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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9. 16:50

아함경(석가모니)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16:50

 
Ⅰ.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석가모니의 본명은 Gautama Siddhartha이다. 인도 코살라 왕국 샤키아 공화국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나 인도 마가다 왕국 말라 공화국 쿠시나라에서 사망하였다. BC 6~4세기경에 활동한 불교의 창시자로 80년 생애를 살았다. 생몰년에 관해서는 BC 463∼BC 383년 설과 BC 563∼BC 483년 설이 있다. 

네팔 남부가 인도대평원으로 이어지는 위치에 있었던 카필라성(Kapila城)을 중심으로 사카족의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그 국왕인 정반왕(淨飯王)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석가모니의 석가(kya)는 민족의 명칭이고 모니(muni)는 성자라는 의미로, 석가모니라 함은 석가족(族) 출신의 성자라는 뜻으로,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흔히 각자(覺者;깨달은 사람)를 뜻하는 보통명사를 고유명사화하여 불타(佛陀;Buddha) 또는 불(佛)이라 하며, 다시 여래(如來;진리의 완성자) 또는 승자(勝者;Gina)라 하기도 한다.

불타는 깨달은 사람, 아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불타 즉 부처는 석존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불타는 일체법(一切法), 즉 우주 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대성자(大聖者)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성자가 석존이기 때문에 그를 불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석존처럼 우주 인생의 진리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진실 되게 이해하여 실천 파악하고 자기화 시켜,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인격을 완성한 이를 가리킨다.

참고 : Encyclopedia Britannica online 백과사전(http://www.britannica.co.kr/)


Ⅱ. 아함경(阿含經)

아함은 범어 아가마의 음역(音譯)이다. ‘오는 것’이라는 뜻으로, 전승(傳承)되어오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전해져 온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의미다. 석존 열반 후 1백~2백년이 지나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으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해서 모은 것을 아가마(Agama)라 부른 것이다.

그래서 아함경은 한 권의 경전이 아니라 부처님의 교설 전체를 담은 백과사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근본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대승과 소승의 구별도 없으며 이설의 대립도 없다. 유명한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인연(十二因緣) 십이처(十二處) 오온(五蘊) 중도(中道) 십팔계(十八界) 등 불교의 근본교리가 함축되어 있다.

아함경에는 남전(南傳)과 북전(北傳)이 있다. 북전은 한역(漢譯) 아함경이다. 한역 아함경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22권엔 장편 경전 30경이 들어 있다. 중아함경(中阿含經) 60권에는 중편경전 222경이 담겨 있다. 아울러 잡아함경(雜阿含經) 50권은 단편경전 1362경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51권에는 471경이 들어 있다. 보통 "4아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전(南傳)은 남방불교의 팔리어 5부(部·니카야)다. 여기서 니카야는 부분이란 뜻이다.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부(增部) 소부(小部)가 그것이다. 대개 "5아함"이라고 부른다. 이중 소부(小部)에 유명한 법구경(法句經) 본생담(本生譚) 등 경전 15편이 들어 있어 한역 아함경과 구별 짓는다.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아함경이 율장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경전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4아함은 어느 한 부파(部派)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 아니라 다른 부파의 것을 모아 엮은 것으로 밝혀졌다. 팔리어경전의 5아함은 동남아에서 최고의 경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현대불교 미디어센터 ⓒ 2005)


Ⅲ. 시대적 배경

BC 1500년경 서북인도의 펀자브 지방에 침입한 아리안족은 서서히 동남으로 이주하여 갠지스 강 상류에 정착했고, BC 9세기 무렵까지 베다 문화를 형성했다. 이후 다시 동쪽의 중류 지방으로 이주하여 원주민과의 혼혈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구성과 문화에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브라만교의 전통적인 습속이나 의례를 지키는 기풍이 약화되고 새로운 사고가 양성되어 BC 6세기 무렵에는 새 계급이 출현했다.

