 유럽 각국을 여행하였고 영국에 3년간 체재하였다. 그 동안 각국의 정치, 경제에 관해 관찰하고, 기록하여 이를 바탕으로 하여 《로마인의 성쇠원인론(盛衰原因論)》(1734)등을 저술하였고, 또 10여년이 걸린 대저(大著) 《법의 정신》을 완성하였다. 이것은 곧 금서목록에 올랐으나 2년 동안 22판(版)을 냈다.


2. 몽테스키외의 사상 - 자유와 미덕을 강조, 계몽사상의 선구적 역할

몽테스키외는 <페르시아인의 편지>부터 그의 저작전체를 부단히 일관하는 기조, 즉 미덕과 자유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최선의 생활이란 미덕 있는 생활이며 자유와 미덕이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을 강조하며 미덕이 공화제적 정치에서의 지배적 원리이며 그리고 미덕이 사라지면 자유는 군주내지 전제군주의 수중에서 소실되고 만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잇따른 저술 <로마인 성쇠론>,<법의 정신>에서 그는 다수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사회적 제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는 특히 영국의 정치제도에서 '국가에 있어서의 균형세력으로서 귀족의 역할에 관심을 가졌다. 귀국한 후에는 로마의 융성과 쇠퇴에 관한 연구를 저술한 <로마인 성쇠론>으로 당시 프랑스를 각성시켜 개혁과 부흥으로 향하고자 했다. 그는 우리가 원인을 안다면 제도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고 믿고 그 자신이 로마제도의 연구에서 이러한 원인을 발견하려고 시도했다. 그가 과거가 현재에 대해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믿는 바탕에는, 인간은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같은 정념을 갖고 있으므로 인간의 제도는 영원히 동일한 기능을 가질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몽테스키외는 엄격한 인과성에 대한 18세기적 신념을 다른 사람들과 공통으로 갖고 있어서 그것을 역사의 영역에 확대 적용하여 역사적 변화의 법칙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했다. <성쇠론>에서 그는 '고귀한 로마인'의 상이라는 미덕에 초점을 맞추면서, 로마의 쇠퇴가 계급 전쟁 때문이 아닌 영토 확대로 인한 미덕의 부패 때문이라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부분적 전제에 불과했고 1748년 출판된 <법의 정신>에서는 그의 모든 사상이 잘 나타난다.

그는 <법의 정신>에서 법의 정신 또는 법이 각 분야별 관계를 중시하고, 천차만별의 법과 관습 속에서도 단순한 원리가 있다는 신념 하에 법적, 정치적 제도를 자기의 주제로 삼고 그것에 생기를 넣어주는 '정신'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에 따르면 주요한 정치제도는 정부이며 정부형태로부터 '법의 정신'이 유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화제', '군주제', '전제제' 등의 정치형태들을 제시하며, 그를 움직이게 하는 인간의 정념이 민주제에 있어서는 그 원리가, 군주제에 있어서는 법과 명예가 미덕이며, 공화제에서는 미덕을 당연히 가져야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이 세 형태의 부패상을 각각 설명하면서 정치의 원리가 일단 부패하면 최선의 법조차 악법이 된다고 하였다.

그는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권리라고 정의하고, 자유를 보존하는 길은 오직 권력과 균형과 분리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며, 자유는 귀족제적 정부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하여 영국의 제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권력은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으로 분할하며 모든 자유가 상실되는 것은 동일한 인간이나 혹은 동일 집단의 제후들, 귀족들, 인민들이 이러한 3권을 행사할 때라고 했다. 또 하나의 권력분립은 사회세력, 즉 국왕, 중간층, 인민으로 분할하여 중간층인 귀족층이 상원의 자리에서 인민의 중도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인민은 하원의 자리에서 귀족들의 행위를 견제할 수 있다고 보아 두 신분간의 계급적 항쟁을 인정하고, 그것이 국가에 활력과 건전한 조화와 세력균형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 혹은 보수적 자유주의자로서 균형이 잡힌 제한된 입헌제정책 즉 영국적 모델에 입각한 정체를 논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의 사상은 개혁적이었고 18세기의 미국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쳐 미국에서는 헌법을 입안하는데 있어 권력의 분립과 균형의 이론을 제공했고, 프랑스에서는 신분제에 대한 불만고조와 영국의 선례에 따라 자유를 찾도록 사람들을 고무시켰다.

