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

« 2024/5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10. 4. 29. 16:49

퇴계선집(이황)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16:49

1. 작가소개 - 이황 (1501~1570)

   이황은 학자이자 교육가이며 뛰어난 정치가였던 인물이다. 또한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이언적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하여 주자의 철학을 독창적인 조선 성리학으로 발전시킨 선도자이기도 하다. 이황은 주자 성리학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것을 통해 인간성을 고찰하는 독창적인 도덕적 실천 철학을 구축했다. 이러한 이황의 사상은 그 후 영남학파에 의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일본에서까지 학문의 스승으로 추앙받아 그에 대한 연구가 계속 되었을 정도로 대유학자였지만,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타인의 생각과 의견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졌던 대기 만성형 학자의 전형이었다.

  퇴계 이황은 연산군 7년(1501), 경북 예안군(지금의 안동)에서 이식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마흔 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여, 퇴계는 서른두 살이었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다. 퇴계는 열두 살 때부터 숙부인 송재 이우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깊이 사색하고 스스로 깨우치는 천재성을 보였던 퇴계는 아버지가 물려준 책들을 홀로 공부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열아홉 살 때『성리대전』을 읽고 성리학의 진수를 접했다. 스무 살 때는『주역』을 공부하느라 거의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 스물한 살 때에 문관 출신인 허찬의 외동딸과 결혼한 후, 스물세 살부터 성균관에서 공부했다.

  과거에는 영 인연이 없었던지 스물네 살 때에는 연이어 세 번이나 낙방했다. 그러다가 스물일곱 살인 중종 22년(1527)에야 경상도 향시(鄕試)에 수석 합격하고, 이듬해 봄에는 한성 진사 회시(會試)에도 합격했으나 방이 나붙기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다. 과거에 처음 합격하던 해에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퇴계는 서른 살에 권질의 딸과 재혼했지만, 그때까지도 학문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서른두 살에 다시 과거에 응시하여 문과 초시(初試)에 합격하였다. 이후 사임과 복직을 반복하며 관직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다. 퇴계는 근처 시냇가에 양진암을 짓고, 그곳에 머무르며 독서에 전념했다. 이때 시냇가의 이름을 ‘퇴계(退溪)'로 고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퇴계는 ‘물러가는 시냇물’이라는 뜻인데, ‘학문은 구할수록 오히려 멀어진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퇴계는 48세인 명종 3년(1548)에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고 단양 군수와 풍기 군수를 역임했다. 그러다가 이듬해 12월에 병을 얻어 또 다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단양 군수 시절에는 둘째아들이 세상을 떠나서 그에게 슬픔을 더해주었지만, 기생 두향과의 애틋한 사랑의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풍기 군수 시절에는 조선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을 하게 된다. 백운동 서원에 대한 나라의 지원을 요청하여, 전답과 서적을 지급받아 교육기관으로 육성시켰던 것으로, 이것이 전례가 되어 각 지방에 서원이 만들어졌다. 서원은 비록 조선말에 가서는 폐단이 생기기도 했지만, 제 기능을 충실히 하던 시기에는 사대부 여론의 중심이자 지방 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선 후반기에는 서원의 교육 기능이 강화되어 중앙보다 지방의 학문 수준이 더 높은 문화적 역전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고향에 돌아온 퇴계는 다시 ‘한서암’이라는 공부방을 짓고, 독서와 사색의 생활에 들어갔다. 이 기간 동안 그는『주자연서』연구에 몰두했는데, 말년의 철학적 사상은 이 책을 근간으로 하였으며, 그의 심오한 사상적 깊이도 여기서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또 복직과 사임을 반복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퇴계가 학문에만 몰두하여 은둔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여러 차례 사직과 복귀를 반복하면서도 40년 가까이 관직에 머무르며 네 임금을 섬겼다. 관직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낙향한 다음 해 11월, 종가 제사에 참석한 퇴계는 그 후 감기에 걸려서 내내 고생하다가 다음 달 8일에 일어나 앉은 자세로 홀연히 숨을 거두니, 그의 나이 70세였다.

