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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소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

독일 듀스부르크 태생으로 뮌휀대학을 나온 뒤 괴팅엔대학, 코펜하겐대학에서 막스 본과 닐스 보어의 지도를 받고 라이프치히대학 베를린대학 등에서 이론물리학 교수를 지냈으며 막스플랑크연구소 소장 괴팅엔대학 교수를 역임 1925년에는 불확정성이론을 발표 193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보어의 원자구조이론의 전개에 협력하고 현대양자역학의 최초의 착상을 발표 그 이론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에 따른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다시 불확정성의 원리를 내세워 이 분야에 새로운 해석을 도입하고 파울리와 공동으로 양자전기학을 전개 원자핵이 중성자와 양자로부터 이루어지는 이론을 발표했다. 또 우주선의 이론적 분석을 시도하고 장의 이론의 한계를 논술함으로써 양자역학의 기초적인 여러 문제들에 관한 연구에 지도적 구실을 했으며 소립자론의 기초적 연구에도 이바지 했다.


2. 목차 및 줄거리

  1. 원자론과 만남
1920년이 봄 하이젠베르크의 나이 20세이던 해 친구들과의 도보여행에서 원자의 결합에 관한 교과서의 표현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 한다. 하이젠베르크와 친구들은 원자 결합에 있어서 교과서의 그림은 호크와 고리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떤 법칙이 있어 결합하는 것이지 호크와 고리의 그림은 무의미 하다고 이야기한다.

  2. 물리학을 연구하다
앞으로의 진로로 고민을 하던 하이젠베르크는 대학교수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조머펠트의 문하에 몸을 담게 되고 하이젠베르크에게는 평생 동안의 친구이자 날카로운 비판자인 볼프강 파울리를 만나게 된다.

  3. 현대물리학에서 '이해' 라는 개념
친구들과 함께 ‘이해’ 에 이야기 하면서 예전의 잘못된 우주관을 통해서 옛날 사람들은 과연 우주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는가? 에 관해 토론한다.

- 다양성을 일반적인 간단한 것에 귀착시키는 일 바로 자네가 좋아하는 그리스 인식으로 말하면 ‘많은 것’을 ‘하나’ 에다 소급시키는 일을 우리는 ‘이해’ 하였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

보어와의 소중한 인연의 시작 그리고 그와 함께 새로운 원자내부 구조에 관한 토론을 한다. 

  4. 역사에 관한 교훈(1922~1924)
아인슈타인의 강연에 참석하던 중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보고 학문만큼은 정치적 의견 싸움과는 완전히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변화를 갖게 된다. 보어를 다시 방문해 함께 도보여행을 하게 되고 그와 전쟁을 겪으며 있었던 일들과 하이젠베르크의 청년운동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5. 아인슈타인과 나눈 대화(1925~1926)
-아인슈타인: 당신은 아직도 이렇게 많은 중요한 문제들이 풀리지 않은 채 산적되어 있는데도 당신의 이론에 대해 그렇게도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하이젠베르크:......자연이 갑자기 어느 한 사람 앞에 이때까지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현상 사이의 단순성과 완결성을 펼쳐 보여주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두려움에 가까운 놀라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실험이 이루어지고 거기서 미리 예언된 결과가 얻어진다면 사람들은 이 이론이 이 영역에서 자연을 올바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

  6. 신세계로의 출발(1926~1927)
불확정성의 원리를 다른 물리학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하나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는 주장은 아인슈타인에게는 흔들릴 수 없는 확고한 원칙이었으며 그 원칙이 누구에 의해서든 침범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보어는 이런 아인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실 것인가를 지시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가 될 수 없습니다’-

  7. 자연과학과 종교에 대한 첫 대화(1927)
자연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토론한다. 자연과학적인 주제에 대해서 종교의 해석이 있을 때 종교적인 주제에 대해 자연과학이 해석을 할 때에 서로 오해가 생기게 되고 그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양립한 다기 보다는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해가야 한다.

-그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자기기만, 즉 모든 것을 종교적 사고와 너무 쉽게 결부시키는 것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합리주의의 광신자가 되어 버렸고 나는 합리주의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8. 원자물리학과 실용주의적 사고방식(1929)
미국 방문에서 미국의 학자들의 자연과학의 발전에 대한 인식이 너무 실용주의적인 것에 대해 실험물리학자 버튼과  이야기 한다.