비옥한 갠지스 강 유역에서 산출되는 농산물 등의 물자가 풍부해짐에 따라 점차 상공업이 성행하게 되어 다수의 소도시가 성립하고 있었다. 도시의 출현은 종래의 부족적 계급제도를 무너뜨렸고, 이와 동시에 소도시를 중심으로 점차 군소국가가 구성되어 귀족정치나 공화제적 정치가 실행되었으며, 이런 국가들은 이윽고 국왕이 통치하는 대국으로 병합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도시의 발전은 화폐의 유통을 성행하게 했으며, 상공업자들은 각기 조합을 구성하여 도시의 경제적 실권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이처럼 경제적 지위의 향상과 더불어 종래의 고정적 사상이나 종교에 만족할 수 없었던 토착부족이나 혼혈화된 새로운 부족의 지위도 향상되었고, 이에 따라 자유로운 사상을 품은 사상가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특히 갠지스 강 중류의 마가다와 코살라라는 두 대국을 중심으로 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되었다. 이들 혁신적인 자유사상가들은 사문(沙門:노력하는 사람)이라 불렸다.

이들은 보통 6사외도(六師外道)로 분류되는데, 그중에도 자이나교의 개조인 니간타 나타푸타, 유물론자인 아지타, 회의론자 또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인 산자야, 도덕부정론자인 푸라나, 결정론자인 마칼리 등이 특히 잘 알려져 있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도 그런 사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 출처 : http://blog.daum.net/dbstjsan11/1611536-

* 고다마 싯다르타의 탄생
석가족이 거주하던 지역은 네팔과 인도의 국경 부근에 있는 한 지방인데, 현재의 지명으로는 우타르프라데시의 북방이다. 북으로는 히말라야 산맥, 남으로는 갠지스 강으로 유입하는 많은 지류가 있어서 풍부한 물을 이용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국이었으며, 일종의 공화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다만 남쪽의 대국인 코살라국에 인접한 탓으로 주권은 코살라국에 종속되었지만, 자치권은 인정되고 있었다. 그런 석가족의 우두머리인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이 석가모니의 아버지였고, 어머니는 마야(Maya)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정반왕이라는 호칭에서 나타나듯이 석가족 집단의 우두머리는 라자(raja:왕)라고 불렸지만, 이는 통치자를 의미하는 군주의 칭호가 아니라 단순히 행정상의 수장(首長)이라는 직권을 의미하고 있었다.

석가모니는 BC 6세기 혹은 BC 5세기에 석가족의 수도인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출생연도에 대해서는 약 100년의 시차로 견해가 갈리는 많은 이설(異說)이 있고, 특히 남방의 불교도는 BC 624년에 태어난 것으로 믿고 있다.

석가모니의 탄생은 태몽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머니 마야 부인은 석가모니를 낳기 전 아름답고 은처럼 하얀 코끼리가 그녀의 옆구리를 통해서 자궁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왕비와 수행원은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데바다하에 있는 친정으로 가던 중에 두 도시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던 룸비니(Lumbini)라는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낳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부인이 살라나무에 오른쪽 팔을 올려 가지를 붙잡았을 때, 그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석가모니가 탄생했다고 한다.

석가족의 토템인 살라나무 숲은 룸비니라는 지모신(地母神)을 받드는 곳이었으므로 출산의 장소로는 적격이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것은 왕족 계급인 크샤트리아가 신의 양팔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이다.

- 출처 : http://blog.daum.net/dbstjsan11/1611536-


Ⅳ. 본문 내용

1. 그 사람

* 석가족
대왕이시여, 저 하마반트의 기슭
예전부터 코사라 국에 속하는 땅에
재물과 용맹을 아울러 갖춘 한 단정한 부족이 삽니다.

그들은 ‘태양의 후예’라 일컬어지고
내 생족의 이름은 사캬
대왕이시여, 나는 그 집에서 나와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온갖 욕망을 좇고자 했음이 아니라. -경집 3:1 출가경

고타마는 스물아홉 살쯤 되었을 때, 집을 나와서 사문이 되었다. 갠지스 강을 건너 남방에 있는 마가다 국으로 가서 그 수도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였다. 이 글은 왕의 눈에 띤 고타마에게 왕이 직접 찾아가 벼슬을 권하며 그의 내력을 물었을 때 고타마가 한 말이다.