  퇴계는 인간의 존재와 본질의 문제를 행동적인 면에서보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추구하였으며, 인간의 순수이성은 절대선 이므로 이에 따르는 것이 최고의 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기대승과 8년에 걸쳐 논쟁을 펼친 ‘사칠변론(四七辯論)'의 서막이 된다. 퇴계의 철학은 “진리는 평범하고 명백한 일상에 있다.”라는 신념에 기초한다. 또 이치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공경 하나로 일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경하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이치가 결국 밝게 드러날 것이고, 심상(心象)도 안정되어 모든 일의 처리가 걸리는 것이 없다고 설파하였다. 즉,’경(敬)'은 곧 ’심(心)'을 주재하는 정신으로 천리(天理)와 인간의 본연성이 ’경‘을 통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중심 생각이었다. 이러한 퇴계의 ’천일합일‘ 이론은 우주의 변화를 인간의 마음에 연관시키고 고찰하던 조선 철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2. 시대적 배경

  당시 조선 왕조는 신진 사림(士林)들이 정계에 진출하여 개혁을 시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개혁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오히려 ‘사화(士禍)’가 연이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불의를 보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사람들은 보수적인 집권 세력을 향해 철저한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힘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마음만 앞섰기 때문에 오히려 집권 세력에게 화를 당하게 된다. 따라서 사화는 정의가 수난을 당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왕조 500여 년 동안 수많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사대사화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픈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퇴계가 태어나 성장하고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사대사화의 시기에 해당한다. 퇴계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498년에 무오사화가 일어났고, 퇴계가 4세인 1504년에 갑자사화, 19세인 1519년에 기묘사화, 45세인 1545년에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연속된 사화로 신진 사림은 화를 당했으며, 퇴계의 형인 이해도 사화의 영향으로 죽었다. 이는 퇴계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퇴계가 벼슬살이에 회의를 가진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이전의 집권 세력과 신진 사림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던 때였다. 권력을 가진 세력은 자신들은 권력을 지키고자 했고, 신진 사림 세력은 개혁을 통해서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두 세력 사이의 싸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과 두 번의 사화를 겪으면서 사림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사회적 분위기도 험악하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림들은 뜻을 굽히지 않고 중종반정을 일으켜 폭군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는다.

  사림파의 우두머리로 떠오른 조광조는 연산군의 폐해를 복구하고 놀이터가 되었던 성균관을 다시 수리해 유학을 장려하였으며, 도학정치(道學政治)를 펴고자 하였다. 도학정치란 유교 이념에 따라 덕으로 통치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면서 신진 사림을 많이 뽑았다. 그러나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던 조광조는 당시 권력을 가지고 있던 훈구파의 모함을 받고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것이 기묘사화이다.

  기묘사화 이후 사림 세력은 관직에 나가는 것이 소용없다는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고 그래서 정계에 나아가지 않고 시골에 머물면서 학문에 전념하거나 제자들을 키우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오히려 학문이 새롭게 일어났고,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퇴계의 나이 45세  때 일어난 을사사화 이후 퇴계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려는 마음을 굳히게 된다. 정치의 주도권이 다시 사림으로 돌아오고 조정의 부름을 받기도 하지만 거의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에 열중했다.


3. 퇴계의 사상

  퇴계의 사상은 넓은 의미에서는 유학에 속하고, 좁은 의미에서는 성리학에 속한다. 유학은 공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학문으로 자신을 닦고 남을 교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유학을 이론적으로 보완하여 중국 송나라 때에 주자가 완성한 학문이 성리학이다. 따라서 퇴계는 공자와 주자의 학문을 계승한 유학자요 성리학자다.

  퇴계의 사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우주와 자연의 근원 및 존재법칙을 밝히는 이기론이고, 둘째는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심성론이며, 셋째는 학문의 실천과 가치를 다루는 수양론이다.
 
