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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9. 15:56

적과 흑(스탕달)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15:56

1. 스탕달의 생애 ( Stendhal 1783∼1842 )

그르노블 출생. 본명 Marie Henri Beyle이다. 벨은(이하 벨)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년 벨의 정신생활은 매우 특이하여 어머니를 열애했고, 아버지를 전적으로 증오했다. <어머니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었다. … 아버지가 우리들의 키스를 방해하러 올 때는 몹시 얄미웠다>라는 자전의 한 구절은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머니를 7세 때 잃었는데, <이때부터 나의 정신생활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몹시 싫은 아버지, 광신가이며 노처녀인 숙모, 가정교사인 신부에 둘러싸인 자신을 노예라 생각했다. 지방도시 부르주아 집안의 보수성 위선에 대한 반발, 한편 진보적인 외조부로부터 받은 18세기적 합리주의사상과 문예에 대한 사랑, 무엇보다도 고결을 사랑하는 대백모의 영향을 받은 <에스파뇰리즘>, 게다가 방탕한 외숙부로부터 배운 돈 후안적 인생관 등이 그가 받은 교육의 전부였다.

수학이 뛰어났기 때문에 16세에 파리로 상경, 에콜 폴리테크니크 시험기회가 주어졌으나, 그의 본심은 <몰리에르와 같은 극작가가 되는> 것이었기에 결국 시험은 포기했다. 그러나 친척인 육군 고관의 도움으로 이탈리아 원정군에 가담하여 17세인 1800년 초여름 알프스를 넘어 밀라노 땅을 밟았다. 우울한 세월 뒤에 찾아온 해방으로서의 이탈리아 체험은 그에게는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자유를 알고, 사랑과 쾌락, 미와 음악, 그리고 이탈리아인의 삶의 방식을 알았다.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그의 정신적인 고향이 되었다. 곧 군직을 떠나 1802년 다시 파리로 온 벨은 이후 수년간 극작가에 뜻을 두고 문학수업에 정진했다. 독서와 연극관람을 하는 한편, C.A.엘베시우스·J.G.카바니스 등의 <이데올로기 철학>에 심취, 그 영향하에 독특한 인간학 구축에 부심했다.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작에서는 별 성과가 없었지만, 이 시기 수업의 의미는 헤아릴 수 없이 큰 것이었다.

뒷날 소설가적 소지는 대부분 이 시대에 생긴 것이었다. 이 동안에 여배우 멜라니 길버트를 사랑하여 그녀의 출연장소인 마르세유까지 동행했는데, 이것은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동거생활이기도 했다.

1806년부터 14년 제정 붕괴시까지 벨은 군무원으로서 또 관리로서 여러 직무를 보며 유럽 각지를 전전했다. 문학보다도 사회적 지위를 쌓는 것에 야심을 불태운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4년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실직하고 나서 문필활동이 본격화되었다. 《하이든·모차르트·메타스타시오전(傳, 1815)》을 시작으로, 밀라노 이주 후 《이탈리아 회화사(1817)》 《로마·나폴리·플로렌스(1817)》 등을 잇따라 썼다. 18년 알게 된 메틸드 덴보스키는 생애 최고의 애인이었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 경험은 뒤에, 《연애론(1822)》을 탄생시켰다.

21년 이제까지의 집필활동과 리버럴파와의 교제 때문에, 관헌의 의심을 받아 밀라노 퇴거의 권고를 받고 메틸드에 대한 사랑에 절망하면서 파리로 돌아왔다. 왕정복고하의 파리에서 그는 실의에 빠진 문단의 방랑자에 지나지 않았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프랑스·영국의 여러 잡지에 다양한 평론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낭만파를 원호하여 썼던 《라신과 셰익스피어(1823, 25)》도 이 계열의 작품이었다. 그 밖에 《로시니전(1823)》 《로마산책(1829)》이 있지만, 소설로서의 처녀작 《아르망스(1827)》은 성적 불능자를 주인공으로 한 특수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다. 긴 불우한 생활이 끝나고 1830년의 7월혁명은 그에게 영사직을 가져다 주었다.

잇따라 출간된 《적과 흑(1830)》은 그의 대표작이었지만, 호평을 얻었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이 후 로마 근교의 치비타베키아의 영사로서 로마를 왕복하며, 휴가를 파리에서 보내는 생활들이 계속되었다. 직무에 싫증이 난 그는 쓰는 일에 위안을 발견했다. 2개의 자전 《에고티즘의 회상》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 미완성의 장편소설 《뤼시앙 뢰방》 《라미엘》, <이탈리아 연대기>라 총칭되는 《카스트로의 수녀(1839)》 등의 중·단편들을 모은 《어느 여행자의 수기(1838)》 등을 발표하였다. 특히 <이탈리아연대기>의 연장이라 볼 수 있는 《파름의 수도원(1839)》은 생애를 매듭짓는 결작이었다. 42년 파리체제중 길거리에서 뇌졸중발작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다음날 죽었다.