* 정각(正覺)
일구 월심 사유하던 성자에게
모든 존재가 밝혀진 그 날,
그의 의혹은 씻은 듯 사라졌다.
연기의 도리를 알았으므로. - 자설경 1:1

라자가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루베라의 네란자라 강기슭에 있는 핍파라 나무 밑에서 마침내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를 보리수 밑의 정각(正覺)이라 한다. 이 글은 결정적인 순간, 그의 모습과 생각을 담은 운문이다. 그는 고귀한 귀족의 생활을 포기하고, 여러 도인들을 찾아 공부하였으며, 고행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 보리수 밑에서의 생각
고생 끝에 겨우겨우 얻은 이것을
어이 또 남들에게 설해야 되랴.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세상의 상식을 뒤엎은 그것
심심 미묘하니 어찌 알리오.
격정에 매이고 무명에 덮인 사람은
이 법을 깨닫기 어려우리라 -상응부경전 6:1

그는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도 얼마동안 그 곳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그는 깨달은 내용을 마음속에서 반복 음미하여 정리했다. 붓다 정각의 사상은 앞서 말한 연기의 법칙이다. 그것은 관계성의 법칙이요, 상의성의 법칙이며,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누군가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 즉 설법의 문제를 생각한 그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설법을 결심하게 된다.

* 첫 설법
“비구들아, 출가한 이는 두 극단에 달려가서는 안 되나니, 그 둘이란 무엇인가?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함은 어리석고 추하다.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못하며 또 무익하니라. 또 스스로 고행을 일삼음은 오직 괴로울 뿐이며, 역시 성스럽지 못하고 무익하니라.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생기게 하며, 적정과 증지와 등각과 열반을 돕느니라.” - 상응부경전 56:11

그는 첫 설법의 상대로 옛 스승인 아라라 카라마, 웃다카 라마푸타를 찾아갔지만 이미 죽고 난 뒤였다. 그리하여 친구들을 설법의 대상으로 선택했다. 그들은 고행을 그만 둔 고타마를 환영하지 않았지만 친구로서의 우정으로 맞아주었다. 안색에서 광명이 넘쳐나는 것을 본 친구들은 비구가 되었다. 첫 설법에서 그는 쾌락주의 즉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또한 금욕주의 즉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였다. 그 후 그는 중도와 네 가지 진리를 설하게 된다.

* 네 가지 진리
“여러분이여, 모든 동물의 발자취는 다 코끼리의 발자취 속에 들어온다. 코끼리의 발자취는 그 크기가 동물 중에 으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여, 모든 착한 진리는 다 네 가지 성제 안에 포섭된다. 그 네 가지란 고의 성제, 고의 발생의 성제, 고의 멸진의 성제,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 - 중부경전 28

그는 가장 포괄적인 것을 코끼리의 발자취에 비유하여 네 가지 성제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 불교인들은 간단히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사제라고 한다. 고는 인생의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로 생로병사가 모든 사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집은 그 발생의 이유가 무엇인가, 극복할 방법은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 물음은 연기의 법칙에 의해 해결할 수 있다. 멸은 인생이 욕망으로 인해 괴로운 것을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물음으로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방법, 불타는 욕망을 가라앉히는 길 뿐이다. 도는 멸의 원칙에 입각하여 고를 없애기 위한 실천 방법을 8정도로 보인 것이다.

* 전도(傳道)
“비구들아,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 가르침)을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세나니가마로 가리라.“ - 상응부법전 4:5

이 글은 이른바 ‘전도 선언’이라고 불리는 대문이다.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전도의 정신,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라는 설법의 양태, 그리고 자신도 설법을 하러 세나니가마로 가리라는 예정 말씀이다.

* 인간성
이에 세존은 그들 사캬 족 사람들을 밤중까지 가르치고 인도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해 준 다음, 존자 아난다에게 이르셨다.
“아난다여, 너는 나를 대신하여 카피라바투의 사캬족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도를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시 법을 설해 주려무나. 나는 등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겠다.”
아난다는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이리하여 세존은 옷을 넷으로 접어서 깔고, 발에 발을 포갠 다음, 정념, 정지를 지니신 채 오른쪽 겨드랑이를 아래로 하고 누우셨다.
-중부경전 53

이 글을 보면 붓다의 매우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등이 아프다는 고백, 육신을 가진 인간임을 여실 없이 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두라, 바카리야. 이 썩을 몸을 보아서 무엇 하겠다는 것이냐? 바카리야, 법(진리)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볼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리라.”

붓다는 자신의 몸은 썩을 것이라며 자기에게 예배하겠다는 청을 물리치고, 오직 진리를 파악하려 힘쓰기를 당부하며 진리에 의지함이 옳다고 가르치고 있다.