  첫 번째 이기론은 우주의 발생원인과 근원, 그리고 만물의 생성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론으로 우주론이라고도 한다. 만물은 처음에 어디서부터 생겨났을까? 어떤 사람은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진화에 의해서 발전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리학에서는 만물의 근원이 태극(太極) 무극(無極) 이(理)라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서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이것들이 우주와 만물을 만들어 내는 원리가 되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생겨나게 한다.
 
  퇴계도 이러한 성리학을 이어받아 우주의 근원을 ‘이(理)’와 ‘기(氣)’로 파악했는데, 이것은 주자의 ‘이기이원론’에 따른 것이다. 이기이원론이란 이와 기라는 두 가지 원리로 만물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 두 원리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이는 만물을 만들어 내는 원리이고, 기는 만물에 모양새를 만들어 주는 물질적이며 질료적인 원리다. 따라서 근원으로서의 이가 음양과 오행인 기와 합해져서 만물을 만들어낸다. 인간에게 비유한다면, 인간의 정신적 부분이 이에 해당하고 육체적 부분이 기에 해당하는 것과 같다.
 
  이와 기가 합해져서 만물을 만들기 때문에 이 두 가지는 서로 나눠지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나누지 않을 수도 없다. 이것을 퇴계는 “이 밖에 기가 없고, 기 밖에 이가 없으므로 진실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눠서 본다면 서로 구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굳이 나눈다면 이와 기는 서로 다른 존재지만, 만물 속에서 본다면 나눠질 수 없다. 모든 만물은 이와 기가 합쳐져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계는 이 둘 중에서 이가 더 중요하고 기는 이보다 낮다고 보았다. 즉 인간으로 본다면 이성이 중요하고 육체는 이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한 것과 같다. 그래서 학자들은 퇴계의 이기론을 ‘주리(主理)’, 즉 이를 중심으로 한다고 표현했다.
 
  두 번째 심성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심성론은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분야이므로 인성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퇴계의 심성론은 우주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과 만물은 생겨날 때 모두 본성이 주어지는데, 그 본성은 바로 우주의 근원인 이에서 나왔으며, 모양새는 기에서 나왔다는 논리다. 우주가 이와 기로 구성되었듯이 인간도 이와 기로 구성된 것이다.
 
  성리학이라는 용어도 바로 인간의 본성인 ‘성(性)’과 우주의 근원인 ‘이(理)’가 서로 같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로 “인간의 본성이 곧 우주의 이치와 같다.”라고 하는 뜻이다. 이렇듯 인간과 우주의 원리를 본받아 자신의 본성으로 삼게 된다.
 
  그런데 본성은 인간의 마음[心]에 담겨있다. 즉, 마음이란 우주의 ‘이기’가 모인 것인데, 이 속에 본성과 감정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본성은 이에 해당하기 때문에 선한 모습을 가지고, 감정은 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선악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감정이란 잘 조절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그릇에 담긴 탁한 물을 생각하면서 마음과 본성, 그리고 감정을 생각해 보자. 그릇은 마음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릇에 담긴 물을 오랫동안 흔들지 않고 그대로 두면 탁한 물질은 바닥에 가라앉고 맑은 물은 위에 있게 된다. 이때 가라앉은 탁한 부분을 감정으로 보고, 위에 있는 맑은 물을 본성이라고 보면 된다.
 
  물을 흔들지 않으면 그대로 본성과 감정이 잘 유지되지만, 흔들면 가라앉았던 물질이 다시 전체를 흐리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한다. 이러한 본성과 감정을 담고 있으면서 통제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또한 감정에는 사단과 칠정이라는 것이 있다. 사단이란 인간의 마음에 있는 단서, 즉 새싹과 같은 것이다. 이 네 가지 마음은 맹자가 말한 것으로 측은한 마음(측은지심),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수오지심), 양보하고 사양하는 마음(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시비지심)을 말한다. 새싹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사단이 자라면 사덕, 즉 인. 의. 예. 지. 가 된다. 따라서 사단이란 인 의 예  지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선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칠정이란 일곱 가지 감정으로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함, 미워함, 욕심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들은 사물이나 일과 만나면서 악이 될 수가 있다. 퇴계는 사단은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이에서 나오고, 칠정은 감정으로서 기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이러한 퇴계의 사상은 인간이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우주의 이치를 본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물과 달리 신령스럽고 귀한 존재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을 선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퇴계의 사상은 전통적인 유학의 성선설에 따른 것이다.
 
