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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제스의 생애와 사상

1881년 9월 29일 출생1902년 빈 대학 경제학 학사1904년 빈 대학 경제학 석사1906년 빈 대학 법학박사1934년~1940년 제네바대학 국제학 대학원 연구교수1945년~1969년 뉴욕대학 초빙교수1973년 9월 10일 92세를 일기로 사망

* 미제스의 생애

  미제스는 1881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서 동쪽으로 350마일 가량 떨어진 렘버그에서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어릴 때 그의 가족은 빈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미제스는 주로 빈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아더 폰 미제스는 오스트리아 철도청의 건설기술 공무원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고아원을 위한 자선활동에 헌신했다.
  미제스는 1900년 김나지움을 졸업한 뒤 빈(Vienna)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1906년에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당시 경제학은 법학의 한 분야로 취급되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할 당시 미제스는 국가주의(Statism)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동료 학생들과는 달리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면서 미제스의 사회주의에 대한 의구심은 反사회주의로 굳어지는 한편 국가주의에서도 벗어나 열정적인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의 생애는 연대순으로 보면 세 단계로 구분된다. 초기는 제1차 세계대전 전과 대전 중 박사학위(1906년)를 받은 젊은이로서 진로를 결정하고 군복무를 한 시기였다.
  다음은 유럽에서의 양차대전 사이에 오스트리아정부의 경제담당 고문으로 일하면서 많은 책을 저술하는 한편, 비엔나 대학교와 제네바(스위스)의 국제연구원에서 강의하며 그의 독자적인 세미나를 열고 경기순환연구원을 설립·운영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그는 자유 시장 및 건전통화의 용기 있는 옹호자로서 국제적인 경제관계 회의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나갔다.
제3기는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의 시기였다. 히틀러가 미제스의 조국 오스트리아를 점령함으로써 이러한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1940년 미제스 교수는 전쟁으로 황폐한 유럽을 떠난 피난민으로서 새로운 미국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역의 땅에서 거의 60세가 다 되어 자국어가 아닌 영어로 저술과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에는 많은 청중들이 운집했고 그의 저작을 찾는 독자들도 크게 늘어났다. 64세 때 뉴욕대학교경영대학원에서 새로운 직책을 맡았는데 그 후 88세까지 그 직무를 계속했다.
  1969년 미제스가 88세의 나이로 뉴욕대학에서 은퇴했을 때 미제스는 미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교수였다. 그는 평생에 걸쳐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쳤고 25권의 책과 250여 편의 논문들을 저술했다. 자유사회를 위해 그가 이룩한 업적은 눈부신 것이었다.

  1973년 92세를 일기로 미제스가 영면 했을 때 자유를 신봉하는 많은 이들은 거인이 잠들었음을 애도했다. 비록 그가 살아서 자신의 사상이 새롭게 평가받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로부터 1년 후 그의 수제자 하이에크가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되면서부터 사회주의는 위축되기 시작했고 자유주의가 서서히 회복되었다.
  하이에크는 『미제스의 영향은 이제 개인적인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 그가 밝힌 횃불은 매일매일 더욱 힘을 발휘하는 자유주의 운동을 밝혀 주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커즈너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스트리아학파에 관한 열광적이고 흥분된 관심은 미제스의 결정적이고도 절대적인 공헌이었다』고 하였다.
  실제로 미제스의 책은 중국, 체코, 그리스, 일본, 한국,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러시아, 스페인, 스웨덴,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를 기념하는 「루드비히 폰 미제스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그의 부인 마르기트는 이 연구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1993년 103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남편의 예언이 적중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 미제스의 사상

