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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9. 00:05

도덕경(노자) 요약 및 서평 독후감2010. 4. 29. 00:05


1. 저자

노자.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성(姓)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字)는 담(聃), 춘추시대에 초나라의 고현(苦縣)에서 태어났다. 주(周)나라 왕실의 수장실리(守藏室吏;도서 관리인)를 지냈다. 오늘날의 학설로서는 BC 479년에 죽은 공자보다 100년 정도 후의 인물이라는 설과, 가공의 인물로서 실재를 부정하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분명하지 않고 현존하는 책과 결부하여 생각하면 춘추전국시대의 중기(BC 4세기)보다 올라갈 수는 없다.

저서로는 <노자> 2편이 있는데 <도덕경>이라고도 불린다. 상편이 <도(道)>자로 시작되므로 도경, 하편이<덕(德)>자로 시작되므로 덕경, 즉 이들을 합친 명칭이나, 유교의 도덕과는 달리 우주인생의 근원과 그 활동을 나타내는 말이다. 문장은 간결한 격언적 표현의 집적으로 대구(封句)와 각운(脚韻)을 많이 썼고 의표를 찌르는 역설적인 말이 특색이다.

[역자] 오강남

1970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6년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0년부터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교수 및 종교학과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도덕경>, <장자풀이>를 비롯 <예수는 없다>가, 옮긴책으로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있다. 1987년 제17회 코리아타임스 한국현대문학 영문번역상(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2. 책 소개

《노자(老子)》 또는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약 5,000자, 상하 2편으로 되어 있다. 성립연대에 관해서는 이설(異說)이 분분하나, 그 사상 ·문체 ·용어의 불통일로 미루어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BC 4세기부터 한초(漢初)에 이르기까지의 도가사상의 집적(集積)으로 보여진다. 선진시대(先秦時代)에 원본 《노자》가 있었던 모양이나, 현행본의 성립은 한초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 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상편 37장, 하편 44장, 합계 81장으로 정착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노자 사상의 특색은 형이상적(形而上的)인 도(道)의 존재를 설파하는 데 있다. ‘무위(無爲)함이 무위함이 아니다’라는 도가의 근본교의, 겸퇴(謙退)의 실제적 교훈, 포화적(飽和的) 자연관조 등 도가사상의 강령이 거의 담겨 있어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크다. 《노자》는 흔히 말하는 도(道)가 일면적 ·상대적인 도에 불과함을 논파하고, 항구 불변적이고 절대적인 새로운 도를 제창한다.

그가 말하는 도는 천지(天地)보다도 앞서고,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적 존재이며, 천지간의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이를 성립시키는 이법(理法)이다. 다시 말하면, 대자연의 영위(營爲)를 지탱하게 하는 것이 도이며, 그 도의 작용을 덕(德)이라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도와 덕을 설파하는 데서, 《노자》의 가르침은 도덕(오늘날의 도덕과는 다름)으로 불리어 《도덕경》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노자사상의 중심은 오히려 정치 ·처세의 술(術)로서의 무위를 설파함에 있고, 형이상적인 도의 논설은 그 근거로서의 의미를 지님에 불과하다.

노자는 하는 일이 많으면 도리어 혼란을 초래하고, 공을 서두르면 도리어 파멸에 빠지는 일이 흔한 세상에 비추어, 오히려 무위함이 대성(大成)을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선 의도하는 바는 아무런 작위(作爲)가 없고, 게다가 그 공업(功業)은 착실절묘하다고 설파하였다.

이 도를 본으로 하여 무위함에서 대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파하며, 이 점에서 형이상의 도와 실천적인 가르침이 관련된다. 무위의 술(術)이란 구체적으로는 유약 ·겸손의 가르침이 되고, 무지 ·무욕의 권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징으로서는 물[水] ·영아(&#23344;兒). 여성에의 예찬이 된다.

유가가 말하는 인의예악(仁義禮樂)이나 번잡한 법제금령(法制禁令)은 말세의 것으로 배척하고, 태고(太古)의 소박한 세상을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궁극적으로는 세속적인 성공을 쟁취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 논법에는, ‘도는 언제나 무위하면서도 무위함이 아니다’ ‘대공(大功)은 졸(拙)함과 같다’ ‘그 몸을 뒤로 하여 몸을 앞세운다’와 같이 역설(逆說)이 많은 점이 두드러진다.