2. 그 사상

* 눈 있는 이는 보라
위대하셔라 대덕이시여, 위대하셔라 대덕이시여. 이를테면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 덮인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르치심과 같이, 또는 어둠 속에 등불을 가지고 와서 눈 있는 이는 보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이처럼 세존께서는 온갖 방편을 세우시어 법을 설하여 밝히셨나이다.
저는 이제 세존에 대해 귀의 하옵나이다. 또 그 법(가르침)과 승가(僧伽;불교의 교단)에 대해 귀의 하옵나이다. 원컨대 오늘날로부터 시작하여 목숨을 마칠 때까지, 세존께 귀의 하옵는 신자로서 저를 받아들여 주시옵기 바라나이다."
-상응부 경전 42:6 ,한역동본(중아함경) 17

이 글은 일종의 신앙 고백이라 할 수 있다. 45년에 걸친 붓다의 설법은 대기 설법이었다. 이의 글에는 붓다의 사상, 설법의 성격이 모두 드러나 있다. 전도(顚倒)한 것을 바로 잡고, 넘어진 것을 일으키는 불교의 진리, 또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합리주의적 관점이 위 글에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만이여, 그대가 내주는 음식을 손님이 안 먹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브라만 한 명이 나타나 욕설을 퍼붓고 갈 때, 붓다가 그에게 침착하게 한 말이다. 임기웅변, 자유자재의 말이 바로 대기 설법이다.

* 현실적으로 증험(證驗)되는 것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나이다. 즉 이 법은 현실적으로 증험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성질의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잘 열반에 인도하는 성질의 것이며, 또 지혜 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
- 상응부경전 55:1

이 글에는 삼귀의(불 법 승)를 고백하는 글이다. 신자들의 귀의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 납득, 확신에 입각한 귀의였다. 그 조건들이 이 글에 잘 나타나 있다.

* 내재하는 방해물
“대덕이시여, 흔히들 ‘악마, 악마’합니다만, 악마란 무엇입니까?”
“라다여, 만약 색(色)이 있다면 그것이 악마요 방해물이요 교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다여, 색을 악마라 관하고, 방해물이라 관하고, 교란하는 것이라 관하고, 병이라 관하고, 가시라 관하고, 고통이라고 관하라. 그렇게 관하는 것이 바른 관찰이니라.
라다여, 만약 수(受)가 있다면 그것이 악마요 방해자요 교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다여, 수를 악마라 관하고, 방해자라 관하고, 교란하는 것이라 관하고, 병이라 관하고, 가시라 관하고, 고통이라 관하라. 그렇게 관하는 것이 바른 관찰이니라.” - 상응부경전 23:1

이 문답에서 젊은이와 붓다는 불교의 기본 개념에 대해 묻고 또 명쾌히 답하고 있다. 붓다는 인간을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五蘊)이라고 보았다. 악마는 인간의 오온의 내재적 방해물, 교란자, 불안, 가시, 고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 연기(緣起)
이것 있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이것 생김에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
이것 없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없고
이것 멸함에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 - 상응부경전 12:21:19

붓다의 사상 체계를 이루는 것이 ‘연기’의 원리이다. 이는 곳 정각의 깨달음으로 붓다는 연기는 심히 깊다든지, 적연 미묘하다든지, 오직 지혜로운 이만이 능히 알 수 있고, 사람들은 욕망을 즐기고 욕망에 빠지기 좋아하므로 연기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연기가 요구하는 실천은 욕심을 떠나는 문제, 즉 고의 멸진을 실행하는 일이며,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의지’의 문제이다. 말미암아 생기고, 말미암아 멸하는, 이 원리는 조건에 의한 발생과 소멸을 뜻한다. 즉 관계성, 인과성이 있어 영원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 바로 연기 사상이다.

* 이는 고(苦)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성제이다. 마땅히 알라. 생은 고다. 노는 고이다. 병은 고이다. 미운 사람과 만나는 것도 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고요, 욕심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고이다. 통틀어 말한다면 이 인생은 바로 고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발생의 성제이다. 마땅히 알라. 후유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하는 갈애가 그것이다. 그것에는 욕애(欲愛)와 유애(有愛)와 무유애가 있다.” - 상응부경전 56:11

이것은 사제 전반의 두 가지를 뜻하고 있다. 고의 성제에서는 사고를 열거하며 인간의 유한성을 말하고 있다. 고의 발생의 성제는 고의 성제에 연기의 공식을 결합한 것이다. 또 인간에게 괴로움을 생기게 하는 조건을 갈애(욕애, 유애, 무유애)라 말한다.