  미제스의 모든 저작에 일관되는 주제는 “역사를 만드는 것은 관념이며, 역사가 관념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미제스는 적어도 그의 명예에 부응하는 세 가지 주요한 독창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미제스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전체 학문분야에서 필수적인 한 부분으로 서술하는데 있어 다른 ‘오스트리아학파’의 두 거인 -멩거, 뵘 바베르크- 를 뛰어넘었다. 그는 현대시장경제의 매우 복잡하게 얽힌 기능뿐만 아니라 정부가 개입할 때 발생되는 경제적인 왜곡까지도 다루었다.
  두 번째 주요한 공헌은 사회주의나 통제사회는 시장가격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대규모 생산을 계획하는데 필요한 아무런 지침이 없다는 논증이었다. 생산자들이 소비자들의 만족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도, 경쟁도 있을 수 없다. 그 결과 시장가격이란 것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계획수립자가 다양한 생산요소의 상대적 가치나 중요성을 결정할 방도가 없다.
  세 번째 주요한 공적은 경기순환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칼 멩거의 화폐이론에 그 기반을 두고 화폐란 단지 사람들이 교환하는데 있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아주 편리한 상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뵘 바베르크의 이자론을 근거로 이자율은 각 개인의 시간적 선호에서 기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제스는 온갖 형태의 정부 간섭을 변함없이 일관되게 비판한 사람이었다. 경제적 제원리에 대한 그의 예지는 그로 하여금 금세기 동안 세계를 덮쳐왔던 수많은 극단적 제결과 -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 마르크화의 화폐가치 폭락, 히틀러와 기타 간섭 주의적 정부들의 민족주의적 정책과 계획, 인위적인 통화기준과 종이금(paper gold)이라는 특별인출권제도의 붕괴 - 등을 예언할 수 있게끔 했다.

* 1971년 9월 25일자 제31권, No.39 발췌
* 월간조선 2002년 11월호 - 자유주의 사상가 열전(2), 루드비히 폰 미제스 발췌

2. 경제학의 연구방향

(1) 고전파
  고전파 경제학은 가장 초기의 경제학으로 영국에서 일어났으며 아담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를 들 수 있다.

(2) 사회주의파
고전파 경제학에 가장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고전파 경제학에서 사람들이 얻는 보상은 그들의 서비스가 소비자들에 의해 더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데 비례해서 커진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ㆍ공산주의는 ‘결과의 균등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각기 상이한 참여자에 대한 상이한 규칙의 적용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불공평한 규칙에 의해 균등한 보상이 이루어진다.

(3) 오스트리아 신고전파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에 응수한 탁월한 경제학자는 빈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였던 칼 맹거였다. 그를 추종했던 두 후계자 폰 뵘 바베르크와 루드비히 폰 미제스의 작업으로 보완되었다.이들은 최초의 고전파 경제학사상에 있어서의 필수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며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제원리에 대한 완전한 반격을 하였다.

(4) 간섭주의파
  영어권 세계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유혹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유혹에 노출됨으로써 간섭주의로 전환되었다.
  히틀러의 경제 체제를 설명하는데 이용되는 단조로운 예증은 그 관념을 명백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한 마리의 소에 대한 사유권에 관해 사회주의·공산주의는 ‘그 소를 압수하라. 그리하여 국가소유로 하라.’고 말한다. 그러한 경제계획에 대한 히틀러의 수정안은 다음과 같다. '그렇게 되면 그 소의 소유자는 그의 소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상실한데 대해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는 소 자체가 아니며, 진실로 원하는 것은 소의 '서비스'인 것이다. 소의 현 소유자에게 빈껍데기의 소유권을 맡겨두어라. 그러나 우리가 우유의 분배를 통제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
  즉 정부가 관장하여 재분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통제하고 걷어 들이기 위해 경제적인 문제에 간섭한다는 것이다.


3. 줄거리

제1부/ 현대경제사상과 경제정책

(1) 자본주의
  16~17세기 무렵 농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농촌을 떠난 많은 부랑인은 도시의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금으로 상품을 살 수 있었으며 그들의 소비는 생산을 유발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혁신, 즉 노동자를 소비자가 되도록 하여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이다. 대기업체는 전적으로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격렬한 공박과 비판을 받아왔는데 진원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는 대중들과 더불어 비롯된 것도 아니고 노동자 자신들 사이에서 비롯된 것도 아닌,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귀족들 사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실상이었다. 19세기 초엽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이 지불되자 귀족들은 노동자 대중의 생활수준을 비난하면서 제조업을 공격했다.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극히 낮았다. 그것은 새로 전개된 자본주의 산업이 노동자들을 해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은 전에도 이미 인간 이하의 수준을 살고 있었다.
  실질임금의 증가는 인구증가와 함께 평균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서구나 미국이 개발도상국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은 이 높은 생활수준은 자본의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현대적인 방법이 인도에 도입되자 유례없는 인구증가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 인구증가에 상응하는 자본투자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빈곤의 증가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국가는 개인당 투하 자본의 증가에 비례하여 더욱 번영하게 된다.’ 경제부흥이란 기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장 경제의 여러 원리에 맞는 정책을 쓰는 데서 오는 것이다.