  세 번째 수양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간은 육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욕망을 갖게 되는데, 이 욕망을 잘 조절해야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감정을 잘 조절하고 타고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학문이요 수양이다. 이러한 것을 퇴계는 ‘존천리 거인욕’이라고 했다. 즉, ‘만물을 만들어 내는 천리를 보존하고 인간의 욕망을 없앤다.’는 뜻이다.
 
  퇴계는 학문을 하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자가 제시한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계승하였다.  거경은 ‘경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고, 궁리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것’이다. 주자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궁리에 중점을 둔 것과는 달리 퇴계는 경에 머무르는 거경을 중요시했으며, <성학십도>에서도 경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퇴계는 경을 모든 철학과 인간행위의 중심에 두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경철학’이라고 한다. 퇴계가 “경은 성학의 처음이요 끝이다.”라고 한 말은 바로 이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수양은 궁극적으로 성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인간은 육체가 있기 때문에 욕망에 이끌리게 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성인의 길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마음을 비우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천을 해야 한다. 이렇게 실천하려면 오직 경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밖에 없다.
 
  그런 ‘경’은 어떻게 해야 유지되는가? 퇴계는 선현들의 생각을 모아서 ‘정신을 집중하고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는 주일무적(主一無適)’, ‘몸가짐을 단정하고 가지런하게 하며 마음을 엄숙하게 유지하는 정제엄숙(整齊嚴肅)’, ‘언제나 맑은 상태로 깨어 있어야 하는 상성성법(常惺惺法)’, ‘마음을 잘 거두어들여서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기심수렴(其心收斂)’으로 정리하고 있다.
 
  학문을 통해서 이치를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퇴계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몸소 실천하고 끊임없이 맑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상과 같이 퇴계의 사상은 우주와 인간을 연결시켜 천지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존재로 생각하고, 인간의 삶은 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집중하고 욕심을 없애고 끊임없이 수양해야 한다고 하였다.


4. 자성록

  이 책은 이름 그대로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을 위하여 엮은 것이다. 55세(1555)에서부터 60세(1560)에 이르는 5년간 문인들에게 보낸 편지 22통을 이황 자신이 직접 편집한 책이다. 이황은 남에게 한 말을 스스로 실천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이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고 항상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
  그 내용은 크게 초학자의 공통된 병을 고치는 요령, 학문하는 기본자세, 학문하는 방법, 명성을 가까이 하는 데 대한 경계 등 네 가지 주제로 구분할 수 있다.

1) 초학자의 공통된 병을 고치는 요령

  1~3번의 서간에서 이황을 성학을 배우는 초학자들의 공통적인 심기의 병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초학자들의 병은 아직 ‘이’를 통찰함이 투철하지 못해서 헛되게 천착하여 억지로 탐구하고, 마음 가지는 방법에 어두워 조급히 서두르는 데 있다. 이러한 마음의 병은 이황 자신이 몸소 겪은 것이고 주희 또한 초년에는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황은 이러한 병에 걸린 초학자들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진단하였다.

  ‘이’가 일용 사물에 밝게 드러나서, 단지 움직이고 가만있거나 말하고 침묵하는 사이나 인륜의 도리와 응접의 즈음에서뿐만 아니라 평범하고 실제적이며 명백하고 미세하며 복잡한 것에도 항상, 언제 어디서나 그러하지 아니함이 없음을 알지 못하고 자꾸만 고원심대한 곳에서 손쉽게 파악하려 한다. 이러한 일은 자공도 할 수 없었는데 초학자들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헛되이 찾아 헤매는 수고만 있을 뿐 행동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이러한 마음의 병에 걸린 초학자들이 산중에 홀로 앉아 한순간에 도를 깨치려 노력한다면 결국은 선가의 공空 사상에 빠지고 마는데, 이렇게 되면 성학은 결코 배울 수 없다. 이 때문에 마음의 병을 고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이황이 초학자의 마음의 병의 고치기 위해 제시한 처방은 아래와 같다.