2.  Motive

① <적과흑>의 줄거리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서 ‘법정신문(La Gazette des Tribunaux)'에 상세한 내용이 게재되었던 사건

② 베르테(Berthet)사건    1827년 12월 28일~31일자
가난한 집안 출신인 베르테는 미슈(Michoud) 집안의 가정교사로 채용되어 부인의 호의와 신임을 얻게 되나 남편에 의하여 해고당한다. 그뒤 코르동(Cordon)이라는 귀족 집안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나 그 집안 딸과의 관계를 의심받아 역시 쫓겨나게 된다. 코르동 집안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 미슈 부인의 편지 때문이라고 의심을 품은 베르테는 미슈부인을 살해를 기도하나 실패하고 사형을 선고 받는다.

③ 라파르그(Lafargue)사건  1829년 3월
가난한 청년 라파르그가 변심한 애인 테레즈 카스타데르를 질투심 때문에 살해하여 목을 자를 사건. 사형을 당했던 베르테와 달리 살인죄로 5년형을 선고 받는다.


3. 시대적 배경

소설에〈1830년 연대기〉라는 부제가 붙어 잇는 것을 보아도 왕정복고시대에 대한 스탕달의 정치적 견해가 여기에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에는 행복에의 탐구라는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으며, 한 개인으로서 특정한 시대환경을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적인 과제인 에고티즘에 관한 멋진 고찰도 볼 수가 있다.

대혁명 전야에 생긴 시민 계급(스탕달도 그 중의 하나)은 소년기에 대혁명이라는 유례 없는 파란을 경험하고, 대다수가 혁명 정부가 내세운 공화주의 이상에 공명하여 인권의 자유를 표방하는 혁명군에 가담하고, 이윽고 대두한 보나파르트와 더불어 유럽 대륙을 동분 서주한다. 보나파르트는 얼마 안 가 나폴레옹 1세로 제정적인 권력 정치를 펴지만 이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대혁명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나타난 정치제도라고 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제정이라고는 해도 대혁명 이전의 군주전제 정치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1804년 원로원이 의결한 <공화국 정부는 프랑스 국민의 황제라는 칭호를 가진 한 황제에게 맡겨진다>는 조문을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은 외면적으로는 적어도 공화국 형태를 유지해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또 이 시대에 계급이야 여하간에 유능한 인물에게는 출세의 길이 열리고 <서른 여섯 살에 장군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1814년 다시 나폴레옹 제정이 무너지자 정세는 일변했다. 루이 18세가 부르봉 왕조의 정통 군주로 프랑스 국왕(국민의 왕이 아니다)이 되고 신의 은총으로 프랑스왕국을 통치하고 헌장을 국민에게 수여하게 된 것이다. 이것과 함께 등장한 것이 국외로 망명했던 귀족 계급과 성직자 계급이었다. 국외에서 갖은 고생을 겪은 이 두 계급의 혁명파 및 보나파르트에 대한 증오는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정복고 초기의 급진 왕당파에 의해 시도된 <백색 테러> 때문에 많은 진보파와 보나파르트파가 학살되었다. 또 1814년의 헌장은 왕정복고 헌장이라고는 하나 자유주의적 의회 정치를 기초로 한 것이었다. 급진 왕당파는 수상 리쉴뢰의 온화 헌장에 의한 정책에 불만을 품고 진주군(進駐軍)을 몰래 가입시켜 진보파에 대한 철저한 탄압을 음모하는 밀서 사건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스탕달은 《적과 흑》 제2부 제21장 이하에서 거의 3장에 걸쳐 이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는 단순히 1818년의 급진 왕당파의 음모를 그린 것이 아니라 이것을 1830년으로 옮겨 혁명을 두려워하는 급진 왕당파의 광태(狂態)를 풍자하고 거꾸로 프랑스 국민의 날카로워진 자유사상을 그리려고 한 것이다.
 
1824년, 루이 18세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샤를르 10세는 극단적인 전제 군주였다. 루이 18세 시대의 미온 정책으로 다소 숨을 죽이고 있던 급진 왕당파는 당장에 모든 정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더욱이 예수회라는 수도회(修道會)는 강대한 세력으로 프랑스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 번 대혁명을 경험한 프랑스 국민은 날로 심해 가는 언론의 탄압과 선거법 제한을 언제까지나 감수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1830년 7월 마침내 파리 시민은 들고 일어나 7월 혁명을 성공시켰다. 루이 필립이 <프랑스 국민의 왕>으로 추대되고 신의 은총과 국민의 의사에 따라 의회에서 가결된 헌장을 수락하면서 마침내 7월 왕정 시대가 시작되었다.
 