-버튼:.........아마도 당신네들은 자연법칙을 절대적인 것으로 설명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그 법칙이 바뀌어야 할 경우가 오면 놀라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이미 ‘자연법칙’ 이라는 표현 그자체가 근본적으로는 해당영역에서 자연과 교제할 때의 실용적인 하나의 처방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와 같은 하나의 형식에다 신성화된 미심쩍은 찬양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보는 때가 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대단히 간단하면서도 거대한 연관성에 맞닥뜨리게 될 때는 그것은 아주 다르게 보입니다. 그 경우 우리의 심안 앞에는 우리가 없어도 이미 그곳에 항상 존재하고 있었으며 분명히 인간들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은 하나의 연관성이 갑자기 전개됩니다. 이와 같은 연관성이야말로 우리 과학의 고유한 내용이며 사람들이 이러한 연광성의 존재를 전적으로 받아들였을 때만 비로소 우리는 과학을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

  9. 생물학과 물리학 및 화학의 관계에 대한 대화(1930~1932)
-원리상으로 우리는 한 세포 안에 있는 모든 원자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측정이 살아 있는 세포를 죽이지 않고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살아있는 세포가 아니라 죽은 세포에서의 원자들의 배열이 됩니다. 우리가 그때 양자역학에 따라서 관측한 원자 배열을 바탕으로 해서 그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계산하였다고 하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그 세포는 붕괴하고 부패하기 시작한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역으로 세포를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매우 한정된 관찰만이 허락될 것이며 여기서 얻어진 결과는 또한 옳은 정보이기는 하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그 세포가 살아있는지 파괴되었는지를 결정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도 양자역학 안에 잠재하고 있는 풍부한 수학적 형식들은 생물학적인 형식들을 표현하기에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생물학적인 연구 자체가 양자 이론적  물리학의 확장에 대한 근거를 발견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그러한 확장을 시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10. 양자역학과 칸트 철학(★)
여류 철학자 그레테 헤르만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논리가 틀린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라이프치히에 방문하고 인과율에 의해 이해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논리에 대해 토론하게 된다.

-칸트가 한 인식의 분석은 단순히 불확실한 의견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참지식이며 반응할 수 있는 생물이 그 외부세계에 대하여 우리들 인간의 처지에서는 경험이라고 불리는 그러한 관계에 서게 될 때에는 칸트 철학은 어디에서나 정당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의 ‘선천적인 것’ 도 뒷날 그 중심적 지위에서 추방되고 인식과정의 좀더 포괄적인 분석의 일부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연과학적인 또는 철학적인 지식이 어느 시대에도 그 본질적인 진리를 갖는다.’ 는 명제로서 완화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사고 구조도 바뀐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과학의 진보란 다만 단순히 우리들이 새로운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한다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다.’ 는 말이 무엇을 뜻하느냐 하는 것을 항상 거듭 새롭게 배워나감으로써 성취되는 것입니다.  -

  11. 언어에 대한 토론(1933)
독일의 정치적 불안으로 원자물리학의 황금시대는 급속도로 그 종말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보어가족과 함께 부활절 휴가를 보내며 언어의 표현의 한계와 도구로서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언어란 독특한 문제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결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뜻은 그 말의 문장에서의 연결 그 문장을 말하는 전후 맥락 그리고 우리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부수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자연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진술하고자 하면 우리는 반드시 수학적인 언어로부터 일반적인 언어로 이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연과학의 과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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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철학에 대하여.......
칸트에게서 지성은 그의 법칙들을 자연에서 퍼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게 이 법칙들을 지정하는 것이며, 이것이 '코페르니쿠스적 사고방식의 전환'으로 표현되는 인식 사태에 대한 칸트의 근본 이해 방식이다. 이는 동시에 현상만이 우리의 앎의 대상이라는 인식의 한계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형이상학의 중심 주제였던 신, 영혼 등 이른바 물자체의 세계는 인식이라는 이성 활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날 수 없는 영역임을 칸트는 주장한다.

  12. 혁명과 대학생활(1933)
히틀러 유겐트의 지도자인 학생으로부터 동참하기를 부탁받지만 사회 개선의 수단에 있어서의 공산주의자나 국가 사회주의자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그러한 개선에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며 거절하게 된다.

-사람은 자각을 가지고 단정하게 자기의 맡은 바 일을 해 나가야 할 것이며 좋은 모범은 결국은 선으로서 작용할 것을 기대해야한다는 아주 평범한 충고 이외에는 다른 말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미국으로 이민할 것인가를 두고 인간적인 갈등을 하면서 플랑크와 어느 쪽이 옳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재난을 꿋꿋하게 타개해 나가다가 재난이 끝나면 다시 새롭게 재건하는 일이 플랑크가 나에게 말한 과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타협을 맺게도 되고 이로 말미암아 뒷날 지탄을 받게 될 경우도 생길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더 악화된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게 설정된 과제였다. 원래가 국외에서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좀더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과제가 있을 뿐이다-

  13. 원자기술의 가능성과 소립자에 관한 토론(1935~1937)
독일의 혁명과 그에 따르는 이민으로 말미암은 혼란에도 아랑곳없이 원자물리학은 이 무렵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보어의 손님으로서 코펜하겐에 머무르면서 러더퍼드, 보어와 함께 원자핵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14.  정치적 파국에서 개인의 행위
나치 정권이 차츰 경직화 되어감에 따라 독일은 차츰 고립되어 가고 있었으며 대항 세력 또한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미국으로 강의를 하러 갔던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자 페르미로부터 이민권유를 받지만 ‘우리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어떤 일정한 주위환경과 일정한 언어와 사고영역에 태어나서 매우 어릴 때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는 그 영역에서 가장 적절하게 성장할 수 있으며 또 그곳에서 가장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 입니다.’ 라고 하며 거절하고 곧 전쟁이 일어날 독일로 돌아오게 된다. 곧 그는 원자폭탄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지만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고 대단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그것도 기술적인 성과만이 얻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원자에너지의 유용한 사용을 위해연구를 계속하게 된다. 