  첫째로 세간의 궁하고 통합과 얻고 잃어버림, 영광과 치욕, 이익과 손해 따위를 일체 생각 밖에 두어 마음에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병은 이미 절반 이상 낫는다. 이와 같이 한 다음에는 둘째로 모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수작을 적게 하고 기호와 욕망을 절제하며 마음을 비워 편안하고 유쾌하게 나날을 보내야 한다. 셋째, 도서와 화초를 구경하든지 산과 물, 고기와 새의 즐거움 같은, 정서와 의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되도록 자주 접촉하여 심기를 항상 순경 중에 있게 하며, 마음을 거스르거나 어지럽히지 말고 성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말아야 한다. 넷째, 책을 읽을 때에도 마음이 괴로울 정도로 읽지 말고 또 많이 읽으려 하지 말 것이며, 마음이 내키는 대로 그 뜻을 음미하여 즐겨야 한다. 다섯째, 궁리에 있어서는 일용의 평이 명백한 곳에 나아가 ‘이’를 간파하고 이를 숙달케 할 것이며,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마음에 스며들게 하여 ‘마음에 새기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새기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것을 반성하여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오래 쌓게 되면 자연히 이해되어 얻게 될 것이니, 결코 서둘거나 마음을 얽어매어 빠른 효과를 거두려 하지 말아야 한다.

2) 학문하는 기본자세

  정유일과 권호문에게 보낸 서간에서 이황은 성학을 배우는 기본자세를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 뜻을 세움
  성학을 배우려는 초보자들이 빠지기 쉬운 병폐는 뜻을 확고히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참으로 뜻이 독실하면 도를 듣기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입지에는 또한 그 목적, 즉 무엇을 위해 입지를 하는가도 중요시되어야 한다.

(2) 학문하는 근본과 말단
  옛날에 학문하는 자는 반드시 효제충신에 근본을 두었으며 천하만사와 성품을 다하고 천명에 이르는 극치에까지 이르렀으니, 그 대체는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다. 또 가정에서 어른들의 부르심에 대답하는 일을 가장 먼저 그리고 빨리 배웠다.

(3) 서로 도와 공부하고 말의 병통을 깨달음
  학문하는데 있어서 편견과 고루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학우들과 책상을 맞대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고, 독단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이나 타인의 주장에 병통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4) 학습
  다만 말없이 공부를 쌓아 가며 전진하기를 그치지 않아서 이런 학습을 오래 쌓아 완숙에 이르면, 자연히 마음과 이치가 하나 되어 이 양자를 잡았다 놓쳤다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의 방법은 바로 정자의 ‘몸매를 가지런히 하고 마음을 엄숙하게 함’, 공자가 말한 ‘네 가지의 일을 금함’, 증자가 말한 ‘세 가지의 일을 귀하게 여김’이니 이 방법에 따라서 경을 해야 하며 결코 억지로 다른 방법을 찾아 헤매거나 이런저런 방법을 마련하여 억지로 탐구하고 꼬치꼬치 캐지 말아야 한다.

(5) 곳에 따라 공부함
  성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경으로써 심신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하나로 통일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조용한 곳에서만 공부를 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세속의 여러 가지 일은 학문하는 데 방해가 될 때도 있으나, 가정의 일용사는 모두가 성학의 목적에 벗어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요한 곳과 시끄러운 곳 어디서나 정신통일을 하는 공부를 하여야 한다.