(2) 사회주의
  경제적 자유의 의미는 개인은 사회 전체 속에 자신을 통합시키는 방법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지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는 자기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이러한 기본적인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하에서는 오직 하나의 경제당국만이 존재할 뿐이며, 바로 이 당국이 생산에 관한 모든 문제를 결정한다.
  사회주의체제는 군대 규칙은 생산체제 전체에 이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최고당국자의 지혜와 수완,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에 달려 있다.
  이른바 ‘소련의 실험(Soviet experiment)'은 아무것도 입증해 주지 않는다. 인간 행동에는 실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단지 전 세계가 자본주의의 전형이라고 여기고 있는 미국보다 소련의 생활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미국의 상점을 나설 때, “여러분의 후원에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라는 표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주의 국가의 상점에 들어가면, “당신은 위대한 영도자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감사해야 할 사람은 ‘파는 자’가 아니라 ‘사는 자’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위원회와 지도자들과 독재자들이 왕이며, 인민들은 다만 그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3) 간섭주의
  간섭주의란 정부가 그의 활동을 질서의 유지나 안전의 산출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섭주의는 정부가 더 많은 것을 하기를 원하며 시장의 제현상에 간섭하고 싶어 한다. 즉 정부는 물가, 임금수준, 이자율, 그리고 이윤 등에 간섭하는 것이다.
  정부는 통화 공급을 늘렸을 때 국민들이 그것으로부터 야기되는 물가앙등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하면, 보통 가격통제라는 수단에 호소한다. 정부가 개입을 더욱도 진행함에 따라 결국 모든 물가, 모든 임금수준, 모든 금리 등 전체 경제체제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정부에 의해 결정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이것은 ‘사회주의’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오류는 경제적 자유와 다른 자유가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시장이 없는 곳에서도 계산과 계획이 가능하다고 믿는 데에 있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 3의 체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난센스다. 간섭정책, 분리된 개입주의, 전시 사회주의 등은 모두 히틀러의 국가 간섭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이 모두 독재와 노예의 길로 가게 된다.

(4) 인플레이션
  어느 정부가 지폐 량을 늘리며, 그 결과로 화폐단위당 구매력이 저하되고 따라서 물가는 상승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 부른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통화의 붕괴와 더불어 종말을 고한다.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의 하나였던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제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다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곧 끝날 것으로 국민들은 믿고 있었다. 1923년 8월 28일까지 거의 9년 동안 그렇게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계속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은 돈을 그들의 포켓 속에 넣어 두는 대신 입수할 수 있는 모든 물질들을 사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1923년 가을 인플레이션이 끝날 무렵 독일 공장들은 그들의 노동자들에게 그날그날마다 매일 아침 선불로 노임을 지불했고 노동자들은 지체 없이 상점으로 달려가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샀다. 하룻밤 사이에 마르크가 그 구매력의 50%를 잃고 있었다. 마르크화는 결국 무가치해지고 새로운 통화제도를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완전고용 상태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유로운 노동시장의 유지에 의한 방법이다. 특정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은 완전고용이 오직 인플레이션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용납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딜레마는 시장이 임금 율을 결정토록 해야 할 것이냐, 아니면 임금 율이 노동조합의 압력과 강제에 의해서 결정되도록 할 것이냐 하는 것이지, “우리가 인플레이션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실업상태를 취할 것인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야 할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세상사를 처리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 필요한 조치 중의 하나가 인플레이션 정책을 포기하는 일이다.