한편, 그는 인간연구의 문헌에서 새로운 노선을 열어 역사적 방법을 근대사상에 도입하도록 기여하여 제도들이 성장, 사멸을 겪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관찰하는 우리의 시대와의 관련에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바로 이러한 경향은 사회학의 창시를 가능케 하여 모든 비교와 분류 등의 사회적 유형이라는 관념을 수립해 사회과학의 방법상의 전진을 가져왔다.

결국 그의 사상은 기성제도를 의문시하고 자유와 미덕을 칭송한데서 출발해 나중에는 좀더 적절한 역사파악 그리고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에 이르는 확고한 디딤돌로서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3. 시대배경 - 부르봉 왕조 시대 절대주의 왕정의 절정
                     
  - 루이 14세 Louis XIV (1638.9.5~1715.9.1)
  ‘대왕’ 또는 ‘태양왕’이라고 불렀으며, 부르봉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대표한다.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한 후 자신을 지상에서의 신의 대행자라 하여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였고, ‘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종교’를 표방, 1685년에는 낭트칙령을 폐지하고 신교도를 박해했으며, 장세니스트를 탄압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상공업에 종사하던 신교도들이 국외로 이주함으로써 프랑스 산업은 타격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의 대외 전쟁과 화려한 궁정생활로 프랑스 재정의 결핍을 초래하고 절대왕정의 모순이 증대하여, 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되었다.
 
  - 루이 15세 Louis XV (1710.2.15~1774.5.10)
  루이 14세의 증손. ‘친애왕’이라 불렸다. 5세 때 왕위에 오르자 오를 레앙공 필리프가 1723년까지 섭정하였다. 섭정 때에는 루이(14세)     때의 전제에 대한 반동으로 자유와 해방감에 싸였고 언론이 활발해졌으며 신학 대신 철학이 일어났는데,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이 정부    나 제도에 대한 공격에 선봉을 섰다. 이 시대의 모순은 그대로 다음 시대로 이어져 점차 프랑스를 혁명의 길로 몰고 갔다.


4. <법의 정신> 주요 내용

* 법일반 (法一般)

- 모든 지적 존재는 스스로 만들어낸 법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만들지 않은 법도 가지고 있다. 지적 존재가 존재하기 전에도 그것들은 존재가 가능했으므로 그 존재들은 가능해질 수 있는 관계, 즉 자기의 법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실정법이 존재하기 전에 정의의 가능한 관계가 존재했다는 데 기인한다.

* 정체(政體)의 본성에서 파생되는 법

- 정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공화정체, 군주정체, 전제정체가 그것인데, 그 본성을 발견하려면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그것들에 대한 관념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세 가지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다. 공화정체란 국민 전체 혹은 단순히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체이고, 군주정체란 단 한사람이 통치하지만 정해진 제정법에 의거하여 통치하는 정체를 말하며, 이에 반해 전제정체에 있어서는 통치자 자신의 의지나 자의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는 정체를 말한다. 이것이 각 정체의 본성이다.

* 세 가지 정체의 원리

- 각 정체의 본성과 원리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즉, 그 본성이란 그 정체로 하여금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고, 원리란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다. 전자는 그 고유의 구조이고, 후자는 그것을 움직이는 인간의 정념이다. 그런데 법은 각 정체의 본성과 같이 그 원리에도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공화정체의 본성은 국민 전체이든가 혹은 어떤 몇몇 가족이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군주정체의 본성은 군주가 주권을 가지되 그것을 정해진 법에 의하여 행사하는 것이다. 이들 정체의 세 가지 원리는 찾아내는 데는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원리는 거기서 자연히 파생되어 온다.

* 교육법은 정체의 원리와 관계가 있어야 한다

- 교육에 관한 법은 우리가 받는 최초의 법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를 시민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개의 가족은 그 전부를 포함하는 대가족의 관점에서 다스려져야 한다. 국민 전체가 하나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 즉 가족도 그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육에 관한 법은 각종 정체에 있어서 제각기 특색이 있을 것이다. 군주정체에서 그것은 명예를 목적으로 할 것이며, 공화정체에서는 덕성을, 전제정치에서는 공포를 목적으로 할 것이다.