3. 차 례

제1장 도(道)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제2장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제3장 마음을 비우고 배는 든든하게
제4장 도는 그릇처럼 비어
제5장 짚으로 만든 개처럼

제6장 도는 신비의 여인(玄牝)
제7장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제8장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
제9장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제10장 낳았으되 가지려 하지 않고

제11장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제12장 다섯 가지 색깔로 사람의 눈이 멀고
제13장 내 몸 바쳐 세상을 사랑
제14장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제15장 도를 체득한 훌륭한 옛사람은

제16장 완전한 비움
제17장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제18장 대도가 폐하면 인이니 의니 하는 것
제19장 성스런 체함을 그만두고
제20장 세상사람 모두 기뻐하는데

제21장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제22장 휘면 온전할 수 있고
제23장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 자연
제24장 발끝으로는 단단히 설 수 없고
제25장 나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제26장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
제27장 정말로 잘하는 사람은
제28장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제29장 세상은 신령한 기물
제30장 군사가 주둔하던 곳엔 가시엉겅퀴가

제31장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것
제32장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제33장 자기를 아는 것이 밝음
제34장 큰 도가 이쪽 저쪽 어디에나
제35장 도에 대한 말은 담박하여 별 맛이

제36장 오므리려면 일단 펴야
제37장 하지 않으나 안 된 것이 없다
제38장 훌륭한 덕의 사람은
제39장 예부터 '하나'를 얻은 것들이
제40장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

제41장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제42장 도가 '하나'를 낳고
제43장 그지없이 부드러운 것이
제44장 명성과 내 몸, 어느 것이 더 귀한가?
제45장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

제46장 족할 줄 모르는 것
제47장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제48장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
제49장 성인에겐 고정된 마음이 없다
제50장 그에게는 죽음의 자리가 없기에

제51장 덕은 모든 것을 기르고
제52장 어머니를 알면 자식을 알 수 있다
제53장 이것이 도둑 아니면 무엇?
제54장 대대로 제사를 그치지 않는다
제55장 덕을 두터이 지닌 사람은

제56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제57장 백성이 저절로 통나무가 된다.
제58장 화라고 생각되는 데서 복이 나오고
제59장 검약하는 일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제60장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다

제61장 큰 나라는 강의 하류
제62장 도는 모두의 아늑한 곳
제63장 어려운 일은 쉬울 때 해야
제64장 천릿길도 발 밑에서
제65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아는 것이

제66장 강과 바닷가 모든 골짜기의 왕
제67장 내게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제68장 훌륭한 무사는 무용을 보이지 않는다.
제69장 오히려 한 자 정도 물러서야
제70장 내 말은 알기도 그지없이 쉽고

제71장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
제72장 생업을 억누르지 말아야
제73장 하늘의 그물은 엉성한 것 같지만
제74장 위대한 목수 대신 나무를 깎는 일
제75장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제76장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제77장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
제78장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여린 것
제79장 깊은 원한은 한이 남는다.
제80장 인구가 적은 작은 나라
제81장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4. 책의 내용
(상편)

제1장
설명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한 도가 아니요,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무명(無名)은 하늘과 땅의 기원이요, 유명은 만물을 기르는 어머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늘 욕망에서 벗어나 있는 자만이 ‘묘(妙)’를 볼 수 있고, 결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는 ‘요(&#24508;)’밖에 볼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한 근원에서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달리한다. 이 근원을 우리는 ‘현(玄)’이라 부른다. 아니 오히려 ‘현’보다 더한층 보기 어려운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묘’가 나오는 문(門)이다.

제4장
‘도(道)’는 빈 그릇이지만 아무리 퍼내더라도 다시 채울 필요가 없다. 그것은 깊고 깊어 만물의 조상과 같다. 그 안에서는 모든 날카로움이 무디어지고, 모든 매듭이 풀리며, 모든 격한 상태가 부드러워지고, 모든 먼지가 제거되어 매끄러워진다. 언제나 물이 가득 찬 깊은 연못과 같다. 그것이 누구의 아들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형체로써 태고의 제왕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제10장
어지러운 넋을 안정되게 유지하고 하나에 집중시켜 능히 흩어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기를 하나로 모으고 그것을 유화시켜 능히 젖먹이처럼 될 수 있을까?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능히 그것을 모르게 할 수 있을까? 하늘의 문을 열거나 닫을 때 자라는 받아들이는 태도를 능히 취할 수 있을까? 마음이 나라 안 구석구석까지 미치게 하면서도 능히 아무런 손도 대지 않을 수 있을까? 만물을 낳고 기르고, 그것들을 낳으면서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면서도 결코 그것들에 기대지 않고, 그 우두머리이면서도 그것들을 주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신비로운 ‘덕(德)’이라 한다.