4. 사조
프랑스 소설은 18세기에 접어들자 진실한 연애의 모습을 추구한 아베 흐레보의 <마농레스꼬>(1731)가 나오면서 모험 소설이나 이상파 연애 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 소설상의 시도가 소설에 한층 비약을 촉진하는 바탕을 마련했으나 대혁명으로 소설의 근대적 자각은 중단되었다.
19세기 초에는 샤또브리앙과 스딸 부인을 선두로 해서 일어난 낭만주의의 사조 아래 자기를 드러내 놓는 고백 형식의 소설, 혹은 서간체 소설이 연이어 나오고, 또 여류 작가의 연애소설이 갈채를 받았으나 그 소설들의 대부분은 상류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룰 뿐 시대나 사회를 그리려는 목적은 전혀 없었다. 이들은 풍자 소설이기는 하나 그것도 독자를 웃기는 것이 목적이고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인간성을 깊이 추구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한편 이때에는 역사소설도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의 역사소설은 단지 과거의 재현을 위한 사실적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시대 사조의 흐름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소설가의 사명이라 하던 스탕달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낭만파의 화려한 문체를 따르지 않고 간결하고 적확한 문체로 가차없이 이 진실을 추구하려고 했다. 뒷날 발자크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사실적 사회 묘사 의식이 없었던 시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1830년에 나타난 이 <적과 흑>은 확실히 프랑스 소설 사상 획기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뚜렷한 계급 대립 의식을 그렸다는 점에서도, 연애 심리의 과학적인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도 <적과 흑>은 현대 소설에의 첫걸음이었다.

사실주의는 실증주의의 영향아래 19세기 중엽의 소설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예 사조이며, 현실을 그대로 보고 다루려는 세계관, 예술적 태도 및 방법론을 두루 가리킨다. 작품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중시하며, 전형적인 인물을 통해 현실의 전형적인 상황과 의미를 추구한다. 즉, 주관을 버리고 현실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인식하고, 인간의 속물 근성, 범죄, 타락, 알콜중독, 극빈 등의 어두운 면을 모두 반영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실주의 문학은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리얼리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발자크의 ‘인간희극’의 일부가 1829년부터, 스탕달의 ‘적과흑’이 1831년부터 각각 발표됨으로써 사실상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5. 적과 흑 제목에 담긴 의미

일부 스탕달 연구자들에 따르면, ‘흑’은 성직자를, ‘적’은 살인자 혹은 사제복에 튄 핏자국을 의미한다. 이 주장은 소렐이 레날 부인을 쏜다는 내용에 부합하지만 살인미수란 우발적인 상황인 만큼 다른 해석에 비해 힘이 덜 실린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적’을 좌파 자유 주의사상으로, ‘흑’을 성직자들의 음모로 파악한다. 소렐이 출세길 로 군대와 성직으로 꼽은 만큼 ‘적’은 당시 기마병의 제복을 상징하고, ‘흑’은 사제들의 사제복을 의미한다고 분석하는 연구가들도 있다. 군대와 교권을 각각 상징하는 이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외에도 ‘적’은 공화주의를, ‘흑’은 교권을 둘러싼 반동적 음모를 각각 상징한다는 시각도 있다.

 

6. 주요 인물소개

① 쥘리앙 소렐
총명하고 야심만만하며 대담하지만, 낮은 신분으로 인하여 상류 사회에 대한 동경과 경멸을 동시에 가지고 그 사회로 도전하게 된다. 맡겨진 일에 대한 완벽한 일처리와 예민한 성품, 타고난 외모와 자존심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사지만, 사회의 틀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과 이성을 끊임없이 분석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판단을 하는 인물. 사랑조차도 충실하면서도 계산을 하는 그는 마지막에 죽음을 맞기 직전에서야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② 마틸드
자기 시대의 다른 귀족들과는 다르지만 자기 계급에 무관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녀는 오빠와 그 친구들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느끼며 그들의 비겁한 관례 추종에 분개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자기도 역시 관례 추종자임을 모르고 있다. 다른 어떤 귀족보다도 가문의 성을 자랑스러워한다. 만약 쥴리앙이 부유하거나 귀족이었다면, 화려한 귀족 청년들 사이에서 그를 구분해내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한 천민을 사랑하는 것이 마틸드에게는 뛰어난 가족의 영웅심을 현란하게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쥴리앙이 기사로 변신함을 본 그녀는 단순한 평민의 성을 면하게 해준 아버지 라 몰 후작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천민을 사랑함으로써 자기 계급의 반항자, 배반자가 되나, 본질적으로 귀족적인 인물이다.

③ 드 레날 부인
변덕스러운 마틸드의 이성적 사랑과는 반대로 레날 부인은 부드럽고 다정하고 선량하고 따뜻하다. 자신의 온 영혼을 다 기울여 불행한 젊은이를 사랑한다. 허영심과 작위성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며 자연스러움과 헌신과 희생과 정열로 가득 차 있다.