* 입법자가 제정하는 법은 반드시 정체의 원리와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

- 우리는 교육에 관한 법이 각 정체의 원리와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아 왔다. 입법자가 사회 전체에 주는 법에 관해서도 그러하다. 이 법과 원리와의 관계는 정체의 모든 태엽을 긴장시키며, 원리도 거기서부터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 세 가지 정체 원리의 부패  
    
- 민주정체의 원리는 사람들이 평등의 정신을 잃을 때뿐만 아니라, 극도의 평등 정신을 가져서 각자가 자기를 지배하기 위해 선출한 자와 평등해지려고 할 때에도 부패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자기가 위임한 권력까지도 견딜 수가 없어서 모든 것을 그 자신이 하려고만 한다.
- 귀족정체의 부패는 귀족의 권력이 자의적으로 될 때 초래된다. 지배하는 자에게도, 지배당하는 자에게도 덕성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지배하는 여러 가문이 법을 지키고 있을 경우에는 그것이 다수의 군주를 갖는 군주정체이므로 그것은 훌륭한 군주정체이다. 이들 군주의 대부분이 법률에 의해 구속되고 있으므로, 만약 그것이 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것은 다수의 전제군주를 갖는 전제국가이다.
- 국민이 원로원, 집정관, 재판관으로부터 그 기능을 빼앗을 때 민주 정체가 멸망하는 것고 같이, 군주정체는 국왕이 점차 여러 단체의 특권이나 도시의 특권을 빼앗았을 때 부패한다. 전자의 경우는 그것이 만인의 전제정체에 이르고, 후자의 경우는 단 한 사람의 전제정체에 이른다. 군주정체는 군주가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만 관련시킬 때에 멸망한다.

* 법과 방어력과의 관계

- 국가는 대소를 막론하고 멸망한다. 즉, 국가는 작을 때는 외세에 의해서 파괴되고, 클 때는 내부적 결함에 의해서 멸망한다. 이 이중의 결함은 민주정체에도 귀족정체에도, 그것이 좋든 나쁘든 마찬가지로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공화정체의 대내적 장점과, 군주정체의 대외적 세력을 함께 갖는 일종의 국가조직을 고안해내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결국 영원히 1인 통치의 정체 밑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이는 연방적 공화정체를 가리킨다. 이 정치 형태는 하나의 협정이므로, 그로 말미암아 많은 정치단체가, 형성코자 하는 보다 큰 국가의 시민이 되는 일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수의 사회가 합쳐서 하나의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므로 새 가입자에 의해서 전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리만큼 그 위력이 결합된 상태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

* 법과 공격력과의 관계

- 국가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과 같다. 후자는 자연적 방위의 경우에는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으며, 전자도 자기보존을 위해서는 전쟁을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자연적 방위의 경우, 나는 죽일 권리를 갖는다. 나를 공격하는 자의 생명이 그의 것인 것처럼,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또한 전쟁을 한다. 국가의 자기보존도 다른 모든 보존과 같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평화는 상대방 민족을 멸망시키는 다른 힘을 주게 되고, 그 결과 이 순간에 자기의 멸망을 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격이라고 인정하는 경우가 그렇다. 군주의 양심 또는 그 고문회의를 좌우하는 사람들이 정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모든 일은 끝난 것이다. 따라서 영광, 의례, 이익 같은 자의적인 원리를 채용한다면 유혈의 물결이 땅을 덮을 것이므로, 특히 군주의 영광 따위를 주장해서는 안된다.

* 자유란 무엇인가

-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권리이므로, 만약 어떤 시민이 법이 금하는 바를 행할 수 있다면 다른 시민도 역시 그 가능성을 가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는 자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 본성으로 볼 때 민주정체와 귀족정체는 결코 자유스러운 국가는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남용되지 않을 때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남용한다.

* 정치적 자유를 구성하는 법과 시민과의 관계

- 국가구조는 자유로우면서 시민은 조금도 자유롭지 않다는 일은 가능하다. 반면 시민은 자유스러운데 국가구조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국가 헌법은 법률상 자유이면서 실상 그렇지 않고, 시민은 실상 자유스러우면서 법률상 그렇지 않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국가 헌법과의 관계에서 자유를 형성하는 것은 법의 규정, 특히 기본법의 규정뿐이다. 그러나 시민과의 관계에서 습속, 생활양식, 관례 등이 그것을 발생하게 하므로 특별한 경우 시민법이 그것을 조성할 수 있다. 각 헌법에서 각국의 저마다 인정할 수 있는 자유의 원리를 조장하거나 또는 방해할 수 있는 개개의 법에 관해서 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국가 수입

- 국가의 수입이란 각 국민이 재산의 다른 부분을 안전하게 유지하거나, 또는 그것을 안락하게 누리기 위해 제공하는 그 재산의 일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수입을 정당하게 정하기 위해선 국가의 필요에 대해서도, 또 시민의 필요에 대해서도 똑같이 고려되어, 국가의 상상적 필요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그 현실적 필요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상상적 필요란 통치하는 사람들의 정념과 약점, 터무니없는 계획이 갖는 매력, 허망한 영광에 대한 병적인 갈망, 방자함에 대한 정신적 무력에서 유인된 것이다.

