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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소개 - 찰스 디킨스(1812.2.7~1870.6.9)

해군 경리국에 근무했던 하급관리의 아들로 남영국의 포츠머스 교외에서 출생하여 후에 런던으로 이사하였다. 아버지는 호인이었으나 금전관념이 희박하여 디킨스는 소년시절부터 빈곤의 고통을 겪었으며, 학교에도 거의 다니지 못하고 12세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였다.

자본주의 발흥기에 접어들던 19세기 전반기의 영국 대도시에서는, 번영의 이면에 무서운 빈곤과 비인도적인 노동(연소자의 혹사 등)의 어두운 면이 있었다. 이러한 사회의 모순과 부정을 직접 체험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자력으로 노력하여, 15세 때 변호사 사무실의 사환으로 일하였고, 이듬해 법원의 속기사, 그리고 신문사의 통신원이 되어 풍속의 견문 스케치를 써서 보내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모아 단편 소품집 《보즈의 스케치》를 1836년에 출판함으로써 문학가로서 출발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837년에 완결시킨 장편 《피크위크 페이퍼스》는 전작의 확대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이어 《올리버 트위스트》로써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작가로서 위치가 확고해졌다.

그 후 《니콜라스 니클비》《골동품 상점》《크리스마스 캐럴》《바나비 러지 》 《돔비와 아들》등의 장편·중편을 발표하여 문명을 더욱 떨치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몸소 체험하여 알게 된 사회 밑바닥의 생활상과 그들의 애환을 생생히 묘사하는 동시에, 세상의 모순과 부정을 용감하게 지적하면서도 유머를 섞어 비판한 데에 있다.

1850년에 완결된 자서전적인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쓸 무렵부터 그의 작품의 경향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여 디킨스 후기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다음 작품 《황폐한 집》이 그 좋은 예로서, 그의 전기 작품에서처럼 한 사람의 주인공의 성장과 체험을 중심으로 쓴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사회의 여러 계층을 폭넓게 바라보는 이른바 파노라마적인 사회소설로 접근해 갔다.

개인의 힘으로써는 어찌할 수 없는 사회의 벽에 직면하여, 그의 자랑거리인 유머도 그 빛을 잃고 무력감과 좌절감이 전편을 흐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창작력은 조금도 쇠퇴되지 않아, 공장직공의 스트라이크를 다룬 《고된 시기 》프랑스혁명을 무대로 한 역사소설 《두 도시 이야기》그리고 다소 자서전적인 《위대한 유산》등의 작품 이외에도, 대단히 많은 단편과 수필을 썼으며, 한편 잡지사의 경영, 자선사업에의 참여, 소인연극의 상연, 자작의 공개 낭독회, 각 지방의 여행 등, 참으로 쉴 새 없는 정력적인 활동을 계속하였으므로, 그의 건강상태는 나빠졌지만 쉬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1858년에는 20년 이상 함께 살아 왔고 10명의 아이를 낳은 부인 캐서린과 별거하는 등 정신적인 고통도 겹쳐, 1870년 6월 9일 추리소설풍의 《에드윈 드루드》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세계의 각계각층의 애도 속에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안장되었다.

그의 소설은 지나치게 독자에 영합하는 감상적이고 저속한 것이라는 일부의 비난도 있지만, 각양각색의 인물들로 가득 찬 수많은 작품에는 심각함에서 우스꽝스러움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태가 다 묘사되어 있고, 그의 사후 1세기를 통해 각국어로 번역되어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2. 작품 소개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런던과 파리를 무대로 쓴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다. 가슴속 깊이 간직한 사랑, 그녀의 남편 대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한 남자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염원을 담은 이야기는 런던에서 파리를 향해 달리는 역마차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시 파리에서 런던으로 되돌아가는 역마차에서 끝난다.

파란만장한 플롯과 파리와 런던의 활기찬 정경 묘사가 돋보이는 이 역사소설은 빈민에 대한 작가의 동정심, 개혁 주의적 사상 또는 작중의 폭력 유혈 참극에 대한 비평을 담고 있다. 1859년 4월 30일부터 11월 26일까지 라는 주간지에 연재된 것으로, 그의 창작 활동이 원숙한 경지에 다다른 무렵에 쓴 작품이다.

이에 덧붙여 이 소설은,
첫째, 신변잡사를 다룬 것이 아니고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당시의 시대상과 사랑을 그린 역사 소설이다.

둘째, 고도의 희곡성과 정연한 구성적 기교를 갖추고 있다. ‘두 도시 이야기’의 줄거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물샐틈없는 용의주도한 계획을 가지고 구성되어 파란만장한 배경과 장면을 헤쳐 나가며, 잡다한 인물과 사건이 제각기 밀접한 연계를 유지하면서 착착 진행되어 가다가, 드디어 제 1,2부에 설정해 놓은 여하의 사소한 사건도 제 3부에 가서는 해결이 되고, 모든 등장인물의 운명까지도 일일이 다 끝이 맺어져 있다.

셋째, 디킨스의 대부분의 작품이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이 작품의 장면은 런던과 파리 두 대도시에 걸쳐 웅대한 스케일을 이루고 있다.