* 이는 고(苦)의 멸(滅)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의 성제이다. 마땅히 알라. 이 갈애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서, 더 이상 집착함이 없기에 이르는 일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 마땅히 알라. 성스러운 팔지의 길이니,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 그것이다.” - 상응부경전 56:11

이것은 사제 후반부의 두 가지 성제를 말하고 있다. 고의 멸진의 성제는 갈애를 멸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집착함이 없기에 이르러야 한다고 한다. 또 넷째 성제에서는 팔정도를 들어 셋째 성제의 실천 항목을 말하고 있다.

나도 밭을 간다
믿음은 내가 뿌리는 씨
지혜는 내가 밭 가는 보습
나는 몸에서 입에서 마음에서
나날이 악한 업을 제어하나니
그는 내가 밭에서 김 매는 것
내가 모는 소는 정진이니
가고 돌아섬 없고
행하여 슬퍼함 없이
나를 편안한 경지로 나르도다.
나는 이리 밭 갈고 이리 씨 뿌려
감로의 열매를 거두노라. - 상응부경전 7:11

이 글에서 붓다는 내가 뿌리는 씨는 믿음이요, 내 보습은 지례라고 하였다. 또 나날이 악업을 제어하고 정진하여 감로의 열매를 수확한다고 하였다. 감로는 불사, 천주로 번역된다. 그것은 꿀같이 달고 향기가 높으며, 한 번 먹으면 죽는 일이 없다는 전설이 있다. 설법을 통한 인간 개간을 경작에 비유한 대목이다.

* 열반(涅槃)
“사리푸타여, ‘열반, 열반’하고 말하지만, 대체 열반이란 무엇인가?”
“벗이여, 무릇 탐욕의 소멸, 노여움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이것을 일컬어 열반이라 한다.”
“그렇다면 벗이여, 그 열반을 실현할 방법이 있는가? 거기로 갈 길이 있는가?”
“벗이여, 이 성스러운 팔정도야말로 그 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즉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 - 상응부경전 38:1

불교인들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열반의 경지이다. 열반은 ‘불이 꺼진 상태’이다. 붓다는 모든 것은 타고 있다고 설한다. 즉 모든 것에는 욕망의 불꽃이 있고, 이 번뇌의 불꽃이 완전히 사라질 때, 그것이 열반의 경지이다. 붓다는 예속의 상태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방법으로 팔정도를 말한다.

* 불방일(不放逸)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달빛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기에 달빛은 밤하늘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건만, 그것들이 모두 불방일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기에 온갖 착한 법 중에서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또 가을 하늘에 한 점의 구름도 없을 때, 해는 하늘에 떠올라 일체의 어둠을 쓸어버리고 눈부시게 시방에 빛을 던지지 않느냐? 그러기에 가을 하늘에서 해는 가장 위대하다고 일컬어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여러 가지 길이 있건만, 그것들은 모두 불방일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므로 온갖 착한 법 중에서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 상응부경전 45:146

방일은 자기를 잊고 자제함이 없이 온갖 욕망에 이끌려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방일이란 방일에 빠지지 않는 자제, 집중과 지속을 그 특징으로 한다. 붓다는 비구들에게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 불방일하여 정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 문답식
“소나여, 어찌 생각하느냐? 색(물질)은 불변하는 것이겠느냐, 변화하는 것이겠느냐?”
“대덕이시여, 변화하는 것입니다.”
“만약 변화하는 것이라면, 괴로움이겠느냐, 즐거움이겠느냐?”
“대덕이시여, 괴로움입니다.”
“만약 변화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을 관찰하여‘이는 내 것이다, 이는 나다, 이는 나의 본질이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덕이시여, 그럴 수는 없습니다.” - 상응부경전 22:49
경전에서는 문답식으로 불교의 사법인(제행 무상, 제법 무아, 열반 적정, 일체 개고)를 짧은 운문으로 나타낸다. 제행 무상(諸行無常)은 불교가 내세우는 존재론으로 연기의 법칙을 말한다. 제법 무아(諸法無我)란 불교가 주장하는 인간론으로 무상관이다. 열반 적정(涅槃寂靜)은 불교가 이상적인 경지라 여기는 열반을 가리키는 행복론, 목적론이다. 일체 개고(一切皆苦)는 인생을 관찰하는 방법 즉, 고에 대한 붓다의 주장이다. 