* 법과 풍토와의 관계

- 만일 정신적 특질과 여러 정념이 각 풍토에 있어 극도로 다르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법 또한 이 성격의 차이에 대해 상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 흑인의 노예제

-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흑인들이다. 그들의 코는 몹시 납작해서, 그들을 동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대단히 현명한 존재인 신(神)이 영혼을, 특히 선량한 영혼을 새까만 육체에 속에 깃들이게 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흑인에게 지적 능력이 없다는 증거는 그들이 문명국에서 대단히 귀중히 여기는 금목걸이보다도 유리 목걸이를 중히 여긴다는 점에 있다. 이들을 인간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다처제에 관한 여러 가지 사정

- 유럽 여러 지역에서 산출한 근거에 의하면, 그곳에서는 여자보다도 남자가 더 많이 태어난다. 이에 반해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보고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따라서 유럽에서의 일처제의 법과,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서의 다처제의 법은 풍토와 특정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아시아의 풍토

- 아시아는 고유한 의미에서의 온대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는 매우 추운 풍토에 있는 지방, 즉 터키, 페르시아, 인도, 중국, 한국, 일본에 접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유럽에서는 온대가 매우 넓다. 스페인, 이탈리아의 풍토와 노르웨이, 스웨덴의 풍토 사이에는 어떠한 유사성도 없으므로, 유럽은 서로가 매우 다른 풍토 속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아시아에서는 강한 국민이 약한 국민과 대립하게 된다. 즉 호전적이고 용감하고 활동적인 국민이, 유약하고 나태하고 소심한 국민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편은 정복되고, 다른 한편은 정복자가 되어야 한다. 이에 반해 유럽에서는 강한 나라 간에 상호 대립하고 있는데, 서로 인접한 나라들이 거의 같은 용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아시아의 무력과 유럽의 강대, 유럽의 자유와아이사의 예속성의 큰 이유이다.

* 토지의 성질이 법에 미치는 영향

- 한 나라의 토질의 비옥은 거기에 자연적으로 종속제를 성립시킨다. 국민의 주요 부분을 이루는 농민은 그 자유를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일에 너무나 쫓기고, 너무나 열중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하여 1인 통치의 정체는 비옥한 지방에서 더욱 자주 볼 수 있고, 다수 통치의 정체는 비옥하지 못한 지방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손해배상 같은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자연의 혜택을 보다 많이 받는 지방보다, 산이 많고 자연 조건이 나쁜 지방에 더 많이 군림한다. 산간의 국민들은 보다 제한적인 정체를 유지하는데, 그들은 정복될 위험이 거의 없으므로 쉽게 자기를 방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지는 모든 법이, 거기서는 만들어질 이유가 적은 것이다.

* 법의 일반적 관계

- 법은 각종의 민족이 생계를 획득하는 수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상업 및 항해에 종사하는 민족에게는, 자기 땅을 경작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민족보다 더 광범한 법전이 필요하다. 후자에게는 그 가축 떼로 생활하는 민족보다 더 광범한 법전이 필요하고, 이 목축으로 생활하는 민족에게는 수렵으로 생활하는 민족보다 광범한 법전이 필요할 것이다.

* 일반정신이란 무엇인가?

- 인간은 많은 것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즉, 풍토, 조교, 법률, 통치의 격률, 전례, 습속, 도덕 등이다. 그것들로부터 그 자체에서 유래하는 일반 정신이 형성된다. 각 국민에게는 이 원인 중의 하나가 보다 큰 힘을 가지면 가질수록 다른 원인은 그것에 양보를 하게 된다. 자연과 풍토는 거의그것 자체로서 미개인을 지배하고 있으며, 중국인은 생활양식이 지배를 받고 있다. 법률이 일본에 폭정을 펴고 있었고, 예전에는 도덕이 스파르타에 모범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한때 로마에서는 통치의 격률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습속의 순박함이 모범을 보여주었던 적이 있었다.