(6) 실천을 하여 힘을 얻음
  성인을 배우는 학문은 언어와 문자로만 배우는 학문이 아니라 실천과 실행을 통하여 몸소 배우는 학문이다. 이 때문에 실천이 힘차고 능숙하지 못하면 수십 년간 더욱 노력하여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

(7) 오래 지속하고 느긋하게 노닐며 싫증날 때까지 노력함
  고인들이 학문한 것을 살펴보면 비록 끊임없이 공경하고 힘써 잠시도 중단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많은 공부를 쌓아 오랫동안 충분히 연구하고 실천한 다음에야 지식과 행동을 자연히 순서에 따라 얻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성학을 결코 급히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8) 마음을 잡아두고 잘잘못을 살핌
  조용히 있을 때에는 마음이 흩어지거나, 쇠진해지지 않도록 붙잡아두고 길러 주어야하며, 행동할 때에는 시비, 선악, 사정, 의리 등을 엄격히 구분하여 비, 이, 사, 악을 피하고 그 반대를 따라야 한다.

(9) 인과 지를 추구함
  옛 성현들이 이미 산수를 좋아한 뜻을 좇아 초학자도 산수를 배워야 한다. 성현이 산수를 좋아한 것은 노장학파에서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수가 상징하는 인과 지를 추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즐거움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인하고 지한자의 기상과 의사를 찾아보아야 한다.

3) 학문하는 방법

(1) 독서
  독서할 때에 대의를 파악한 다음 어느 구절, 어느 글자가 중요한가를 살펴야 하고 또 숙독을 하고 정밀히 생각하며, 느긋이 싫증나도록 노력을 오래 지속하여 책 속에 숨어 있는 미언대의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다독을 하면 그 내용을 잊어버리고 멍청해져서 마침내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과 같이 된다. 따라서 속독과 다독을 피하고 숙독과 정독을 하면서 낮에 읽은 것을 밤에 생각하고 풀이해 보아야 한다.

(2) 마음을 잡아두고 기르며 공경하는 마음에 머무름
  마음을 잡아두고 기르는 것은 평일 무사할 때 심신의 상태를 보존하고 함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심신 상태는, 외모는 의젓하게 생각하듯 하고 속마음은 하나로 통일되어 또릿또릿 깨어 있듯 한다. 이러한 상태를 습성화하기 위해서는 공경스러운 마음에 머무르는 것이 요구된다.
  공경하는 마음에 머무르는 것은 정자의 ‘마음을 통일하여 흩어지지 않게 함(주일무적)’과 ‘외모를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함(정제엄숙)’, 사상채의 ‘항상 또릿또릿함(항성성)’, 윤화정의 ‘마음을 거두어들일 때 한 가지 잡념도 용납하지 않음(기심수렴 불욕일물)’ 의 네 가지가 적절하다.

(3) 잘잘못을 살피고 이치를 탐구함
  성찰과 궁리의 공부는 존양거경과 함께 성학 방법론의 처음이자 끝이지만, 실제로는 두 갈래 공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양자는 따로 분리할 것이 아니라 결합하여 나란히 적용하여야 한다.

4) 명성을 가까이 하는 데 대한 경계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 책임을 맡아서 성현으로 자처하는 이가 있다면, 명성과 실상이 부합하지 않음이 있을 때 그것을 숨기려고만 든다. 자신을 속이면서 남을 속이게 되니 결국 그것이 폭로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 없다. 이처럼 지혜 있는 체하고 아양을 떨어 얻은 명성은 화를 자초하지만, 진실한 명성을 더 큰 성과를 약속하고 발전을 촉진하기 때문에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명성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경계가 오히려 사람을 미혹케 하는 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만 남의 장점을 취하기를 정밀하게 하고,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 것이며 지극히 선한 데 나아기를 기약하라. 학자는 마음을 비우고 뜻을 겸손하게 하여 자기의 견해가 조금이라도 부당하면 곧 버리고 다른 사람의 보다 더 타당한 이론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명한 스승과 도움이 되는 벗들과의 절차탁마의 노력이 필요하다.


5. 논사단칠정서

  사단칠정은 퇴계 이황이 주장한 인생관의 논리적 학설이다. 사단이란 맹자가 실천도덕의 근간으로 삼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며, 칠정이란 '예기'와 '중용'에 나오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慾)을 말한다.
 