제13장
총애와 굴욕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것은 커다란 우환을 자신의 몸과 같이 소중히 하는 것이다. 총애와 굴욕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신하 된 자는 그것을 얻었을 때는 몹시 흥분한다. 그것을 잃었을 때에도 흥분한다. 이것이 총애와 굴욕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뜻이다. 커다란 우환을 자신의 몸과 같이 소중히 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우리가 커다란 해를 입는 까닭은 우리에게 신체가 있기 때문이다. 신체가 없으면 우리에게 무슨 해가 있을 것인가?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몸만을 소중히 하는 것이 천하를 위하는 것보다 더 크면 그러한 사람에게야말로 천하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몸만을 아끼는 것이 천하를 위하는 것보다 크면 그러한 사람에게야말로 천하를 부탁하여도 좋을 것이다.

제17장
가장 훌륭한 군주는 백성들이 다만 임금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 다음가는 군주는 백성들이 그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그를 칭찬한다. 그 다음가는 군주는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꺼린다. 그 다음의 가장 나쁜 군주는 백성들이 그를 업신여긴다. 군주에게 믿음성이 부족하면 백성들이 그를 믿지 않는다. 군주가 조심하여 그 말을 중히 여기면, 공(功)을 이루고 일을 성취하여도 백성들은 알지 못하고 “그것이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제20장
학문을 없애 버리면 근심이 사라질 것이다. ‘예!’ 하고 정중하게 응대하는 것과 ‘응!’ 하고 오만하게 대답하는 것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선과 악의 거리가 얼마나 되겠는가? “남이 두려워 피하는 일은 나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이 얼마나 진리로부터 먼 일이냐. 그 거리가 아득히 멀어서 가이없구나! 세상 여러 사람들은 기뻐 웃으면서 소나 양의 맛있는 고기를 즐기는 듯하고, 봄 동산에 올라 조망을 즐기는 듯하건만, 나만은 홀로 휑하니 빈 가슴으로 평안하고 고요하게 있다. 세속적인 욕망은 낌새조차 보이지 않으니 마치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갓난 아이와 같다. 나른하고 고달퍼서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과도 같다.

사람들은 모두 세속적인 욕망에 의욕이 넘치고 있건만 나만은 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내 마음은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인가? 아무런 분별도 분석도 하는 바 없이 흐리멍덩하기만 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고 분명하기만 한데, 나는 홀로 흐리고 어둡기만 하다. 세상 사람들은 사리에 밝고 빈틈없이 잘 살필 줄 아는데, 나만은 홀로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기만 하다.

대해처럼 동요하고 질풍에 날려 머물지 못하고 있는 듯싶다. 세상 사람들은 다 쓸모가 있건만 나만은 홀로 완고하여 촌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내게는 다른 사람들과 틀린 점이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젖으로 길러져 그것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제24장
발끝으로 서는 자는 오래 설 수 없고, 가랑이를 벌리고 황새 걸음으로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스스로 나타내는 자는 분명히 나타나지 않고, 스스로를 옳다고 하는 자는 드러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는 공(功)이 없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한 일들을 ‘도(道)’의 견지에서는 먹다 남은 음식이나 혹과 같이 쓸데없는 것이라 한다. 그러한 것들은 아마 모든 생물이 다 싫어하고 배척할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지닌 사람은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

제33장
남을 아는 사람은 슬기로운 자이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은 더욱 명찰함이 있는 자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자이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더욱 강한 자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하고, 근면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자이다.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는 자는 장구 할 수 있고, 사력을 다하여 생의 길을 찾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 자는 장수 할 수 있을 것이다.

제36장
어떤 것을 수축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확장시켜야 한다. 어떤 것을 약화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것을 폐지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진흥시켜야 한다. 어떤 것을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이것을 ‘명지를 숨기는 것’이라 한다. 이리하여 부드럽고 약한 것이 모질고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이다. “물고기는 깊은 연못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고, 나라의 가장 예리한 무기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게 좋다.”

(하편)

제44편
명예와 몸 중 어느 쪽이 더 사람에게 절실할까? 몸과 재물 중 어느 쪽에 더 가치가 있을까?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사람을 병들게 할까? 그런 까닭에 재물을 지나치게 아끼면 반드시 크게 낭비하게 되고, 재물을 지나치게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굴욕을 면하게 되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게 된다. 그리하면 장구할 것이다.