3. 그 실천

* 착한 벗
“비구들이여, 너희는 아침에 해가 뜨는 모양을 잘 알고 있으리라. 해가 나올 때가 되면 먼저 동쪽 하늘이 밝아지고, 그 다음에 빛이 눈부시게 발산되면서 해가 솟는다. 즉 동녘 하늘이 밝아짐은 해가 뜰 선구요 전조이다. 비구들이여, 그것과 마찬가지로 너희가 성스러운 팔정도를 일으키는 데도 그 선구가 있고 전조가 있나니, 그것은 착한 벗과 사귐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렇기에 착한 벗을 가지고 있는 비구라면, 그가 마침내 성스러운 팔정도를 배우고 익혀서 그 공을 쌓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가 있느니라.”- 상응부경전 45:49

불교는 혈연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관계, 결합으로 이루어진 교단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붓다의 깨달음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붓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고부터 있던 진리이고, 붓다는 그 것을 발견하고 가르쳐 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역시 같은 길을 가는 한 사람인 것이다. 붓다는 이 사실을 명확히 알고 제자들에게 착한 벗을 설하고 있다.

* 정사(精舍)
공양이 끝나자 빈비사라 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세존께서 거처하실 곳으로는 어디가 알맞을까? 그곳은 도시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왕래하는 데 편리하여서 법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기가 쉬워야 하겠다. 그리고 낮에는 번거롭지 않고 밤에도 시끄럽지 않아서, 한가히 있으면서 명상하기에 적당한 곳이라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왕은 저 베루바나가 그 조건에 들어맞음을 발견했다. 왕은 물병을 들어 세존의 손에 물을 부으면서 말했다.
“나는 세존을 비롯한 비구의 대중에게 베루바나를 기증하고 싶습니다. 원컨대 받아 주시옵소서.”
붓다는 잠자코 이를 받으셨다. - 남전 대품 1

이 글은 첫 정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도시에서 적당한 곳에 위치하여 누구든지 가기 쉽게 위치한 곳이다. 오늘날의 절과 조금 상반되는 위치이다. 붓다는 출가하여 사문이 된 이상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자기완성만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정사에서는 신 앞에 예배를 들일 필요도 없으며 후세 승려의 주요한 임무인 불공을 드리는 일이나 재를 올리는 일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 포살(布薩)
"대중이여, 들으시라. 오늘은 15일 포살일이니, 만약 대중에게 지장이 없다면 교단은 포살을 베풀고 계본(戒本)을 외리라.
무엇을 교단의 첫 행사라고 하는가? 여러 대덕이 몸의 청정함을 고백함이니, 나는 이제 계본을 읽으리라. 대중은 여기에서 잘 듣고, 잘 생각 할지어다.
만약 스스로 허물이 있음을 자각한 사람은 나서서 드러내라. 또 죄없는 이는 잠자코 있을지니, 잠잠하면 여러 대덕의 청정함을 알리로다. 만약 누가 물을 때에는 마땅히 대답해야 하리니, 이같이 비구는 이 대중 속에서 세 번까지 질문 받을 것이며, 세 번 질문을 받고도 죄가 있으면서 고백하지 않는다면, 고의적인 망어죄(妄語罪)를 얻으리라. 고의적 망어는 도에 장애가 된다고 붓다께서는 설하셨나니, 그러므로 죄 있는 것을 기억하는 비구로 청정하기를 원하는 이는 그 죄를 드러내라. 드러내면 그는 안락함을 얻으리로다. - 율장 대품 2

원시 불교의 사찰에서는 장례식이나 추선의식을 하지도 않았으며 독경이나 불공이 올려지는 일도 없었다. 그들의 생활은 수행자로서 붓다가 설하는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몸에 구현하였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탁발을 나갔다.
그들의 생활에는 포살과 자자라 불리는 두 행사가 있었다. 포살은 반달에 한 번씩 계본(계율의 항목)을 낭송하며 죄 있는 사람은 참회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행사인 자자는 마지막 포살일에 자진해서 자기의 죄를 지적해 달라고 동료 비구들에게 청하는 일이다.