(5) 해외투자
  개발도상국에 있어서의 생활수준이 낮은 이유는 개인적인 열등성이나 무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본의 공급과 이용할 수 있는 자본재의 양이다.
  영국인들은 다른 나라들보다 더 일찍 저축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들은 더 일찍 자본을 축적하여 그것을 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해외투자란 영국의 자본가들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 영국의 자본을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 투자는 19세기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었다. 대부분의 유럽제국과 미국의 철도 역시, 영국자본의 원조로 건설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철도, 항구, 공장, 광산, 수에즈운하 등이 해외투자가 없었다면 건설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에서의 더 많은 경제적 평등을 위한 필요조건은 공업화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자본투자와 자본축적의 증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보호무역주의는 단지 투자자본을 어떤 분야의 사업에서 다른 분야로 전용될 수 있을 뿐이다. 보호무역주의 그 자체는 한나라의 자본에 아무것도 보탬을 주지 않는다. 자본이동의 자유와 해외 투자의 자유야말로 후진국의 개발을 가능하게 하며 실업을 줄이고 임금을 높이는 길이다.

(6) 정책과 사상
  슈펭글러나 토인비의 ‘문명의 성장-사멸’ 이라는 운명론은 독단이다. 문명을 멸망시키는 것은 고대 문명에서나 오늘에서나 두 가지 원인 즉 국가 간섭주의와 인플레이션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상의 결과이다.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릇된 사상과 싸우는 일이다.”

제2부/ 반자본주의 심리

(1) 자본주의의 사회적 특징과 그 비방의 심리적 요인

- 소비자는 왕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에서는 서민이 으뜸가는 소비자이며, 이들의 구매 여부에 따라 궁극적으로 무엇이 생산되어야 하는가와 생산품의 양과 질이 결정된다.

- 경제적 향상에 대한 충동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거나 소유할 수도 있는 것은 과소평가하고, 그들이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을 갈망하다. 이 강한 욕망이 인간을 경제적 향상에의 길로 인도하는 추진력이 된다.

- 신분사회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있어서의 자본가와 기업가들을 신분사회에 있어서의 귀족과 흔히 잘 비교한다. 귀족의 부는 시장현상의 결과는 아니다. 그러나 시장경제체제에서의 기업가와 자본가들은 그들의 부를 그들의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주는 고객들에 의지하고 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더 좋고 더 싼값으로 소비자들에게 봉사하여 이들을 밀어내 버리면, 바로 그 순간 이들은 부를 잃어버리게 된다.

- 좌절된 야망에의 원념
  계급과 신분에 기초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개인은 자신의 불운을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상황 탓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는 살아가는데 있어 모든 사람의 지위는 그 자신의 행위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들의 자존과 도덕적 평정은 더 큰 능력과 재능을 발휘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상처를 입는다. 이들은 자신의 패배와 부족에 눈뜨게 되며 자기가 실패한 것은 자신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하려 든다.

- 지식인들의 원념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차지하고 싶었던 자리를 딴 사람에게 양도해 주었다는 이유로 자본주의를 혐오한다.

- 인텔리 직업인들(White Color Workes)의 원념
  화이트칼라들은 업무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육체노동자의 대다수가 그 자신보다 더 많은 급료를 받고 존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화를 낸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지적인‘ 작업을 그 작업이 지니는 ’참다운‘ 가치에 의해 평가하지 않고 ’무식한 자‘들의 단조로운 천역(舛逆)을 편든다는 것을 얼마나 수치인가 하고 생각한다.