* 해항(海港)

- 멀리 떨어진 고장에 가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해항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적다. 그러나 이곳에는 다른 곳보다 어린이가 많다. 그것은 생활 필수품을 입수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어류의 기름이 생식에 도움이 되는 원료를 공급하는 데 더 알맞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류를 주식으로 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에 인구가 매우 많은 원인의 하나는 이것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식을 강제하는 어떤 수도원식 규칙은 입법자 자신의 정신에 어긋날 것이 아니겠는가.

* 제한정체는 기독교에 보다 적합하고, 전제정체는 이슬람교에 적합하다는 것

- 기독교는 순수한 전제정체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복음서에서 화합이 빈번히 주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주가 신하를 벌하든가, 잔학을 행할 때의 전제적 분노에 이 종교는 반대한다. 이 종교는 다처제를 금하므로 기독교국의 군주는 그다지 폐쇄적이지 않고, 그다지 신민과 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보다 인간적이다. 그들은 법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보다 많이 갖고 있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능하다는 걸 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이슬람교국 군주가 끊임없이 죽음을 내리든가 받든가 하는 동안 기독교도 사이에서는 종교가 군주를 보다 비겁하지 않고 보다 잔혹하지 않게 하고 있다.

* 어떻게 하여 종교는 시민법에 영향을 미치는가

- 종교나 시민법은 주로 인간이 좋은 시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므로, 양자의 그 하나가 이 목적에서 이탈될 때, 다른 하나는 한층 이것을 지향해야 할 것은 명백하다. 종교가 억제적이 아니면 아닐수록 시민법은 더욱더 엄격해야 한다.

* 교의를 사회에 있어 유익하게 하거나 위험하게 하는 것은, 그 진실성 및 허위성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용 또는 악용이라는 것

- 가장 진실하고 신성한 교의도 그것이 사회의 원리와 결부돼 있지 않을 때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다. 이에 반해 가장 허위적인 교의도 이러한 원리와 결부되게 한다면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법과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판단능력

- 인간은 여러 가지 법에 의하여 지배된다. 즉 자연법, 신법, 교회법, 만민법, 정법 등과, 어떤 국민이 다른 국민에 대해서 폭력을 휘두르기를 바랐고 이를 행할 수 있었고 또는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에 기초를 둔 정복법, 그리고 시민이 다른 어떠한 시민에 대해서도 자기의 재산,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각 사회의 시민법과 가법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여러 가지 다른 법의 질서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인간 이성의 탁월성은, 사람이 판정을 내려야 할 사물이 이러한 질서의 어느 것에 주로 관련하는가를 정확히 알고, 인간을 지배해야 하는 여러 원리 속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데에 존재한다.

* 입법자의 정신

- 내가 이 저작을 만든 것은 오로지 내가 다음에 말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즉 중용의 정신이 입법자의 정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선은 도덕적 선과 같이 언제나 두 극단 사이에 있다.

* 동일하게 보이는 법이 반드시 언제나 동일한 효과를 갖지는 않는다는 것

- 카이사르는 60세스테르세스 이상의 돈을 자기집에 두지 못하도록 금했는데, 이 법은 로마에서 채무자와 채권자를 화해시키는 데 매우 적합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부자를 강요하고, 가난한 자로 하여금 부자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제도의 시대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동일한 법은 그 폐해가 실로 막심했다. 왜냐하면 그 제정된 상황이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제도는 자기 돈을 투자하는 모든 수단을 빼앗은 후에 자신의 집에 그것을 저장하는 수단까지도 빼앗았으므로, 그것은 폭력에 의한 탈취와 다를 바가 없었다. 카이사르는 화폐를 국민들 사이에 유통시키기 위해서 그 법을 만들었으나, 프랑스의 장관은 화폐가 단 한 사람의 손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그 법을 만들었다.


5. 삼권 분립 제창의 배경

-몽테스키외는 경험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남용하기 쉬우며 끝까지 지속하려 한다고 보았다. “권력을 잡은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남용하여 그 극한까지 가고야 만다는 것은 오랜 경험이 가르치는 바이다.” 정치적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을 받고 있으므로 권력은 제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몽테스키외는 당시의 군주정을 염두에 두고 전제정으로 빠지지 않도록 권력분립론을 제창하였다. 정치권력의 집중은 남용의 우려가 있다 하여 권력으로써 권력을 견제하려 했던 것이다. 다만 그는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서 집행권을 대표하는 왕과 입법권을 대표하는 등족회의가 대립하는 것에 주목하여 이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법이라는 중립적 권력을 두었다. 몽테스키외의 주장은 그 후 나폴레옹법전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의 사법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료정리:장광익 gwangik@paran.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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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