  15.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길(1941~1945)
하이젠베르크 일행은 원리적으로는 원자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제조 방법도 한 가지 알고 있었지만 성공할지 모르는 목표에 대한 막대한 비용을 출자하는 것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학문에 종사할 것인가에 대해 부테난트와 이야기한다.

- 나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싶습니다. 즉 환상이 현실에 의해서 무참히도 짓밟히고 말았는데도 학문에 종사하는 일이 세계와 그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에 대한 좀더 솔직하고 비판적인 판단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따라서 나는 경제적인 면보다는 학문에서 기대할 수 있는 즉 비판적 사고를 길러줄 수 있는 학문의 교육적인 측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학문의 대표자들은 독일에서 항상 높이 평가되어 왔으며 그들의 말과 그들의 사고방식은 아주 넓은 영역에 영향을 끼치리라고 생각합니다. -

  16. 연구자의 책임에 대하여(1945~1950)
1945년 8월 6일 오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 어쨌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확실하다. 즉 과학적 내지는 기술적 진보에 이바지할 것을 일생의 중요한 과제로 세운 개인들은 이 과제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문제에 참여할 때에는 그 해결을 그가 분명하게 긍정하는 커다란 발전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연관성을 아울러 고려한다면 그는 쉽게 정당한 결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고 본다. -

  17. 실증주의, 형이상학, 그리고 종교(1952)
-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경우 세계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침묵을 지켜야 할 부분이 있다는 식의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하나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경우에 침묵을 지켜야 할 것이다. 허나 이보다 더 무의미한 철학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 까닭은 사람들에게 어느 하나도 완전히 두렷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불분명한 것을 제거해버린다면 아무 흥미도 없는 동어 반복만 남게 될 것이다.......어쨌든 과학에서는 보어가 말한 바와 같이 실용주의자들과 실용주의자들의 요청 즉 개체적인 것에 대한 세심한 정확성과 언어의 극단적인 명확성을 우리는 쾌히 받아들인다고 선언해도 좋을 것이다. 그 까닭은 만약 사람들이 그 위대한연관성에 관해서 토론하고 고찰하는 것이 금지된다면 우리가 올바르게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나침반을 잃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

  18. 정치와 과학과의 대결(1956~1957)
- 아데나워 수상은 어느 공적인 연설에서 원자무기는 근본적으로는 다른 화기의 개선과 개량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통상적인 무기에 견주어 정도의 차가 있을 뿐이라는 뜻을 밝혔다....... 우리가 내는 성명이 평화를 사랑하고 원자폭탄에 반대한다는 일반적이고 우호적인 것에 멈춰서는 안 된다는데 의견이 재빨리 모아졌다. -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일명 괴팅엔 18인회는 원자폭탄의 영향력에 대한 계몽과 연방정부의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게 되고 그에 따라 하이젠베르크는 회합을 요청받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단호히 거절한다.

  19. 통일장 이론(1957~1958)
파울리와 함께 소립자 통일장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지만 이론의 완성을 앞두고 파울리는 공동발표를 포기하고 얼마 후 응급수술을 받다가 사망하게 된다.

  20. 소립자와 플라톤 철학(1961~1965)
- 양자택일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삼각형과 같은 물질은 아니지. 그러나 사람들이 양자이론의 논리를 그 바탕에 둔다면 양자택일은 복잡한 기본형식이 반복에 의해서 출현할 수 있는 하나의 기본 형식이 된다....... 하나 또는 몇 개의 특성들은 소립자를 나타내는 수학적인 형식에 의해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 형식은 결국은 소립자라는 객체에 상응하는 말하자면 소립자의 이념일 것이다.


3. 불확정성의 원리란?

원자내의 전자의 운동 상태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측을 위한 관측이나 실험 자체가 그 상태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위치의 오차 × 운동량의 오차 = 플랑크 상수
위치의 오차를 적게 측정하려면 운동량의 오차가 커질 수밖에 없고 운동량의 오차를 작게 하려면 위치의 오차가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위치나 운동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4. 원자 폭탄의 원리는?
자유 중성자를 가속시켜 우라늄의 핵에 충돌 시키면 우라늄 238의 겨우는 바륨 139와 크립톤 97 그리고 중성자 2개로 분열된다. 이 2개의 중성자는 또 다른 우라늄 핵과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반응은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일어나게 된다. 이때 우라늄238이 바륨 139와 크립톤 97로 나뉘면서 질량의 결손이 생기고 줄어든 질량은  E=mc^2 을 따라 엄청난 에너지를 내게 된다.


자료정리:박정인 jos6494@empal.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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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