제46편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잘 달리는 빠른 말이 군마에서 물러나와 농사에 쓰이게 되지만, 천하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면 군마가 도성 밖의 가까운들에 우글거리게 된다. 욕심이 많은 것보다 더 큰 죄는 없고,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으며, 남의 것을 탐내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그런 까닭에 이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넉넉하다.

제48편
학문을 하면 나날이 할 일이 늘어가고, 도를 행하면 나날이 할 일이 줄어 들어간다. 줄고 또 줄어서 마침내는 무위에 이른다. 무위의 경지에 이르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천하를 얻는 자는 언제나 행하지 않음으로 그것을 얻는다. 행하는 일이 있기에 이르면 이미 천하는 취할 수 없다.

제53편
내게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다면 큰길을 걸을 때 비탈진 샛길로 빠져 들지 않을까 두려워할 것이다. 큰길은 평탄하건만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깨끗하건만 전지는 황폐해 있고, 창고는 텅텅 비어 있다. 그런데도 궁정의 사람들은 무늬 있는 아름다운 비단 옷을 입고, 예리한 칼을 찼으며, 배가 불러 음식을 싫어할 지경이고, 재물은 남아돌 정도이다. 이것을 훔쳐 자랑하는 것이라 한다. ‘도(道)’와는 거리가 먼 일이 아닌가?

제56편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구멍을 막고 문을 닫는다. 이리하여 모든 날카로움이 무디어지고 모든 분별이 해소되며, 모든 격렬한 상태가 부드러워지고, 모든 먼지가 제거되어 매끄러워진다. 이것을 신비로운 ‘동일’이라 한다. 그런 까닭에 그것과 친해질 수도 없고 멀어질 수도 없으며, 그것에 이익을 줄 수도 없고 해를 줄 수도 없으며, 그것을 존귀하게 할 수도 없고 비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것이 되는 것이다.

제60편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물고기를 조리는 것과 같다. ‘도(道)’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귀신도 신의 힘을 떨치지 못한다. 아니 귀신이 위력을 떨치지 못한다기보다는 위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백성들을 해치지 않을뿐더러 성인도 또한 백성들을 해치지 않는다. 양쪽 모두 서로를 해치지 않으므로 서로 그 덕을 상대방에게 돌린다.

제63편
무위를 행하고, 무사를 일삼으며, 맛없는 것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며, 적은 것을 많게 여겨라. 그리고 “원한은 덕으로 갚으라.” 어려운 일은 그것이 아직 쉬울 때에 처리하고, 큰일은 그것이 아직 미세할 때 해결하라.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부터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결코 큰 것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능히 큰 것을 이루어 낸다. 무릇 쉽게 응락하는 일은 반드시 신의를 지키게 되는 경우가 적고, 쉽게 생각하는 일은 반드시 어려운 경우를 만나게 되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성인조차 오히려 쉬운 일을 어렵게 여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마침내 어려운 일이 없는 것이다.

제68편
훌륭한 전사는 무용을 떨치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 가장 잘 이기는 자는 적을 상대하지 않고,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그들 앞에서 몸을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德 )’이라 하고, 이것을 남의 힘을 쓰는 길이라 하며, 이것을 하늘의 지고함과 필적하는 일이라 한다.

제70편
내 말은 매우 알기 쉽고 또 매우 행하기도 쉽다. 그런데도 천하에 능히 아는 자가 없고 능히 행하는 자가 없다. 모든 말에는 근본이 있고, 사물에는 주재자가 있다. 사람들이 무지하기 때문에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자는 드물지만 나를 본받는 자는 존귀하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남루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 속에 보물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제71편
알면서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것은 병(病)이다. 병을 병으로 알아야만 병이 되지 않는다. 성인에게는 병이 없다. 자신의 병을 병으로 안다. 그런 까닭에 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제78편
천하의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는 능히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 달리 그것을 대신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모진 것을 이긴다는 이치를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건만, 이것을 능히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 까닭에 성인이 말하길 “나라의 온갖 욕됨을 한 몸에 지는 사람을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온갖 재앙을 한 몸에 떠맡는 사람을 천하의 왕이라 한다” 한 것이다. 올바른 말은 진실에 어긋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제81편
믿음성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성이 없다. 착한 사람은 따지지 않고, 잘 따지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아 두지 않는다. 이미 남을 위해 다 썼건만 쓰면 쓸수록 더욱 많아지고, 이미 남에게 다 주었건만 주면 줄수록 더욱 풍요해진다. 하늘의 도는 이득을 줄지언정 해는 주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행할지언정 다투지 않는다.

 


자료정리 : 양태종 bigbell811@naver.com
 출처: SPR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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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토머리