  이황은, 4단이란 이에서 나오는 마음이고 칠정이란 기에서 나오는 마음이라 하였으며, 인간의 마음은 이와 기를 함께 지니고 있지만, 마음의 작용은 이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과 기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선과 악이 섞이지 않은 마음의 작용인 4단은 이의 발동에 속하는 것으로, 이것은 인성에 있어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하여 이른바 이기이원론을 주장하였다. 이황의 이러한 학설은 그 후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켜 200여 년 간에 걸쳐 유명한 사칠 변론을 일으킨 서막이 되었다. 즉 기대승은 이황에게 질문서를 보내어, 이와 기는 관념적으로는 구분할 수 있으나 구체적인 마음의 작용에서는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 이기공발설을 내세웠으며, 이를 다시 이이가 뒷받침하여 이기이원론적 일원론을 말하여 이황의 영남학파와 이이의 기호학과가 대립, 부단한 논쟁이 계속되었다. 이는 마침내 동인과 서인 사이에 벌어진 당쟁의 이론적인 근거가 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 퇴계는 1553년 정지운의 '천명도설'에서 천명도를 수정하면서,"사단은 이의 발동이요, 칠정은 기의 발동이다."(四端理之發, 七精氣之發)라고 고쳤다. 1558년 고봉의 지적을 받은 후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여, "사단의 발동은 순수한 이이므로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동은 기를 겸하므로 선도 있고 악도 있다."(四端之發純理, 故無不善, 七精之發兼氣, 故有善有惡)고 제시하면서 고봉에게 의견을 묻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 8년에 걸친 퇴계와 고봉 사이에 벌어진 사칠 논쟁의 발단이 되었다.

  퇴계와 고봉이 주고받았던 사칠 논쟁은 학문적 진지성과 자신의 심성론적 논거를 구명하는 분석의 치밀함에서 한국유학사의 학문적 논쟁에 모범이 되고 있다.


6. 성학십도
 
1) 태극도

- 태극도(太極圖)는 염계 주돈이가 글과 그 림을 모두 만든 것으로, 우주의 근원인 태극과
음양의 변화, 그리고 오행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과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동양의 고대인들은 우주가 태극으로부터 생겨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태극이 운동하면서 소극적인 '음'과 적극적인 '양'이라는 요소가 나오고, 여기에서 다섯 가지 물질인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의 오행(五行)이 생성되고, 이 오행이 서로 결합되어 인간과 만물이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태극도는 단순하지만 우주의 근원과 만물의 생성원리, 인간과 만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2) 서명도

- 서명도(西銘圖)는 북송 때 사람인 장횡거(장재)가 쓴 서명(西銘)을 보고 원나라 때 사람 정복심이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서명'의 원래 제목은 정완(訂頑)이었다. 즉 '어리석음을 바로잡다.' 또는 '완고함을 바로잡다.' 라는 뜻이다.
서명도는 상도(上圖)와 하도(下圖)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상도는 '이일분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하도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처럼 천지를 섬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일분수'란 성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다. 여기서 '이일'이란 만물은 하나의 원리에서 나왔다는 뜻이고, 이것이 각각의 사물들로 나뉘는 것을 '분수'라고 한다.
천지를 부모로 둔 것은 모든 만물이 똑같다. 인간도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와 가장 가깝다. 그리고 형제와 친척과 이웃이 있다. 이렇게 천지에서 부모, 부모에서 형제와 친척, 친척에서 이웃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일에서 분수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들이 다 나의 동포요, 만물은 나와 같은 존재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3) 소학도

- 소학도(小學圖)는 주자가 저술한 ‘소학’이라는 책을 퇴계가 도표로 그린 것이다. ‘소학’은 어린 학생들에게 인성 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주자가 편찬한 책으로, 내용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학’은 집안의 작은 일부터 몸에 익히고 배우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과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습관은 제2의 본성이라는 말처럼, 어렸을 때의 습관은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이 그림은 어린 학생들이 익혀야 할 일들을 열거하고, 그 중심에 공경하는 마음을 두고 있다.