* 법좌(法座)
"세존이시여, 나는 크샤트리아(무사) 출신의 왕이어서, 죽여야 될 사람은 죽이고, 재산을 몰수해야 될 사람은 몰수하고, 추방해야 될 사람은 추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재판에 임했을 때, 흔히 내 이야기를 방해하는 이가 있습니다. 내가 재판에 임했을 때에는 내 이야기를 방해하든지 지장을 주든지 하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건만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의 제자들을 보옵건대, 세존께서 몇 백이라는 대중을 상대로 법을 설하실 때, 세존의 제자들은 기침 소리 하나 내지 않습니다. 언젠가 세존께서 수백 명의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실 때, 한 비구가 기침 소리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비구가 무릎으로 그 비구를 건드리면서 말했습니다.
'고요히 해. 소릴 내지 말아. 우리 스승께서 이제 법을 설하시니.' 세존이시여, 그 모양을 보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희유한 일이다. 도장(刀杖)을 쓰지 않는데도 대중이 이렇게 통제될 수 있다니!' 세존이시여, 나는 이런 대중을 본 적이 없습니다." - 중부경전 89

이 글은 인도의 강력한 코사라 왕국의 파세나디 왕이 붓다의 설법하는 모습을 자신의 체험을 들어 말한 것이다. 이를 법좌라 한다. 붓다의 설법은 왕의 무력으로도 침묵시킬 수 없는 사람들을 복종케 하는 강한 힘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삼보(三寶)
“너희가 무인 광야를 가게 될 때는 여러 공포가 있을 것이며, 마음은 놀라고 머리카락은 곤두서리라. 그런 때는 마땅히 여래를 염하라. 여래는 응공, 등정각, 불(佛), 세존이시라고. 염하면 공포가 사라지리라.
또 법을 염하라. 부처님의 바른 법은 현재에 능히 번뇌를 떠나게 하고,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통달 친근(通達親近)하여 자각에 의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이리 염하면 공포가 사라지리라.
또 승(僧)을 염하라. 세존의 제자들은 잘 수행하고, 바로 수행하고, 세간의 복전이라고. 이리 염하면 공포가 사라지리라." - 난부영전 35:11

이 글은 삼보귀의를 강조하는 붓다의 말이다. 불. 법. 승.의 삼보에 귀의를 표명하는 것이 불교 교단의 하나의 의식이다. 여래는 붓다를 가리키고, 법은 붓다의 가르침, 승은 불교 교단을 뜻한다.

* 이타행(利他行)
"고타마여, 우리는 바라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도 신에게 희생을 바치고 또 다른 사람들도 희생을 바치게 합니다. 고타마여,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다 함께 행복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타마여, 당신의 제자들은 가정을 나와 사문이 됨으로써 자기의 일신을 편안히 하고, 자기 일신의 괴로움을 없애려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오직 자기 한 몸의 행복만을 위해 도를 닦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출가의 소행이라 생각되는데, 그대는 어찌 여기십니까?" - 증지부경전 3:60

붓다가 기원 정사에 계셨을 때 상가라바라는 바라문이 찾아와 한 질문이다. 바라문은 오랜 전통을 이어오는 사제들이므로, 새로운 사상가인 붓다와 그 제자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바라문은 신 앞에 제사를 지내고 희생을 드림으로 자기나 타인을 위해 복된 길을 닦는다. 하지만 붓다와 그 제자들은 결국 자기를 통제하고 편안케 하고, 자기 고통을 없애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것 같다. 하지만 붓다는 자신의 설법으로 많은 사람이 해탈한다면 이는 곳 이타행이다고 말한다.

* 불해(不害)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해서는 안 된다. - 상응부경전 3:8

이 글은 모든 사람이 서로 이해를 따라 아귀다툼하는 상태를 종식시키고,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성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불해의 덕목이 생겨나는 것이며, 자비의 덕목이 나타나는 것이다. 불해는 불살생, 불상해로 번역된다. 내가 나에게 가장 소중하듯이 남들도 저마다 자기가 소중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덕목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 자비(慈悲)
가르침의 도리를 잘 이해한 사람이
자유의 경지에 이른 다음에 할 일은 이것이니,
유능, 솔직하고 그리고 단정할 것,
좋은 말을 하고 유화하고 거만하지 않을 것.