- 브로드웨이와 헐리웃의 공산주의
  헐리웃과 브로드웨이의 공산주의자들치고 사회주의 예술가의 저작들을 공부한 일이 있거나 더욱이 시장경제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공부한 일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들 육체파 여배우와 무용수, 가수들과 코미디, 영화, 가요 등의 작가와 제작자들은 시장경제라는 착취자가 추방되면 즉각 자신들의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는 엉뚱한 환상을 갖는다.
  연예산업의 많은 작품들 중 얼빠지고 조잡한 것을 자본주의 탓으로 돌려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2) 일반대중의 사회철학

- 자본주의의 본질과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실상
  자본주의의 초기에는 어떤 기술혁신이 이룩되어 대중에게 그 효과가 미치게 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 약 60년 전 가브리에 타르다(Gabriel Tarde)는 어떤 산업상의 혁신은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되기 전에는 소수인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올바로 지적했다. 즉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도 그 후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습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생산은 이러한 시간적 지연을 단축시키고 거의 없애버렸다. 대기업은 사실상 일반국민들의 소비 및 생활방식을 표준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시장경제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부유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난해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 즉 부유한 사람들의 부가 다른 누구의 빈곤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가, 자본가, 과학기술자들은 그들이 소비자의 필요를 가장 잘 충족시키는데 성공하는 한 번영하게 되어 있다.

- 반자본주의 전선
  사회주의가 자신들의 생활상을 개선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자본주의가 자신들의 이익에 편파적인 체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자본주의를 증오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자신들을 해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회주의자가 된 것은 질시와 무지로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우스운 것은 자본주의적 대기업의 산물들을 향유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소련의 체제를 찬양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국들이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 자본주의하의 문학

- 문학작품을 위한 시장
  대부분의 가난한 저술가들은 예술과 학문을 좋아하는 부유한 친구들의 후원에 힘입어 생계를 이어갔다. 이러한 후원제도가 저술가들에게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부여했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이다.
  과거의 자유주의자들은 문학 작품들을 위한 시장의 등장이 왕이나 귀족들의 후견으로부터 인간들을 해방시킨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찬양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는 몇 가지 착오가 있었다.

- 서점 가에서의 성공
  많은 비평가들은 그들이 일컫는바 문학의 쇠퇴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한다. 자본주의는 대중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책과 잡지들을 사보게끔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대중들에게 문학 애술 애호가의 통찰력을 불어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탁월한 책들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과오가 아니다.

- 출판의 자유
  자유로운 출판이야말로 문학이 갖는 생명의 근원이다. 많은 나라에서는 신문, 잡지 발행인들은 노동조합 측의 배척을 받지 않을까 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들은 이 문제의 공개적인 논의를 피하면서 암묵리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지시에 굴복한다. 이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은 과거 제왕이나 왕족보다 훨씬 더 다루기가 어렵다. 이들의 까다로운 성미는 풍자문학, 코미디, 정규극장의 뮤지컬 코미디의 질을 저하시켰고 영화를 지극히 단조롭게 만들어 버렸다.

- 지식계급의 완고성
  진보론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제기한 주된 비난은 위기와 침체, 그리고 대량실업의 재현이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내제되어 있는 온갖 오류와 모순을 상세히 분석할 필요 없이 세 가지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첫째, 우리 시대의 커다란 이데올로기적 갈등은 ‘국민소득’의 분배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경제조직체로 가장 적절한 체제의 선택을 둘러싼 의견의 충돌일 뿐이다.
  둘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는 경제적인 차이점이 없다. 둘 다 똑같은 체제의 사회경제조직, 즉 자본주의에서의 생산수단의 사적 통제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생산수단의 공적 통제를 의미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 두 용어는 동의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경제계획, 복지국가 등을 공산주의와는 다른 사회경제체제의 제문제의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것은 중대한 과오다.
  셋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뚜렷이 다른 두 가지 사회체제의 유형이다. 생산수단의 사적 통제와 공적 통제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지 단순한 반대개념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체제인 혼합경제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진보론자들의 사회 및 경제학자들은 결국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사회주의적’ 소설과 희극
  사회주의 사상에 물든 대중들은 사회주의 소설과 희곡을 요구하면 같은 사상에 물든 작가들도 이 같은 작품들을 언제든지 저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의 눈에는 사악하고 어리석은 것은 모두 부르주아적이요, 선하고 고상한 것은 모두 프롤레타리아적이다.
  사회주의 작가들은 자본주의 희생자들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수혜자인 기업인들의 생활고 행실도 다룬다. 이들은 어떻게 이윤이 존재하게 되는가를 독자들에게 폭로하는데 열중한다.