넷째, 항상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빈민들에 대한 그의 동정심이 이 소설에서도 충분히 잘 표현되어 있으며, 그의 개혁 주의적 사상 또한 여실히 나타나 있다.

다섯째, 이 작품에는 희극, 비극, 선, 악, 사랑의 요소가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3. 시대배경

오로지 선으로만 구성된 사회체제가 있겠는가?

소수의 귀족이 압제라는 공포로 지배했던 도시는 결국 길로틴이라는 미명(美名)의 처형도구로 지배구조가 바뀐다. 소설은 여기저기서 당시 공포정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비의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받는 샤를 다네로부터 전 근대적인 법사상인 연좌제를 엿 볼 수 있고 면회금지 (다네가 볼 수 있도록 단지 서 있었을 뿐인데 루시를 고소하려는 마담 드파르주, 더 이상한 건 그것이 사형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등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이것이 공포정치다.

디킨스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시각은 따뜻하지 않다. 소설의 서두에 분명히 밝힌다. <지혜와 우둔의 시대, 희망의 봄이요 절망의 겨울> 혁명은 긍정하지만 혁명의 주체는 긍정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일관되게 보인다. 디킨스는 자격 없는 하층민이 시대정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천박한 시기를 매도한다. 좋은 시기와 나쁜 시기가 복합된 시대라는 의미에서 귀족의 특권을 없앤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뒤의 지배층 혹은 사회의 동인인 하층민, 그 게걸스럽고 무식하고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인 그들의 놀음에 놀아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혁명을 개인적 복수의 장으로 이용하려는 하층민은 더더욱 그러하다. 옛 주인을 보면서 갈등하거나 악독한 이들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운 디킨스의 저의는 못마땅한 혁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나타내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소설에서 대혁명의 포퓰리즘은 분명히 개인적 복수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목할 사람은 드파르주이다. 그는 과거에 모시던 사람조차도 배신해야 한다. 혁명적 당위는 미래를 위하여 과거를 끊으려고 한다. 어쩌면 자신이 고발해야 할지도 모르는 옛 주인, 그 모습이 안타깝다. 반면에 마담 드파르주는 자신의 가문을 위하여 과거 귀족들이 했던 것처럼 복수를 하려고 한다. 그 수단역시도 동일하다. 사회체제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귀족은 귀족의 힘을 이용했고, 이제 인민은 인민의 힘을 이용한다.

혁명은 인류발전의 첩경이 될 수 없다. 뭐든 임계량에 도달한 후 폭발해야 한다. 물론 프렌치 레볼루션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편협하다고 야단칠 이유는 없다. 그는 영국인이고 또한 자기 나름의 역사적 시각으로 역사적인 픽션을 창출해낸 것뿐이다.

교과서적으로 이 소설을 이해한다면 앙시엥 레짐 즉, 구체제의 상징으로 디에자몽 후작가문을 들고 신체제의 상징으로 마네트 가문을 들 수 있다. 그래서 그 두 가문의 결합인 다네의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화해는 루시를 통하여 가능했지만 드파르주 부인과의 불화는 결국 상생이 아닌 상멸이라는 폭력으로 매듭 지워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 증오는 절대적으로 불허되어야 한다는 대혁명의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개인적 원한이 없는 혁명이 있을 수 없나 보다.

 

4. 주요 인물 소개

-카턴: 전 근대적 소설적 특성인 인물의 전형성 혹은 평면성(flat)을 탈피하는데 그 대표적 캐릭터가 카턴이다. 카턴은 소설의 주제 및 구도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 꺼리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카턴은 다이나믹한 캐릭터이다.
-제리: 영국의 심부름꾼이고 도굴을 하여 시체를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상파르주: 프랑 파리의 술집 주인이다. 시대정신에 걸맞게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하는 주체가 된다.
-루시: 귀족적 여성으로서 우아하게 묘사된다.
-프로스: 하녀로 힘센 보호자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5. 줄거리

소설의 시작은 1775년이다. 은행원 로리는 한 여인을 기다리는 긴급한 메시지를 받는다. 그 여인은 18년간 감옥에 갇혔던 과거 고객 마네트 의사의 딸인 루시(Lucie)다. 의사 마네트는 석방되어 옛 하인이었던 파리의 드파르주의 집에 있다. 루시는 로리와 함께 드파르주의 집이 있는 파리로 떠난다. 마네트 의사는 감옥의 습성을 잊지 못하고 산책용 여자구두를 만들고 있다.

런던으로 온 루시는 아버지를 사랑으로 보살펴 회복시킨다. 프랑스 첩자 혐의로 고소된 프랑스 귀족 다네는 변호사 스트라이버와 그의 친구 카턴에 의하여 도움을 받아 무죄 판결을 받는다. 다네의 숙부 에르몽드는 마차로 아이를 치여 죽이지만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들의 목숨은 금화 몇 닢으로 보상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숙부 에르몽드의 호출에 의하여 프랑스로 간 다네는 귀족신분과 프랑스와의 절연을 선언한다. 다네의 방문을 받은 날 에르몽드 후작은 쟈크 (프랑스 대혁명 비밀결사)에 의해 살해된다. 카턴은 마네트 가의 방문을 통하여 루시에 감화되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루시에게 밝힌다. 또한 카턴은 루시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루시는 다네와 결혼한다. 다네의 정체를 아는 마네트 의사는 번뇌하지만 용서하고 그들의 결혼을 받아들인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다네는 옛날 하인의 구원청구에 응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프랑스로 입국한다. 그는 체포되고 1년 4개월의 감옥생활을 한 후에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된 경력이 있는 마네트 의사의 변론에 힘입어 석방된다. 그러나 다네는 드파르주의 고소에 의하여 다시 검거된다.