4) 대학도

- 대학도(大學圖)는 사서의 하나인 《대학》이라는 책을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 권근이 그림으로 요약하여 정리한 것이다. ‘소학’을 통해서 실천해야 할 행동 규범을 배운 사람은 ‘대학’을 통해서 자신을 지속적으로 수양하여 집안과 국가를 잘 다스리고, 나아가 인류를 안정시키는 것을 포부로 사아야 한다. 그래서 ‘대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수기치인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이끌어서 선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의미다.
대학도는 《대학》의 내용을 요약하여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대학은 크게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으로 이루어져 있다.

5) 백록동규도

-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는 주자가 백록동 서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규범의 목차를 따라 퇴계가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 내용은 가장 먼저 오륜을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학문이란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밝히고 그대로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을 누리도록 본성을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학문의 목적이다. 백록동규도는 인간이 되기 위한 학문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6) 심통성정도
-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글과 그림 중 상도를 정복심이 만든 것인데, 퇴계가 중도와 하도를 보완한 것이다. 대학도에 나왔던 ‘마음을 바르게 한다.’ 는 것의 성리학적 해설인데 그림도 복잡하고 내용도 꽤 어려운 편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마음과 본성, 감정이다. 마음이란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주인이다. 그리고 마음은 본성과 감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통제하고 포섭하는 역할도 함께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잘 수양하여 바르게 유지하면 자신의 본성을 알 수 있고, 감정을 조절하여 학문의 방법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란 사물과 달리 가장 신령스런 기운을 받고 태어난 존재이기에, 마음을 바르게 하면 자연스럽게 본성을 실현 할 수 있다.

7) 인설도

- 인설도(仁設圖)는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가 글과 그림을 모두 만들었다. 인이란 공자 사상의 핵심으로, 쉽게 말하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이 인이고, 사람도 이것을 이어받아서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즉 인은 생명을 낳는 소중한 마음이기에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네 가지의 덕이 있는데, 바로 인. 의. 예. 지 다. 그 가운데 인은 나머지를 모두 포괄하는 가장 중요한 덕이며, 인의 발현이 곧 사랑의 실현이다. 따라서 인을 깨닫고 잘 보존하면 세상의 모든 선함이 그 속에서 나오게 되고, 인간의 모든 행실도 인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인설도는 인의 본질을 인식하고 인의 실현을 통하여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8) 심학도

- 심학도(心學圖)는 정복심이라는 학자가 글과 그림을 모두 만든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글은 성현들이 마음에 대해서 말한 명언을 정복심이 모아서 적은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마음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유학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타고난 마음은 선한 마음이므로 이것을 잘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간의 선한 마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욕심에 물들어 악한 모습을 띠기도 한다. 그러므로 항상 ‘경(敬)’으로 몸과 마음을 잘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9) 경재잠도

- 경재잠도(敬齊箴圖)는 주자가 쓴 ‘경재잠’이라는 글에 왕백이 그림을 그린 것인데, 주자는 이 글을 자신의 서재에 걸어 놓고 항상 경계했다고 한다. 경재잠도는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경(敬)의 세부 항목을 열거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눈의 모습을 존엄하게 하고 손과 발의 모습을 신중하게 하라는 등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살아가면서 겪게 될 많은 일과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일 때나 고요하게 있을 때나 항상 경을 간직해야 한다. 만약 경을 잃게 되면 욕심이 생겨서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경재잠도는 제10 숙흥야매잠도와 서로 안과 밖을 이루는 것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공부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다.

10) 숙흥야매잠도

-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는 진백이 글을 쓰고 퇴계가 그림을 그린 것이다. 퇴계는 경재잠도를 보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숙흥야매’란 말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을 잔다는 뜻인데, 그만큼 시간을 아껴서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의복을 단정하게 갖추고 앉아서 책을 읽어야 하며, 사람들과 묻고 답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일이 생기면 처리한 다음 다시 마음을 가라앉혀 학문에 집중한다. 간혹 휴식을 취하며 다시 정신을 맑게 하고, 밤이 되면 몸이 피로해 기운이 쇠약해지므로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밤에 잘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깊이 잠들어 맑은 기운이 다시 몸속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숙흥야매잠도에서 말하는 대강의 줄거리다.


자료정리:양소영 soyoung6670@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 

:
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