(4)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외적 비판

- 행복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난을 퍼붓는다.
  첫째는 자동차나 텔레비전 수상기 그리고 냉장고를 소유하고 있다 해서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전기제품이나 기구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해 애써 일하고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불안한 느낌을 될 수록 많이 떨쳐버림으로써 이전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수고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 중의 하나는 유아사망률의 저하다. 이 현상이 적어도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를 제거했다는 사실을 어느 누가 부정할 것인가.
  자본주의에 퍼부어지는 두 번째 비난, 즉 과학기술 및 치료법의 혁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 것은 아니라는 비난도 또한 불합리한 것이다.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의 변화는 가장 총명하고 가장 정열적인 사람들의 개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 사람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들을 점차적으로 따르게 된다.

- 물질주의
  또 다른 사람들은 천박한 물질주의를 들어 자본주의를 비난한다. 이들은 말하기를, 자본주의는 인간이 고차원적이고 고상한 것을 추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대의 예술을 공정하게 평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까지 전혀 없었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은 언제나 소수의 집단에 한정되어왔다. 자본주의를 특정지우는 것은 대중들의 저급한 취향이 아니라 이 대중들이 자본주의 덕분에 행복해졌으면서 문학의 ‘소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 불공평
  자본주의를 가장 비방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자본주의가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빈민들이 가난한 이유는 오직 불공평한 사람들이 그들의 타고난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착취를 방지하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교회나 세속의 당국자가 수행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이런 교의는 모두 허위다. 자연은 관대한 것이 아니라 인색하다. 자본이란 하나님이나 자연이 주는 공짜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소비를 신중히 제한함으로써 나오는 결과다. 그것은 저축에 의해서 창출되고 증가하며, 또 추가적인 저축으로 유지된다.
  자본주의사회가 풍성한 부를 창출하는 것은 잔본재의 유효한 공급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임금생활자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것은 임금을 벌어들이는데 열성적인 사람들의 1인당 자본설비가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생산된 사용가능한 재화의 총량 중에서 임금생활자에게 가는 몫이 꾸준히 증가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사실의 당연한 귀결이다.
 
- 자유와 서양문명
  동양에는 국가로부터의 자유라는 원초적인 관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는 격동이 있었지만 동양에는 정체와 나태, 무관심만이 있을 뿐이었다.
서양사회는 최고의 목적을 위해 경쟁할 수 있는 개개인의 공동체였다. 동양사회는 전적으로 군주의 은총에만 매달려 있는 신민들의 덩어리에 불과했다. 서양의 민활한 젊은이들은 세계를 명성과 고귀함과 부를 쟁취할 수 있는 활동무대로 간주했다. 동양의 유순한 자손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의 일상적인 절차만을 추종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타키투스(Tacitus:로마시대의 정치가, 역사가)는 티베리우스(Tiverious;로마황제)시대의 로마인들을 두고 이렇게 우울히 언급했다. “그들은 스스로 노예가 되고 있다.”

(5) ‘반공산주의’ 대 ‘자본주의’

  오늘날에는 가짜 반공산주의 전선이 존재한다. 그들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분에 있어 착각을 범하고 있으면서 비공산주의적인 사회주의를 내세우는데 뒷받침이 되는 논거를 <공산당 선언>이라고 부르는 문서에서 찾고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보다도 훨씬 더 열성적으로 자본주의를 멸시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온갖 불미스러운 행위를, 자본주의의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소름끼치는 듯한 혐오감’에 관해 언급함으로써 정당화한다. 요컨대, 그들은 인민들을 <공산당 선언>의 사상에로 전향시키려는 의도로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척 가장하는 것이다.
  ‘어떤 것에 반대하는’ 운동이란 완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성공할 가망성이 조금도 없다. 이러한 반대 운동의 통렬한 비난은 그들이 공격하는 강령을 선전하는 결과가 된다.
  서부, 미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등 서양문명제국이 소련 정부의 만행에 의해 노예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자유방임 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공개적이고 무제한적인 지지뿐이라 생각된다.


자료정리:이민아 catchon21@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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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