드파르주는 과거 다네의 숙부와 아버지에 의하여 마네트 의사가 수감되었다는 옛 주인의 수기를 바스티유 감옥에서 발견하고 다네를 고소한다. 그러나 실질적 고소자는 다네 가문에 의하여 축출된 마담 드파르주였다. 결국 다네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드파르주 부인은 다시 다네 가족 전체를 죽여 버리려는 야욕을 품는다. 그러나 그 계략은 카턴에 의해 간파되고 카턴은 다네 가족 전체를 피신시킨다. 카턴은 감옥에서 다네를 빼 내고 자신이 대신 단두대로 올라간다. 카턴은 루시 앞에서 공언한대로 루시의 행복을 위해 죽은 것이다.

6. 서평

소설의 메시지, 즉 저자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은 부메랑 효과로 볼 수 있다. 제 얼굴에 침 뱉기 혹은 인간관계의 황금률이라고 것이다. 루시에게서 긍정적 부메랑 효과를 보여주고, 마담 드파르주에게서 부정적 부메랑 효과를 보인다.

복수나 증오는 거울처럼 반사되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자신을 18 년 동안 바스티유에 쳐 넣은 귀족에게 복수하고자 수기를 쓴다. 그 수기는 우연히 발견되어 자신의 사위(다네)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된다. 복수는 복수를 부를 뿐이다. 증오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물론 그 복수의 칼날은 자식으로 거두어 진다. 원수의 집안이라도 용서가 되는 이유는 사랑, 그것도 자식의 사랑이기에 가능하다. 복수는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또 다른 사례는 마담 드파르주의 죽음이다. 그녀는 다네 가문의 파괴를 위하여 연좌적으로 루시를 죽이려고 하지만 자신의 총에 의하여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항거나 저항은 결국 당신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짐이라는 사고체계를 보인다. 이는 현재의 세상을 긍정하는 보수적 시각이다. 디킨스가 하층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도 결국은 낡은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 세상은 바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부메랑 효과의 사례를 위하여 마담 드파르주와 다르게 루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으로 아버지를 구해낸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미소 하나로 카턴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한다. 후에 아버지는 루시 본인의 남편을 구해주고, 카턴은 루시 자신의 가정을 온전히 구해낸다. 선이 선을 부르는, 친절함이 친절함을 부르는 선순환이다. 즉 디킨스는 부메랑 효과를 상징하기 위해서 드파르주와 카턴의 죽음을 만들어 냈다.

카턴을 분석해 내면 이 소설은 모두 분석된다. 그는 소설의 주제, 상징 모두에 걸쳐 있다. 소설의 주제는 힘든 시기의 자기희생 정도가 될 것이며 카턴의 상징은 예수이다. 부활, 희생의 측면에서 그러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서 죽는다. 진정한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그는 한 여자의 가정을 완벽하게 보호한다. 이는 인류를 대신하여 속죄하는 예수의 심경과 비슷하다. 세속적으로는 카턴이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이유에 남자의 미래는 여자라는 시구를 적용시킬 수도 있다. 갑자기 파국의 전면에 등장하는 카턴은 소설의 초반부에 그와 다네가 많이 닮았다는 복선이 깔려 있어 그 둘이 바꿔치기 될 운명임을 암시했다.

소설에서 직접 보이는 희생의 이유는 식언을 할 수 없는 명예로운 신사도 정신으로 보인다. 숙녀 앞에서 보였던 호기로운 신사의 모습을 포기할 수 없다는 그런 치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턴의 자기희생, 다네의 귀족으로서의 죄책감, 드파르주 부인의 대책없는 소시민적 이기심이 묘하게 물고 물린다. 소설의 대안인 루시는 순수, 순결 등의 덕목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 비치기만 해도 감화 받는 관세음보살과 같은 존재이다.

 

7. 인상적인 문구

저의 마지막 간청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제 말이 끝나면 아가씨와는 전연 어울리지도 않고 또 아가씨와는 천지의 차가 있는 방문객을 아가씨가 맞지 않으셔도 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이런 말을 한들 소용없을 줄 알지만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가씨와 그리고 아가씨가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 분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만일 저의 생애에 있어서 저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보람 있을 기회나 가능성이 있다면 전 아가씨와 아가씨께서 좋아하시는 분을 위해 여하한 희생이라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이 점 간절하고 참된 것이니 조용한 때면 가끔 저라는 인간을 아가씨 마음속에 안아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자료정리 : 조순남 bravosunnam@hanmail.net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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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