족한 것을 알고 욕심을 적게 할 것,
잡스러운 일에 매이지 않고 간소하게 살아갈 것,
오근이 청정하여 총명, 겸허할 것,
단월의 집에 가서 탐심을 내지 말 것,

더러운 짓을 하여 식자의 비난을 사지 말라.
오직 이런 자비심을 닦을지니,
일체의 생명 모든 사람에게,
행복과 평화와 은혜 있으라고.
   
비록 어떤 사람이거나
두려움에 떠는 범부거나, 깨달아서 두려움 없는 성자거나
키 큰 사람이거나, 그 몸이 비대한 사람이거나
중간쯤 되는 사람이거나, 작은 사람이거나, 말하기에도 부족한 사람이거나

눈에 보이는 사람이거나, 보이지 않는 사람이거나
멀리 있는 사람이거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거나
이미 태어난 사람이거나, 앞으로 태어날 사람이거나
일체의 생명 모든 사람에게 행복 있으라고.

서로 남을 속이지 말며
어디의 누구에게라도 경멸하는 생각을 지니지 말라.
분하다든지 또는 미웁다 하여
남이 고통에 빠질 것을 원하지 말라.

마치 어머니가 그 외아들을
자기 목숨을 걸어 지켜 가는 것처럼
일체의 생명 또는 사람에게
끝없는 자비심을 베풀라.

참으로 일체의 세간 위에
끝없는 존재 위에 그 마음을 베풀라.
높은 데 깊은 데 또 사방에 걸쳐
원한 없는 적의 없는 그 생각을 쏟아라.

설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는 한
힘을 다해 이 생각을 지니라.
이에 '성스러운 경지'라 함은 이것이니라. - 소부경전 경집 1:8

붓다가 설한 가르침은 진리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불교는 행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열반을 획득한 사람에게는 유능할 것이 요구된다. 그는 다름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할 자격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은 솔직함이다. 솔직함이야말로 진리에만 입각해서 행동할 수 있는 용기이다. 또 붓다가 요구하는 것은 단정해야 된다는 점이다. 바른 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다. 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은 좋은 말을 할 것, 유화할 것, 거만하지 말 것 따위의 덕목이다.
그렇다면 자비란 무엇인가? ‘자’란 어원적으로는 벗에서 온 것으로 ‘사랑’이라 의역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사랑은 선악 이전 생명의 본원적인 힘인 ‘더 높은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아가페와는 다른 휴머니스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는 어원적으로 ‘신음’을 뜻하는 말이다. 남이 괴로워서 신음하는 모양을 보면 누구나 가엾은 생각을 지니게 되거니와, 이 공감이 바로 ‘비’의 내용이다.
인간의 삶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슬픔을 통찰하여 이 사실에 눈을 뜰 때 마음속의 보편적인 사랑을 일깨울 수 있다.
붓다는 자경에서
“일체의 생명 모든 사람에게 행복이 있으라, 평화가 있으라, 은혜가 있으라.”
고 외도록 설하였다. 인간의 슬픔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Ⅴ. 붓다의 경영 10계

1. 남을 이롭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이롭게 하라(自利利他)
-철저한 고객 만족 경영

2.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諸行無常)
-변화경영, 과거의 성공경험의 포로가 되지 말라.

3. 밖에서 진리를 찾지 말라.
-기업의 문제와 해결책은 직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4.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綠起法)
-고객 직원 협력업체 모두의 이익추구, 환경경영

5.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다.(一切唯心造)
-강한 기업문화를 갖는 기업이 최고의 성과를 낸다.

6.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
-직원들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한 끝없는 신뢰

7.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수행자의 반열에 들 수 없다.
-경영혁신의 요체는 실천

8. 홀로 고요한 곳에서 골돌히 생각하라.
-경영자는 자신의 책임하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9. 간절한 원(願)을 세우고 정진하라.
-강력하고 명료한 기업 비젼

10. 눈에 보이는 형상에 집착하지 마라.
-무형자산을 중요하게 여겨라.

                              유일화 교수 「부처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

 

자료정리:유정현 ych2738@nate.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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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