④ 드 레날
시골 귀족을 대표하고 있다. 행동이나 생활양식은 귀족에 합당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귀족의 성(de)을 가지고 있는 그는 귀족 계급에 소속된다. 귀족의 성에 집착하고, 왕자의 살롱에 드나들던 아저씨를 가졌음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녀들을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한다. 귀족 계급의 우선권을 진심으로 믿고 주장하고, 부르주아들과의 평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재산,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 사회적 역할 등에서 궁정 귀족과는 현저한 격차가 있다. 그는 돈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고결한 명예감을 갖고 있지 못하는 등 부르주아화 된 귀족이다.

⑤ 드 라몰 후작
진정한 귀족 계급의 잔존을 나타낸다. 그는 하층민과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시골의 소 귀족과 연원이 오래지 않은 모든 귀족들을 다 같이 경멸한다. 쥴리앙에 대한 그의 감정적 애착도 하나의 변덕에 불과하다. 부르주아화 된 소 귀족과는 달리 그는 관대성 등 귀족의 풍모를 잃지 않는다. 계급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대한 건전한 판단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독창성이나 정력이나 재능 같은 현대적 가치도 인정한다.

⑥ 드 라몰 후작 부인
옛 귀족 계급의 본질적 성격들을 재현하는 인물이다. 귀족 계급은 영광스러웠던 과거에 연결된 계급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문이 오래되었다는 것과 조상의 영예다. 마틸드 자신도 끊임없이 선조인 보니파스 드 라 몰을 상기한다. 이것은 귀족 계급의 요지부동한 전통주의와 결과적으로 현대적 가치를 경멸하는 귀족의 현대 세계에의 부적응을 설명해준다.


7. 줄거리

주인공 소렐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다. 집안환경과 전혀 다른 외모나 체격 등의 이유로 핍박을 받으며 돈 권력에 대한 꿈을 꾸게 되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환경을 듣고 이겨낸 나폴레옹을 흠모한다.

그러다가 가정교사로 들어간 집에서 드레날 부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고 이 일로 인하여 신학교로 도망치듯 떠나게 된다. 소렐은 얼마 뒤 파리로 가서 라몰후작의 비서가 되어 자신이 바래왔던 영화를 꿈꾸면서 후작의 딸 마틸드와 애정문제를 일으킨다.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되려고 하는 순간 레날부인의 폭로로 일은 무산되고 쥘리앙은 부인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옥중에서 그는 부인의 진실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묵묵히 단두대에 오른다.


8. 감상

시대가 그어 놓은 한계 속에서 그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주인공의 야심과 좌절을 통해 스탕달은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가문과 금력에 의해 개인의 위치가 판가름될 수밖에 없는 사회와 시대의 모순을 파헤치면서 그러한 모순에 행동 정열로 항변하고 반항하는 인간상을 제시한 것이다.

하층계급에서 태어나 빈곤과 싸우며 교육을 받았으나 재능과 능력을 거부하는 배타적 사회에 살아야 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면서 그 사회질서에 대항하는 계급상향의 의지를 보였으나 그 대가로 사회정의란 이름으로 처단 받는 모든 사람을 줄리앙은 상징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결국 줄리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던 것은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사회적 성공을 통하여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데서 그의 비극이 시작 됐다. 그의 사회적 성공을 망쳐버린 레날 부인을 저격함으로써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줄리앙이 사형당한 결정적 이유는 그가 레날 부인을 살해하려다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법정에서 계급의식을 나타내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죽음을 막기 위해 마틸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또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지만 그는 그의 입으로 배심원들을 자극해 죽음을 택한다. 마지막 재판장면에서 줄리앙의‘저는 사형을 받아 마땅합니다. 설령 저의 죄가 가벼운 것이라 하더라도 일체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저에게 죄를 씌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는데, 그는 낮은 신분의 사람인데도 상층으로 뛰어오르려 하는 청년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죽는 것이다.

줄리앙은 또 자신이 왜 자신과 같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재판받지 않고, 더 높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다. 하층계급인 줄리앙은 그의 입장을 누국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하층계급에게 재판을 받아야 재판이 공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줄리앙은 불평등한 재판과 배타적인 신분질서의 모순을 폭로하며, 죽어가는 비극적인 인물인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위선에 젖어버릴 수 없는 순결한 심정과 불굴의 의지, 또 거기에 존재하는 총명함과 행운을 가지고서도 도리어 배타적 상류계급에 의해 불행한 최후를 마치지 않으면 안 되는 주인공을 설정함으로써 스탕달은 오히려 프랑스 당시의 사회 풍조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정리 : 박순용  psy33077@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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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